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숭령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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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종교

숭령전(崇靈殿)은 현 평양시 중구역 종로동 평양학생소년궁전 옆(옥류관 인근)에 위치해 있다. 고려 시대에 동명성제사(東明聖帝祠), 조선조에서 단군묘(檀君廟)라는 이름으로 불리다가 영조 원년(1725)에 숭령전이라 고쳐 불러 오늘에 이른다. 고려 시대에는 때때로 왕의 특사가 파견되어 제사를 지냈으며, 매달 초하루와 보름에 현지 관원이 제사를 지냈는데 백성들이 특별한 일이 생겼을 때 가서 소원을 빌기도 했다. 조선조 세종 11년에 처음으로 정전 4칸과 동서행랑 각 2칸을 지어 봄·가을로 향과 축문을 내려 제사 지냈으며, 세조 원년 7월에 위판을 바꾸어 ‘조선시조단군지위(朝鮮始祖檀君之位)’라 했고, 세조 5년 10월에 세자를 ...

2025-10-03 19: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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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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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산계

1907년 12월에 강일순이 차경석에게 수부(首婦)를 요구하였다. 이에 차경석은 자신의 이종사촌 동생인 미망인 고판례(高判禮; 1880-1935)를 강일순에게 추천하였다. 정읍 차경석의 집에 머문 강일순은 1908년에 고판례를 천지공사에 끌어들였다. 드러누운 강일순의 배에 올라 탄 고판례에게 칼로 자신을 겨누게 하는 음양공사를 행하였다. 선천시대에는 남성의 시대였다면 후천시대에는 더 이상 남성의 시대가 아니라는 상징적 행위를 당시에 고판례와 함께 하였던 것이다. 강일순은 고판례를 수부라 하고〔수부택정〕 그녀의 처소 역시 수부소(首婦所)라 하였다. 더불어 강일순은 천지대업(天地大業)을 고판례에게 맡겼다고 한다. 강일순이 ...

2025-10-01 1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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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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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덴성회

1973년 이영수의 에덴성회의 설립은 재림주 감람나무를 통해 하나님의 군대를 완성하려는 하나님의 뜻에 의한 것이었다. 이에 이긴자를 세워 정해진 하늘 군병의 수를 완성해야 하는데, 여기에 모인 군병들을 알곡이라고 하고, 그 교회를 알곡교회라고 한다. 성회장은 그 알곡들의 대표를 말한다. 에덴성회에서 이영수를 ‘이긴자,’ ‘총회장,’ ‘성회장,’ ‘목사’ 등으로 부르고 있고, 각 지역 에덴성회의 대표를 ‘○○교회 성회장’으로 부른다.

2025-09-25 2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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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약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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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교회

통일교회에서는 구약과 신약의 관계가 예언과 성취의 관계를 갖는다고 말한다. 구약에는 장차 오실 메시아의 모습과 그가 하실 하나님나라 창건을 위한 다양한 일들이 언급되어 있다. 특히 메시아가 강림할 때에 이스라엘백성들로부터 영광을 받게 될 것이라는 영광의 메시아론이 있고, 이와 반대로 많은 고난을 받게 될 것이라는 고난받는 메시아론이 있다. 그런데 예수그리스도가 탄생할 때에 이스라엘 백성들은 영광의 메시아를 고대하였고 고난당할 메시아를 생각하지 않았다. 그 결과 예수그리스도는십자가에 처형당하는 비극을 낳고 말았다. 초기기독교의 제자들에 의하여 예수그리스도의 삶이 재조명되면서 고난당한 메시아사상이 확립되었다. 무지와 불신으 ...

2025-09-05 08: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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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태여성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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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의 환경위기는 인간에 의한 자연 지배에 기인할 뿐 아니라 남성에 의한 여성 지배를 통해 강화되어 왔다고 보고 자연의 해방과 여성의 해방을 동시에 추구하는 사상이다. 자연 착취와 여성 착취 에 역사적 상징적 정치적 연관성이 있다고 보고 생태주의와 페미니즘은 결합되어야 한다는 사상적 입장이다. 생태여성주의는 영어로는 Ecofeminism 프랑스어로는 Écoféminisme으로 표기되며 1970년대에 프랑수아즈 도본느(Françoise d'Eaubonne)가 『페미니즘이냐 죽음이냐(La féminisme ou la mort)』에서 그 용어를 처음 사용한 이래 널리 활성화되었다. 문화적 생태여성주의 영적 생태여성주의 사회적 ...

2025-07-13 22: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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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발통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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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학

사발통문은 1968년 12월 4일 전라북도 정읍시 고부면 신중리에 살았던 송재섭의 집 마루 밑에서 발견되어 세상에 알려지게 되었다. 사발통문에는 전봉준(全琫準)을 비롯한 최경선(崔景善), 송대화(宋大和) 등 20명 서명자들의 한자 및 한글 이름이 사발을 엎어서 그린 원을 중심으로 둘러가며 기록되어 있다. 사발통문의 원본여부, 제작시기 및 목적, 내용의 사실성 여부 등에 대한 일부학계의 반론이 제기되고 있다. <참고문헌> 「동학, 사발통문, 그리고 동학농민혁명」(김정호, 『동학학보』25, 2012) 「사발통문의 재검토와 ‘고부기포’」(성주현, 『한국민족운동사연구』77, 2013)

2025-07-09 19: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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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대봉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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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교

제주(祭主)를 기준으로 하여 사대(四代)째가 되는 조상 곧 고조부모(高祖父母)까지 제사지내는 것을 사대봉사(四代奉祀)라고 한다. 원래 유교의 조상제사는 신분에 따라 제사지낼 수 있는 대수(代數)의 제한이 있어서 『예기(禮記)』등 유교 경전에서는 천자는 7대 제후는 5대 대부는 3대 사(士)는 1대를 제사지내도록 규정하였다. 그러나 이는 시대가 지나면서 점차 잘 지켜지지 않게 되었고 송대(宋代)에 이르면 대부 이하는 신분에 관계없이 사대봉사를 한다는 관념이 일반화되었다. 이를 반영하고 있는 대표적 예서(禮書)가 『주자가례(朱子家禮)』이다. 우리나라도 조선초기에는 『경국대전(經國大典)』에 6품 이상은 3대 7품 이하는 2대 ...

2025-07-09 19: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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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은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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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종교

박은식은 1859년 황해도 황주에서 부친 용호(用浩)의 아들로 출생하였다. 호는 겸곡(謙谷)·백암(白巖). 그는 동네 훈장을 하던 부친 밑에서 한학을 공부하였으며 1880년 실학과 성리학을 공부했다. 1885년 모친의 간청에 따라 향시에 응시해서 특선으로 뽑혔고 1888년부터 6년간 능참봉을 지냈다. 1898년 독립협회에 가입하였으며 그 해 11월에 만민공동회에서 문교부장급으로 활동하였다. 또한 동년 『황성신문』이 창간된 후 장지연과 함께 주필 논설기자가 되었다. 1900년부터는 경학원 강사와 한성사범학교 교수를 역임하였다. 1904년 『대한매일신보』가 창간되자 양기탁의 추천으로 신문의 주필이 되었으며 1905년 을사조 ...

2025-07-08 22: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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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군성전건립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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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군성전 건립운동은 1985년 서울시가 자라나는 세대들에게 민족혼을 일깨워주기 위해 그 해의 역점사업으로 사직공원의 성역화와 공원안의 단군성전을 확장하기로 한 데서 출발한다. 동년 2월에 단군성전건립운영위원회(위원장: 염보현(廉普鉉) 당시 서울시장)와 동추진위원회(위원장: 김진원(金鎭遠) 당시 서울시 부시장)를 구성하였다. 이와 같은 발표가 있자 민족종단을 비롯한 종교·문화·사회계 각계각층의 환영이 있었으나 기독교계의 극렬한 반대(일부 기독교인들은 찬성)에 부딪혀 결국 서울시는 이 문제를 백지화하고 말았다. 그 뒤 불교계를 비롯한 여러 단군관련 단체에서 단군성전건립을 추진하여 1990년 3월 현정회 단독으로 단군성전건립 ...

2025-07-01 22: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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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군교(정훈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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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종교에서는 근대기 이후 단군신앙이 백봉에서 비롯되었다고 보고 있으며 백봉이 백전에게 전했다고 하는 단군초상과 『삼일신고』 및 『신사기』 등을 나철이 받아서 단군교를 중광하였다고 보고 있다. 정훈모는 나철이 1908년에 단군교 신자가 될 때부터 함께 하였고 1909년 단군교를 중광하고 대종교로 개명할 때에도 중요 간부로 함께하였다. 그러나 나철이 대종교로 개명한 것에 대해 불만을 가지고 있던 그는 당시 대종교의 북부지사교(北部支司敎)의 명을 무시한 채 단군교의 교명을 고수할 것을 내세워 1910년 8월 15일 이유성(李裕聲)·유탁(兪鐸)·서창보(徐彰輔) 등과 더불어 대종교에서 이탈한다. 이후 그는 단군교라는 이름으로 도 ...

2025-07-01 2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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