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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아신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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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세도의 도주 이선평은 포교를 시작한 후 사관제도를 두고 교단의 체제를 정비하였다. 사관은 동서남북의 네 방면으로 두었으며 자신의 10대 제자 중 가장 뛰어난 4명을 각 관의 도주로 두어 운영하도록 하였다. 당시 서관을 담당한 것은 신태제였는데 1956년 이선평 사후 신태제는 따로 독립하여 ‘정도교’를 설립하게 된다. 그런데 신태제가 이른바 ‘조화정부사건’으로 처형을 당하게 되고 이후 정도교는 황덕시와 김재경에 의해 두 파로 나뉘어지게 된다. 이때 김재경이 창립한 교단을 ‘불아신궁’이라 한다. 그런데 김재경은 각세도 교리로부터 벗어나 스스로가 단군의 계시를 받는다고 하면서 단군천진(天眞)을 봉안하고 단군신앙으로 전향하였 ...

2025-07-09 1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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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류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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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불교보문종

대한불교보문종에서는 불교역사상 최조의 비구니였던 대애도니(大愛道尼)를 종조로 하고 신라 때의 비구니 법류니(法流尼)를 중흥조로 삼고 있다. → 대한불교보문종 참조. <참고문헌> 『한국신종교실태조사보고서』(김홍철·양은용·류병덕, 원광대학교종교문제연구소, 1997) 대한불교보문종 보문사 홈페이지(http://www.bomunsa.or.kr/)

2025-07-09 00: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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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주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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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주신은 혈연관계의 신과 그렇지 않은 신으로 나뉜다. 혈연관계가 있는 신은 대개 자신의 조부모 부모 삼촌 고모 조카 자식 등 가까운 친족 중에 억울하게 죽거나 사고로 죽었거나 타지에서 죽음을 맞은 이들의 혼이 무당의 몸에 빙의하는 경우를 말한다. 혈연관계가 없는 몸주신들은 ‘선덕여왕(善德女王)’ ‘남이(南怡) 장군’ ‘최영(崔瑩) 장군’ ‘명성황후(明成皇后)’ 등과 같은 역사에 이름을 남긴 인물이다. 이들은 생전에 신령스러운 이적(異蹟)이 있었거나 억울한 죽음을 맞은 자들이다. 산신(山神) 동자(童子) 선녀(仙女) 관성제군(關聖帝君)을 몸주신으로 모시기도 한다. 참고문헌 : 『한국민속대사전』1 (한국민속사전편찬위원회 서 ...

2025-07-08 00: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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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방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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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북 평원군 출신으로서 종교적 배경이 전무 했던 노광공은 6.25 전쟁 직후 1955년 박태선의 종교집회를 통해 종교적 결단을 하기에 이른다. 그 후 노광공은 대구에서 동방교회를 시작으로 독자적인 조직을 갖게 되었다. 동방교 초기에 노광공은 안찰을 통한 치병 역사 향취 체험 등을 강조하였는데 박태선의 전도관의 종교적 모티프를 모방한 듯하다. 동방교가 기독교 성경을 경전으로 삼고 있으나 실제로는 노광공을 신격화한 『경화록』을 핵심 경전으로 여겼다. 노광공은 말세의 사명자 심판주 말세의 진인(眞人) 이래(二來) 천부 등으로 숭배되었다. 1967년 노광공 사망 후 그의 둘째 아들 노영구가 2대 교주가 되었고 기독교대한개혁장로 ...

2025-07-07 16: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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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불교진각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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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일경』·『금강정경』·『대승장엄보왕경』·『보리심론』·『진각교전』을 소의경전으로 한다.

2025-07-07 10: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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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군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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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군계

문헌상으로는 조선 세종 때 평양에 단군 사당을 지어 동명왕(東明王)과 함께 제사를 지냈고 그 뒤 이 사당을 수리하여 향사를 계속했다는 기록과 구월산 삼성사에 위토(位土)를 두어 환인·환웅·단군의 삼신에게 제사를 지냈다는 기록이 있다. 1913년에 계룡산에 이진택(李鎭澤)이 세운 작산단군전(作山檀君殿) 이민걸(李敏杰)이 충남 서산에 세운 아촌단군전(芽村檀君殿)이 가장 오래된 단군전에 속한다. 이진택은 구월산·지리산·계룡산 등지에서 기도수련을 하고 계룡산 신도안으로 이사하여 독자적인 단군신앙을 하다가 1909년 서울의 단군교 창립을 보자 1913년에 동지 박내인(朴乃人)의 협력을 얻어 자택에 단군전을 세운 것이다. 이것이 ...

2025-07-01 23: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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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민공생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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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도교

농민공생조합은 1931년 4월 8일 조선농민사(朝鮮農民社)에서 “협동 생활을 통한 농민 대중의 경제적 이익을 도모”하기 위해 조직한 것이다. 목적은 “농민의 상호부조와 단결로 경제적 당면이익을 획득하고 민중 스스로 사회경제를 운영할 수 있도록 하는 경제운동”에 있었다. 주된 강령은 ① 중간상인에게 이윤의 착취를 받지 않으려는 것 ② 현사회의 경제제도의 결함을 고치려는 것으로서 이는 조선농민사가 천도교로 완전히 귀속된 후 벌인 첫 사업이었다. 중앙에 조선농민공생조합을 두고 지방에는 군농민사 산하에 조합을 설립해 1932년 6월에는 조합수 181개소 조합원 3만 7962명 조합 자금 24만 5571원에 이르렀다. 1933년 ...

2025-07-01 0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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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연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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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진교(天眞敎)

김연국(金演局)은 김시습의 13세손으로 1857년 2월 13일 강원도 인제군에서 태어났다. 동학에 입도한 정확한 시기는 알 수 없으나 최시형이 영월·정선 쪽에서 포교활동을 하던 1870년대에 이미 동학에 입도하여 있던 숙부 김병내의 영향으로 입도하였다. 최시형이 강원도 영월군 정선에 거주하는 김병내의 집에 왔을 때 김연국은 최시형을 만나게 되고 그의 제자가 되었고 손병희(孫秉熙) 손천민(孫天民) 등과 함께 그의 3대 제자가 되어 교조신원운동에 가담하기도 했다. 1896년 1월에는 구암(龜菴)이라는 도호를 받았다. 1901년 5월 29일 공주 무성산에서 최시형의 제사를 준비하던 중 공주감영의 대장 이민직에게 체포되어 19 ...

2025-06-30 16: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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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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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천(氣天)은 비전(秘傳)으로 내려오던 산중무예를 박대양(1952~)이 당대 최고의 도인이었다는 원혜(元慧)로부터 전수받고 70년대 초 하산하여 이를 가르치면서 세상에 알려지게 되었다고 한다. 그러나 90년대 초 그의 수제자들이 서울에 수련원을 세워 일반인들을 상대로 강습을 시작하고 90년대 중반이후 대학동아리나 직장인들 사이에서부터 퍼져나가면서부터 본격적으로 대중에게 알려지기 시작하였다고 한다. 기천의 수련과정은 정적인 정공수련(靜功修練)과 동적인 동공수련(動功修練)을 거쳐 최고의 단계인 마음을 닦는 심법(心法)이 있다. 그러나 심법은 일반인들이 접근하기 어려워 도장에선 정공과 동공을 가르치는 것이 일반적이라고 한다. ...

2025-06-30 0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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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장 신앙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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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도관

기장의 신앙촌은 전도관 박태선이 소사신앙촌 덕소 신앙촌에 이어 세 번째로 건설한 신앙촌이다. 신앙촌은 정기적으로 전도관 교인들이 모여 절기예배 집회를 하는 성지이며 신앙촌 주민들의 삶의 터전이다. 또한 죄와는 무관히 영원히 살아가는 곳이며 박태선이 약속한 천년왕국이자 박태선과 함께 영원히 살고자 했던 14만4천 의인들의 지상천국 공동체이다. 2010년 현재 흔히 신앙촌이라 하면 제3신앙촌인 기장 신앙촌을 가리키는 것이다.

2025-06-30 0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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