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 3974건
이송정
대한불교진각종
이곳은 대한불교진각종의 종조 손규상이 처음으로 설법한 곳으로서, 대한불교진각종에서는 손규상의 탄생지인 금강원, 대각지인 농림촌, 열반지인 불승심인당과 함께 4성지의 하나로 중시하고 있다. 1947년 5월 16일 농림촌에서 대각을 이룬 손규상은 같은 해 9월 25일 교화지를 경북 영일군 기계면 계전리 이송정으로 옮기고, 문중교화로써 최초의 설법과 중생구제에 나선다. 원래 이송정은 경주 손씨 문중의 재실로 쓰이던 곳이며, 손규상은 이곳에서 ‘마음공부’, ‘마음 닦는 공부’ 등의 쉽고 신선한 불법으로 민중들을 교화하였다. 대한불교진각종에서는 1988년부터 이곳을 중수 단장하여 손규상의 초전법륜의 성지로서 중시하고 있다. <참 ...
2025-10-08 2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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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부련
오방불교
이운규의 장남이자 오방불교의 2대 교주로 칭해지는 이용래의 별칭. <참고문헌> 『한국신흥종교총감』(이강오, 한국신흥종교연구소, 1992)
2025-10-08 2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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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래목사
동방교
동방교 창교자 노광공은 이래 조부님으로 불리며 두 아들과 삼위일체를 이룬다고 믿어졌다. 동방교의 조직에서 노광공을 중심으로 좌우에 양학식과 정재덕이 있었는데, 이 두 사람의 직책은 이래목사였다. 동방교 신앙인들은 이래목사와 이래장로를 반신반인(半神半人)의 존재로 인식하였다.
2025-10-08 20: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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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리론
한말 도학은 성리설에서 독자적 이론과 쟁점을 제기하였을 뿐만 아니라 의리론에서 도학의 정통을 수호하는 가장 강인한 신념을 발휘하였다. 한말 의리론의 대변은 위정척사론(衛正斥邪論)이 그 선두 주자로서의 역할을 담당하였다. 한말의 의리는 조선 후기에 배청(排淸) 의식으로 정립된 존화양이론(尊華攘夷論)의 의리론적 명제를 양이(攘夷)와 척사(斥邪)의 대상으로 서양을 삼는 데서 출발한다. 여기서 서양은 서양종교로서 천주교와 서양 제국주의의 침략세력 및 이와 동일한 침략세력으로서 일본까지 포함한다. 이런 위정척사론과 같은 맥락에서 외세에 대항하여 민족의 보전을 위해 일어난 세력이 동학운동이다. 위정척사운동과 동학운동은 기본적으로 ...
2025-10-08 1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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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양오행설
음양(陰陽)은 음(--)과 양(--)이라는 부호를 통칭한 것이고, 오행(五行)은 목(木)·화(火)·토(土)·금(金)·수(水)를 통칭한 것이다. 음양설은 『주역』에 근거해 체계화되었고, 오행설은 『서경』에 근거해 체계화되었다. 「문언전」에 건괘(乾卦) 초구효(初九爻)의 해설에서 ‘양재하(陽在下)’라 하고 곤괘(坤卦) 초육효(初六爻)의 해설에서 ‘음시응(陰始凝)’이라 하여 부호와 명칭의 결합을 음(--)과 양(--)으로 분명히 하였다. 음양설은 괘효(卦爻)라는 부호와 그 부호를 설명하는 글인 괘효사(卦爻辭)로 이루어진 역경으로 체계화되어 발전되었다. 『서경』 「홍범」에 오행(五行)에 대해 첫 번째가 수(水)이고 두 번째가 ...
2025-10-08 19: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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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지충
천주교
본관은 해남(海南), 세례명은 바오로이다. 전라도 진산(珍山, 지금의 충청남도 금산)사람으로, 1783년 25세 때 진사시에 합격하였다. 1784년 서울로 와서 역관(譯官) 김범우(金範禹)의 집에서 처음으로 천주교 서적을 접하고 얼마 후 입교하였다. 1789년 북경에 가서 견진성사(堅振聖事)를 받고 돌아왔으며, 1790년 북경교구장인 구베아 주교의 제사금지령에 따라 외사촌 권상연(權尙然)과 함께 집안에 있던 신주를 불살랐다. 그는 1791년 모친상을 당하자 위패를 만들지 않고 제사도 지내지 않으며 천주교 식으로 장례를 치렀다. 이 일은 지역에서 물의를 일으켰을 뿐 아니라 조정에 알려져 남인과 노론 사이의 정파싸움으로까지 ...
2025-10-08 19: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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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익선
성화교
→ 성화교(聖化敎) 참조. <참고문헌> 『朝鮮의 類似宗敎』(村山智順 저, 최길성·장상언 공역, 계명대학교출판부, 1991)
2025-10-08 19: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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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불물십본지
김능복(金能福)이 창립한 삼심교정원의 초기이름. 염불종(念佛宗)이라고도 했음.
2025-10-08 1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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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경중
대화교
윤경중은 13세에 지리산에 들어가 수행하다 선인을 만나 득도 했다고 한다. 용화교에 들어가 교주가 되어 대화교로 개칭한 후 종지와 교의를 불교적인 것으로 바꾸었다. 그는 계룡산에 큰 건물을 지어 앞으로 나타날 미륵불의 출세를 대비했다. 또한 낙토건설 사업에 착수하여 만주에 토지를 구입하고 신도들을 이주시켜 그 이상을 실현하려 했다. 윤경중은 1930년에 사망했다. <참고문헌> 『朝鮮의 類似宗敎』(村山智順 저, 최길성·장상언 공역, 계명대학교출판부, 1991)
2025-10-08 18: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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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화명심
선도교
선도교(仙道敎)를 세운 고판례(高判禮, 1880-1935, 별명 高夫人)가 신도들의 수행을 바로잡아 주기 위하여 제정 발표한 것을 고민환이 정리한 것으로 보인다. ①신화동주(身和同住). ②구화무쟁(口和無諍). ③의화무위(意和無違). ④견화동해(見和同解). ⑤계화동준(戒和同遵). ⑥이화동균(利 和同均) 등이다. <참고문헌> 『범증산교사』(홍범초, 도서출판 한누리, 1988)
2025-10-08 18: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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