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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수련 명상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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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수련원이 각 지역마다 설치한 명상을 가르치는 장소를 말한다. 월 단위로 등록해서 학원처럼 운영되고 있다. 지도 강사들이 명상 방법을 숙지시켜주고 마음빼기 하는 것(명상 수련법)을 가르친다. 이 같은 마음 버리기 명상을 하다 보면 마음속 깊이 묻어둔 부정적인 감정 즉 여태까지 표현하지 못했던 화 짜증이 다 올라오는데 그것을 지우는 과정을 밟는다. 묶은 감정이 올라오고 그것을 방법대로 버리다보면 마음이 비워지면서 상쾌함과 편안함을 느끼게 된다고 한다. 명상수련법은 현대사회에서 전통적인 가치관의 와해 기계적이고 인공적인 사회 환경 치열한 경쟁을 수반하는 사회생활 등으로 인한 육체적이고 정신적인 문제를 직면한 현대인에게 관 ...

2025-07-07 2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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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룡공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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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덕교

허욱(許昱 1887-1939 호 南松)이 창립한 삼덕교(三德敎)는 경상남도 하동에서 창립하여 여러 곳에 옮겨 다니다가 1982년에 본부를 김제군 봉남면 평사리 현 위치로 옮기게 되는데 이 기지를 마련키 위해 39년간이나 공을 들였다고 한다. 2대 교주 서상범의 뒤를 이어 교주가 된 서도준(徐道俊)은 이 땅이 도의 기지임을 알고 오래전부터 매입하려 하였으나 땅 주인에게 번번이 거절당하다가 겨우 사들여 이사하게 되었다고 한다. 4000평의 대지에 본부 건물과 수백 평에 달하는 ‘등룡공원(登龍公園)’이라는 공원을 조성했다. 이 공원에는 15기의 비각(碑刻)과 석탑 석물 등을 조성해 놓고 있는데 생화제단(生化祭壇) ․ 단군상봉 ...

2025-07-07 2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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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학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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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덕도

도학수는 1905년 1월 1일 경북 성주시 예산동에서 태어났다. 그녀는 수도에 깊은 관심이 있었으며 특히 여성의 한을 풀어줄 수 있는 길을 찾고자 하였다. 그러던 중 47세 되던 해인 1950년 성덕도 창도주인 김옥재(金沃載)가 대구시 남산동 변규선(待華智)집에서 포덕을 할 때 김옥재와 인연을 맺게 된다. 이후 수도하던 중 큰 깨달음을 얻고 1952년 김옥재로부터 법해(法海)라는 법호를 받고 함께 도덕의 법을 세우고 성덕도를 완성하였다. 당시 도생들은 그녀를 법모님이라고 불렀다. 1960년 김옥재가 귀천(歸天 사망)한 후 24년간 성덕도 발전을 위하여 노력하여 성덕도의 효율적인 교화 발전을 위하여 사단법인 성덕도교화원을 ...

2025-07-07 16: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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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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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희선도태백원

도통은 인희선도 도반들에게 인희선도를 효율적으로 알리기 위하여 제작되었다. 내용은 3부로 구성되어 있다. 제1부는 김용국이 강원도 홍천군 산골에서 태어나 金相哲(김상철) 이라는 이름으로 동두 초등학교에서 교편생활을 하던 중 도인(道人)의 안내로 수도를 하다 스승과 이별하기까지의 내용이다. 제2부는 인희(仁僖)라는 역호(曆號)와 함께 仁僖課業(인희과업) 三大目標(삼대목표)를 부여받고 하산할 때까지의 내용이다. 제3부는 법명을 김용국(金龍国)으로 개명하고 인희선도(仁僖仙道)를 세상에 알리는 내용이다. 참고문헌 : 『도통-인희선도도통기』(김대원 인희선도태백원 2002)

2025-07-07 1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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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불교미륵선교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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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년 4월 3일 초암의 주도로 창종된 본종은 석가세존의 자각각타 각행원만한 근본교리를 봉체하고 미륵불의 정토교리 및 용화삼회법문을 듣기 위한 정진을 선양하며 정혜불리설과 좌선보다 견성을 중시한 도의국사의 종풍을 진작하고 불법중흥의 원융종풍을 위한 노력을 다하여 견성성불 전법도생함을 종지로 한다. 본종의 역사를 보면 2000년 8월 10일 창종 준비 대회를 가졌으며 같은 해 11월 2일 초대 종정으로 초암을 추대하였다. 2001년 3월 20일 종헌을 선포하고 같은 해 4월 3일 창종 대회 및 초대 종정 취임법회를 봉행하였다. 또한 같은 해 4월 18일에 초대 총무원장으로 법정이 취임하였고 5월 8일에는 일본 종무원( ...

2025-07-05 20: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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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종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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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기 국내 최초의 단군신앙에 대해 대종교에서는 1904년 백두산을 중심으로 단군교를 포명한 백봉이라고 하였으나 일부에서는 1890년 평안남도 일대에서 단군신앙을 포교한 김염백의 신교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김염백의 신교가 이후 정통의 맥으로 이어지지는 못한 것으로 보이나 김염백의 신교에 입교한 사람 중에 한명윤(韓明允)이 자신의 집에 교단을 설치하고 스스로 교주가 되어 포교하였다. 한명윤은 신도들과 더불어 3월 15일 단군어천절과 10월 3일 단군개천절에 제사를 올리고 매 일요일마다 예배를 하되 술을 마시고 춤을 추는 것을 의절(儀節)로 삼았다. 그러나 사람들은 이 교단을 무교(巫敎)라고 비판하였으므로 한명윤은 1916 ...

2025-07-05 18: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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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기고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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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기고사(檀奇古史)’는 ‘단군(檀君)과 기자(奇子)의 옛 역사’라는 의미이다. 원문은 발해문이었다고 하며 약 300년 뒤 황조복(皇祚福)이 한문으로 번역하였다. 현재의 국한문본은 1959년 정해박(鄭海珀)이 한문본을 다시 번역한 것이라 하나 발해본은 물론 한문본도 오늘에 전하지 않는다. 이 책은 저자 대야발의 서문에 이어 제1편 전단군조선 제2편 후단군조선 제3편 기자조선으로 구성되어 있고 대한제국 학부 편집국장 이경직(李庚稙)의 중간서(重刊序)와 신채호(申采浩)의 중간서가 부록으로 붙어있다. 내용은 약 2천여 년 동안(BC.2512~BC.416) 지속되었다고 하는 ‘전단군조선(前檀君朝鮮)’과 ‘후단군조선(後檀君朝鮮) ...

2025-07-02 0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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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군성조봉안연합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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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소아(일명 鄭白蓮華)는 1914년 11월 7일 경상남도 남해군 남해면 자산리에서 출생하여 19세 때 오빠를 따라 일본 오사카(大阪)에 건너가 살다가 1946년에 귀국하였다. 신기(神氣)가 있어 여러 곳을 돌아다니다가 33세 때에 강신무가 되어 굿과 점업을 하면서 무당생활을 하였다. 1958년 단군(檀君)의 계시를 받았다면서 단군성조봉안연합회를 조직 서울특별시 용산구 용문동에 경룡암(京龍庵: 일명 天宮)이라는 건물을 짓고 포교활동을 시작하였다. 한때는 단골신자가 수백 명에 이르렀으나 점점 신자가 떨어져 나가고 절기마다 20여명이 모이다가 결국 1992년에 교주인 정소아가 사망하면서 멸실되었다. 신앙의 대상은 단군과 칠성 ...

2025-07-01 22: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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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군사상선양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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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군사상선양회는 안호상에 의해 설립되었으나 1966년 3월 31일 전북 군산에서 설립된 단군호남숭모회와 결합하여 ‘단군숭모회’로 바뀌게 된다. 이후 단군숭모회는 ‘단군정신선양회’로 다시 명칭을 변경하게된다. 단군사상선양회는 2009년 전북 순창에서 양상화에 의해 다시 발족되어 문화체육부에 사단법인으로 등록하였다. 설립목적은 민족고유의 윤리관을 정착시키고 청소년 및 국민에게 배달민족의 홍익인간과 이화세계 정신을 널리 보급시켜 지역사회의 무궁한 발전에 기여함에 있다. 본 단체는 2010년 10월 3일 회문산 장군봉 천제단에 천부경비(天符經碑)를 세우고 천제를 올리는 등의 활동을 하였다.

2025-07-01 22: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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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군교중앙본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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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창규는 1958년 4월 5일 아침식사 후 동네 아낙네들과 마루에서 담소를 나누다가 청천벽력 같은 우렁찬 소리와 함께 큰 불덩이가 온 몸을 태우는 것 같은 경험을 하고 혼수상태에 빠졌는데 의식을 회복한 후 영안이 열리고 사람들의 병을 고치는 능력이 생겨났다고 한다. 사람들의 아픈 곳을 만지기만 해도 낫고 자기를 찾아 와서 보기만 해도 병이 낫는 기적이 일어났다는 것이다. 이때 이창규가 접했다는 영신은 우주의 조화주 노인신(老人神)이라고 한다. 곧 이창규는 이때부터 100일간 기도를 하게 되고 이 과정에서 한 노인의 영체가 나타나서 천지인 창조의 근본 이치와 유불선 삼교와 기독교의 원리를 알려주어 이를 터득했다고 한다. ...

2025-07-01 2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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