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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군교(정훈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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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종교에서는 근대기 이후 단군신앙이 백봉에서 비롯되었다고 보고 있으며 백봉이 백전에게 전했다고 하는 단군초상과 『삼일신고』 및 『신사기』 등을 나철이 받아서 단군교를 중광하였다고 보고 있다. 정훈모는 나철이 1908년에 단군교 신자가 될 때부터 함께 하였고 1909년 단군교를 중광하고 대종교로 개명할 때에도 중요 간부로 함께하였다. 그러나 나철이 대종교로 개명한 것에 대해 불만을 가지고 있던 그는 당시 대종교의 북부지사교(北部支司敎)의 명을 무시한 채 단군교의 교명을 고수할 것을 내세워 1910년 8월 15일 이유성(李裕聲)·유탁(兪鐸)·서창보(徐彰輔) 등과 더불어 대종교에서 이탈한다. 이후 그는 단군교라는 이름으로 도 ...

2025-07-01 2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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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염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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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교

김염백은 1890년 평안남도 맹산(孟山)에서 신교(神敎)를 일으켰으며 국조단군을 주신(主神)으로 하여 천황씨(天皇氏) 지황씨(地皇氏) 인황씨(人皇氏)의 삼황을 신봉하도록 하였다고 한다. 신교를 창립한 후 포교에 힘쓰다가 동학농민혁명에 연유되어 1894년에 사망하였다. 김염백의 신교는 근대기 국내에서 국조단군을 신앙의 대상으로 한 최초의 사례로 보고 있기도 하다. 다만 대종교 등에서는 김염백의 신앙이 순수하게 국조단군만을 신앙하는 단군국교가 아니라고 보면서 백봉의 단군교를 근대 이후 국내 최초의 단군신앙이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참고문헌 : 『한국신흥종교총람』(이강오 한국신흥종교연구소 1992)

2025-06-30 16: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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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계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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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불교미륵종

대한불교미륵종(大韓佛敎彌勒宗)을 창립한 김계주(金桂朱 1896-1950 호 洪原)는 1896년 9월 2일 전라남도 나주군 반남면 신촌에서 태어났다. 어려서부터 한학공부를 시작했고 17세시부터 경신사상(敬神思想)에 몰두 국왕산에 올라가 산제와 불공생활을 계속했다. 일찍이 보천교에 입도하여 증산 강일순을 신앙하다가 전라남도 광산군 서창면 풍암리 운리동에 장소를 옮겨 더욱 수도에 정진하던 중 무성제군戊聖帝君: 甑山)의 계시를 받게 되었다고 한다. 1942년 9월 9일이었다. 이후 교명을 무교(戊敎)라 하고 본격적인 종교 활동을 시작했다. 그는 많은 환자들을 치료해 주었고 곧 잘 예언도 했다. 1946년 교명을 무을교(戊乙敎) ...

2025-06-30 15: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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곤도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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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6년 이선평의 사망 후 각세도는 사관을 중심으로 분열하기 시작하는데 이때 각세도남관의 도주 장명성의 제자였던 정수성이 ‘정수성파’를 만들어 독립한다. 정수성 사후 그의 제자였던 이주원․이규헌․이성채․차갑순 등이 이선평의 아들인 이동주를 중심으로 ‘각세도본원’을 설립하여 포교활동을 전개하게 된다. 이후 차갑순은 이들로부터 독립하여 서울 성북구 미아리에서 ‘곤도교’를 설립하고 독자적인 포교활동을 전개하게 된다. 그러나 점차 교세가 미미하게 되었고 포교가 유야무야인 상태로 멸실되고 만다. 곤도교는 다른 분파와 마찬가지로 이선평을 신앙의 대상으로 모셨다. <참고문헌> 『한국신흥종교총감』(이강오, 한국신흥종교연구소, 199 ...

2025-05-24 19: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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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룡산하 신종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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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종교일반

계룡산은 해발 828m 전체면적 61km²로 1968년 국립공원으로 지정되었다. 신라시대에는 오악의 하나로 동악 토함산 북악 태백산 남악 지리산 중악 팔공산과 더불어 서악으로 불렸고 고려시대에는 삼악의 하나로 북악 묘향산 남악 지리산과 더불어 중악으로 불리는 성산이었다. 태백산에서 갈려져나와 천황봉 등 15개의 봉우리 서용추 등 3개의 폭포 제석사 동굴 등 5개의 동굴이 있어 빼어난 경관이며 신도안을 비롯한 산내에 갑사‧동학사 등 22개소의 대소 사찰이 있다. 태백산에서 뻗어나온 산맥은 덕유산‧대둔산 그리고 여러 봉우리를 이어 태극을 이루고 장수에서 발원한 물은 진안‧무주‧영동을 거쳐 금강을 이루어 대전‧공주 그리고 장 ...

2025-05-24 17: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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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념총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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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운교

『경념총화』는 1924년에 제자인 박종각(朴鍾珏) 교인이 교주의 명교를 받고 기도 중에 하날님의 말씀을 강서로 받은 글이다. 『동경대전』의 제1장인 「포덕문」의 핵심은 하날님이 내린 ‘영부와 주문’인데 『경념총화』는 강령주문 8자를 제외한 본주문인 ‘시천주 조화정 영세불만 만사지’의 13자를 한 글자마다 장명(章名)을 부여하여 하날님의 말씀으로 설명하고 있다. 하날님의 첫 말씀인 시(侍)에 이렇게 시작한다. “네가 도를 알겠느냐. 끝이 있는 인생에 끝이 없는 사업이 곧 이것이 도이니라”고 했고 본주문의 두 번째 글자인 천(天)에 대해서 이르기를 “네가 하늘을 알겠느냐? 하늘은 곧 내이니 내인즉 하나이니라 오직 하나요 둘 ...

2025-05-23 15: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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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세도남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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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세도

각세도 도주 이선평은 포교를 시작한 후 사관제도와 삼십암제를 두어 교단의 체제를 정비하고 각 지부들을 관리하였다. 사관은 동서남북의 각 방면에 두었으며 자신의 제자 중 뛰어난 인물 4명을 선발하여 각 관의 도주로 임명하였다. 초기에 각세도남관에는 김해제가 임명된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각 관에 대한 본부의 통제가 원활하지 못하였고 이선평이 살아있을 때부터 내부에는 여러 가지 분란이 있었다. 김해제는 이선평 생전에 ‘천인교’를 설립하여 분파하게 되었고 이선평은 다시 장명성을 남관의 도주로 임명하게 된다. 장명성 사후 임선호(任善鎬)․정수성(鄭秀星)․전태성(全泰成)․한병헌(韓炳憲) 등이 다시 분파하게 되는데 전태성이 충청북 ...

2025-05-14 1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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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암신형조천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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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종교

본서는 김교헌의 대종교의 제1대 교주인 나철이 대종교를 중광하게 되기까지의 과정을 서술한 책이다. 이는 김교헌이 나철의 사망 후 제2대 교주가 되어 교단을 제도적으로 정립하고 대종교의 역사를 고증하여 확립시키는 과정에서 저술된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대종교의 역사적 정통성에 대해 기술하고 있다. 예를 들면 나철이 백두산도인인 두일백과 백전 등으로부터 단군의 가르침을 받았으며, 특히 1904년 일본에서 백전(伯佺)으로부터 백봉신사(白峯神師)가 전해주었다고 하는 『삼일신고』와 『신사기』를 받았다는 것 등의 내용을 적고 있다. 대종교 3대 교주 윤세복이 역(譯)한 것을 대종교출판사에서 2002년 출판하였다. <참고문헌> 『한 ...

2025-10-11 22: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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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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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교회

피가름, 피갈음이라고도 한다. 김백문의 신학에서 비롯되었다. 일찍이 1947년 정득은이라는 여인이 자신과의 성관계를 통한 피의 공유로써만 구원이 가능하며, “손을 잘라 그 피를 김백문에게 먹이라”는 계시를 받았다고 주장한 바 있었다. 김백문은 아담의 타락을 하와와 사탄과의 간통에서 발원된 성적 타락으로 간주하여, 사탄의 피를 거룩한 피로 교환하는 의식인 체례(피가름)을 통해 타락으로부터의 정화가 가능하다고 주장하였다. 이를 받아들인 일부 기독교계 신종교에서는 참된 메시아인 교주와의 성적 관계 의식(儀式)을 통해서 더러워진 피가 깨끗해진다는 피가름 교리를 발전시켰다. 통일교에서는 이 교리를 상징화하여 합동결혼식으로 정착시 ...

2025-10-11 0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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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일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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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교는 이필례가 1944년 김제 만경에서 창립하였다. 1898년 김항이 사망한 후, 그의 10대 제자 중 하상역이 제2대 교주가 되었으나, 김항을 상제로 모시면서 신앙의 대상으로 하고 ‘윷판원리’로 정역을 해석하는 등 다른 제자들과 대립을 일으키게 되어, 따로 분립하여 ‘대종교’를 창립하여 포교활동을 시작한다. 이때 김영곤은 하상역의 대종교 창립에 동참하여 함께 포교활동을 전개하였으나, 곧 대종교에서 독립하여 하상역의 대종교와 대결적 입장을 취하게 된다. 1921년 김영곤이 사망하자 그의 제자인 임도봉(林道峰)이 도통을 계승하였으며, 포교망을 확장하는 등 교세를 키워 교단의 명칭을 ‘중앙대종교’로 정하였다. 1950년 ...

2025-10-10 22: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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