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70

농지개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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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방 이후에 구한말과 일제강점기 동안 농민 대다수가 소작농으로 전락하며 초래된 빈곤과 지주들과 일본인이 강점한 토지 문제 해결을 위한 제도개혁은 긴급한 과제였다. 남한의 미군정이 소작료를 3분의 1로 낮추어 소작권을 부활시키는 정도의 미온적 토지개혁에 머물고 있을 때 북한에서 1946년 초 무상몰수·무상분배 원칙에 의한 전면적 토지개혁을 이루자 토지개혁에 대한 기대와 불안한 민심을 수습하고자 1948년 수립된 대한민국정부는 1949년 농지개혁법을 발의하고 1950년 유상몰수 유상분배 원칙에 입각한 농지개혁을 실시하였다. 한국전쟁 발발로 개혁 실시가 연기되면서 지주들이 소작인에게 농지를 비싸게 강매하는 사례가 발생 개혁효 ...

2025-07-01 0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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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가계의 삼대지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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東方敎

동방교에서 노광공과 두 아들을 삼위일체를 이룬 절대 신(神)으로 신봉하였고

2025-07-01 01: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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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성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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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도교

천도교청년회는 1923년 9월 2일 이름을 천도교청년당으로 바꾸고 조직을 확대 개편하여 농민부 노동부 청년부 학생부 여성부 유소년부 상민부 등 7개부를 두었는데 여성들의 활동은 이 여성부를 통해 이루어 졌다. 1924년 4월 5일 청년당의 여성부가 독립하여 천도교내수단(天道敎內修團)을 창립하였다. 1925년 제1차 교회분규로 인하여 내수단은 신파 천도교내수단과 구파 천도교여성동맹(1927년 6월 창립)으로 나뉘었다가 1931년 3월 16일에 교회가 합동됨에 여성단체는 천도교내성단(天道敎內誠團)으로 합치게 되었다(회장 주옥경). 동아일보 중앙일보 등에서는 천도교 내성단을 기사로 계속 다룬 바 있다. 그러나 교회가 다시 분 ...

2025-07-01 01: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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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림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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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층신앙

무당은 신내린 사람이지만 신내린 사람이 바로 무당은 아니다. 무당은 신내림에 의해 좌우되지 않고 공동체의 안녕과 복지를 위해 신내림을 통제 활용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춘 존재이다. 신내림에 의해 좌우되는 단순한 신내린 사람에서 신내림을 공동체를 위해 활용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춘 무속의 사제로 변모시키는 무속의 제의가 바로 내림굿이다. 내림굿은 신내림 사람에게 들린 허튼 귀신이나 잡귀잡신을 벗겨내는 허주굿 무속의 주신들을 확인하고 수용하는 내림굿으로 이뤄져 있다. 내림굿은 허주굿과 내림굿을 통틀어 말하는 것이다. 황해도 무속의 경우 받아들인 신이 잘 솟아오르도록 하는 솟을굿을 더 포함시키기도 한다. 일상적 존재이던 평범한 ...

2025-07-01 01: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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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산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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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율종의 제9조로서 종남산에 주석했던 도선율사(道宣律師 596-667)가 개창한 종단이다. 상부종(相部宗)이나 동탑종(東塔宗) 등의 계율종단이 후대에 쇠퇴한 데 비해 남산종은 계속 번성하였다. 도선은 지수(智首)로부터 10년간 『사분율(四分律)』을 배워 626년부터 645년 사이에 『사분율산번보궐행사초(四分律刪繁補闕行事鈔)』 『사분율산보수기갈마소(四分律刪補隨機褐磨疏)』 『사분율주계본소(四分律注戒本疏)』 등 3대 율소와 『사분율습비니의초(四分律拾毘尼義鈔)』 『비구니초(比丘尼鈔)』를 저술하는데 이 다섯 개의 주석서가 남산종의 5대 소초(疏鈔)가 된다. 우리나라에 전해진 경로나 단일종단으로서의 성립도 불분명하지만 1406년 ...

2025-07-01 0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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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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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량천도

김진하(호 月鏡)는 1903년 충북 청원에서 출생하였다. 16세 되던 때부터 입산기도 생활을 하며 전국의 명산을 찾아 수도했다. 1940년 수도기도 중 천지신명에게서 경문을 받게 되었다고 한다. 경문의 내용은 천하통일운수와 통천하운수가 미구에 우리나라에 돌아와 전 세계를 통일연합하게 될 것이기 때문에 그 막중한 임무를 수행하라는 내용이었다고 한다. 그리하여 그해 7월 10일 충남 논산군 두마면 부남리(계룡산 신도안)에 무량천도를 설립하였다.

2025-06-30 23: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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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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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아교

김진성은 1918년경부터 시베리아 북해도 일본 등을 유랑하던 중 많은 어려움을 겪고 일종의 심령술(心靈術)을 얻었다고 했다. 이 심령술을 바탕으로 1924년 강원도 영월에서 지아교를 창립하게 되었다.

2025-06-30 23: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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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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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천경조회

김지한은 1934년 경북 의성군 점곡면 옥곡동에서 출생하였다. 개천대 철학과를 졸업하고 계명대 무역대학원을 수료하였으나 일찍부터 기(氣) 수련에 관심을 가지고 있어 ‘새한국문화교육원’이라는 수련도장을 열고 회원을 모아 수련을 시키며 기를 통한 질병치료에 종사하였다. 그러다가 그는 우리 민족이 지나치게 외래사상에 물들어가면서 주체성을 상실하고 있다고 생각하여 단군신앙과 사상을 널리 보급하기 위해 1983년에 대구시 서구 평리에서 개천경조회를 설립하였다. 1997년에는 교단을 대구시 북구 조야동으로 이전하였으며 신도들에게 단전호흡에 의한 기수련과 실천조항 등을 가르쳤다. 그는 사회적으로도 폭넓은 행보를 보였는데 한국국사찾기 ...

2025-06-30 23: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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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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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화사

용화사(龍華社)를 창립한 김종용(金宗用 1901-? 호 槿下)은 1901년 10월 1일 전라남도 무안군 지도면 전증도에서 탄생했다. 23세 되던 1923년에 일제 경찰에 들어가 주로 보천교를 사찰하는 임무를 맡아하다가 뜻한바 있어 경찰직을 사임하고 1934년 보천교에 입도했다. 그리하여 차경석의 상담역을 맡아 일했다. 차경석이 죽고 보천교가 해산되자 홀로 증산 강일순을 신봉하는 생활을 했다. 1945년 해방 후 이상호의 대법사에 들어가 총무직을 수행하기도 했으나 이곳에서 나오게 된다. 그리하여 1959년 김제군 금산면 용화동에서 용화대도(龍華大道)를 창설했다. 그 후 간부 100명의 조직에 착수하여 1년 여간 추진하였으 ...

2025-06-30 23: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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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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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승불교법화회

법회계 신흥 종단의 탄생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 대승불교법화회(大乘佛敎法華會)의 초대 교령이었다. 그는 1898년 경기도 수원시 복수동에서 태어났다. 매우 병약하였으며 불우한 유년시절을 보낸다. 19세에 불교에 귀의하여 관악산 망월사에서 수련하고 21세에 수원의 용주사에서 임성진(林性眞)화상을 은사로 수계 득도하였다. 병고와 생활고에 시달리면서도 신교육을 받아 26세에 신풍공보를 졸업하였다. 『법화경』에 심취하며 병고를 극복한 그는 묘법을 얻고 1927년 수원시 복수동에 묘수사(妙壽寺)를 세운다. 그는 이후에도 철저한 기도정진을 계속하였는데 일본 승려 본문불립강(本門佛立講)의 야스다[安田]와 본문법화종(本門法華宗)의 우에 ...

2025-06-30 23: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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