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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단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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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단수에 대한 기록은 『삼국유사』와 『제왕운기』에 있다. 『삼국유사』에서는 환웅이 3,000의 무리를 이끌고 태백산 정상 신단수 아래에 내렸다는 것과 웅녀가 단수 아래서 빌어 아기 가지기를 원했다는 내용이 있다. 이에 대해 『제왕운기』에서는 환웅이 3,000의 ‘귀신’을 이끌고 ‘신단수(神壇樹)’에 내렸다고 되어 있어 약간의 차이를 보이고 있다. 이와 같이 신단수는 환웅이 내려온 곳이며 아기의 출생을 기원하는 대상이 되므로, 한국 전래의 천신신앙과 수목신앙의 기원을 발견할 수 있다. 신단수는 이후 서낭나무나 당산나무 등과 같은 신성한 나무의 관념으로 변화해 간다. <참고문헌>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한국학중앙연구원, ...

2025-10-03 22: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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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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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순진리회

수련은 기본적으로 ‘수심연성(修心鍊性)과 세기연질(洗氣鍊質)’의 취지에 부합하는 활동을 말한다. 일반적으로 수행하는 사람은 자신이 지닌 수행의 목표를 달성하기 위하여 일상적인 자아(自我)를 다스리지 않으면 안 된다. 일상의 자아는 언제나 육체적 욕구와 정신적 번뇌에 사로잡혀 있으며 이러한 자아에 매몰되어 있는 한 수행자의 이상(理想)에 도달할 수가 없다고 본다. 따라서 모든 수행자는 자신의 몸과 마음을 수행의 정신에 부합하게끔 조절하고 단련함으로써 이상적인 목표를 달성할 수 있게 되는데, 이와 같은 수행자의 특별한 자기훈련의 활동을 수련이라고 한다. 대순진리회에서 이러한 수련의 방법은 “시간(時間)과 장소(場所)의 지정 ...

2025-10-01 16: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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삭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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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교

유교식 상장례(喪葬禮)에서 대상(大祥)을 치를 때까지 매월 초하루와 보름에 빈소(殯所)에 드리는 상식(上食 상을 마칠 때까지 생시처럼 아침저녁으로 음식을 올리는 일)을 삭망(朔望) 또는 삭망전(朔望奠)이라고 한다. 평소의 상식과는 달리 제례에 준하는 제물(祭物)을 진설(陳設)하고 시행하지만 제례에 속하는 의례는 아니다. 따라서 그 절차 또한 제례와 다르다. 일반적으로 삭망전은 제물을 진설한 뒤 잔을 올리고 상주 이하 참제자(參祭者)들이 곡(哭)을 한 다음에 삽시(揷匙 숟가락을 밥에 꽂음)와 정저(正箸 젓가락을 정돈함)를 하고 한 식경(食頃) 정도 기다렸다가 시저(匙箸 숟가락과 젓가락)를 거둔 뒤 다시 곡을 하면서 재배( ...

2025-07-09 20: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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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수련 명상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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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수련원이 각 지역마다 설치한 명상을 가르치는 장소를 말한다. 월 단위로 등록해서 학원처럼 운영되고 있다. 지도 강사들이 명상 방법을 숙지시켜주고 마음빼기 하는 것(명상 수련법)을 가르친다. 이 같은 마음 버리기 명상을 하다 보면 마음속 깊이 묻어둔 부정적인 감정 즉 여태까지 표현하지 못했던 화 짜증이 다 올라오는데 그것을 지우는 과정을 밟는다. 묶은 감정이 올라오고 그것을 방법대로 버리다보면 마음이 비워지면서 상쾌함과 편안함을 느끼게 된다고 한다. 명상수련법은 현대사회에서 전통적인 가치관의 와해 기계적이고 인공적인 사회 환경 치열한 경쟁을 수반하는 사회생활 등으로 인한 육체적이고 정신적인 문제를 직면한 현대인에게 관 ...

2025-07-07 2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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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경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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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유사』 「아도기라(阿道基羅)」에는 아도화상이 어머니에게 천경림을 계림(鷄林)의 서울에 있던 전불(前佛) 시대 칠처가람지허(七處伽藍之虛) 중 하나였다고 하였고, 이어 미추왕대(263) 신라에 들어온 아도가 왕에게 청하여 이곳에 흥륜사를 세우도록 했다고 기록하고 있다. 7곳의 옛 절터[七處伽藍之虛]는 불교 유입 이전 고대신앙의 성소였던 곳으로 추정되며, 이는 불교와 토착신앙의 갈등을 유발한 원인이 되었다. 또한 법흥왕 때는 이차돈이 굳이 천경림에 절을 창건하려 하다가 토착신앙의 담지자들인 군신들과 갈등을 빚고 순교하기도 하였다. 천경림은 신라의 비보(裨補)로 전해지던 곳으로 달리 천경림(天敬林)으로도 불리는데, 이는 ...

2025-10-10 2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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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무출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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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불교

전무출신은 원불교의 개교 초기부터 사용한 ‘전무주력자(專務主力者)’, ‘전무노력자(專務努力者)’라는 용어에서 유래되었다. 그 의미는 ‘오롯이 공도에 힘써 일하기 위해 원불교에 출가하여 헌신한다.’는 것이다. 『원불교 교헌』에는 “출가교도로서 교규의 정한 바에 따라 본교에 공헌한 이를 전무출신이라 한다.”(제3장), “출가교도로서 정신과 육신을 오로지 본교에 공헌한 자를 전무출신이라 한다.”(「전무출신규정」 제2조)고 명시하고 있다. ‘전무출신’이라는 명칭의 공식기록은 1932년 1월에 발표한 「유공인 대우법」이 처음이다. 이 법에는 유공종별을 “①정남·정녀로 회상을 위해 헌신 노력한 이, ②전무출신으로 회상을 위해 헌신 ...

2025-10-09 16: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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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돈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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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도교

이돈화는 어릴 적 서당교육을 받은 뒤 1896년 무렵 함남 영흥으로 유학을 가서 3년 정도 수학하였다. 1902년 동학에 입교했고, 1905년 평양사범학교의 전신인 평양일어학교 속성과를 졸업하였으나 주로 독학으로 서구와 일본의 근대사상을 접했다. 20세 무렵 동학 입교 후부터는 동학·천도교를 그의 활동과 사상의 토대로 삼았다. 1910년부터 천도교월보사에서 근무했고, 1919년 천도교청년교리강연부를 만들었으며 이어 1920년 천도교청년회를 조직, 1923년에는 김기전·박내홍 등과 천도교청년당을 창립하였다. 1920년 잡지 『개벽』을 창간하여 1926년 강제 폐간될 때까지 주간을 맡았고, 1922년 『부인(婦人)』지 창간 ...

2025-10-08 20: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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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계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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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려서부터 중국 전통교육을 받았으나, 상하이에서 세계 지리서인 『영환지략(瀛環志略)』과 같은 서양 서적을 보고 생각이 크게 바뀌었다. 1890년 캉유웨이[康有爲]에게 사사하여 육왕심학(陸王心學)과 서학을 공부하고 공양학(公羊學)의 정수(精髓)를 익혔다. 1895년 이후에는 스승을 따라 탄스둥[譚嗣同] 등과 함께 변법자강(變法自强)의 개혁 운동에 진력하였다. 1896년에는 『시무보(時務報)』라는 잡지의 주필을 담당하면서 「변법통의(變法通議)」를 연재했다. 그러나 1898년 무슬정변(戊戌政變)이 실패한 후 일본으로 망명하였다. 그는 중국 청말 중화민국 초 서양서적을 번역, 신문·잡지를 발간해 신사상을 소개하고 애국주의를 고 ...

2025-10-07 15: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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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리새일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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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해도 출신의 이유성은 부산·강원도·충남 등지에서 목회활동을 해오다 1963년 본인이 조직한 대한예수교 말세복음선교회가 해산되면서 수도정진을 위해 계룡산에 입산하였다. 1964년 여름 계룡산에서 부흥회를 갖고, 1965년 계룡산 백암동에 새일수도원을 세운 후, 1968년 ‘여호와의 새 날을 이루자’는 뜻으로 ‘여호와새일교단’을 발족하였다. 본인의 이름도 ‘우레의 아들’이라는 뜻의 이뢰자로 개명하였다. 새일교단의 교리와 조직은 이유성이 1968년 설교 도중 하늘로부터 받았다는 계시에 의한다. 그에 따르면 현재는 복음시대를 지나 환난시대로서, 새 시대의 새 왕국으로 들어가기 위해 새일교에 입교해야 한다고 하였다. 또한 계시 ...

2025-10-03 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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숭유억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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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의 불교세력은 왕실의 비호 하에 막강한 경제력을 보유하고 있었고, 문벌귀족들과 긴밀하게 결탁하고 있었다. 이에 정도전 등 유교적 예제국가를 꿈꾸는 조선 개국의 중심 세력은 사원의 토지와 노비 등을 빼앗고, 종파들도 통폐합하는 조치를 단행하였다. 사찰은 대폭 축소되었고, 도성 바깥으로 축출되어 1895년까지 공식적으로 도성 출입이 금지되었다. 연산군 때는 승과(僧科)가 폐지되었고, 승려 자격을 국가에서 인증하는 도첩제(度牒制)도 폐지되었다. 또한 양주의 회암사 등 수많은 사찰들이 화마를 입었고, 지방 사찰은 서원이나 향교 등에 자리를 내주었다. 임진, 병자 전쟁 이후 남북한 산성 축조와 수비 등에 인력을 차출 당하였고 ...

2025-10-03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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