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 844건
김해제
천인교 각세도남관
각세도의 도주 이선평은 깨달음을 얻은 후 교단을 설립하면서 동서남북으로 사관을 두었다. 이때 김해제는 남관의 도주로 임명된다. 그러다 1956년 이선평이 사망한 후에는 남관에서 독립하여 천인교를 설립하였으며 이후 천인교 포교에 힘쓰다 사망하게 된다. 김해제의 후계는 한계택과 한백우 등으로 이어지나 이후 천인교는 교세가 점차 미미하게 되었으며 결국 소멸하게 된다. 참고문헌 : 『한국민족종교총람』(한국민족종교협의회 1992) 『한국신종교실태조사보고서』(김홍철·양은용·류병덕 원광대학교 종교문제연구소 1997)
2025-06-30 23: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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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해경
단군교본부
김해경은 1950년 전남 무안군 삼향면 옥암리에서 부친 재만(在萬)과 모친 윤금자(尹金子)의 아들로 태어났다. 목포사범대학을 졸업하고 교사로 근무하였으며 군복무 후에는 미용사 약탕기장사 물장사 인테리어 조경사업 등의 일을 했고 ‘목련의 향기’ 등 유행가 작사도 했다. 26세 되던 1975년 6월 어느 날 단군신령(檀君神靈)의 인도에 따라 아차산으로 이끌려 가 그곳에서 단군성령의 명에 따라 3일간 약수만 마시며 눕지도 자지도 않고 앉아 있었다. 2일째 되는 날 한 스님이 올라와서 홑이불과 옥수그릇을 주면서 정성드리는 법을 알려주었고 그 후 49일간 물만 마시며 기도를 계속했다. 기도를 시작하고 1주일째 되는 날 단군성령이 ...
2025-06-30 23: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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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항
김일부의 생애를 정확히 알 수 있는 자료는 거의 남아 있지 않다. 『광산김씨경력공파족보(光山金氏經歷公派族譜)』 「대역서(大易序)」 가운데 ‘일부사실(一夫事實)’ 및 ‘일부사적(一夫事蹟)’ 그리고 김황현(金黃鉉) 등 김일부의 제자들이 남긴 기록과 김일부의 후손들의 증언을 통해서 그의 생애를 살펴볼 수 있다. 김항은 1826년 순조 26년(丙戌) 10월(己亥) 28일(丙子)에 현재 충남 논산시 양촌면 남산리에서 탄생하였다. 가보와 연보를 근거로 하여 알아보면 김항은 26세 된 부친 김공(金公)과 23세 된 모친 서씨(徐氏)의 장남으로 태어났으며 그 후 계속하여 5세 연하인 동생(辛卯生 後에 崔泂奭에게 出家)과 10세 연하인 ...
2025-06-30 23: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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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판례
단백교
김판례는 대전에서 태어났으며 일찍이 일본으로 건너가 13년간 거주하였는데 시모노세키[下關]에 살 때 몸에 신기가 있어서 신설(神說)을 토설하였다고 한다. 해방 후 귀국하여서는 일시적으로 기독교를 신앙하였는데 몸이 심하게 괴로워지고 3남매가 병사하고 남편은 객사하는 등 집안에 우환이 끊이지 않았다고 한다. 그녀는 대전 보문산에 들어가 기도수련을 시작했는데 이후 신병과 가세가 풀리기 시작했다고 한다. 김판례는 이 모든 것이 단군국조의 은덕이라 믿고 단군초상화를 걸고서 기도를 시작했는데 이때 단백교를 함께 창립한 남편 양준룡을 만나게 된다. 두 사람은 1955년 대전시 대사동 보문산에 불당을 짓고 ‘마곡사본산대전선교소’라고 ...
2025-06-30 23: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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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순
천지대안도
김태순(金泰順 1927-?)은 1927년 제주도 북제주군 구좌면 금정리에서 탄생 18세에 결혼했으나 곧 이혼하고 독신으로 살았다. 27세 되던 해 심장병으로 고생하던 중 부경순을 만나 찬물치료법으로 효험을 보고 본교에 입도 여러 제자 중 제일먼저 백일단식기도를 성공하고 부경순의 신임제자로 활동하다가 그의 유언에 따라 후계자가 되었다. 그녀는 입교 후 수도에 성심성의를 다하여 하루도 거르지 않고 아침저녁 냉수목욕 후 기도생활을 하였으며 때로 단식기도와 생식기도를 계속하였다. 1954년 처음으로 100일 단식기도를 성공한 이래 그녀의 단식기도는 매년 계속되었고 1966년 4월에는 법질서를 세우기 위한 555일 생식 기도를 ...
2025-06-30 23: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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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치인
오방불교
김치인은 1855년 7월 19일(혹은 18일) 전북 진안군 주천면 대불리에서 출생하였다. 본관은 전주이다. 치인은 초명이며 개명은 광제(廣濟) 호는 광화(光華)이다. 1874년에 이운규(李雲圭)의 아들인 부련(夫蓮) 이용래(李龍來)를 만나 남학(南學)을 접하였고 그로부터 구령주 등을 전해 받아 1931년 3월 전북 완주군 고산에서 본격적인 수련을 시작하였다. 김치인이 이운규를 직접 만나 가르침을 받았다는 주장도 있으나 이는 신뢰하기 힘들다. 오히려 이때 그는 이후 대종교(大宗敎)를 창립하는 하상역과 함께 수련 했던 것으로 보인다. 김치인은 1888년 천지의 운행도수를 깨우치고 전북 진안군 주천면 대불리에서 ‘오방불교(五 ...
2025-06-30 23: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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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춘화
천상환인미륵대도
김춘화는 1931년 제주시에서 출생했다. 1953년 이원봉과 결혼하여 5남매를 두었으나 종종 범상치 않은 영기를 보였다고 한다. 1961년 남편이 동도교(東道敎)에서 도통공부를 마치고 오자 김춘화는 그 종교와 인연을 끊을 것을 종용하였는데 말을 듣지 않자 짐을 싸서 집을 나서며 ‘천주신장 천주대신’을 부르기 시작했고 이에 천상미륵존불이 그녀에게 하강했다고 한다. 이후 치병능력이 생기고 예언이 적중하는 이적을 보이자 주변 사람들이 그녀를 천상미륵본불로 믿게 되었다. 1973년 불상 1기와 탱화 및 불기를 갖추고 본격적으로 종교활동을 시작하였고 1977년 3월 15일에는 그녀의 생일을 맞이하여 3일간 어천제기일(御川祭忌日) ...
2025-06-30 23: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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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청탄
중앙대종교
김청탄의 본명은 김영곤이며 청탄(淸灘)은 그의 호이다. 정역의 창시자인 김항의 제자 중 대표적인 인물로 하상역과 이십청(이상룡) 김영곤 등이 있었는데 김항이 사망한 후 하상역이 중심이 되어 ‘대종교(大宗敎)를 창립하였고 그는 김항을 상제와 같이 신격화하고 오음주송의 수련에 의해 정역의 원리를 깨달아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김청탄은 초기 하상역과 같이 대종교의 창립과 포교에 참여하였으나 얼마 후 독립하여 독자적인 교단을 형성한 후 충남 연산과 공주를 중심으로 하상역에 맞서는 세력을 형성하게 된다. 김청탄은 교단 초기 독자적인 교단명칭을 내세우지 않고 김항이 생전에 불렀던 호칭인 ’무극대도‘를 교단명칭으로 사용하다가 1921 ...
2025-06-30 23: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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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창숙
유교
본관은 의성(義城) 자는 문좌(文佐) 호는 심산(心山)·벽옹(躄翁)이다. 1919년 전국의 유림 130여 명이 독립청원서에 서명하여 파리강화회의에 보낸 이른바 파리장서사건을 주도하였으며 이후 중국 상하이로 망명하여 대한민국임시정부 수립에 참여하였다. 1921년부터 『천고(天鼓)』 『사민일보(四民日報)』등의 독립운동지를 발간하였고 서로군정서(西路軍政署)를 조직해 군사선전위원장으로 활동하였다. 1925년 국내로 잠입하여 비밀리에 독립운동자금 모금활동을 벌이고 다시 중국으로 출국하였으며 이 때 모금한 자금을 1926년 나석주에게 주어 동양척식주식회사에 폭탄을 투척하는 거사를 단행하도록 하였다. 1927년 상하이의 영국인 병원 ...
2025-06-30 23: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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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하
무량천도
김진하(호 月鏡)는 1903년 충북 청원에서 출생하였다. 16세 되던 때부터 입산기도 생활을 하며 전국의 명산을 찾아 수도했다. 1940년 수도기도 중 천지신명에게서 경문을 받게 되었다고 한다. 경문의 내용은 천하통일운수와 통천하운수가 미구에 우리나라에 돌아와 전 세계를 통일연합하게 될 것이기 때문에 그 막중한 임무를 수행하라는 내용이었다고 한다. 그리하여 그해 7월 10일 충남 논산군 두마면 부남리(계룡산 신도안)에 무량천도를 설립하였다.
2025-06-30 23: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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