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70

단학선원

|

1980년 안양공원에서 무료로 심신수련법을 가르치다가 1985년 강남 신사동에 단학선원을 개원했다. 2002년에 단체명을 단월드로 변경했다. 민족 고유의 심신수련법인 신선도를 현대화한 것으로 수련의 목적은 신인(神人)합일의 홍익인간이 되는 것이라고 소개된다. 유관 단체로서 글로벌사이버대학교 미국 세도나의 마고가든 한문화멀티미디어출판사 홍익문화운동연합 등의 기관들이 있다.

2025-07-02 00:46

7

단지파

|

승리제단

승리제단 창교자 조희성은 자신의 구세주 사명을 나타내기 위해 우리 민족의 뿌리가 이스라엘의 12부족의 하나인 단지파라고 주장하였다. 그는 하나님께서 단지파 가운데서 구세주를 배출하시려고 숨겨두었다고 한다. 그 결과 오늘날 단군의 후손인 자신이 구세주로 등장하여 사람 몸이 죽지 않는 비결을 논하며 실제로 육적 영생이라는 죽지 않는 몸으로 변화를 시키고 있다는 것이다. 그 후 2015년 현재까지 승리제단은 다양한 자료를 동원하여 조희성의 단지파론을 입증하기 위해 상당한 노력을 하고 있다.

2025-07-02 00:43

7

단주

|

국제도덕협회(일관도)

국제도덕협회(일관도)에서 구도를 한 후 일정한 기간 동안 수행을 쌓아 청구계(淸口戒)를 올린 사람을 단주라고 부른다. 법단의 주인이 될 수 있으며 불규를 철저히 지키고 법단 내의 모든 일에 책임을 지는 사람이다. 참고문헌 : 국제도덕협회(일관도) 홈페이지(http://www.ilgwando.org/)

2025-07-02 00:41

7

단군성조봉안연합회

|

정소아(일명 鄭白蓮華)는 1914년 11월 7일 경상남도 남해군 남해면 자산리에서 출생하여 19세 때 오빠를 따라 일본 오사카(大阪)에 건너가 살다가 1946년에 귀국하였다. 신기(神氣)가 있어 여러 곳을 돌아다니다가 33세 때에 강신무가 되어 굿과 점업을 하면서 무당생활을 하였다. 1958년 단군(檀君)의 계시를 받았다면서 단군성조봉안연합회를 조직 서울특별시 용산구 용문동에 경룡암(京龍庵: 일명 天宮)이라는 건물을 짓고 포교활동을 시작하였다. 한때는 단골신자가 수백 명에 이르렀으나 점점 신자가 떨어져 나가고 절기마다 20여명이 모이다가 결국 1992년에 교주인 정소아가 사망하면서 멸실되었다. 신앙의 대상은 단군과 칠성 ...

2025-07-01 22:47

7

단군성전건립운동

|

단군성전 건립운동은 1985년 서울시가 자라나는 세대들에게 민족혼을 일깨워주기 위해 그 해의 역점사업으로 사직공원의 성역화와 공원안의 단군성전을 확장하기로 한 데서 출발한다. 동년 2월에 단군성전건립운영위원회(위원장: 염보현(廉普鉉) 당시 서울시장)와 동추진위원회(위원장: 김진원(金鎭遠) 당시 서울시 부시장)를 구성하였다. 이와 같은 발표가 있자 민족종단을 비롯한 종교·문화·사회계 각계각층의 환영이 있었으나 기독교계의 극렬한 반대(일부 기독교인들은 찬성)에 부딪혀 결국 서울시는 이 문제를 백지화하고 말았다. 그 뒤 불교계를 비롯한 여러 단군관련 단체에서 단군성전건립을 추진하여 1990년 3월 현정회 단독으로 단군성전건립 ...

2025-07-01 22:44

7

단군바른님

|

한얼교

본서는 단군의 존재에 대해 역사적인 서술방식으로 그 실재성을 드러내고자 하였으며 그 역사성이 현재의 한얼교로 이어진다는 정통성을 증명하는 것에 주안을 두고 있다. 구성은 두 개의 서문이 있는데 각각 곽상훈(郭尙勳)과 안호상(安浩相)이 썼으며 제1부 사적편 제2부 진리훈고편 제3부 단군바른님의 얼을 이어받은 후손들로 되어 있다. 제1부 사적편의 제1편은 단군바른님의 거룩한 발자취이며 제1장 태백산과 신시 제2장 탄세와 어천 제3장 건국과 치화 제4장 통치강역 배달족으로 되어 있고 제2편은 단군바른님에의 우러름이며 제1장 삼신·신교·제천 제2장 신위의 봉안과 개천절이 실려 있다. 제2부 진리훈고편에는 제1편 천부경 제2편 ...

2025-07-01 22:32

7

단군릉

|

단군릉에 대한 기록은 조선 성종대의 기록 등에서 이미 그 기록이 나타나고 있다. 다만 이 당시는 ‘청컨대 백성의 원하는 바에 따라 평양의 단군묘(檀君廟)의 예(例)에 의하여 해마다 봄·가을로 향(香)과 축문(祝文)을 내려 제사를 행하소서’라고 하는 등 단군묘로 표현되었다. 단군묘가 단군릉으로 표현된 것은 고종 37년(1900) 이후로 보인다. 당시 의관(議官) 백호섭(白虎燮)이 올린 상소에 ‘무릇 세 성인이 서로 이은 순서로 단군묘를 〖단궁릉(檀君陵)으로〗숭봉(崇奉)하는 것이 앞섰어야 하는데 아직까지 미처 겨를이 없었으니 어찌 숭보하는 거조(擧措)에 결함이 되지 않겠습니까?’라고 되어 있는 것을 통해 알 수 있다. 단군 ...

2025-07-01 22:15

7

니치렌

|

일련종(日蓮宗)

현재의 치바현(千葉県) 출신으로 1238년에 천태종계의 세이초지(清澄寺)에서 출가하였다. 다양한 불교교리를 섭렵하던 중 말법시대의 중생을 구제하는 길이 『법화경』에 있음을 확신하였다. 자연재해로 인한 당시 사회의 혼란을 목격하고 그 구제책을 『입정안국론(立正安國論)』을 저술하여 피력하였다. 그러나 내세를 지향하는 정토교 금지의 주장과 여러 논쟁으로 인해 절명의 위기를 겪기도 했으며 마침내 막부로부터 유배형을 받았다. 그가 예견한 내란에 해당하는 자계반역(自界叛逆)의 난과 외란에 해당하는 타국침핍(他國侵逼) 난이 마침내 1274년과 1281년 2차례에 걸친 몽고의 일본침략과 막부 내의 반란사건으로 현실화되면서 명성이 높아 ...

2025-07-01 02:15

7

능소

|

대순진리회

대순진리회의 연원(淵源)에 의하면 강증산(姜甑山; 1871~1909) 구천상제(九天上帝)로부터 천부(天賦)의 종통계승(宗統繼承)의 계시(啓示)를 받아 종단 무극도를 창설한 도주(道主) 조정산(趙鼎山; 1895~1958)은 1958년 박우당(朴牛堂; 1917∼1996)을 총도전으로 임명하였다. 이에 유명(遺命)으로 종통을 계승받은 박우당은 1969년 대순진리회를 창설하였으며 27년에 걸쳐서 종단 발전에 진력하였다. 1996년 1월 23일 박우당 도전의 화천(化天)과 함께 강원도 고성군 토성면 인흥리 산509에 묘소를 마련하였다. 이곳은 같은 해에 완공한 대순진리회 수련도장의 경내(境內)에 해당한다. 매년 음력 8월 1일에 ...

2025-07-01 02:12

7

농촌주의

|

원종교

대공화무국주의를 주장하는 김중건은 인간의 근본적인 문제를 ‘먹는 일’과 ‘사람 질’로 개괄하고

2025-07-01 02:05

7

처음으로 끝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