총 3974건
김운운
한국불교법화본종
한국불교법화본종의 창종자 혜선(慧宣) 김운운(金云雲)은 1904년 10월 수원시 복수동에서 태어났다. 소년기를 주로 일본과 동남아에서 보내다가 1934년경 불문에 귀의한다. 1939년 신행회 본화회(本化會) 등을 만들어 법화운동을 펼쳤고 그것이 모체가 되어 친형인 김정운(金正雲)과 함께 대승불교법화회를 창설하였다. 1946년 2월 대승불교법화종을 창종하고 교령으로 추대되었다. 1960년 8월 13일 종단명을 한국불교법화종으로 개칭하고 재단법인 한국불교법화종유지재단을 설립하였다. 한국불교법화종은 1999년 한국불교법화본종으로 종단명이 다시 변경된다. → 한국불교법화본종 참고문헌 : 『한국신종교실태조사보고서』(김홍철․양은용 ...
2025-06-30 23: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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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선
감로법회
925년 감로법회를 창교한 인물이다. 그는 원래 금강산 건봉사(乾鳳寺)의 포교사였다고 하며 동사의 중앙포교소(당시 경성부 이화동 소재)에 재임 중에 매월 24일 관음제일에 모인 부인들을 주축으로 감로법회를 조직하였다. 이외에 자세한 행적은 전하지 않는다. → 감로법회 참고문헌 : 『朝鮮の類似宗敎』(村山智順 朝鮮總督府 調査資料 第42輯 1934)
2025-06-30 15: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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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제
유교
자손이 조상에게 지내는 여러 제사 중에서 돌아가신 날 곧 기일(忌日)에 지내는 제사가 기제(忌祭)이다. 기제사(忌祭祀) 또는 기일제(忌日祭)라고도 한다. 돌아가신 지 1년째 2년째 되는 해의 기일에 시행하는 의례는 각각 소상(小祥) 대상(大祥)이라 하고 돌아가신 지 3년째 되는 해부터 시행하는 의례를 기제라 한다. 기제의 대상은 보통 제주(祭主)를 기준으로 하여 사대(四代) 조상 곧 고조부모(高祖父母)까지이며 공적이 큰 조상은 불천위(不遷位)라 하여 4대를 지나도 계속 제사의 대상이 된다. 우리나라에서 기제가 언제부터 행해졌는지는 분명하지 않으나 고려말에 『주자가례(朱子家禮)』가 도입되면서부터 유교의례에 따른 기제의 시 ...
2025-06-30 0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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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산사미륵불숭봉회
정혜천의 증산대도일화장 다른 이름
2025-06-03 17: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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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원철학
원종교
김중건은 스스로 자신의 사유을 ‘극원철학’이 라고 사용했다. 특히 극원(極元)은 주렴계가 태극도 설에서 말한 태극과 흡사하다는 점에서 김중건의 극 원철학은 유(儒)
2025-06-03 16: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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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동진
천도교
권동진은 어릴 때 한성부로 이주하여 조선육군사관학교를 졸업하고 육군 참령(陸軍參領) 함안군수(咸安郡守) 거문도첨사(巨文島僉使) 등을 역임했다. 1882년(고종 19) 임오군란이 일어나자 일본으로 피신 망명하였다가 다시 개화당에 들어가 구한말의 개혁운동에 참가하였다. 1895년 거문도첨사로 있을 때 명성황후 시해(을미사변)에 연루된 혐의를 받아 일본으로 망명하여 1907년까지 일본에 체류하던 중 손병희의 권유로 동학에 입도했다. 1906년 오세창과 함께 만세보와 대한민보 발행하고 1919년 3․1 운동 때에는 33인의 한 사람으로 독립운동을 주도하다가 일본 경찰에 붙잡혀 3년간 수감 당했다. 출옥 후 천도교에서 발간하던 ...
2025-06-03 15: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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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국론
원불교
1945년(원기30) 10월에 송규가 8ㆍ15광복 정국에 대한 생각을 밝히고 중도주의에 입각하여 새 나라 건설을 위한 이상을 제시하며 구체적인 구상을 수록하여 발행한 책이다. 당시 정치적 상황과 사회적 조건 민심의 동향 등을 인식하고 당시 상황에 적합한 건국강요를 제시한 것이다. 서언․정신․정치․교육․국방․건설경제․진화의 도․결론․덧붙임으로 구성된 『건국론』의 요지는 정신으로써 근본을 삼고 정치와 교육으로써 줄기를 삼으며 국방 건설 경제로써 가지와 잎을 삼고 진화의 도로서 결과를 얻어서 국력을 배양하자는 것이라고 밝힌다. 중도주의적 새 나라를 건설하려는 한민족의 과업은 1945년의 당시에는 비록 성공하지 못했지만 오늘날 ...
2025-05-22 22: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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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은도
동학 남접의 교인가운데 전봉준의 동학농민혁명 운동을 반대하고 지리산 속으로 들어가 수도에만 전념하던 사람들이 있었는데, 이들에 의하여 하나의 교파가 만들어지게 되었음. 이 교파를 지리산파 혹은 회은도라고 불렀으나 얼마가지 못하고 소멸되었음.
2025-10-11 23: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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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황교
윤윤원(尹尹源, 1894~?)이 30세 되던 때 갑자기 놀라 사경에 들어갔다가 몇 일 후에 깨어났다고 한다. 이 사경에서 하늘의 음성을 듣고 황황공부(皇皇工夫)를 시작하여 1960년 충남 공주군 계룡면 구왕리에서 황황교를 창립했다. 특별한 종단 조직이나 교리나 경전은 없다. 신앙의 대상은 천존·산신·용왕·신장·단군·칠성(중앙칠성)·부처님(미륵) 이다. 신단에 이 7개 신들의 위패를 모셔놓았다. 창립자인 윤윤원은 선천세계에서는 석가모니 부처님이 주가 되었으나, 후천세계에서는 미륵부처님이 주가 된다고 하였다. 1978년 산립보호법에 의한 무허가 건물로 인정되어 대성각(大成閣)이란 간판을 걸고 포교활동을 하였으나, 1982년 ...
2025-10-11 23: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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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적동 성지
금강대도
1912년 이토암이 이곳에 터를 잡았고, 1913년에는 이청학이 탄생하였으며, 1916년까지 이곳에서 거주하였다. 이곳은 골짜기를 양팔로 품에 안은 듯 좌우로 뻗어 내린 지맥이 좌청룡, 우백호가 분명하고, 앞에는 큰 산이 일(一)자로 가로 놓여 있어 이토암이 은신할 수 있는 훌륭한 장소였다. 이때 20여명의 제자들이 일본 관헌의 눈을 피해가며 이곳에서 이토암을 모셨다고 한다. 일제의 무단통치로 인해 어려운 상황이었지만, 신이한 의술로 제자들을 모으는 한편, 자암(慈庵)과 함께 후원에 단을 설치하고 창생제도를 기원하는 천제를 베풀고, 『교유문』을 저술하는 등 금강대도의 종교적 기틀을 세워나갔다. 이토암이 떠난 이후로 황폐 ...
2025-10-11 23: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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