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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화기독교연합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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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회는 1912년 5월 미국인 선교사 데밍(C.S. Deming) 여사와 중국인 장로 차도심(車道心)이 한국에 있는 중국인들의 선교를 위해 서울 YMCA에서 첫 집회를 가지면서부터 시작되었다. 데밍 여사는 중국에서 활동하던 미국 침례교 선교사 부모로 인해 1882년 중국 절강성 금화(金華)에서 태어났다. 영국과 미국에서 수학하였으며, 보스턴에 있는 뉴턴신학교에서 선교훈련을 받고, 1902년에 남편 윌리엄 헤럴드 밀라드(William Harold Millard)와 중국 항주로 파견되어 선교활동을 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1909년 남편이 사망하자 다시 미국으로 돌아오게 되었고, 1905년부터 한국과 만주 등에서 선교활동을 ...

2025-10-09 21: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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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토진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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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종(眞宗)이라고도 한다. 정토진종(淨土眞宗)이라는 명칭은 신란의 주저 『교행신증(敎行信證)』에 연원하지만, 신란의 스승인 호넨(法然)을 종조로 하는 정토종의 반발 등으로 인해 1872년부터 공식적으로 사용되었고, 그 이전에는 일반적으로 일향종(一向宗)으로 불렸다. 교의의 핵심은 아미타불의 명호(名號)를 그대로 신수(信受)하는 것만으로도 이미 정토왕생이 결정되었다고 하고, 그 후는 보은감사의 염불생활을 행해야 한다고 하여 아미타불에 대한 절대타력을 강조하는 것이다. 더불어 정토진종에서는 종토진종이라는 말이 단순히 종단의 명칭만을 의미하는 것을 넘어, ①진실한 가르침(무량수경), ②선택본원(選擇本願, 제18원), ③염불왕 ...

2025-10-09 19: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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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무출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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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불교

전무출신은 원불교의 개교 초기부터 사용한 ‘전무주력자(專務主力者)’, ‘전무노력자(專務努力者)’라는 용어에서 유래되었다. 그 의미는 ‘오롯이 공도에 힘써 일하기 위해 원불교에 출가하여 헌신한다.’는 것이다. 『원불교 교헌』에는 “출가교도로서 교규의 정한 바에 따라 본교에 공헌한 이를 전무출신이라 한다.”(제3장), “출가교도로서 정신과 육신을 오로지 본교에 공헌한 자를 전무출신이라 한다.”(「전무출신규정」 제2조)고 명시하고 있다. ‘전무출신’이라는 명칭의 공식기록은 1932년 1월에 발표한 「유공인 대우법」이 처음이다. 이 법에는 유공종별을 “①정남·정녀로 회상을 위해 헌신 노력한 이, ②전무출신으로 회상을 위해 헌신 ...

2025-10-09 16: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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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정교성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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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우회(霊友会)의 신자였던 나가누마 묘코(長沼妙佼, 1889~1957)와 니와노 닛쿄(庭野日敬, 1906~1999)가 독립하여 세웠다. 천리교에 입신한 사이타마현 (埼玉県) 출신의 나가누마 묘코는 동경에서 여공이 되었지만 병으로 귀향, 결혼에 실패하고 다시 동경으로 돌아왔다. 재혼 후에도 병으로 고통을 받다가 니와노 닛쿄의 권유로 영우회에 입신하였다. 영우회의 아라이 스케노부(新井助信)로부터 법화경론을 배우고, 영능자인 아라이 스케노부의 부인으로부터 신들림의 행법을 배웠다. 니와노 닛쿄는 니이가타현(新潟県) 출신으로 한 때 동경에서 석탄상점에서 일했는데 주인 이시하라 타로(石原淑太郎)는 역(易), 성명학, 민간신앙에 조 ...

2025-10-09 00: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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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사종교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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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종교일반/기타

일본은 종교를 공인종교와 비공인종교로 나누어 관리하였다. 공인종교에 대해서는 포교의 자유를 인정하였지만 비공인종교단체는 ‘결사’로 인정하여 단속의 대상으로 삼았다. 일본은 결사에 대해 치안경찰법으로 정치적 결사의 신고제를 규정하였고, 비공인종교단체도 신고를 통해 허가를 받도록 하였다. 이와 같은 일제의 종교 인식은 식민지 조선에도 그대로 적용하였다. 식민지 조선은 결사를 보안법에 적용하였다. 신고제는 아니었지만 정치적 결사를 인정하지 않았고, 비정치적인 결사만 허용하였다. 일제가 공인하지 않은 비공인종교단체는 결사의 범주에 속하였지만 유사종교단체로 분류하였다. 1911년 치안상황 보고서에는 천도교, 시천교 등 한국에서 ...

2025-10-08 18: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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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마을 전도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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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도관과 장막성전을 체험한 구인회는 1971년 1월 17일 새벽 “만민의 경배를 받으라”는 계시를 받고 스스로 재림예수라는 인식을 하게 되었다. 그 후 주로 전도관 통일교 장막성전 이탈자들이 합세하면서 교세가 커졌다. 그러나 그가 예언한 1973년 11월 불 심판이 불발로 끝나자 ‘천국복음전도회’로 명칭을 변경하고 대구에서 다시 활동했다. 그러나 1975년 2월 사기 등의 혐의로 구속된 후 1976년 2월 29일 서대문교도소에서 사망했다. 구인회 사망 후 천국복음전도회는 많은 분파로 나뉘었다. 이후 경남 마산의 최총일과 충북 청주의 박인수가 구인회의 사명을 이어받아 포교활동을 전개하였다. 그의 핵심 메시지는 태극기가 하 ...

2025-07-13 22: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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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나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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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나리’라고도 한다. 농부들이 김매며 부르는 노동요의 하나다. 풍각쟁이들도 불렀으며 퉁소나 젓대 혹은 풀피리로 불 때는 ‘메나리가락’이나 ‘니나리가락’으로 불리기도 한다. 곡명의 유래는 분명하지 않으나 ‘산유화(山有花)’를 풀어서 ‘뫼놀이’라 한 것이 메나리로 되었다는 설과 옛 민요 ‘미나리꽃은 한철이라’하는 데에서 나왔다는 설이 있다. 경상도와 강원도 지역의 민요는 보통 ‘메나리토리’·‘메나리조’·‘메나리목’으로 불린다. 매우 구슬프고 처량한 느낌을 주는 민요로서 경상도의 「얼사영」 충청도의 「산유화」 전라도의 「산야」 강원도 강릉의 「오독떼기」와 비슷한 데가 있다.

2025-07-08 0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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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지개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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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방 이후에 구한말과 일제강점기 동안 농민 대다수가 소작농으로 전락하며 초래된 빈곤과 지주들과 일본인이 강점한 토지 문제 해결을 위한 제도개혁은 긴급한 과제였다. 남한의 미군정이 소작료를 3분의 1로 낮추어 소작권을 부활시키는 정도의 미온적 토지개혁에 머물고 있을 때 북한에서 1946년 초 무상몰수·무상분배 원칙에 의한 전면적 토지개혁을 이루자 토지개혁에 대한 기대와 불안한 민심을 수습하고자 1948년 수립된 대한민국정부는 1949년 농지개혁법을 발의하고 1950년 유상몰수 유상분배 원칙에 입각한 농지개혁을 실시하였다. 한국전쟁 발발로 개혁 실시가 연기되면서 지주들이 소작인에게 농지를 비싸게 강매하는 사례가 발생 개혁효 ...

2025-07-01 0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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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화연합도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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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방불교의 교주였던 김선기는 1930년경 계룡산 신도안에 있던 ‘대화교(大華敎)’의 신도를 규합하여 광화연합도관을 창립하였다. 본부는 전북 완주군 운동하면 가천리에 두었다. 대화교는 원래 손은석(孫殷錫)이 창립하였는데 초창기에는 동학의 분파로 ‘제우교(濟愚敎)’를 만들어 포교하다가 1920년 교명을 용화교로 바꾸었다. 그러다 1923년 윤경중(尹敬重)을 교주로 받들어 교명을 ‘대화교(大華敎)’로 바꾸고 교리도 불교적인 것으로 고쳤다. 대화교는 미륵불을 신앙하면서 교도가 급증하여 한때 5만의 신도를 거느렸고 교세가 만주에까지 퍼져 수십만 원의 사재로 만주의 토지를 구입하기도 하였으나 간부들의 자산낭비와 만주토지가 장작림( ...

2025-05-31 2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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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욕의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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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의례는 불교에서 49재나 천도재 등을 행할 때 망자의 영혼을 깨끗이 목욕시켜 부처의 세계로 인도하고자 하는 의례이다. 먼저 사람이 보지 못하도록 병풍을 둘러 관욕단(灌浴壇)을 만들고 남신구(男身軀) 하나와 여신구(女身軀) 하나를 백지 위에 먹으로 써서 병풍에 붙인다. 그리고 병풍으로 관욕장소임을 알리는 관욕방(灌浴榜)을 써서 붙인다. 관욕수(灌浴水)가 담긴 대야를 준비하고 버드나무로 된 발을 만들어 기왓장 위에 놓으며 버드나무발 위에 종이로 망자의 옷(지의)을 걸쳐 놓는다. 관욕수 앞에 망자의 위패를 놓고 그 주위에 촛불을 밝혀 관욕수에 비치도록 한다. 병풍 밖에서 삼증사(三證師)가 결수문을 놓고 앉아 여러 가지 수 ...

2025-05-29 00: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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