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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종사 십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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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불교

십상의 각 내용은 다음과 같다. ①관천기의상(觀天起疑相): 박중빈이 7세경부터 우주의 이치와 세상의 모든 일에 대해 스스로 큰 의심을 일으켜 깊은 사색에 잠겼다. ②삼령기원상(蔘嶺祈願相): 11세 되던 해 어느 날 문중 시향제에 참석했다가 산신(山神)에 관한 이야기를 듣고 산신을 직접 만나 모든 의심을 해결하리라는 희망으로 삼밭재 마당바위를 오르내리면서 기도를 5년간 계속했다. ③구사고행상(求師苦行相): 16세 되던 해 봄 처가에 방문했다가 고대소설 《조웅전》의 주인공이 도사를 만나 성공하고 소원을 이루었다는 이야기를 듣고부터 도사를 만나기 위해 온갖 고행을 거듭했다. ④강변입정상(江邊入定相): 20세에 접어들면서 “장 ...

2025-07-05 19: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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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종교중광육십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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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종교

본서의 구성은 총4편과 부록으로 구성되어 있다. 제1편 초창기는 제1장 중광당시의 국내 정세 제2장 교문을 크게 열다 제3장 가시밭길을 헤치면서로 구성되어 있어 한말 외세의 침략에 국운이 위태로운 상황에서 제1대 교주 나철이 대종교를 창립하는 과정과 그의 순명 조천(朝天)까지를 다루었으며 제2편 발전기는 제1장 한배검 옛터전을 찾아서 제2장 독립운동에 앞장서다 제3장 만주의 교세실황으로 되어 제2대 교주 김교헌에 의해 교단의 체제가 정비되고 독립운동에 앞장서면서 교단이 크게 융성해 가는 시점을 다루고 있다. 제3편 수난기는 제1장 폭력과 박해 제2장 임오교변 제3장 암흑에서 광명으로로 구성되었다. 대종교가 종교운동과 더 ...

2025-07-05 19: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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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성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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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형하(趙衡夏)가 유교진흥의 목적으로 1923년 11월 본회 창립총회를 열어 창립된 유교계 신종교.

2025-07-03 16: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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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산종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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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명은 영호(榮灝). 법호는 대산(大山). 법훈은 종사. 1914년 음력 3월 16일 전북 진안군 성수면 좌포리에서 부친 인오(金仁悟)와 모친 안경신(安敬信)의 5남매 중 장남으로 출생했다. 소태산대종사와 정산종사의 뒤를 이어 1962년(원기47)부터 1994년(원기79)까지 원불교 종법사를 역임했다. → 김대거(金大擧)

2025-07-03 16: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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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군민족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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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종교학

단군민족주의는 오랜 기간 동안 한국사 속에 존재해오면서 한국사를 민족 ․ 자주 ․ 통일 ․ 민주 ․ 정의 ․ 복지의 방향으로 진전시켜온 동력의 하나로 기능해 왔었다. 특히 한민족을 하나의 공동체로 결합시키고자 한 통일운동과 관련하여 단군민족주의는 그 기여도가 크다 하겠다. 단군민족주의는 전근대시대를 통해서는 분열됐던 삼국-삼한의식을 단일의 역사의식 밑에 통합하는 기제로 작동했었다. 또한 나라가 어려움에 처했을 때마다 그 기능을 다하였다. 예컨대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의 시기 단군은 다시 민족의 구심점으로 등장하였고 구한말에는 민족성원 전체를 하나의 대가족으로 통합하려했던 민족적 대가족론의 근거가 되었으며 삼일운동 때는 종교 ...

2025-07-01 22: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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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군마니경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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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군마니숭조회

단군마니숭조회의 창립자 박종간은 자체적으로 여러 경전을 간행하였다. 그 가운데 대표적인 것이 『단군마니경전』·『천부의 맥』·『맥의 천리』 등이다. 『단군마니경전』은 많은 경전 중에서도 본교의 가장 근본되는 경전으로 추정된다. 그러나 실제 이 경전의 구성이나 내용 등 구체적인 사항에 대해서는 세간에 알려져 있지 않다. 참고문헌 : 『한국신종교실태조사보고서』(김홍철·양은용·류병덕 원광대학교 종교문제연구소 1997)

2025-07-01 2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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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산천조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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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일광은 부여군 내산면에서 출생하였으며 20대에 미망인이 된 후 불교에 입교하여 신앙생활을 하다가 정심교(正心敎) 신자가 되었다. 정심교는 강일(姜一)이 창립하였고 유불선 삼교의 합일된 대도를 표방하였으며 신앙의 대상은 미륵불과 단군신명(檀君神明)이었다. 그런데 정심교에 다니면서 그녀는 단군신명을 얻어 교주에 버금가는 치병의 이적을 보이게 되었다. 그러던 중 한국전쟁이 발발하여 교주 강일이 북한군에 끌려가고 신도 10여 명이 피살당하면서 정심교는 침체되었다. 전후 조일광은 정심교의 포교를 계속하여 교세를 거의 회복하였으며 1961년 대종교 부여지사의 책임자로 와 있던 강용구를 만나 대종교에 입교하고 이 지방의 포교책임자 ...

2025-07-01 01: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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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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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교

본관은 영양(英陽) 호는 격암(格菴)으로 경상북도 울진에서 출생했다. 생몰연대에 대해서는 1509년~1571년 설과 1501년~1571년 설의 두 가지 설이 있다. 어려서부터 유학(儒學)을 공부하였으며 평생 『소학(小學)』을 가까이 하며 몸소 실천하였다. 1564년(명종 19년)에 효렴(孝廉)으로 천거되어 사직서(社稷署) 참봉(參奉)에 제수되었고 말년에는 종6품인 천문학(天文學) 교수(敎授)를 지냈다. 역학(易學)·천문(天文)·풍수(風水)·복서(卜筮)·관상(觀相) 등에 조예가 깊었다고 하며 도술을 부리고 앞일을 정확하게 예언했다는 그의 신이(神異)한 행적에 대한 설화가 일찍부터 널리 유포되었다. 『동야휘집(東野彙輯)』· ...

2025-07-01 0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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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호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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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산도

김호연(1897-1992)은 아주 어릴 적 증산 강일순의 사랑을 받으며 그의 천지공사에도 관여된 인물이다. 호연이 너댓 살 때부터 증산이 업고 다니며 귀여워하던 여자이다. ‘호연이를 상제님이 키웠다고 하대요 상제님이 바지 속에다 넣고 댕기고 똥 싸면 냇가에 가서 털고 빨고 그랬다고 하대요 우리 어머니가.’ ‘원평장에 가서 떡 사다 먹였다고 하대요. 호연이가 배고프다고 하면 아무것도 안줬다고 하면 상제님이 사다 줬대요’(차봉수 증언). 또 증산이 출타할 때는 말에 태워 데리고 다니기도 했다. 증산은 호연에게 선매숭자(仙媒崇子) 도수를 붙이기도 했다. 호연이 9세 되던해 125일간 수도를 시키고 후천인간 영성개벽의 모델로 ...

2025-07-01 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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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낙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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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산교오동정파

증산교오동정파를 창립한 김낙원(金洛元 1890-1973)은 1890년 2월 29일 전라남도 영광군 군남면에서 김응보(金應輔)의 아들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가 전라북도 부안군 해재면 송석리 속칭 봉리(峰里)가 길지(吉地)라 하여 그곳으로 이사하니 거기서 자랐다. 그의 부친은 치산을 잘하여 400여석을 받는 부농이었다. 김낙원은 지술(地術)을 잘 아는 김태수가 증산 강일순을 믿고 태을주를 읽어야한다는 말을 듣고 1915년 보천교에 입교했다. 1916년부터 손바래기에서 증산의 부인인 정부인을 3년간 모셨고 증산의 생전 제자들인 김형렬 등 5-6명과 친교를 맺으며 증산의 사상을 배웠다. 1918년 순천에서 안내성을 만나 함께 ...

2025-06-30 15: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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