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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군숭모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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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단체는 1962년 전라북도 군산에서 단군전 건립을 목적으로 조직한 단군성묘봉축기성회에서 시작되었다. 1964년 단군성묘봉축기성회는 단군숭모회로 명칭을 변경하여 문교부에 등록하고 본부를 서울로 옮겨 회장을 조영완(趙永完)으로 하고 박관수(朴寬洙)를 이사장으로 하여 단군숭봉의식과 국민보급화운동을 전개하였다. 기관지 『홍익(弘益)』을 발행하고 단군전 건축 봉안을 계획하였으나 큰 호응을 얻지 못하고 세력이 미미하게 되었으며 이후 세력이 위축된 단군숭령회와 가끔 연합하여 활동을 하기도 하였다. 참고문헌 : 『한국신흥종교총람』(이강오 한국신흥종교연구소 1992)

2025-07-01 22: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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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군성조수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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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길룡은 도통에 관심을 가지고 수도하다가 지리산의 한취봉(韓翠峰)과 대구의 운주도인(雲洲道人)에게서 단군신앙에 대한 지론(旨論)과 심기수련(心氣修練)의 요법을 얻은 후 본원를 창립하게 되었다고 한다. 그가 처음 종교단체에 가입한 것은 부산에서 신백일(辛白一)이 포교하는 ‘도덕수련원’의 신자가 되었는데 도덕수련원은 봉남교(奉南敎) 교단으로서 물법[水法]으로 병자를 치료하는 것을 중시한다. 도덕수련원에서는 태상노군과 단군을 신앙하고 있었는데 신앙의 핵심은 태상노군이었다. 강길룡은 신백일 밑에서 물법·타골(打骨)·안찰·단식·주송수련에 의해 병자를 치료하는 법술을 얻고 신기의 발현과 점의 효험 등을 체험한 후 1960년 대한도 ...

2025-07-01 22: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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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군성전건립운영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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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정회에서는 일제강점기에 헐어버린 사직단이 방치되어 있는 것을 발견하고 매년 어천절과 개천절 제례행사를 사직제와 함께 거행하면서 사직단의 의미를 되살리고자 하였다 이때 제주를 현정회 이사장과 서울시장이 맡았으며 1985년에는 서울시에서 ‘단군성전건립운영회’를 구성하여 당시 서울시장이던 염보현이 위원장이 되고 부시장이 추진위원장이 되어 단군성전건립운동을 전개하였다. 그러나 기독교계의 반발로 무산되었다. 참고문헌 : 『한국신종교실태조사보고서』(김홍철·양은용·류병덕 원광대학교 종교문제연구소 1997)

2025-07-01 22: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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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군선열정신연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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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회는 1997년 12월 23일 김용우가 사단법인 단군조선연구회를 문화체육관광부에 등록하면서 시작되었다. 본회의 창립 목적은 우리 민족만이 간직한 남을 이롭게 하는 ‘홍익인간 사상’과 그 큰 뜻을 펼쳐낸 선열들의 민족정신을 연구하고 찬란하였던 우리 민족의 발자취와 5000년 동안 전해 내려온 배달민족문화를 계승하여 후손들에게 알리고 전승하기 위함이라고 한다. 이를 위해 본회에서는 ①국민도의 양양 및 문화 창달에 관한 사업 ②홍익인간 이념 선양에 관한 사업 ③선열의 민족정신 연구에 관한 사업 ④단군 성전 복원과 존영 봉안 및 성전 수호에 관한 사업 ⑤단군성조 및 역대 선열의 제례행사 사업 등을 행하고 있다.

2025-07-01 22: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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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인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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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극노인성(南極老人星)이라고도 하며 그 의인화한 모습을 수성인(壽星人) 수노인(壽老人)이라고 불렀다. 남극노인성은 28수(二十八宿) 중에 동쪽의 각(角)과 항(亢)으로 현재의 성좌로 보면 처녀자리에 해당한다. 이 성좌는 28수 가운데 우두머리다. 이 성좌는 전쟁이 나거나 나라가 혼란에 빠질 때는 보이지 않다가 천하가 안정되고 평화가 찾아오면 보인다고 한다. 사람들은 이 별자리를 보면 행복과 장생을 기원한다고 한다. 역대 황제들도 수성단(壽星壇)을 건립하여 천하의 태평을 기원했다. 중국인들에게 수노인은 우수꽝스러운 대머리에 미소 짓고 있는 매우 친숙한 존재다. 수노인은 수사슴을 타고 다니는데 한손에는 영지버섯과 신선초를 ...

2025-07-01 01: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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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유신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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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도교

내유신령(內有神靈)이란 모든 사람들의 내면 깊이에 신령함이 있음을 뜻하는 말이다. 수운은 21자 주문인 “지기금지 원위대강 시천주 조화정 영세불망 만사지(至氣今至 願爲大降 侍天主 造化定 永世不忘 萬事知)”를 풀이할 때 시천주의 시(侍)를 “안으로 신령함이 있고[內有神靈] 밖으로 기화함이 있음[外有氣化]을 세상 사람들이 각각 알아서 옮기지 않는 것[一世之人 各知不移者也]”이라 설명했다. 즉 모심[侍]이란 인간 각자가 안으로 신령하고 밖으로 기화하는 한울님임을 알아 이를 잃지 않는 것을 말한다. 해월은 그의 법설에서 “시천주란 심천상합(心天相合)”으로서 만약 “마음과 한울이 서로 어긋나면[心天相違]” 시천주라 하지 않는다 ...

2025-07-01 01: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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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성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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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도교

천도교청년회는 1923년 9월 2일 이름을 천도교청년당으로 바꾸고 조직을 확대 개편하여 농민부 노동부 청년부 학생부 여성부 유소년부 상민부 등 7개부를 두었는데 여성들의 활동은 이 여성부를 통해 이루어 졌다. 1924년 4월 5일 청년당의 여성부가 독립하여 천도교내수단(天道敎內修團)을 창립하였다. 1925년 제1차 교회분규로 인하여 내수단은 신파 천도교내수단과 구파 천도교여성동맹(1927년 6월 창립)으로 나뉘었다가 1931년 3월 16일에 교회가 합동됨에 여성단체는 천도교내성단(天道敎內誠團)으로 합치게 되었다(회장 주옥경). 동아일보 중앙일보 등에서는 천도교 내성단을 기사로 계속 다룬 바 있다. 그러나 교회가 다시 분 ...

2025-07-01 01: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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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조선신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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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층신앙

최남선의 저서인 『조선의 상식문답』에 처음으로 거론이 되면서 일반화가 된 구성개념이다. 그 연원이 대체로 조선후기에 사회적 변혁을 기대하는 민중의 대망이 우러나온 낙원 동경의 이상이 결부 된 소박한 관념 형태라고 볼 수 있다. 문헌상으로 남조선신앙의 증후로 간주가 되는 어휘로서 南 혹은 南海라는 문구가 인조 연간 이후 자주 등장한다. 이는 삼남 각처에서 농민반란이 발흥하는 가운데 흉흉한 인심에 편승해서 기한(飢寒)에 시달리는 현실을 탈피하려고 하는 민초들의 심의(心意)에 자리 잡았던 이상향에 대한 희구의 염원이기도 하다. 예컨대 정북창(鄭北窓)의 「金山寺歌』에도 “만국활계 남조선은 청풍명월 금산사라. 여보시오 세상사람 ...

2025-07-01 0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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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선단군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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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지훈은 1918년 충남 한산에서 출생하여 예산에서 성장했으며 결혼했다가 20대에 남편과 사별하고 친가에 돌아와 산사를 돌아다니며 기도생활을 하던 중 단군의 현몽을 얻고 그의 계시에 의해 단군전 건립을 계획하였다. 1958년 계룡산에 주택을 세우고 동쪽 산 기슭에 단군전을 착공하였다. 이때 서울 사람 홍정초의 협조를 받았으나 경비 부족으로 중도에 중단하였다. 이것을 광명도의 창립자인 정요순이 교인들을 동원하여 내부시설과 외부환경을 정리해 주어 1964년 3월에 봉안하게 되었다. 그러나 광명도의 정요순이 이곳을 거점으로 광명화운동을 전개한다고 단군 앞에 교인들을 모아놓고 염파방송을 하자 이를 물리쳐 버렸다. 따로 신도를 ...

2025-07-01 0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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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얼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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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얼교

한얼교의 핵심사상은 크게 한얼론·나얼론·바름론·구원론으로 정리할 수 있다. 그 가운데 나얼론은 한얼교의 인간관이라 할 수 있다. 사람들은 모두가 한얼님의 ‘얼님’을 지니고 있으며 곧 모든 사람은 자기 스스로의 얼님이 된다. 이 ‘얼님’이 미묘한 여덟 가지의 조화에 의해 모든 사람에게 스며들었다는 것이다. 한얼이 인간에 머문 것이 곧 얼이다. 다시 말하면 ‘얼’은 ‘한얼’의 머뭄이라는 것이다. 나얼이 한얼이요 한얼이 곧 나얼이니 나얼이 때때로 나에게 말하고 나를 가르치고 나를 완성시키는 길을 길러준다. 나얼은 스스로의 모습을 나 자신에게 보여 스스로를 찾게 하고 스스로를 걸리고 스스로를 깨닫게 하여 완전한 나를 이루게 한 ...

2025-07-01 00: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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