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 871건
단군대황전
본교는 박노철이 무적(巫的) 능력과 단군의 신력(神力)에 의해 병을 치료하는 능력이 생기면서 신자들이 모여들었으며 1958년 단군을 모시는 당사(堂舍)를 짓고 당명을 ‘단군대황전’이라고 하였다. 이후 박노섭은 대종교본사에 접촉하여 본교를 대종교의 지부로 해 줄 것을 청원하여 ‘대종교삼선시교당’이라는 간판을 걸게 되었다. 그러다가 1965년에는 신도 가운데 홍옥도(洪玉道)라는 여신도의 재정적 후원으로 『단군예절교훈팔리삼백육십육사(檀君禮節敎訓八理三百六十六事)』상·하권을 간행하였고 이 경전의 교리에 근거하여 본전에 ‘단군예절교훈팔리삼백육십육사발간소’라는 간판과 ‘배달민족문화연구원’이라는 간판을 붙였다. 신앙의 대상은 삼신(三 ...
2025-07-01 2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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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군굴
대종교
묘향산의 단군유적은 다양하게 나타나고 있다. 단군대(檀君臺) 단군암(檀君菴) 단군굴(檀君窟) 돈오동(頓悟洞) 강무대(講武帶) 천주석(天柱石) 후장암(帿杖巖) 삼성암(三聖菴) 호대(虎臺) 등이 있다. 단군대는 두타봉 서쪽에 위치하고 있으며 단군굴에서 산 정상쪽으로 1리 정도 떨어져 있다. 단군의 강림처로 전해오고 있다. 단군암은 단군을 모신 불교 암자이며 돈오동은 단군굴 아래 있는데 ‘돈오’는 단군의 하인 이름으로 단군이 활쏘기 연습을 할 때 돈오가 이곳에서 화살을 수습해서 붙은 이름이라고 한다. 강무대는 단군굴에서 왼쪽으로 수십보 떨어져 있으며 단군이 무예를 연마하던 곳이다. 천주석은 보현사 동쪽에 있는데 단군이 무예를 ...
2025-07-01 2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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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군교포명서
백두산을 중심으로 백봉에게 지도를 받던 33인의 비밀결사 조직 중 13인이 백두산 대숭전(大崇殿)에서 백봉신사를 배알하고 일심계(一心戒)를 받음과 함께 단군교(신교)의 포교를 맹세하고 단군교를 포명하는 ‘단군교포명서’를 작성하였다. 나철은 1908년 백봉의 문하인 두일백(杜一白)으로부터 단군교포명서를 받았다고 한다. 단군교포명서의 원문은 1971년에 간행된 『대종교중광육십년사』에 수록되어 있으며 『홍암신형조천기』 1971년판의 부록에도 수록되어 있다. 대종교 총본사 소장본은 인쇄본 형태로 독립기념관(자료번호 2-000513-000 가로 15.0 세로 21.5 면수 21) 전시자료에 공개되어 있다. 표지상 ‘종팔(倧八)’ ...
2025-07-01 2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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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군교중앙본부
이창규는 1958년 4월 5일 아침식사 후 동네 아낙네들과 마루에서 담소를 나누다가 청천벽력 같은 우렁찬 소리와 함께 큰 불덩이가 온 몸을 태우는 것 같은 경험을 하고 혼수상태에 빠졌는데 의식을 회복한 후 영안이 열리고 사람들의 병을 고치는 능력이 생겨났다고 한다. 사람들의 아픈 곳을 만지기만 해도 낫고 자기를 찾아 와서 보기만 해도 병이 낫는 기적이 일어났다는 것이다. 이때 이창규가 접했다는 영신은 우주의 조화주 노인신(老人神)이라고 한다. 곧 이창규는 이때부터 100일간 기도를 하게 되고 이 과정에서 한 노인의 영체가 나타나서 천지인 창조의 근본 이치와 유불선 삼교와 기독교의 원리를 알려주어 이를 터득했다고 한다. ...
2025-07-01 2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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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군교종무청
근대기 단군신앙은 김염백의 대신교와 백봉의 단군교로 대표되는데 단군교의 전통은 백봉에서 비롯된다. 백봉의 교지를 받아 단군교를 포명한 33인 중 한 사람인 백전은 단군초상과 『삼일신고』 『단군실기』를 나철에 전해주고 나철은 다시 33인 중 한 사람인 두일백으로부터 ‘영계(靈戒)’를 받아 단군교인이 되어 단군교를 중광하나 일제강점기의 시작과 함께 교명을 ‘대종교’로 개명한다. 이후 단군교의 명칭을 고수한다는 명목으로 정훈모 등이 1910년 단군교를 창립하여 분립하게 되지만 1930년까지도 본부를 마련하지 못하는 등 어려움을 겪다가 ‘조선유교회’를 주관하던 안순환(安淳煥)의 도움으로 본부를 마련하게 된다. 그러나 교단의 내 ...
2025-07-01 22: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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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군교부흥경략
대종교
본서의 구성은 단군강세(檀君降世)·비서갑씨급사황자(匪西岬氏及四皇子)·단군세기(檀君世紀)·천부경(天符經)·삼일신고(三一神誥)·향사예식절차(享祀禮式節次)·찬송문(贊頌文)·단성전건축(檀聖殿建築)·신전봉찬회발기(神殿奉讚會發起)·교문부흥후삼십년경과약요(敎門復興後三十年經過略要)·지교설립(支敎設立)·송녹아도서(送鹿兒島書) 등으로 되어 있다. 비서갑씨급사황자편에서는 비서갑화백의 신녀인 비서갑씨가 단군의 후(后)라고 하였으며 이들이 부루(夫婁)·부소(夫蘇)·부우(夫虞)·부여(夫餘)를 낳았다고 하였고 단군세기편에서는 단군의 강세와 건국년 재위기간 47대 단군조선의 왕검에 대한 역사 등을 기록하고 있다. 천부경편에서는 이 경전이 1917년 ...
2025-07-01 2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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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군교본부
경전은 『천부경』 『삼일신고』 『성훈팔리(聖訓八理)』(『참전계경』)이다. 단군교본부의 경전은 단군교본부에서 1984년에 간행한 『단군정서』에 실려 있다. 그 외에 『단군정서』의 찬미편에는 ‘애국가’부터 시작해서 ‘단군진리회가’ ‘신령님 찬미’ ‘마리산 봉우리에’ ‘개천절 노래’ 등이 실려 있다. 참고문헌 : 『단군정서』(단군교 본부성전 편 우리출판사 1984.) 『도사님 목사님!』(김해경 홍성사 1996.) 『한국신종교실태조사보고서』(김홍철·류병덕·양은용 원광대학교종교문제연구소 1997.) 「양담배 禁煙운동 확산」 『매일경제』(1986.08.13.11면.) 「개천절(御天節) 4227周」 『경향신문』(1987.04.11. ...
2025-07-01 2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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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군교
한명윤이 창립한 단군계 신종교의 초기 이름. 참고문헌 : 『한국신흥종교총람』(이강오 한국신흥종교연구소 1992)
2025-07-01 2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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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군교(정훈모)
대종교에서는 근대기 이후 단군신앙이 백봉에서 비롯되었다고 보고 있으며 백봉이 백전에게 전했다고 하는 단군초상과 『삼일신고』 및 『신사기』 등을 나철이 받아서 단군교를 중광하였다고 보고 있다. 정훈모는 나철이 1908년에 단군교 신자가 될 때부터 함께 하였고 1909년 단군교를 중광하고 대종교로 개명할 때에도 중요 간부로 함께하였다. 그러나 나철이 대종교로 개명한 것에 대해 불만을 가지고 있던 그는 당시 대종교의 북부지사교(北部支司敎)의 명을 무시한 채 단군교의 교명을 고수할 것을 내세워 1910년 8월 15일 이유성(李裕聲)·유탁(兪鐸)·서창보(徐彰輔) 등과 더불어 대종교에서 이탈한다. 이후 그는 단군교라는 이름으로 도 ...
2025-07-01 2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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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군교
이창규(李昌奎)가 창립한 단군교중앙본부의 초기이름.
2025-07-01 20: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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