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44

김완규

|

천도교

송암 김완규는 구한말 관직에 있다가 1910년 손병희 등의 권유로 천도교에 입교하여 봉도(奉道)·법암장(法庵長) 등을 역임하였다. 1910년 8월 15일 『천도교회월보』를 간행하고 문명개화운동을 주도하는 언론활동을 전개하였고 1910년 9월 1일 일제의 한일 강제 병합을 반대하다가 일본헌병에 체포된 바 있다. 1919년에는 3.1민족독립운동에 대한 계획을 듣고 이에 찬성하여 「독립선언서」에 서명할 것을 동의하고 민족대표로서 참가하였다. 출옥 후 천도교 도사로 종교활동과 민족운동을 계속하였고 1923년 10월 조선의 최초 노동단체인 노동단대회 집행위원을 역임했으며 광복 후 1945년 12월 삼일동지회 고문으로 있으면서 독 ...

2025-06-30 16:24

0

김옥재

|

성덕도

성덕도(聖德道)를 창립한 김옥재(金沃載 1913-1960 호 月根)는 경상남도 김해군 대동면 주중리에서 태어났다. 부친은 일찍이 보천교에 입도하여 차경석의 제자가 되어 전라북도 정읍군 대흥리로 이사하였으나 그의 가르침이 헛된 꿈임을 뒤늦게 알고 고향으로 돌아왔다. 그 뒤 김봉남이 득도함을 보고 다시 김봉남을 추종하자 김옥재는 아버지의 처사에 실망하는 한편 김봉남을 혼내주기 위해 1949년 김봉남을 집으로 초청했다. 그리하여 그의 물법치료를 시험해 본 결과 신기하게도 심신에 신묘한 증상이 나타나며 오래 동안 고통 받던 위장병이 치료되는 것이었다. 이와 같은 신비를 체험한 그는 김봉남을 추종하는 신자가 되었다. 그는 심수법 ...

2025-06-30 16:22

0

김영호

|

원각현원교

그는 원래 임제종의 신자였으며 1929년 불법대회(佛法大會)라는 불교조직을 만들기도 하였다. 1933년 3월 30일 동지들과 함께 원각현원교를 창립하였다. → 원각현원교 참조. 참고문헌 : 『朝鮮の類似宗敎』(村山智順 朝鮮總督府 調査資料 第42輯 1934)

2025-06-30 16:21

0

김영곤

|

중앙대종교

중앙대종교의 창립자 김청탄의 본명. 참고문헌 : 『한국신흥종교총람』(이강오 한국신흥종교연구소 1992)

2025-06-30 16:20

0

김염백

|

신교

김염백은 1890년 평안남도 맹산(孟山)에서 신교(神敎)를 일으켰으며 국조단군을 주신(主神)으로 하여 천황씨(天皇氏) 지황씨(地皇氏) 인황씨(人皇氏)의 삼황을 신봉하도록 하였다고 한다. 신교를 창립한 후 포교에 힘쓰다가 동학농민혁명에 연유되어 1894년에 사망하였다. 김염백의 신교는 근대기 국내에서 국조단군을 신앙의 대상으로 한 최초의 사례로 보고 있기도 하다. 다만 대종교 등에서는 김염백의 신앙이 순수하게 국조단군만을 신앙하는 단군국교가 아니라고 보면서 백봉의 단군교를 근대 이후 국내 최초의 단군신앙이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참고문헌 : 『한국신흥종교총람』(이강오 한국신흥종교연구소 1992)

2025-06-30 16:19

0

김연국

|

천진교(天眞敎)

김연국(金演局)은 김시습의 13세손으로 1857년 2월 13일 강원도 인제군에서 태어났다. 동학에 입도한 정확한 시기는 알 수 없으나 최시형이 영월·정선 쪽에서 포교활동을 하던 1870년대에 이미 동학에 입도하여 있던 숙부 김병내의 영향으로 입도하였다. 최시형이 강원도 영월군 정선에 거주하는 김병내의 집에 왔을 때 김연국은 최시형을 만나게 되고 그의 제자가 되었고 손병희(孫秉熙) 손천민(孫天民) 등과 함께 그의 3대 제자가 되어 교조신원운동에 가담하기도 했다. 1896년 1월에는 구암(龜菴)이라는 도호를 받았다. 1901년 5월 29일 공주 무성산에서 최시형의 제사를 준비하던 중 공주감영의 대장 이민직에게 체포되어 19 ...

2025-06-30 16:17

0

김연

|

신단정도회

김연은 1963년 서울 용산구 도원동에서 단군신앙을 중심으로 한 숭봉단체인 신단정도회를 창립하였다. 그가 단군신앙운동을 통해 국민정신을 진흥 단합시키고 나아가 세계를 한 집안으로 만드는 새 세계 건설을 이룰 것을 주장하였다. 특히 그는 자신이 단군신앙운동을 전개하게 된 배후에 기독교인 정득은과 증산교인 강기산의 지시가 있었다고 말하여 기존과 다른 독특한 계통의 단군신앙 단체를 만들었다. 참고문헌 : 『한국신흥종교총람』(이강오 한국신흥종교연구소 1992)

2025-06-30 16:16

0

김암

|

도교

통일신라 혜공왕 때의 관리이자 방술가(方術家)·병술가(兵術家)이다. 김유신(金庾信)의 적손(嫡孫)인 윤중(允中)의 서손(庶孫)이다. 일찍이 당나라에 유학하여 천문(天文)·지리(地理)·역수(曆數)와 음양학(陰陽學)·점복술(占卜術)을 배웠으며 ‘둔갑입성법(遁甲立成法)’을 창안하여 은형술(隱形術)의 새로운 경지를 개척하였다. 그는 귀국 후 천문·역수의 일을 담당하는 사천박사(司天博士)가 되었고 뒤에는 양주(良州:지금의 양산) 강주(康州:지금의 진주) 한주(漢州:지금의 경기도 광주) 등지의 태수를 지냈다. 병법에도 능해 패강진(浿江鎭)의 두상(頭上)으로 있을 때 농민들에게 육진병법(六陣兵法)을 가르쳤으며 술법(術法)으로 메뚜기 ...

2025-06-30 16:15

0

김시습

|

유교 불교 도교

본관은 강릉(江陵) 자는 열경(悅卿) 호는 매월당(梅月堂)·동봉(東峰) 법명(法名)은 설잠(雪岑) 도호(道號)는 청한자(淸寒子)이다. 유교·불교·도교의 삼교(三敎)를 넘나들며 각각에 정통했던 보기 드문 인물이다. 서울에서 태어났으며 어려서부터 총명하여 신동으로 불렸다. 서울 삼각산에서 독서하던 중 1453년 수양대군이 단종을 폐위시키는 사건이 일어나자 책을 불사르고 출가하여 승려가 되었다. 설잠이라는 이름으로 양주 수락산(水落山) 인제 설악산(雪岳山) 경주 금오산(金鰲山) 등지를 두루 다니면서 많은 시문(詩文)과 소설을 지어 세상의 허무함을 읊었다. 47세 때 잠시 환속(還俗)하기도 했으나 얼마 뒤 다시 서울을 떠나 전 ...

2025-06-30 16:14

0

김시성

|

화랑정신선양회

김시성은 1908년 전남 함평에서 출생하였다. 경성고등보통학교를 졸업하였으며 이후 한학을 공부하면서 화랑정신에도 관심을 가지고 수도를 하였다. 1928년 중국으로 건너가 의당(宜堂)이라는 중국인에게 의술을 배우면서도 화랑도와 단군의 풍월도 등에 대해 배웠다고 한다. 이후 스스로 화랑도와 김유신장군 등에 대해 깊이 연구하였고 한편으로는 상해임시정부에 독립자금을 보내고 독립운동가를 도와주는 활동을 하였다. 해방 후 귀국하여 용산에서 한약업을 하다가 한국전쟁 발발로 충남 예산으로 피난하게 되었으며 1965년 본인이 회장으로 있는 가락김씨 종친회를 통해 ‘화랑사’를 건축하고 단군사상과 화랑정신 특히 김유신장군의 업적을 기리는 ...

2025-06-30 16:12

0

처음으로 끝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