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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성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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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도교

천도교청년회는 1923년 9월 2일 이름을 천도교청년당으로 바꾸고 조직을 확대 개편하여 농민부 노동부 청년부 학생부 여성부 유소년부 상민부 등 7개부를 두었는데 여성들의 활동은 이 여성부를 통해 이루어 졌다. 1924년 4월 5일 청년당의 여성부가 독립하여 천도교내수단(天道敎內修團)을 창립하였다. 1925년 제1차 교회분규로 인하여 내수단은 신파 천도교내수단과 구파 천도교여성동맹(1927년 6월 창립)으로 나뉘었다가 1931년 3월 16일에 교회가 합동됨에 여성단체는 천도교내성단(天道敎內誠團)으로 합치게 되었다(회장 주옥경). 동아일보 중앙일보 등에서는 천도교 내성단을 기사로 계속 다룬 바 있다. 그러나 교회가 다시 분 ...

2025-07-01 01: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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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산천조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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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일광은 부여군 내산면에서 출생하였으며 20대에 미망인이 된 후 불교에 입교하여 신앙생활을 하다가 정심교(正心敎) 신자가 되었다. 정심교는 강일(姜一)이 창립하였고 유불선 삼교의 합일된 대도를 표방하였으며 신앙의 대상은 미륵불과 단군신명(檀君神明)이었다. 그런데 정심교에 다니면서 그녀는 단군신명을 얻어 교주에 버금가는 치병의 이적을 보이게 되었다. 그러던 중 한국전쟁이 발발하여 교주 강일이 북한군에 끌려가고 신도 10여 명이 피살당하면서 정심교는 침체되었다. 전후 조일광은 정심교의 포교를 계속하여 교세를 거의 회복하였으며 1961년 대종교 부여지사의 책임자로 와 있던 강용구를 만나 대종교에 입교하고 이 지방의 포교책임자 ...

2025-07-01 01: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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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면의 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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퀘이커교

종교적인 진리의 문제로 고민하던 창시자 조지 폭스는 23세가 되던 1647년에 “한 분 한결같은 예수 그리스도가 있으니 그만이 네 처지를 말해줄 수 있다.”는 음성을 듣는다. 이후에 퀘이커교에서는 이 음성을 ‘내면의 빛’ ‘내면에 계신 그리스도’ ‘각 사람 안에 있는 신의 것’ ‘신의 능력’ ‘신의 증거’ 등으로 불리게 된다. 그 빛은 모든 사람에 있고 모든 사람을 비춘다고 한다. 퀘이커교에서는 침묵 속에서 마음을 가라앉히고 내면의 빛을 향함으로써 영적 각성에 이를 수 있다고 본다.

2025-07-01 0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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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림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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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층신앙

무당은 신내린 사람이지만 신내린 사람이 바로 무당은 아니다. 무당은 신내림에 의해 좌우되지 않고 공동체의 안녕과 복지를 위해 신내림을 통제 활용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춘 존재이다. 신내림에 의해 좌우되는 단순한 신내린 사람에서 신내림을 공동체를 위해 활용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춘 무속의 사제로 변모시키는 무속의 제의가 바로 내림굿이다. 내림굿은 신내림 사람에게 들린 허튼 귀신이나 잡귀잡신을 벗겨내는 허주굿 무속의 주신들을 확인하고 수용하는 내림굿으로 이뤄져 있다. 내림굿은 허주굿과 내림굿을 통틀어 말하는 것이다. 황해도 무속의 경우 받아들인 신이 잘 솟아오르도록 하는 솟을굿을 더 포함시키기도 한다. 일상적 존재이던 평범한 ...

2025-07-01 01: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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낭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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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당나라 때 복건성(福建省)의 임(林)이라는 사람의 아내가 관세음보살에게 우담화(優曇華)를 하사받고 딸을 낳았다. 그 딸은 바다에서 사고를 당한 오빠를 구한 영력(靈力)을 발휘한 후 치병과 예언에 신이함을 보였다. 황실에서는 그녀에게 '천비(天妃)'라는 칭호를 하사하고 그녀가 죽은 후에는 영혼을 기리는 사당을 각처에 짓도록 했다. 일반적으로 ‘낭랑'이란 도교 여신의 총칭이다. 서왕모(西王母)의 왕모낭랑(王母娘娘) 벽하원군의 태산낭랑(太山娘娘) 천비(天妃)의 천후낭낭(天后娘娘) 등인데 천후낭랑은 마조(媽祖)라 불리며 바다와 관련된 일을 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항해자의 수호신으로서 절대적인 신앙의 대상이 되고 있다. 이는 ...

2025-07-01 01: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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납폐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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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순진리회

대순진리회 기도의례 행사시에 사용하는 종이로서 각각 기도주와 도통주 운장주의 내용으로 구성되어 있다.

2025-07-01 01: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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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학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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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방불교

1894년 동학농민혁명의 발생을 계기로 발의한 남학의 총궐기 계획.

2025-07-01 01: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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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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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학(南學)에 대해 이능화(李能和)는 『조선도교사(朝鮮道敎史)』에서 ‘동학(東學)과 같은 시기에 호서(湖西)지역(충남도)에서 처음 창도되었고 이운규가 1세교주 김항(金恒: 호 일부 충청도 연산군 남면 담곡리 사람)이 2세교주 권일청(權一淸)이 3세교주’라고 하였다. 이를 통해 보면 남학은 1860년대 동학과 비슷한 시기에 일어난 종교운동의 한 양태라고 볼 수 있다. 그런데 이운규가 실제로 종교운동을 펼쳤는지는 의문이며 당시 남학이라는 명칭도 사용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동학의 최제우(崔濟愚)가 자신의 교법을 단지 ‘무극대도(無極大道)’라고 하였으며 김항도 깨달음을 얻은 후 자신의 교법을 ‘무극대도’라고 하였다는 점 등 ...

2025-07-01 01: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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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천포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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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강대도

토암은 부인 서자암(徐慈庵)과 제자 백련(白蓮) 정태용(鄭泰鎔 1880~1932) 부자(父子)와 더불어 1910년 제자의 인연을 찾아 남쪽 지방인 충청도로 거주지를 옮겨 중생들을 구제하고자 하는 뜻을 펼치기 시작하는데 이를 ‘남천포덕(南遷布德)’이라고 한다. 남천포덕을 결행하기 전에 토암은 직접 수천인의 성명을 한 책에 써놓고는 “내 장차 남방에 가서 이 사람들을 만나 사제의 인연을 맺게 되리라.”고 하고는 곧 불살라 버리기도 했다. 수차례에 걸쳐 길을 떴다가 되돌아오곤 하던 토암은 마침내 37세 되던 1910년 3월15일 가족과 제자 30여인을 데리고 길을 떠나 4월8일 계룡산 신도안 백암동(白岩洞)에 도착하게 되었다 ...

2025-07-01 0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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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지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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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선단군전

남지훈은 1918년 충남 한산(韓山)에서 출생하여 예산(禮山)에서 성장하였다. 20대에 남편과 사별하고 친가에 돌아와 산사(山寺)를 돌아다니며 기도생활을 했는데 계룡산에서 기도 중에 단군의 현몽을 얻고 그의 계시에 의해 남선리(南仙里) 석각골에 단군전 건립을 계획하였다고 한다. 1958년 그녀는 충남 대덕군 진잠면 남선리에 주택을 세우고 그 동쪽 산기슭에 단군전을 착공하였다. 건평 10여 평으로 된 목조 와가를 설계하였다. 이때 서울 사람 홍정초의 협조를 받았으나 겨우 상량을 해 놓고 중단한 채 4년을 방치하였다. 1963년 경작답을 매각하고 청양 사람 조병호(趙柄鎬)의 도움으로 다시 착공했으나 경비부족으로 완전한 내부 ...

2025-07-01 0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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