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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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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종교

1891년(고종 28) 29세 때 식년시(式年試) 병과(丙科)에 급제하였고 이후 왕명의 출납을 관장하던 승정원(承政院)의 가주서(假注書)와 외교문서를 관장하던 승문원(承文院)의 권지부정자(權知副正字 문서 교정)를 역임하였다. 1895년(고종 32) 33세 때 갑오개혁 차원에서 종래의 재정기구를 정리하기 위해 설치된 징세서(徵稅署 1895.3.-9.)의 서장으로 발령을 받았으나 곧 사직하였다. 대종교 측 자료에 따르면 관직을 사임한 이후의 행적은 크게 두 가지로 구분된다. 우선 1909년 이전까지는 주로 정치·외교적 차원에서 구국운동을 전개하였다. 구체적으로 1904년에 전남 강진 출신의 오기호(吳基鎬 1863-1916) ...

2025-07-01 00: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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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종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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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법교

동학계 신종교인 천법교(天法敎)의 창립자. →천법교 참조.

2025-07-01 00: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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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정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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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종교

나정문은 1891년 11월 28일 전라남도 보성군 벌교읍 칠동리 금곡에서 나철의 둘째아들로 출생하였다. 호는 일도(一島). 어려서부터 한학을 공부하였고 1909년 서울 선린상업학교를 졸업하였다. 이후 원산농공은행에서 2년 성진척식은행에서 6년간 근무하였다. 1909년 부친 나철에 의해 대종교가 중광되었을 때 입교한 이후 참교(參敎)·지교(知敎)·상교(尙敎)로 승질되면서 총본사에서 교적간행회(敎籍刊行會) 총무 천전건축주비회(天殿建築籌備會) 발기인 등 중책을 맡았다. 1942년 일제의 대종교 탄압을 위한 조작에 의해 발생한 임오교변으로 11월 19일 일본경찰에 검거되어 영안현서(寧安縣暑)를 거쳐 목단강경무처에 구금되어 15 ...

2025-07-01 00: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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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정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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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종교

나정련은 1882년 9월 15일 전라남도 보성군 벌교읍 칠동리 금곡에서 나철의 장남으로 출생하였다. 호는 염재(念齋). 어려서 한학을 공부하였으며 가업에 종사하다가 1905년 경성 초동으로 이사하였다. 1910년 부친이 대종교를 중광하자 입교하였고 부친을 시봉하였다. 1911년 영계(靈戒)와 참교(參敎)를 받았다. 1914년 만주 연길현 의란구로 이주하여 계몽운동에 참여하였고 1916년 지교(知敎)를 받았다. 1920년에는 구룡(九龍)학교의 교장으로 임명되어 2년간 민족교육에 헌신하였다. 1941년에는 당시 대종교총본사가 있던 옛 발해수도 영안현 동경성(東京城)으로 이주했으며 경의원 참의(參議)에 피임되었다. 1942년 ...

2025-07-01 00: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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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인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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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도교

평안남도 동학농민혁명을 이끈 주도적 인물. 1919년 3.1운동 민족대표의 한 인물. 생애 및 활동 : 나인협은 1890년 동학에 입교하여 1894년 동학농민운동 때는 나용환과 함께 평안도 지역의 동학 도인들을 이끌고 동학농민혁명에 참가하였다. 동학혁명 후에는 손병희의 문명개화운동에 찬동하여 동학광고문을 내 문명개화와 정부개혁을 주장했고 포교소를 33개소로 넓혀 농민계몽에 힘썼다. 1919년 2월 25일에는 경성부에서 평안도 지역 천도교 인사들과 함께 손병희 권동진 오세창을 만나 3·1 운동에 참가하라는 권유를 받았고 민족대표 33인 중 한 명으로 2월 27일 기미독립선언서 초안에 서명했으며 3월 1일 태화관에서 독립선 ...

2025-07-01 00: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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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운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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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기타

나운몽은 평안도 안주의 보광학교 고등과를 졸업 후 일본 유학 중 학업을 스스로 중단하고 귀국하였다. 일본에서의 차별과 민족적 상황에 대한 큰 실망이 원인이었다. 미곡상으로 큰돈을 벌기도 했지만 일본 경찰의 체포를 피해 고향을 탈출한 후 주색(酒色)으로 자신의 처지를 비관하며 방탕한 생활을 했다. “살기도 싫고 죽기도 싫어” 이 산 저 산을 다니며 정처 없는 세월을 보내던 중 합천 해인사에서 중이 되었지만 파문을 당하였다. 그러던 그가 부친으로부터 들었던 새별산인 용문산에 입산하여 구도자의 길을 출발한 것은 1940년 5월 7일이었다. 1942년 어느 날 용문산 토굴에서 “네 마음을 정결하라. 그리하면 나를 보리라 의심스 ...

2025-07-01 00: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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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용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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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도교

나용환은 20세 까지 한학을 공부했고 1894년 동학에 입도했다. 동학혁명 때 나인협(羅仁協)과 함께 평안도에서 지도적인 역할을 담당하였고 1904년 진보회 결성시에는 평안도에서 회장을 맡아 정부 혁신을 도모했다. 1919년 2월 25일경 천도교의 기도회 종료보고와 국장참배를 위해 상경한 그는 손병희(孫秉熙)·권동진(權東鎭)·오세창(吳世昌) 등을 만나 3·1독립만세운동 계획을 듣고 이에 찬동하여 민족대표로서 서명할 것을 동의하였다. 그는 이 사건으로 체포되어 징역 2년형을 선고받아 옥고를 치렀다. 1926년 천도교 교육을 위한 경성시일학교를 세우고 교장으로 음취임하는 등 천도교계의 원로로서 일하다가 1936년 환원했다. ...

2025-07-01 00: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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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얼의 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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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얼교

이 책은 부제를 ‘형상 없는 비움과 무한 가능태의 서’라고 하였다. 책 내용은 사용방법에 따라 만물과 하나인 존재로서의 순수의식이자 참된 내 본래의 존재상태인 ‘나얼’을 찾는 법 에고를 환영하는 법 자기 내면의 모든 어둠과 고통의 뿌리를 발견해 소멸하는 법 의식의 힘을 이해하여 올바른 염원만을 담아 그것이 실현되도록 인도하는 성취법 깨닫고 깨어나는 각성법 등 한얼교에만 전하는 비전(秘傳)의 진리 실천법을 담은 책이라고 한다. 본서를 포함하여 『만년성서』·『한얼의 서』·『광명의 서』·『온얼 광명의 서』·『지적혁명』·『정념의 서』 등은 신정일 사후에 편찬된 것으로 한얼교에서는 이를 ‘전법시대(傳法時代)’의 출판물이라고 표현 ...

2025-07-01 00: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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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얼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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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얼교

한얼교의 핵심사상은 크게 한얼론·나얼론·바름론·구원론으로 정리할 수 있다. 그 가운데 나얼론은 한얼교의 인간관이라 할 수 있다. 사람들은 모두가 한얼님의 ‘얼님’을 지니고 있으며 곧 모든 사람은 자기 스스로의 얼님이 된다. 이 ‘얼님’이 미묘한 여덟 가지의 조화에 의해 모든 사람에게 스며들었다는 것이다. 한얼이 인간에 머문 것이 곧 얼이다. 다시 말하면 ‘얼’은 ‘한얼’의 머뭄이라는 것이다. 나얼이 한얼이요 한얼이 곧 나얼이니 나얼이 때때로 나에게 말하고 나를 가르치고 나를 완성시키는 길을 길러준다. 나얼은 스스로의 모습을 나 자신에게 보여 스스로를 찾게 하고 스스로를 걸리고 스스로를 깨닫게 하여 완전한 나를 이루게 한 ...

2025-07-01 00: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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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반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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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

나반존자는 독성(獨聖) 독성존자(獨聖尊者)라고도 하며 우리나라 불교에서만 나타나는 독특한 신앙대상이다. 불교의 어떤 경론(經論)이나 사기(史記)에도 나반존자라는 명칭이나 행적이 드러나지 않는다. 다만 우리나라 불교의식집인 『제반문(諸般文)』 『작법귀감(作法龜鑑)』 등에 나반존자에 관한 의식문이 전한다. 우리나라 사찰에서 독성각(獨聖閣)이라는 단독 전각이나 삼성각(三聖閣)에서 칠성 산신과 더불어 모셔지는데 나반존자상은 하얀 머리카락을 드리우고 눈썹은 매우 길며 미소를 띤 얼굴 모양이다. 독성각으로 유명한 곳은 경북 청도의 운문사 부속 암자인 사리암(舍利庵) 서울 강북구 수유동 삼성암 등이 있다. 나반존자의 기원에 관해서는 ...

2025-07-01 0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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