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 844건
김정숙
단황전
단황전의 창립자 김정숙은 1935년 충남 서산에서 출생했다. 일찍이 구도에 뜻을 두어 10여 년에 이르는 기간 동안 토굴에 들어가 기도생활을 하였는데 어느 날 하늘에서 불서기가 몸으로 내리면서 중생을 제도하라는 천명을 받게 된다. 그 뒤 그녀는 중생들의 고통을 덜어주기 위해 점을 쳐주고 병을 치료해 주면서 생활했다. 그러면서도 때때로 단황님께 제수를 올리고 천하통일을 위한 평화기도를 드리기도 하였다. 1982년에 대전 석경산에서 천인합발(天人合發)을 위한 법시(法施: 천제)를 하였는데 이때 쌀 5백 가마니 소금 1천 가마니 등 2천여만 원에 상당하는 제물을 올려 천인합발을 이루었다고 한다. 천인합발이 이루어졌으므로 앞으 ...
2025-06-30 23: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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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경
불아신궁
김재경은 호는 심전(心田) 혹은 마추(馬秋)라고 하며 불아신궁 창립 후 단제성조불아신궁총관법사 불아교화회지도위원장 미륵종단총본산 법상가본부대법사 등의 명칭으로 불리기도 했다. 그는 원래 각세도 서관을 담당하던 신태제의 수제자로였다. 신태제가 이선평 사후 각세도남관에서 정도교로 개명하고 독립할 때에도 그는 함께 하였다. 특히 그는 영통자로서 영을 통해 내리는 말을 받아 교주 신태제에게 전해주는 역할을 했다고 한다. 그러다가 1954년 정도교 일대옥사를 계기로 교주가 사망하게 된 후 김재경은 황덕시와 분열하게 되고 그는 각세도 교리에서 벗어나 스스로 단군의 계시를 받는다고 하면서 단군천진을 봉안하고 단군신앙으로 전향하여 ‘ ...
2025-06-30 23: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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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장호
조선기독교회
그는 1918년 봉산(鳳山) 신원교회(新院敎會)를 맡고 있으면서 장로교가 선교사의 주도아래 구태의연한 보수주의 신학에 매몰되어 있다고 비판하고 조선적 신학과 자유로운 신학연구를 이끌며 기성교회로부터 자치를 선언한 인물이다. 그의 이러한 활동은 서구의존적인 신앙과 신학에서 벗어나고자 했다는 점에서 한국의 기독교사에서 신앙과 신학의 토착화운동의 흐름과 같은 맥락을 형성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김장호 외에 김종태(金鐘台) 현성원(玄聖元) 등도 조선기독교회를 주창하였다. 그러나 반선교사와 반교권(反敎權)이라는 그들의 좋은 취지의 활동에도 일제치하라는 상황 때문에 친일로 기울어질 가능성을 포함하고 있었다.
2025-06-30 2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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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일포
천조단군국교
김일포는 1903년 전북 정읍군 정우면 구성리에서 출생하였다. 14세 때에는 보천교에 입교하여 신앙생활을 하였으며 이후 서울로 이사하여 상업에 종사하면서도 삼위신위(三位神位)의 위패를 자택에 모시고 신앙생활을 하였다. 1945년에는 자택에 단군영상을 그려 구천상제와 옥황상제 위패의 중간에 모셔놓고 천제를 지냈다. 1946년에는 대한일민계몽회(大韓一民啓蒙會)를 조직하였으며 1948년에는 국민계몽회라는 이름으로 바꾸어 사단법인으로 등록하였다. 김일포는 1949년 5월 30일 서울 파고다공원에서 발생한 국민계몽회 주도의 유성갑(柳聖甲)의원 폭행사건에서 주모자로 몰려 체포되었다. 당시 국민계몽협회는 1949년 5월 24일 국회 ...
2025-06-30 2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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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유신장군탄일
화랑정신선양회
김시성이 창립한 화랑정신선양회에서는 단군을 신앙의 대상으로 받들고 홍익인간 사상을 널리 보급시키며 단군사상의 결정체인 화랑정신을 드러내는 데 목적이 있다. 특히 화랑정신의 표상인 김유신장군의 업적을 기리고 그를 추모하는 사업을 중시한다. 따라서 본회에서 설립한 사당인 홍덕전 안에는 김유신장군 영정을 모시고 있으며 춘계대제(3월 27일)와 추계대제(9월 27일) 김유신장군 탄일(10월 5일) 등에 향례를 올린다. 춘계대제는 김유신 장군이 단석산에 들어가 수도하여 비법을 얻었고 그 후 석실에서 7년간 고행하여 대각한 날을 기리기 위함이고 추계대제는 김유신 장군에 대한 추계향배라는 점에서 김유신을 중심으로 한 신앙을 행하고 ...
2025-06-30 23: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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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운운
한국불교법화본종
한국불교법화본종의 창종자 혜선(慧宣) 김운운(金云雲)은 1904년 10월 수원시 복수동에서 태어났다. 소년기를 주로 일본과 동남아에서 보내다가 1934년경 불문에 귀의한다. 1939년 신행회 본화회(本化會) 등을 만들어 법화운동을 펼쳤고 그것이 모체가 되어 친형인 김정운(金正雲)과 함께 대승불교법화회를 창설하였다. 1946년 2월 대승불교법화종을 창종하고 교령으로 추대되었다. 1960년 8월 13일 종단명을 한국불교법화종으로 개칭하고 재단법인 한국불교법화종유지재단을 설립하였다. 한국불교법화종은 1999년 한국불교법화본종으로 종단명이 다시 변경된다. → 한국불교법화본종 참고문헌 : 『한국신종교실태조사보고서』(김홍철․양은용 ...
2025-06-30 23: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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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식
관성교(關聖敎)
김용식의 구체적인 생애는 알려진 바가 없으나 1920년 박기홍(朴基洪)과 함께 종래의 관제(關帝)를 숭배한 숭신단체 전내무(殿內巫) 및 일반 민중을 교도로 하는 관제숭배자를 규합하여 관성교를 조직하였다. 김용식은 전내무 등에 의해 잘못 전해진 관제의 교를 교정하는 한편으로 관제의 충렬용의(忠烈勇義)로써 민중을 선도하려고 하는 취지요령을 발표하기도 하였다. 참고문헌 : 『朝鮮의 類似宗敎』(村山智順 저 최길성․장상언 공역 계명대학교출판부 1991)
2025-06-30 23: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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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배
금강불교
김해사람으로 일찍이 오방불교를 창시한 김광화에게서 도를 받았다. 그러나 김광화가 사망하고 김경배가 대를 잇자 이에 대항하여 1895년경 전북 진안군 주천면에서 금강불교를 세웠다.
2025-06-30 16: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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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국
인희선도태백원
선도수련원인 인희선도태택원(仁僖仙道太白院)의 창립자.
2025-06-30 16: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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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완진
봉남사파
봉남사파(奉南寺派)를 창시한 김완진(金完珍 1921-? 호 月河)은 1921년 제주도에서 출생했다. 김봉남(金奉南)의 조카였다. 경상남도 기장으로 나와 숙부가 지도하는 물법수련 공부에 힘써 봉남으로부터 월하라는 도호까지 받았다. 김봉남 사망 후 김해 교인들을 모아 자기 집에 ‘봉남사’라는 간판을 걸었다. 한 때 수백 명의 신도를 얻었으나 제주도로 돌아가 불승(佛僧)이 되었다. 아미타불과 봉남을 신앙하였다. 그는 봉남교를 불교적으로 만들어 포교하는 것이었지만 그러면서도 봉남이 가르친 물법치료와 주송수련은 그대로 하였다. 참고문헌 : 『한국신종교실태조사보고서』(김홍철·양은용·류병덕 원광대학교 종교문제연구소 1997)
2025-06-30 16: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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