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 3974건
단주
대종교
박달나무로 만들었고 불교의 염주나 가톨릭의 묵주와 같은 기능을 한다. 366개로 된 대단주(大檀珠) 216개로 된 중단주 72개로 된 소단주가 있으며 36개와 12개로 된 단주도 있다. 이와 같이 단주를 사용하는 것은 대종교의 대표적 경전 중 하나인 『삼일신고』에 “교인들은 반드시 신고(神誥)를 읽되 먼저 정한 방을 잡아서 진리도(眞理圖)를 벽에 걸고 세수하여 몸을 깨끗이 하며 (중략) 366개의 큰 단주를 가져서 한 마음으로 읽되 본문 366말의 참 이치를 위아래로 통하여 단주로 더불어 합치되도록 하라”는 내용에 근거한다. 단주의 구슬 수는 『삼일신고』의 진리훈과 이를 풀이한 『회삼경』 속의 삼회편(三會篇)에 근거하고 ...
2025-07-02 00: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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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종교현상
한 사회에서 여러 종교들이 공존하는 것은 역사적으로 항상 있었던 일이다. 우리나라의 경우 이미 최치원(崔致遠)의 「난랑비서」(鸞郎碑序)에서 유교 불교 도교의 가르침을 통합적으로 이해하는 내용이 나온다. 한국 종교사는 유교 불교 도교와 무속 전통이 공존하면서 지속되었고 근대에는 가톨릭 동학 개신교 등이 중요한 종교로 등장하였다. 다종교현상이 두드러지게 된 것은 국교(國敎)를 인정하지 않는 현대사회에 들어서라고 할 수 있다. 즉 고려의 불교나 조선의 유교와 같이 국가의 지원을 받는 지배적 종교가 없는 상황에서 한국 사회에는 개신교 천주교 불교 유교 원불교 천도교 대종교 대순진리회 무속 등 여러 전통들이 공존하고 있다. 게다 ...
2025-07-01 19: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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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와노 닛쿄
입정교성회(立正佼成会)
니이가타현(新潟県) 출신으로 16세에 동경에서 쌀가게와 석탄상점에서 일했다. 석탄상점의 주인 이시하라 타로(石原淑太郎)는 역(易) 성명학 민간신앙에 조예가 깊어 그에게 크게 영향을 끼쳤다. 이후 독립하여 츠케모노(漬物)가게와 우유가게를 운영했다. 1932년에 딸의 병 치유를 위해 영우회(霊友会)에 입신했다. 이후 회장인 코타니 키미(小谷喜美)와 충돌하여 그가 포교한 나가누마 묘코(長沼妙佼 1889-1957)와 함께 독립하여 1938년에 대일본입정교성회(大日本立正交成会)를 발족하였다. 초대회장은 이시하라 타로(石原叔太郎)가 맡았다. 나가누마 묘코의 영능력에 의해 교단은 발전하였으며 1942년 동경 스기나미(杉並)에 본부를 ...
2025-07-01 0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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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에이지 음악
한국에서는 ‘뉴에이지’ 보다 ‘뉴에이지 음악’(New Age Music)이라는 용어가 더 친숙하며 후자에 대하여 기독교 측이 (사탄 혹은 악마의 음악이라며) 부정적인 대중적 담론을 형성하고 주도함으로써 많은 이들이 ‘뉴에이지 음악’에 대하여 부정적인 시각을 갖고 있다. 뉴에이지 음악’이 하나의 장르로 음악계에 정착한 것은 1980년대 스위스의 안드레아스 폴렌바이더(Andreas Vollenweider)가 최초로 최우수 뉴에이지 연주상을 수상한 것이 계기가 되었다. 뉴에이지 음악이 대중음악에 흡수되면서 초기의 뉴에이지적(명상적 신비주의적) 특징이 많이 희석되었을 뿐 아니라 다른 음악 장르와의 지속적인 크로스오버(cross ...
2025-07-01 0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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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동섭
새종교원
나동섭은 1935년 충남 서산에서 출생하였다. 초등학교 졸업 후의 행적은 알 수 없으나 1980년 새종교원을 설립하고 종교활동을 시작하였으며 1982년 출판한 『태극사상과 인류』에서 한반도에 일어날 격동의 사건들을 예언한 것이 적중되어 세간의 관심을 끌게 되었다. 그는 태극사상을 우주창조의 본질이라고 주장하였으며 1991년에는 서울 세종문화회관에서 ‘태극사상과 인류평화’를 주제로 통일강연을 하였는데 여기서 2017년에 남북이 통일된다고 예언하기도 하였다. 나동섭은 정치와 사회변동에 큰 관심을 가지고 있으며 민족통일 문제와 민족주체성 회복 등에도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어 폭넓은 사회활동을 전개하였다. 뿌리 찾기 범민족운동 ...
2025-07-01 0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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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염백
신교
김염백은 1890년 평안남도 맹산(孟山)에서 신교(神敎)를 일으켰으며 국조단군을 주신(主神)으로 하여 천황씨(天皇氏) 지황씨(地皇氏) 인황씨(人皇氏)의 삼황을 신봉하도록 하였다고 한다. 신교를 창립한 후 포교에 힘쓰다가 동학농민혁명에 연유되어 1894년에 사망하였다. 김염백의 신교는 근대기 국내에서 국조단군을 신앙의 대상으로 한 최초의 사례로 보고 있기도 하다. 다만 대종교 등에서는 김염백의 신앙이 순수하게 국조단군만을 신앙하는 단군국교가 아니라고 보면서 백봉의 단군교를 근대 이후 국내 최초의 단군신앙이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참고문헌 : 『한국신흥종교총람』(이강오 한국신흥종교연구소 1992)
2025-06-30 16: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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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연국
천진교(天眞敎)
김연국(金演局)은 김시습의 13세손으로 1857년 2월 13일 강원도 인제군에서 태어났다. 동학에 입도한 정확한 시기는 알 수 없으나 최시형이 영월·정선 쪽에서 포교활동을 하던 1870년대에 이미 동학에 입도하여 있던 숙부 김병내의 영향으로 입도하였다. 최시형이 강원도 영월군 정선에 거주하는 김병내의 집에 왔을 때 김연국은 최시형을 만나게 되고 그의 제자가 되었고 손병희(孫秉熙) 손천민(孫天民) 등과 함께 그의 3대 제자가 되어 교조신원운동에 가담하기도 했다. 1896년 1월에는 구암(龜菴)이라는 도호를 받았다. 1901년 5월 29일 공주 무성산에서 최시형의 제사를 준비하던 중 공주감영의 대장 이민직에게 체포되어 19 ...
2025-06-30 16: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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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천
1916년 김광선(金光旋)을 통해 소태산(少太山)에게 귀의한 9인제자 중 한 사람으로 원불교 초기교단 형성과정에서 저축조합·방언공사(防堰工事)·혈인기도(血印祈禱) 등에 참여했다. 김기천 15세시에 김순천(金順天)과 결혼했으며 17세부터 한문 서당 훈장으로 근동 아이들을 가르쳤다. 김광선의 인도로 소태산 문하에 귀의하여 저축조합 방언공사 법인기도에 동참했다. 1924년(원기9)부터 4년간 영광지부 서무부장 겸 지부장으로서 살림을 전담했다. 1928년(원기13)에는 익산총부 서무부장에 피임되어 2년간 근무했고 1930년(원기15)에는 총부 교무부장 이듬해에는 선원 교무로 해박한 지식과 명철한 지혜로 선원들을 일깨웠다. 김기 ...
2025-06-30 15: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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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구연
무법대
김구연은 1938년 경기도에서 출생하였으며 자신이 조선조 김종서장군의 후손이라고 자부하였다. 그는 8세 때에 도에 뜻을 두고 입산해서 찬운도사(餐雲道士) 도석선생(道石先生)이라는 분의 지도를 받아 천문과 지리에 통달했다고 한다. 그러나 도석선생은 형체를 나타내지 않는 신비의 존재로 그에게 계시만 내려주었는데 계시에 의하면 머지않은 미래에 후천의 새 시대가 개벽될 것이며 이때 김구연이 개천궁(開天宮)의 영도자가 될 것이라고 하였다. 따라서 김구연은 자신이 천자(天子)의 직성(直星) 자미성(紫微星)의 정기를 받았다고 해서 무자(戊字)를 따다가 ‘무법대(戊法臺)’를 짓고 자신의 호를 무송(戊松)이라고 했다. 김구연은 때로 소 ...
2025-06-30 15: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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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강산 토성수련도장
대순진리회
전국에 분포한 다섯 군데의 대순진리회 도장 가운데 강원도 고성군에 위치한 수도장이다. 민족의 영산(靈山)이며 천하명산인 금강산 일만 이천 봉 가운데 제 1봉인 신선봉 아래에 터를 잡고 있다. 남으로 설악산이 받쳐주고 서쪽으로 신선봉이 우뚝 솟아 동해를 바라보는 지세(地勢)로 학(鶴)이 쉬다가 날아오르는 학사비천혈(鶴舍飛天穴)의 명당지로 알려져 있다. 연건평 8430평에 영대를 포함하여 13개동의 건물이 있다. 1995(乙亥)년 1월 3일 금강산 수련도장 기공식을 거행하고 동년 4월 11일에 본전 상량식을 거쳐 음력 12월 13일에 영대봉안치성을 올렸다. 1996년에는 휴양소가 마련되었고 1997년 12월에는 미륵불(높이 ...
2025-06-03 17: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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