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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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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로법회

925년 감로법회를 창교한 인물이다. 그는 원래 금강산 건봉사(乾鳳寺)의 포교사였다고 하며 동사의 중앙포교소(당시 경성부 이화동 소재)에 재임 중에 매월 24일 관음제일에 모인 부인들을 주축으로 감로법회를 조직하였다. 이외에 자세한 행적은 전하지 않는다. → 감로법회 참고문헌 : 『朝鮮の類似宗敎』(村山智順 朝鮮總督府 調査資料 第42輯 1934)

2025-06-30 15: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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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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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뢰아파

1987년 ‘기독교남침례회’라는 이름으로 베뢰아파라는 종파를 창시한 인물. 생애 및 활동 : 그는 1938년 6월 25일 충남 서산에서 태어났다. 예산 감리교회에 출석하여 기독교신앙에 입문하게 되며 평신도 부흥사로 1963년 예산 근처의 비봉교회에서 목회 책임을 맡았다. 이후 1969년 11월 30일 개척교인 7명과 함께 성락교회를 설립하고 창립예배를 시작으로 적극적인 선교 활동을 하게 된다. 1973년에는 베뢰아 아카데미의 전신이라 할 수 있는 신학생 토요성경공부가 시작되었다. 이 모임은 1978년에 베뢰아아카데미로 발전하였다. 여기에 김기동 목사 자신이 원장으로 취임하게 된다. 1987년 9월 30일 기독교한국침례회 ...

2025-06-30 15: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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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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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군성주교

김근보(金根寶 1911-1977 호 新谷 雲寶)는 단군성주교의 제2대 교주이다. 1960년 단군성주교를 창립한 강승태가 사망하자 김근보가 2대교주로 취임했다. 그는 1911년 제주도 애월읍 광령리에서 태어나 일찌기 강승태의 도에 입도 하여 강승태가 사망 당시 단군성주교 본소 원장직을 맡고 있다가 2대 교주가 된 것이다. 법통 계승과정에서 이백환ㆍ김승례(이들은 동도법종금강도를 세움) 등과 심한 마찰을 빚기도 했다. 그는 법통체계 계승을 위한 많은 저술을 하며 교단을 이끌다가 1977년 사망했다. 김근보의 저술로는 『도덕경의문(道德警宣文)』ㆍ『성도정기기성운집(成道定機祈誠運集)』ㆍ『천지인합기대요(天地人合機大要)』 등 20여권 ...

2025-06-30 15: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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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구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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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법대

김구연은 1938년 경기도에서 출생하였으며 자신이 조선조 김종서장군의 후손이라고 자부하였다. 그는 8세 때에 도에 뜻을 두고 입산해서 찬운도사(餐雲道士) 도석선생(道石先生)이라는 분의 지도를 받아 천문과 지리에 통달했다고 한다. 그러나 도석선생은 형체를 나타내지 않는 신비의 존재로 그에게 계시만 내려주었는데 계시에 의하면 머지않은 미래에 후천의 새 시대가 개벽될 것이며 이때 김구연이 개천궁(開天宮)의 영도자가 될 것이라고 하였다. 따라서 김구연은 자신이 천자(天子)의 직성(直星) 자미성(紫微星)의 정기를 받았다고 해서 무자(戊字)를 따다가 ‘무법대(戊法臺)’를 짓고 자신의 호를 무송(戊松)이라고 했다. 김구연은 때로 소 ...

2025-06-30 15: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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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교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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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종교

1868년 7월 5일 경기도 수원 구포에서 부친 창희(昌熙)와 모친 풍양 조씨 사이에서 출생하여 한성부에서 성장하였다. 자는 백유(伯猷) 호는 무원(茂園). 교단에서는 무원종사(茂園宗師)로 부른다. 성균관 대사성을 역임하였으며 1916년 나철에 이어 대종교 도사교가 되었다. 생애 및 활동 : 1885년에는 문과에 급제하였으며 벼슬은 병조참의 예조참의를 거쳐 성균관 대사성에 이르렀다. 1898년에는 독립협회에 가입하여 계몽운동을 하였고 대표위원이 되어 만민공동회 운동을 전개했다. 1906년 부산항재판소 판사와 동래부사에 재직할 때 통감부의 비호 아래 자행되는 일본인들의 경제침탈에 맞서다가 정계에서 추방되었다. 그 뒤 신민 ...

2025-06-30 15: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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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교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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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기타

김교신은 나이 12살에 한매(韓梅)와 결혼하고 19살이 되는 1919년에 함흥 공립농업학교를 졸업했다. 이 해 3·1운동이 발발하자 태극기를 만들어 예배당과 보통학교에 보내며 3월 3일의 함흥 장날의 만세 시위를 주도했다. 3.1운동 학생 주모자로 몰려 체포되어 고초를 겪다가 기소유예로 풀려났다. 이후 일본에 가서 토쿄의 세이소쿠(正則)영어학교에 입학했고 1922년에는 동경고등사범학교에 진학했다. 1920년 6월에 기독교에 입신했으나 교회의 내분에 실망하여 1921년 1월부터 우치무라 간조(內村鑑三: 1861-1930)의 성서연구회에 출석했다. 우치무라는 기독교 신앙의 본질은 교회에 소속 여부나 특정한 예식의 수행 여부 ...

2025-06-30 15: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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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광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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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방불교

오방불교의 창시자

2025-06-30 15: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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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광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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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천일지개태도광사

김광영은 1883년 충남 논산군 가야곡면에서 출생하였으며 16세에 연산군 천호리의 유씨 집안에 출가하였다. 천호리에는 고려 태조 왕건이 건립했다고 하는 개태사의 절터가 있었는데 김광영은 43세 되던 1926년에 꿈에서 관세음보살의 계시에 의해 개태사 터에 묻혀있는 석불 세 구를 발굴하였다. 이듬해에는 남편의 도움으로 매몰되었던 석불을 원래 위치에 복구하고 불당을 지어 자신이 주지가 되었다. 그 이후로 그녀가 주문을 외우고 안수(按手)를 하면 사람들의 질병이 낫는 기적이 일어났고 사람들은 그녀를 도인으로 생각하고 모여들었다. 1945년 해방 후 김광영은 신도들을 모아 용화회를 조직하고 본전에 ‘삼천일지개태도광사’라는 간판 ...

2025-06-30 15: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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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광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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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광선은 어려서부터 한문을 수학하였으며 17세 때는 음양복술을 공부하기도 했다. 12세 연하인 박중빈과 의형제를 맺고 수도정진하는 박중빈을 물심양면으로 후원하였다. 1916년 4월 박중빈이 26세로 대각(大覺)을 얻자 첫 제자가 되었다. 인생의 새 출발을 결심한 그는 이웃 주민들로부터 받은 3천여원의 채권증서를 불살라버리기도 했다. 그는 박중빈이 경륜을 펴는데 대소사의 모든 일을 함께 했는데 당시 불러주는 글과 시가(詩歌)를 받아 적어 편집한 것이 《법의대전(法義大全)》ㆍ《백일소(白日蕭)》ㆍ《심적편(心迹篇)》 등으로 그 일부가 《대종경》 전망품 1장 등에 전한다. 1917년(원기2) 남자 정수위단을 조직할 때 태방(兌方 ...

2025-06-30 15: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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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계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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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불교미륵종

대한불교미륵종(大韓佛敎彌勒宗)을 창립한 김계주(金桂朱 1896-1950 호 洪原)는 1896년 9월 2일 전라남도 나주군 반남면 신촌에서 태어났다. 어려서부터 한학공부를 시작했고 17세시부터 경신사상(敬神思想)에 몰두 국왕산에 올라가 산제와 불공생활을 계속했다. 일찍이 보천교에 입도하여 증산 강일순을 신앙하다가 전라남도 광산군 서창면 풍암리 운리동에 장소를 옮겨 더욱 수도에 정진하던 중 무성제군戊聖帝君: 甑山)의 계시를 받게 되었다고 한다. 1942년 9월 9일이었다. 이후 교명을 무교(戊敎)라 하고 본격적인 종교 활동을 시작했다. 그는 많은 환자들을 치료해 주었고 곧 잘 예언도 했다. 1946년 교명을 무을교(戊乙敎) ...

2025-06-30 15: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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