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 1870건
김영호
원각현원교
그는 원래 임제종의 신자였으며 1929년 불법대회(佛法大會)라는 불교조직을 만들기도 하였다. 1933년 3월 30일 동지들과 함께 원각현원교를 창립하였다. → 원각현원교 참조. 참고문헌 : 『朝鮮の類似宗敎』(村山智順 朝鮮總督府 調査資料 第42輯 1934)
2025-06-30 16: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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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염백
신교
김염백은 1890년 평안남도 맹산(孟山)에서 신교(神敎)를 일으켰으며 국조단군을 주신(主神)으로 하여 천황씨(天皇氏) 지황씨(地皇氏) 인황씨(人皇氏)의 삼황을 신봉하도록 하였다고 한다. 신교를 창립한 후 포교에 힘쓰다가 동학농민혁명에 연유되어 1894년에 사망하였다. 김염백의 신교는 근대기 국내에서 국조단군을 신앙의 대상으로 한 최초의 사례로 보고 있기도 하다. 다만 대종교 등에서는 김염백의 신앙이 순수하게 국조단군만을 신앙하는 단군국교가 아니라고 보면서 백봉의 단군교를 근대 이후 국내 최초의 단군신앙이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참고문헌 : 『한국신흥종교총람』(이강오 한국신흥종교연구소 1992)
2025-06-30 16: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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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병철
증산법종교
증산법종교(甑山法宗敎) 2대 교주(초대회장)인 김병철(金炳徹 1905-1970 호 鳩岩)은 1905년 12월 3일 경상북도 청송에서 태어났다. 일찍이 조철제의 무극도에 입도하여 수도해온 수도인 이다. 1937년 9월 이리시 목천포 다리에서 자살을 하려는 강순임을 만나게 된다. 그리하여 두 사람은 함께 증산의 도를 이어갈 동지로 결의하고 함께 조석으로 심고를 올리다가 1941년 11월 전주 노송동에 포교의 근거를 마련하였다. 1944년 12월에는 경상도 의성 장곡대로 이전했으며 1945년 전라북도 김제군 금산면 구릿골로 다시 1949년에는 금사면 오리알터로 본부를 옮겨 다니며 강순임을 도와 증산법종교를 발전시켰다. 195 ...
2025-06-30 1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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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덕명
동학
김덕명은 1895년 금구 용계에서 태어났다. 1886년 동학에 입도하고 그 해 10월 11일 경상도 상주의 화령 근처에 있는 전성촌으로 제2대 교주 최시형(崔時亨)을 찾아가 도를 받았다. 1887년에는 원평에 동학의 도회소(都會所)를 설치하고 포교에 힘썼다. 그는 교조신원운동 과정에서 원평집회의 주역이였으며 1894년 4월 무장봉기 이후 원평지역 농민봉기 황토현 전투에서 주도적 역할을 수행했다. 원평 전투의 패전으로 동학혁명은 막을 내리게 되었다. 김덕명은 이후 금산면 장흥리 안정사동에 약 1개월간 숨어 있다가 붙잡혀서 서울로 압송되었고 1895년 3월 29일 전봉준·손화중·최경선·성두환(成斗煥)과 함께 처형되었다.
2025-06-30 15: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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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낙원
증산교오동정파
증산교오동정파를 창립한 김낙원(金洛元 1890-1973)은 1890년 2월 29일 전라남도 영광군 군남면에서 김응보(金應輔)의 아들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가 전라북도 부안군 해재면 송석리 속칭 봉리(峰里)가 길지(吉地)라 하여 그곳으로 이사하니 거기서 자랐다. 그의 부친은 치산을 잘하여 400여석을 받는 부농이었다. 김낙원은 지술(地術)을 잘 아는 김태수가 증산 강일순을 믿고 태을주를 읽어야한다는 말을 듣고 1915년 보천교에 입교했다. 1916년부터 손바래기에서 증산의 부인인 정부인을 3년간 모셨고 증산의 생전 제자들인 김형렬 등 5-6명과 친교를 맺으며 증산의 사상을 배웠다. 1918년 순천에서 안내성을 만나 함께 ...
2025-06-30 15: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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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화법
기화법(氣化法)은 신체단련을 핵심으로 하는 국선도(國仙道)의 수련법이다. 국선도는 고경민(청산선사: 1936~)이 1970년 설립한 최초 수련단체이다. 고경민은 14세에 산으로 들어가 20년간 이송운(청운도사)을 스승으로 한민족 고유의 수련법인 선도(仙道)의 신비로운 세계를 전수받았다고 하며 1967년 하산한 후 공공장소에서 제자들과 함께 각종 차력 시범 등을 보이면서 대중의 이목을 끌었다고 한다. 따라서 국선도는 초기에 외공(外功) 즉 체력단련에 중점을 두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이후 국선도는 점차 단전호흡을 중심으로 한 내공(內功)을 강조하게 된다. 현재 국선도의 수련법은 내공과 외공으로 이루어졌다. 내공은 내적 ...
2025-06-30 0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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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암
남아선호 사상에 따라 아들 낳기를 바라며 행하는 여러 가지의 풍속이 있었다. 기자속(祈子俗)은 오랜 풍속이나 특히 조선시대 장자 중심의 제사가 정착되면서 특히 발달하였다. 기자 습속은 치성(致誠) 음식 주술 공덕 행위 등이 있다. 치성 행위에는 불공드리기 동짓날 얼음 깨고 목욕하기 장독대에 물 떠 놓고 기도하기 무당의 굿하기 삼신 전대에 쌀을 넣어 천장에 매달아 놓기 터주신께 100일 기도하기가 있다. 음식 행위에는 신랑 신부가 맞절할 때 놓는 쌀을 가져와 밥해 먹기 요강에 미역과 쌀을 넣었다 건져낸 뒤 그걸로 밥해 먹기 아들 난 태를 몰래 가져다 약으로 먹기 공동우물 물 퍼내고 새로 솟는 물로 밥해 먹기 금줄의 고추를 ...
2025-06-30 0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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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수원
기독교복음침례회
기독교복음침례회에서 1995년에 수양회 장소로 사용하기 위해 안성에 조성된 농장(30여만㎡)을 매입하였다. 금수원이란 명칭은 이전 영농법인에서 사용하던 명칭을 그대로 사용하고 있는 것이라고 한다. 내부에 기독교복음침례회(속칭 구원파) 안성교회가 있다. 2014년 세월호 사건 당시 금수원 농장에서는 저수지와 양어장 13곳에서 민물장어와 메기 송어 미꾸라지 자라 등을 항생제를 사용하지 않고 기르고 있었고 가축시설에는 젖소와 한우 등 90여마리 당나귀 70여마리 등을 사육하고 있었다. 또 밭과 비닐하우스 등에서 고추와 감자 배추 사과 등 밭작물을 유기농으로 재배하고 있었다.
2025-06-30 00: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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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산사미륵불포교소
서백일(徐白一)이 창립한 용화교(龍華敎)의 초기이름.
2025-06-03 17: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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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구해도
보화교
구해도(金龜海圖)는 보화교(普化敎)의 3대교주 김명환(金明煥)이 교주 김환옥(金煥玉 1896-1954 호 淸江)의 유지를 받아 하도(河圖) 낙서(洛書) 이후 김일부(金一夫)가 새로 발견한 역(易)의 도판을 완성한 것이라 한다. 김일부는 아이들이 ‘삼각산 제1봉에 봉황이 날아 춤을 추고 한강수 깊은 물에 용마하도(龍馬河圖)가 다시 나네’ 라고 동요 부르는 소리를 듣고 한강에 가보니 거북 등처럼 생긴 평판(平板)의 돌에 환영적(幻影的) 점이 음각처럼 나타나있었다. 일부는 이것을 보고 득리(得理)하여 마침내 낙서(洛書) 이후에 어떤 신리(新理)의 세계가 올 것을 예지하였고 또 연구 끝에 낙서에 있어서 인월세수(寅月歲首)를 묘 ...
2025-06-03 17: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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