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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종수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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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총지종

불교총지종의 사종수법(四種修法)은 식재법(息災法) 증익법(增益法) 경애법(敬愛法) 항복법(降伏法)이다. 식재법은 재난을 소멸하는 의궤법으로 악업 중죄 번뇌의 장애를 소멸하고 온갖 재난과 구설의 관재 및 아귀에 의한 재난에서 벗어나게 한다고 한다. 의궤순서는 옴남 옴치림 육자진언 준제진언을 한 다음 ‘옴 자례 주례 준제 ○○생 ○○○ 제재난 사바하’를 3편 염송한다. 이때 본인이나 가족 기타 사람의 재난소멸을 위하여 해당되는 사람의 간지와 이름을 넣어 염송한다. 증익법은 소원성취를 위한 의궤법이다. 관직이나 명예를 구하거나 수명의 장수를 얻거나 복덕을 구할 수 있다고 믿는다. 의궤 순서는 준제진언을 한 다음 ‘옴 자례 주 ...

2025-07-09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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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극락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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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5년 5월 박운교(朴雲敎)에 의해 당시 경기도(京畿道) 고양군(高陽郡) 한지면(漢芝面) 두모리(豆毛里)에서 만들어진 불교단체이다. 불교 포교기관으로서 설립되어 부처의 자비에 귀의하고 명심견성(明心見性)으로써 심신(心身)을 단련하며 질실강건(質實剛健)의 기풍(氣風)을 작흥(作興)하고 견실한 동양사상의 옹호(擁護)와 조장(助長)을 목적으로 하였다. 그러나 재정이 뜻대로 마련되지 못하여 교세가 성장하지 못하고 쇠퇴하였다. 1934년 8월말의 조사에 의하면 포교소 1곳 남신도 4명 여신도 1명이었다고 한다.

2025-07-09 17: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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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인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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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불교

원불교 초기 교단의 역사에 1919년(원기4) 봄에 방언 공사를 마친 후 소태산은 구인제자들에게 “지금 물질문명은 그 세력이 날로 융성하고 물질을 사용하는 사람의 정신은 날로 쇠약하여 개인ㆍ가정ㆍ사회ㆍ국가가 모두 안정을 얻지 못하고 창생의 도탄이 장차 한이 없게 될지니 세상을 구할 뜻을 가진 우리가 전일한 마음과 지극한 정성으로 천지에 기도하라.”(《대종경》 서품13)하여 구인 제자 각자에게 일자와 방위를 지정하고 일제히 기도를 올려 이해 음 3월 26일부터 음 7월 26일까지 매월 3ㆍ6일마다 4개월 동안 계속되었다. 기도 중 (음 7월 26일) 제자들에게 ‘사무여한(死無餘恨)’이라는 최후증서에 백지장(白指章)을 찍고 ...

2025-07-09 0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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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남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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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남주는 1901년 1월 3일 함경남도 갑산군에서 태어나 26살이 되던 해(1930년) 그는 장로교 평양신학교에 입학하였고 이후 그는 원산으로 가서 교편을 잡았는데 원산의 마르다 윌슨 여자 신학교 교수로 있는 동안 수도원식 원산신학산(元山神學山) 기도소를 차렸다. 여기서 그는 자기가 번역한 요한복음 토마스 아 캠피스의 ‘그리스도를 본받아서’ 성 어거스틴의 ‘참회록’ 등을 강의하였으며 헬라어와 히브리어를 연구하였다. 또한 스웨덴보리의 사상에 심취하여 기독교신앙의 신령주의적 체험을 중시하였고 당시 신비주의적 부흥사였던 이용도 이호빈 목사 등과 함께 ‘조선예수교회’라는 새로운 교단을 창설하였다. 1933년에는 접신 기도파들과 ...

2025-07-08 23: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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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방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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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북 평원군 출신으로서 종교적 배경이 전무 했던 노광공은 6.25 전쟁 직후 1955년 박태선의 종교집회를 통해 종교적 결단을 하기에 이른다. 그 후 노광공은 대구에서 동방교회를 시작으로 독자적인 조직을 갖게 되었다. 동방교 초기에 노광공은 안찰을 통한 치병 역사 향취 체험 등을 강조하였는데 박태선의 전도관의 종교적 모티프를 모방한 듯하다. 동방교가 기독교 성경을 경전으로 삼고 있으나 실제로는 노광공을 신격화한 『경화록』을 핵심 경전으로 여겼다. 노광공은 말세의 사명자 심판주 말세의 진인(眞人) 이래(二來) 천부 등으로 숭배되었다. 1967년 노광공 사망 후 그의 둘째 아들 노영구가 2대 교주가 되었고 기독교대한개혁장로 ...

2025-07-07 16: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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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종교중광육십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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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종교

본서의 구성은 총4편과 부록으로 구성되어 있다. 제1편 초창기는 제1장 중광당시의 국내 정세 제2장 교문을 크게 열다 제3장 가시밭길을 헤치면서로 구성되어 있어 한말 외세의 침략에 국운이 위태로운 상황에서 제1대 교주 나철이 대종교를 창립하는 과정과 그의 순명 조천(朝天)까지를 다루었으며 제2편 발전기는 제1장 한배검 옛터전을 찾아서 제2장 독립운동에 앞장서다 제3장 만주의 교세실황으로 되어 제2대 교주 김교헌에 의해 교단의 체제가 정비되고 독립운동에 앞장서면서 교단이 크게 융성해 가는 시점을 다루고 있다. 제3편 수난기는 제1장 폭력과 박해 제2장 임오교변 제3장 암흑에서 광명으로로 구성되었다. 대종교가 종교운동과 더 ...

2025-07-05 19: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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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종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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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불교

박중빈의 언행록으로 총 15품 457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1962년(원기47)에 완정하여 《정전》과 합본 《원불교교전》으로 편찬 발행했다. 《대종경》 15품의 내용을 특징적으로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①서품:원불교 창립과 관련한 서설적 법어가 주를 이루고 있으며 소태산의 대각과 불교의 연원 초기교단의 저축조합과 방언공사 등이 언급되고 있다. ②교의품:교리 대체를 이해할 수 있는 내용으로서 유ㆍ불ㆍ선 삼교의 주체 일원상 신앙과 수행 용심법 도덕문명 종교와 정치 등이 주로 언급되어 있다. ③수행품:수행에 관련된 법설들로서 일상수행의 요법 삼학수행 동정일여의 무시선과 내외정정 수승화강의 원리 기질수양과 심성수양 등이 거론되 ...

2025-07-03 17: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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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성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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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강대도

금강대도를 창도한 이승여는 1874년 강원도 통천에서 태어났는데 어려서 생활이 군색하여 배움에 나가지 못하고 나무하는 일로 업을 삼았다. 그는 33세 되던 1906년에 평범한 생활 속에서 갑자기 대도를 자각하게 되었고 한일합방이 되던 1910년에 고향인 금강산을 떠나 계룡산으로 거쳐를 옮겼다. 계룡산 일대에서 은거를 하며 비밀리에 포덕(포교)을 해 나갔는데 이때부터 이승여는 『대성경』의 저술을 시작하였다. 1914년에 『교유문(敎諭文)』 5권을 시작으로 1923년 충남 연기군에 총본원 기지를 잡으면서 경전 편찬을 계속해 나갔다. 그리하여 1923년에 『진종보감(眞宗寶鑑)』 상·하권 『진종대전(眞宗大全)』 『염불경(念佛經 ...

2025-07-03 16: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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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군사상선양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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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군사상선양회는 안호상에 의해 설립되었으나 1966년 3월 31일 전북 군산에서 설립된 단군호남숭모회와 결합하여 ‘단군숭모회’로 바뀌게 된다. 이후 단군숭모회는 ‘단군정신선양회’로 다시 명칭을 변경하게된다. 단군사상선양회는 2009년 전북 순창에서 양상화에 의해 다시 발족되어 문화체육부에 사단법인으로 등록하였다. 설립목적은 민족고유의 윤리관을 정착시키고 청소년 및 국민에게 배달민족의 홍익인간과 이화세계 정신을 널리 보급시켜 지역사회의 무궁한 발전에 기여함에 있다. 본 단체는 2010년 10월 3일 회문산 장군봉 천제단에 천부경비(天符經碑)를 세우고 천제를 올리는 등의 활동을 하였다.

2025-07-01 22: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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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용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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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도교

나용환은 20세 까지 한학을 공부했고 1894년 동학에 입도했다. 동학혁명 때 나인협(羅仁協)과 함께 평안도에서 지도적인 역할을 담당하였고 1904년 진보회 결성시에는 평안도에서 회장을 맡아 정부 혁신을 도모했다. 1919년 2월 25일경 천도교의 기도회 종료보고와 국장참배를 위해 상경한 그는 손병희(孫秉熙)·권동진(權東鎭)·오세창(吳世昌) 등을 만나 3·1독립만세운동 계획을 듣고 이에 찬동하여 민족대표로서 서명할 것을 동의하였다. 그는 이 사건으로 체포되어 징역 2년형을 선고받아 옥고를 치렀다. 1926년 천도교 교육을 위한 경성시일학교를 세우고 교장으로 음취임하는 등 천도교계의 원로로서 일하다가 1936년 환원했다. ...

2025-07-01 00: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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