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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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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도(金成道)는 1882년 음력 7월 17일에 태어나 17세 때 27세 연상인 정항준(鄭恒俊)과 결혼하였다. 그녀는 1906년 첫째 아들 정석천을 낳고 정신이상 증세를 보였다. 이때 노권사라는 전도부인이 예수를 믿어야 낳는다고 하여 그때부터 김성도는 교회를 나가게 된다. 3개월이 지나자 그의 병이 완치되고 특히 첫 아들의 병이 그녀의 기도로 완치되자 신앙심은 더욱 돈독해졌다. 1923년부터는 입신하여 예수와 대화를 나누고 돌아오는 신비체험을 하고 계시를 받게 되었다. 계시의 주요 내용은 죄의 뿌리는 음란이라는 것 지상의 인간들의 불신 때문에 예수가 억울하게 죽었다는 것 교회당에서 십자가를 떼어내는 운동을 전개하라는 것 ...

2025-06-30 16: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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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선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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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화연합도관

광화연합도관(光華聯合道觀)의 창시자.

2025-06-30 16: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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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석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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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신도

김석열은 1912년 1월 18일 서울에서 출생했다. 한국전쟁 때 난리를 피해 대전으로 내려가 자리를 잡았으며 한의학을 공부하여 대전시 중구 오류동에서 한의원을 개원하였다. 그는 불교와 기독교 등 여러 종교를 전전하였으나 만족을 얻지 못하고 말살되어가는 민족얼과 민족주체성을 어떻게 회복할 것인지에 대해 고민하다가 1984년에 삼신도를 창립하였다. 특히 그는 당시 ‘한세계인류성도종’의 창립자였던 정근철과 손을 잡고 『일신경(一神經)』을 간행하는 등 많은 저술활동을 통해 한민족의 위대성과 민족주체성을 고양시키고자 하였으며 또한 정근철과 함께 ‘하느님 명호도용 및 단군성조의 경칭 침해 배제 청구의 소’(92가합 71999호 사 ...

2025-06-30 16: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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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서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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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종교

김서종은 1893년 6월 13일 경상남도 함안군 칠원면 구성리에서 출생하였다. 1905년 보성전문학교 법과를 졸업하고 양원(養源)여학교에서 3년간 교편을 잡았다. 그 후 영남 각자의 동지들을 규합하여 영우저축회(嶺友貯蓄會)를 창설하였다. 1922년 북만주 빈강성(濱江省) 오상현(五常縣)으로 이주하여 큰 농장을 경영하였으며 하얼빈에서 ㈜북만농구공사(北滿農具公司)를 창설하여 재만 교포들의 복지향상을 위해 노력하였다. 1915년 대종교에 입교하여 이듬해 참교(參敎)가 되었고 나철이 삼성사(三聖祀)에서 민족의 비운과 교세의 어려움을 스스로 책임지고 순교할 당시 그를 수행하였다. 그 후 지교(知敎)와 상교(尙敎)로 승질(陞秩)하 ...

2025-06-30 16: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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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삼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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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도대향원

청도대향원(靑道大享園)을 창립한 김삼일(金三一 1924-1992 호 伯峰)은 1924년 8월 9일 경상북도 청송군 안덕면 신성동 진곡에서 출생하였다. 부친은 증산법종교의 2대 교주를 지낸 김병철(金炳澈)이다. 보통공립학교를 졸업 후 생업에 종사하다가 1943년 강순임(姜舜任)을 만나 그를 도왔다. 일찍이 강순임이 ‘성부(聖父)의 명에 의하여 삼일이는 내 아들이 되었다’고 하면서 끔찍하게 사랑하였으며 그도 강순임을 극진이 모셨다. 부친과 강순임이 교단을 금성골에서 장대골로 옮기고 다시 구릿골과 오리알터(김제군 금산면)로 옮기는 동안 삼일은 함께 받드는 한편 수도에도 전념하였다. 1959년 강순임이 사망했을 때 9일장의 상 ...

2025-06-30 16: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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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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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법대

김삼부는 단군신사를 연구한 사람으로 『천부경』에 대해 특이한 해석을 하였다. 곧 그는 『천부경』이 단군의 저술이 아니라 황제가 단군에게 전해준 것으로서 황제의 저술로 보았다. 또한 『천부경』의 81자에는 우주 진행의 역대교리(歷代敎理)가 들어있다는 수리론적(數理論的) 해석을 행하여 『십거도(十巨圖)』와 『만세불역지전(萬世不易之傳)』 등을 저술하였다. 무법대의 창립자인 김구연은 김삼부의 『천부경』 해석이 곧 자신이 새 시대의 개천주(開天主)가 될 것임을 해석한 것으로 여기고 그를 초청하여 무법대에 머물게 하였다. 참고문헌 : 『한국신종교실태조사보고서』(한국종교학회 1985) 『한국신흥종교총람』(이강오 한국신흥종교연구소 1 ...

2025-06-30 16: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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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봉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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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남교

김봉남의 본명은 김천근이다. 1898년 4월 11일 제주도 북군 구좌면 연평리에서 태어나 8세부터 서당에서 한학을 공부했다. 14세 때 식상으로 위장병에 걸려 이것이 만성질환이 되어 많은 고생을 하다가 자살까지 기도한 적도 있었다. 18세 때 부산으로 가서 사공이 되어 생계를 유지하면서 23세 때는 문씨가(文氏家)에 장가를 들었다. 그러나 그의 관심은 어떻게 하면 신병을 치료할까 하여 의약치료 안찰(按擦)·침구(針灸) 등 방술적(方術的) 치료와 종교단체의 주술수련(呪術修鍊)을 수없이 받게 되었다. 그러는 중에 자연 종교적 구도심이 발동되어 수도생활을 시작하게 된다. 그가 제일 처음 찾은 종교는 차경석(車京石)의 보천교( ...

2025-06-30 16: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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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복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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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도덕협회

국제도덕협회의 설립자인 김복당(金福當 1914-1991)은 1947년 우리나라에 들어와 1991년 사망할 때까지 44년간 일관도의 한국 정착과 확산에 지대한 역할을 담당한 인물이다. 그는 1914년 8월 25일 중국 하북성 무변 금몽촌에서 한약방을 운영하던 김관성의 셋째 아들로 태어났다. 본관은 경주 김씨인데 13대 조부가 조선 숙종 때 사신으로 중국에 건너가 정착하였다고 한다. 16세 되던 해에 천진시 북영문 동부점가 호동으로 이사하여 중대중학교를 거쳐 남개대학 철학과를 졸업하였고 졸업 후 처음에는 부친의 한약방을 돕다가 독립하여 마대공장 등을 경영하였다. 1938년(25세) 천진시 도덕단에서 일관도에 입문하였고 19 ...

2025-06-30 16: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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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병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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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산법종교

증산법종교(甑山法宗敎) 2대 교주(초대회장)인 김병철(金炳徹 1905-1970 호 鳩岩)은 1905년 12월 3일 경상북도 청송에서 태어났다. 일찍이 조철제의 무극도에 입도하여 수도해온 수도인 이다. 1937년 9월 이리시 목천포 다리에서 자살을 하려는 강순임을 만나게 된다. 그리하여 두 사람은 함께 증산의 도를 이어갈 동지로 결의하고 함께 조석으로 심고를 올리다가 1941년 11월 전주 노송동에 포교의 근거를 마련하였다. 1944년 12월에는 경상도 의성 장곡대로 이전했으며 1945년 전라북도 김제군 금산면 구릿골로 다시 1949년에는 금사면 오리알터로 본부를 옮겨 다니며 강순임을 도와 증산법종교를 발전시켰다. 195 ...

2025-06-30 1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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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백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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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심등대

김백문의 1917년 양력 10월 19일 경상북도 칠곡군 인동면 인의동 448번지에서 김광조와 문아지 사이의 차남으로 태어났다. 그는 신령파였던 김남조 여인를 만나 신앙의 길에 들어서게 되었고 그로 인하여 백남주와 인연이 되었다. 백남주를 보필하며 그로부터 많은 영향을 받았다. 백남주가 어려움에 처했을 때도 그가 가는 곳마다 같이 있을 정도로 존경하는 마음을 갖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김백문은 1937년과 1946년에 걸쳐 두 번의 신비체험을 하게 되는데 1937년에 있었던 첫 번째 신비체험은 그로 하여금 책을 쓰게 만들었고 1946년의 체험을 통해서는 자신의 사명을 분명하게 인식하는 계기가 된 것으로 보인다. 그는 이 ...

2025-06-30 15: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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