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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운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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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기타

나운몽은 평안도 안주의 보광학교 고등과를 졸업 후 일본 유학 중 학업을 스스로 중단하고 귀국하였다. 일본에서의 차별과 민족적 상황에 대한 큰 실망이 원인이었다. 미곡상으로 큰돈을 벌기도 했지만 일본 경찰의 체포를 피해 고향을 탈출한 후 주색(酒色)으로 자신의 처지를 비관하며 방탕한 생활을 했다. “살기도 싫고 죽기도 싫어” 이 산 저 산을 다니며 정처 없는 세월을 보내던 중 합천 해인사에서 중이 되었지만 파문을 당하였다. 그러던 그가 부친으로부터 들었던 새별산인 용문산에 입산하여 구도자의 길을 출발한 것은 1940년 5월 7일이었다. 1942년 어느 날 용문산 토굴에서 “네 마음을 정결하라. 그리하면 나를 보리라 의심스 ...

2025-07-01 00: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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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용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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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도교

나용환은 20세 까지 한학을 공부했고 1894년 동학에 입도했다. 동학혁명 때 나인협(羅仁協)과 함께 평안도에서 지도적인 역할을 담당하였고 1904년 진보회 결성시에는 평안도에서 회장을 맡아 정부 혁신을 도모했다. 1919년 2월 25일경 천도교의 기도회 종료보고와 국장참배를 위해 상경한 그는 손병희(孫秉熙)·권동진(權東鎭)·오세창(吳世昌) 등을 만나 3·1독립만세운동 계획을 듣고 이에 찬동하여 민족대표로서 서명할 것을 동의하였다. 그는 이 사건으로 체포되어 징역 2년형을 선고받아 옥고를 치렀다. 1926년 천도교 교육을 위한 경성시일학교를 세우고 교장으로 음취임하는 등 천도교계의 원로로서 일하다가 1936년 환원했다. ...

2025-07-01 00: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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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얼의 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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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얼교

이 책은 부제를 ‘형상 없는 비움과 무한 가능태의 서’라고 하였다. 책 내용은 사용방법에 따라 만물과 하나인 존재로서의 순수의식이자 참된 내 본래의 존재상태인 ‘나얼’을 찾는 법 에고를 환영하는 법 자기 내면의 모든 어둠과 고통의 뿌리를 발견해 소멸하는 법 의식의 힘을 이해하여 올바른 염원만을 담아 그것이 실현되도록 인도하는 성취법 깨닫고 깨어나는 각성법 등 한얼교에만 전하는 비전(秘傳)의 진리 실천법을 담은 책이라고 한다. 본서를 포함하여 『만년성서』·『한얼의 서』·『광명의 서』·『온얼 광명의 서』·『지적혁명』·『정념의 서』 등은 신정일 사후에 편찬된 것으로 한얼교에서는 이를 ‘전법시대(傳法時代)’의 출판물이라고 표현 ...

2025-07-01 00: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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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얼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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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얼교

한얼교의 핵심사상은 크게 한얼론·나얼론·바름론·구원론으로 정리할 수 있다. 그 가운데 나얼론은 한얼교의 인간관이라 할 수 있다. 사람들은 모두가 한얼님의 ‘얼님’을 지니고 있으며 곧 모든 사람은 자기 스스로의 얼님이 된다. 이 ‘얼님’이 미묘한 여덟 가지의 조화에 의해 모든 사람에게 스며들었다는 것이다. 한얼이 인간에 머문 것이 곧 얼이다. 다시 말하면 ‘얼’은 ‘한얼’의 머뭄이라는 것이다. 나얼이 한얼이요 한얼이 곧 나얼이니 나얼이 때때로 나에게 말하고 나를 가르치고 나를 완성시키는 길을 길러준다. 나얼은 스스로의 모습을 나 자신에게 보여 스스로를 찾게 하고 스스로를 걸리고 스스로를 깨닫게 하여 완전한 나를 이루게 한 ...

2025-07-01 00: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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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반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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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

나반존자는 독성(獨聖) 독성존자(獨聖尊者)라고도 하며 우리나라 불교에서만 나타나는 독특한 신앙대상이다. 불교의 어떤 경론(經論)이나 사기(史記)에도 나반존자라는 명칭이나 행적이 드러나지 않는다. 다만 우리나라 불교의식집인 『제반문(諸般文)』 『작법귀감(作法龜鑑)』 등에 나반존자에 관한 의식문이 전한다. 우리나라 사찰에서 독성각(獨聖閣)이라는 단독 전각이나 삼성각(三聖閣)에서 칠성 산신과 더불어 모셔지는데 나반존자상은 하얀 머리카락을 드리우고 눈썹은 매우 길며 미소를 띤 얼굴 모양이다. 독성각으로 유명한 곳은 경북 청도의 운문사 부속 암자인 사리암(舍利庵) 서울 강북구 수유동 삼성암 등이 있다. 나반존자의 기원에 관해서는 ...

2025-07-01 0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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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례도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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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례는 음력 섣달 그믐날 밤에 악귀를 쫓기 위해 행하는 의식행위였다. 연말에 구나(驅儺)하는 풍속은 일찍이 중국에서 유래하였는데 고려 정종 때 첫 기록이 보인다. 나례도감은 조선 초기부터 둔 것으로 나례가 끝나면 폐지하였다. 광해군 때에는 상설기관으로 나례청(儺禮廳)을 두고 업무를 맡도록 하였으나 인조 때 혁파하였다. 그 뒤에 때때로 나례를 행하고자 할 때는 관상감(觀象監)에서 맡아 하였다. 일찍이 『고려사』 군례조(軍禮條)의 계동대나의(季冬大儺儀)에는 황금사목(黃金四目)의 방상씨(方相氏) 초라니 공인 창수(唱帥) 고각군(鼓角軍) 등 대나(大儺) 의식에 동원되는 출연진이 명시되어 있다. 이 나례의식이 그대로 조선시대까지 ...

2025-07-01 00: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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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동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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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종교원

나동섭은 1935년 충남 서산에서 출생하였다. 초등학교 졸업 후의 행적은 알 수 없으나 1980년 새종교원을 설립하고 종교활동을 시작하였으며 1982년 출판한 『태극사상과 인류』에서 한반도에 일어날 격동의 사건들을 예언한 것이 적중되어 세간의 관심을 끌게 되었다. 그는 태극사상을 우주창조의 본질이라고 주장하였으며 1991년에는 서울 세종문화회관에서 ‘태극사상과 인류평화’를 주제로 통일강연을 하였는데 여기서 2017년에 남북이 통일된다고 예언하기도 하였다. 나동섭은 정치와 사회변동에 큰 관심을 가지고 있으며 민족통일 문제와 민족주체성 회복 등에도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어 폭넓은 사회활동을 전개하였다. 뿌리 찾기 범민족운동 ...

2025-07-01 0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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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희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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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군조선종천교(檀君朝鮮宗天敎)

김희우는 1924년 7월 1일 전라남도 영암에서 출생했다. 어려서부터 도에 뜻을 두고 전국의 명산대천을 다니며 수도하였고 견문을 넓히기 위해 일본을 다녀오기도 하였다. 해방 후 상실되어 가는 민족얼과 민족주체성을 확립하기 위해 1964년 대구에서 단군조선종천교를 창립하였다. 단군할아버지를 신앙의 대상으로 모시면서도 삼신상제(창조주 환인천제 교화주 환웅천왕 치화주 단군왕검)을 숭봉하면서 삼신상제의 조화 교화 치화의 원리에 맞게 마음의 참됨을 찾고 참됨으로 몸과 마음을 길러서 안으로는 선으로 악을 다스리고 밖으로 세상을 밝혀나가야 할 것을 주장하였다. 단군조선종천교 창립 후 한국민족종교연합회와 단군계 교단들과 유대관계를 형 ...

2025-07-01 0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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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흥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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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봉산삼성전

김흥인은 1924년 황해도 개성에서 출생하였다. 11세에 정신에 이상이 생겼는데 이때부터 어떤 신명(神明)이 접하여 모든 것을 지시해 주었다고 한다. 25세에 그 신명의 지시에 따라 개성에 있는 사직단에 삼성각을 짓고 화공(畵工)을 불러 신상(神像)을 그려 모셨는데 어느 날 대종교인이 찾아와 이 신상을 보고 단군상과 비슷하다고 하여 그는 비로소 자신에게 계시를 주는 신명이 단군신명이라는 것을 알았다고 한다. 군 복무를 마치고 인천에서 한약종상을 경영했으나 그보다는 오히려 영적 능력에 의한 치유에 의해 무당으로 더 유명해져서 많은 신자들이 모여들었다고 한다. 1956년 10월에 서울 도봉산 암석 아래서 산신제를 지냈는데 ...

2025-07-01 0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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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환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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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화교

보화교(普化敎)를 창립한 김환옥(金煥玉 1896-1954 호 淸江)은 1896년 1월 11일 전라북도 정읍군 칠보면 신흥리에서 부친 김용술(金龍述)과 모친 박씨의 아들로 태어났다. 어려서 부모를 잃고 병으로 시달리며 자랐다. 1921년에는 신효묘방(神效妙方)을 얻어 창생을 구제할 생각으로 보천교(普天敎)에 입교하여 9년간 열심히 신앙생활을 하였으나 큰 뜻을 이룰 수 없다고 생각하여 1929년에 보천교를 나와 사방으로 주유천하를 했다. 1930년 주신수련(主神修練)의 입공에 들어가 입공한 지 3일째 되던 날 수운 최제우와 증산 강일순이 나타나 수운은 ‘나를 보고 수운 아버지라고 불러라’하고 증산은 ‘나를 보고 증산 어머니 ...

2025-07-01 0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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