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 3974건
세심종
1953년 금산사에서 출가한 석무변(釋無邊)은 1980년 동엄사(東嚴寺 : 대전 동구 옥천로653번길 256)를 창건하고, 1982년 세계선심회(世界洗心會) 회장이 된다. 이듬해 일본 동엄사포교원(東嚴寺布敎院) 상임법사, 1985년에는 일본 대정사(大井寺)의 주지가 된다. 그리고 같은 해 사단법인 세심종의 설립위원이 된 다음, 1987년 세심종의 창종을 선언한다. 세심종은 약사여래의 십이대원(十二大願)을 근본으로 십선행계(十善行戒)를 실천하여 대중불교, 생활불교를 구현함으로써 불국정토건설에 이바지함을 종지로 하며, 3대강령(三大綱領)과 8대실천강요(八大實踐綱要), 종지 수행의 삼대지표(三大指標) 등을 강조하고 있다. 소 ...
2025-10-01 15: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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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호궁
정심회
삼호궁은 정심회 제3의 성지순례지이다. 정심회에서는 삼호궁을 지구의 70%를 차지하는 수기를 관장하는 삼호신(三湖神) 기도가 이루어지는 우두포(牛頭浦) 성지라 부른다. 여기서 우두(牛頭)는 소머리라는 뜻으로서 부근의 풍수가 빼어난 덕을 갖춘 명당으로써 생명을 창조하는 분만지의 형국이다.
2025-07-12 0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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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용주
물법계
김봉남(金奉南 1898-1950 본명 天根 호 奉南)이 창립한 물법계 종교에서 수련이나 의식을 행할 때 사용하는 주문이다. 내용은 다음과 같다. ‘정정삼용(正正三용)이라 일붕월붕(日朋月朋)이요 절삼절칠(節三節七)이라 고고천야용(高高天耶용)이요 명명일야용(明明日耶용)이요 괘괘성아용(掛掛城我龍)이라 강풍(降風)이라도 천천(天天)이라 천야천(天耶天)이요 요야용(龍耶龍)이라 만절영복(萬節靈福)은 붕지배(朋之培)커니 도간칠칠(道干七七)이요 유신칠칠(惟身七七)이라 여천여곤(如天如坤)아 수천수도(遂天修道)는 동여동여(棟女棟女)라 즉즉칠천(則則七天)아 절절통천(節節通天)하소서 천지인황월력시력(天地人皇月力時力) 무불통심(無不通心).’ ...
2025-07-12 0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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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아신궁
각세도의 도주 이선평은 포교를 시작한 후 사관제도를 두고 교단의 체제를 정비하였다. 사관은 동서남북의 네 방면으로 두었으며 자신의 10대 제자 중 가장 뛰어난 4명을 각 관의 도주로 두어 운영하도록 하였다. 당시 서관을 담당한 것은 신태제였는데 1956년 이선평 사후 신태제는 따로 독립하여 ‘정도교’를 설립하게 된다. 그런데 신태제가 이른바 ‘조화정부사건’으로 처형을 당하게 되고 이후 정도교는 황덕시와 김재경에 의해 두 파로 나뉘어지게 된다. 이때 김재경이 창립한 교단을 ‘불아신궁’이라 한다. 그런데 김재경은 각세도 교리로부터 벗어나 스스로가 단군의 계시를 받는다고 하면서 단군천진(天眞)을 봉안하고 단군신앙으로 전향하였 ...
2025-07-09 1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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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승회유지재단
1962년 설송에 의해 창종된 대한불교불승종은 1991년 11월 21일 재단법인 불승회유지재단으로 등록하였다. → 대한불교불승종 참조.
2025-07-09 18: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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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신불 일원상
원불교
법신불은 진리 그 자체 또는 가장 근원적인 진리를 말한다. 박중빈은 가장 근원적인 진리인 법신불을 일원상으로 표현했다. 원불교에서는 이 법신불 일원상을 신앙의 대상이요 수행의 표본으로 삼고 있다.
2025-07-09 00: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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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법교화
봉남교
봉남교(奉南敎)를 창립한 김봉남(金奉南 1898-1950 본명 天根 호 奉南)은 1943년 11월 재통을 하고나서부터 유ㆍ불ㆍ선 삼교의 원리에 관통하고 중생삼고(飢寒疾)를 해탈하는 심수법(心水法)의 원리를 오득(悟得)하였다는 것이다. 김봉남은 1946년 8월 신도들과 함께 천일수련을 마치고 부산 영도 평화관에서 제자들 몇 사람에게 물법을 전수하였다. 물법전수는 원래 봉남만이 행할 수가 있었던 도력과 권능을 제자들에게 전수하여 그들로 하여금 직접 물법을 행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물법전수의 특별한 절차나 의식은 알려진 바가 없으나 제자들 가운데 수련을 많이 쌓은 사람에게 도력과 함께 물법을 준 것이므로 물법전수는 실상 ...
2025-07-08 2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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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장
유교
만장(輓章)은 길이 8자 너비 2자 안팎의 비단이나 종이에 죽은 사람을 애도하며 지은 글을 써 놓은 깃발을 말한다. 발인(發靷)을 해서 상여가 떠날 때 상여 앞에 세워서 장례행렬을 선도하게 한다. ‘만(輓)’은 앞에서 이끈다는 뜻이다. 만장은 백색·청색·홍색·황색 등 다양한 색으로 만들며 깃대는 대나무로 만든다. 하관(下棺) 때에 관을 보강하는 데 사용하거나 장례 후에 상청(喪廳)에 보관한다. 만장에 쓰는 글은 문체에 따라 만사(輓詞)와 만시(輓詩)로 구분되며 나중에 고인의 문집을 편찬하게 되면 부록으로 싣는다. 만장의 내용은 일반적으로 고인의 이력·학덕(學德)·선행(善行)·문장(文章) 등에 대한 칭송으로 이루어진다. ...
2025-07-07 23: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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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세보
천도교
손병희를 비롯한 오세창 권동진 양한묵 등의 천도교 문명파는 국권회복을 위한 문명개화운동을 벌여 나가고자 입헌국가건설을 위한 단체 결성 신문출판운동 국민계몽운동에 주력했다. 그들은 특히 신문을 세계문명의 최급선무이자 국민계몽교육의 수단으로 인식하여 1906년 6월 『만세보』를 창간하였다. 창간목적은 “인민의 지식계발에 의한 국가문명의 진보”에 두었고 구체적으로 “학문증진 식산발달(殖産發達) 국위국광(國威國光)을 목표로 삼았다. 사장은 『한성주보』(1886년 창간된 우리나라 최초의 주간신문) 주사(主事)였던 오세창이 맡았고 발행 겸 편집에 신광희 총무 겸 주필에 이인직이 배치되었다. 만세보는 「천도교전(천도교전)」 「현기문 ...
2025-07-07 23: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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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방교
평북 평원군 출신으로서 종교적 배경이 전무 했던 노광공은 6.25 전쟁 직후 1955년 박태선의 종교집회를 통해 종교적 결단을 하기에 이른다. 그 후 노광공은 대구에서 동방교회를 시작으로 독자적인 조직을 갖게 되었다. 동방교 초기에 노광공은 안찰을 통한 치병 역사 향취 체험 등을 강조하였는데 박태선의 전도관의 종교적 모티프를 모방한 듯하다. 동방교가 기독교 성경을 경전으로 삼고 있으나 실제로는 노광공을 신격화한 『경화록』을 핵심 경전으로 여겼다. 노광공은 말세의 사명자 심판주 말세의 진인(眞人) 이래(二來) 천부 등으로 숭배되었다. 1967년 노광공 사망 후 그의 둘째 아들 노영구가 2대 교주가 되었고 기독교대한개혁장로 ...
2025-07-07 16: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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