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 3974건
대한불교보문원
1971년 8월 5일 송은영(宋恩榮)이 기존의 보문사(普門寺 서울 성북구 소재)를 기반으로 유지재단 대한불교보문원을 설립하고 법인으로 등록 하였다. → 대한불교보문종
2025-07-07 09: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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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동교
박성호는 1919년에 천도교에 입도하였지만 1922년 수운교로 옮겨 중요 간부가 되었다. 이후 1932년에 수운교에서 나와 ‘수운교별파’라는 이름으로 독자적인 활동을 하다가 1934년에 본부를 계룡산 신도안 백암동으로 옮긴 후 교명을 ‘대동교’라 고치고 활동하였다. 이후 원용문이 박성호를 계승하여 교명을 ‘동학회중앙본부’로 바꿔 독자적인 활동을 하였다. 신앙대상이나 사상은 동학사상과 같다. 특히 최제우의 심(心)은 영부(靈符)인 동시에 만법의 왕이요 천성(千聖)의 어머니라 말하고 심법을 알고 활용할 줄 아는 수도인이 될 것을 강조했다. 참고문헌 : 『朝鮮의 類似宗敎』(村山智順 저 최길성․장상언 공역 계명대학교출판부 19 ...
2025-07-02 0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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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군교종무청
근대기 단군신앙은 김염백의 대신교와 백봉의 단군교로 대표되는데 단군교의 전통은 백봉에서 비롯된다. 백봉의 교지를 받아 단군교를 포명한 33인 중 한 사람인 백전은 단군초상과 『삼일신고』 『단군실기』를 나철에 전해주고 나철은 다시 33인 중 한 사람인 두일백으로부터 ‘영계(靈戒)’를 받아 단군교인이 되어 단군교를 중광하나 일제강점기의 시작과 함께 교명을 ‘대종교’로 개명한다. 이후 단군교의 명칭을 고수한다는 명목으로 정훈모 등이 1910년 단군교를 창립하여 분립하게 되지만 1930년까지도 본부를 마련하지 못하는 등 어려움을 겪다가 ‘조선유교회’를 주관하던 안순환(安淳煥)의 도움으로 본부를 마련하게 된다. 그러나 교단의 내 ...
2025-07-01 22: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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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편
『동국이상국집(東國李相國集)』에 실려 있다. 이규보는 「노무편(老巫篇)」 병서(幷序)에서 “동쪽 이웃에 늙은 무당이 살았는데 음란한 노래와 괴상한 말들이 들려 괴로워하던 차에 나라에서 명을 내려 모든 무당들로 하여금 멀리 옮겨가 서울에 인접하지 못하게 하자 이를 기뻐하여 시를 지었다”라고 시를 지은 배경에 대해 밝히고 있다. 시의 내용을 살펴보면 여자무당과 남자무당을 각각 무당[巫]과 박수[覡]로 구분하였고 굿의 연행과 관련된 부분이 묘사되어 있다. 시에는 무당의 공수와 도무(跳舞) 굿당 제석거리 장면 칠원성군(七元星君)과 구요성(九曜星)을 그린 무신도 와고(瓦鼓)와 물동이[喧] 등에 대해 언급하고 있다. 이를 통해 1 ...
2025-07-01 01: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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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산단군굴
박효달은 함경남도 신흥 출신으로 어려서부터 종교에 관심을 가지고 여러 종교를 드나들다가 1942년 서울 필동에 있던 자신의 집에 박혁거세 영상을 봉안하고 신앙생활을 시작하였다. 단군에 대한 신앙은 그 이듬해인 1943년 박혁거세 영상 옆에 단군 영정을 모시면서 비롯되었다. 해방 후 그는 민족의식의 발로에서 국조를 숭봉해야겠다는 신념에서 대종교(大倧敎)에 입교하여 상교(尙敎)에까지 올랐으며 한때는 삼일원(三一園)의 대덕(大德)으로 일하기도 하였다. 그는 일제강점기 때에 신사(神社)를 짓고 참배를 강요했던 것에 대해 국조를 받드는 단군전을 지어 민족의식을 고양해야 한다고 주장하였으며 1957년 남산의 굴속에 단군상을 봉안하 ...
2025-07-01 0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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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사법
대한불교진각종
희사란 삼보(三寶) 공양하는 것으로, 대한불교 진각종에서는 적극적인 기쁜 마음으로 공양한다는 의미이다. 희사에는 법시(法施)와 재시(財施)의 이종시(二種施)가 있고, 출가인은 법시를, 재가인은 재시를 많이 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또한 무상희사와 유상희사가 있는데, 무상희사는 금은을 희사하는 것이고, 유상희사는 물품을 공양하는 것이다. 그리고 십일희사(十一喜捨)와 절량희사(節糧喜捨)도 있는데, 십일희사는 수입의 10%를 희사하는 것이며, 절량희사는 매 끼니 식사를 지을 때마다 부처와 일체중생의 은혜를 생각하면서 한 공기 정도의 생미를 희사하는 것이다. 이렇게 모아진 절량생미를 자성일에 심인당에 설치된 절량고에 붓는다. < ...
2025-10-12 0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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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룡사 교명개칭사건
수운교
1936년 6월, 대전경찰서 고등계 주임 암파용웅(岩波龍雄)이 수운교를 찾아와 총독부의 방침이라면서 갑자기 교명을 미타교(彌陀敎)로 강제 변경하였다. 당시 일제는 불교나 기독교와 달리 국내 자생 종교들을 공인 종교로 인정하지 않고 유사종교라는 이름으로 간섭과 탄압을 계속하던 때이다. 그 후 정토진종 대곡파 동본원사의 개교감독관인 우에노 코닌[上野興仁]이 와서 일본의 진종불교로 강제 귀속시키려고 혈안이 되었다. 1937년 5월 일제는 수운교와 수운교의 교명을 완전히 폐지할 목적으로 미타교를 다시 일본 정토진종 하의 ‘흥룡사’로 강제 개칭하였다. 이에 따라 도솔천과 수운교본부라는 현판을 사용하지 못하도록 폐지하고, 천단 성 ...
2025-10-12 0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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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평운동
형평운동은 1923년 진주에서 형평사(衡平社)가 조직되어 1935년 대동사(大同社)로 이름을 바꾸기까지 12년 간 전개되었던 백정들의 신분차별 철폐운동이다. 형평사가 설립되기 이전인 1923년 3월경에 형평사 설립의 핵심 인사인 신현수, 강상호, 조우제 등이 학교 설립 자금을 지원받기 위해서 정읍의 보천교를 방문하였으나, 지원받지는 못하였다. 그러나 보천교는 1923년 5월에 있은 형평사 창립 축하식에 보천교인으로 알려진 조우제가 참석하여 축사와 함께 기금을 전달하기도 하였다. <참고문헌> 「보천교의 교육활동」( 김재영, 『신종교연구』 14, 한국신종교학회, 2006) 「일제 강점기 형평운동의 지역적 전개」(김재영, 전 ...
2025-10-11 22: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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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세계인류성도종
본종의 역사는 1984년 정근철(鄭根哲)이 원주시 우선동에 원주불교포교원을 창립하면서부터 시작된다. 1985년 원주시 귀래면에 미륵산 화림원을 복원하였고, 1989년 12월 ‘한’마루 즉 용화세계(龍華世界)의 실현을 위해 한세계인류성도종을 창종하였다. 1994년 대전시 중구 구완동에 개천궁인 단군성전의 건립을 시작하고, 경기도 양평에 마니전, 미륵전, 용화전을 기공하였다. 본종은 십선도(十善道)의 실행을 종지로 한다. 또한 본종에서는 하느님은 진리 그 자체이며, 하느님은 신격(神格)적으로는 삼신할배, 삼신할매, 삼신랑이며, 인격(人格)적으로는 한알님, 한울님, 한얼님이며, 불교적으로는 비로자나불, 노사나불, 보생불이며, ...
2025-10-11 2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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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신흥종교총감
전북대 철학과 교수 이강오(李康五)가 1992년 한국신흥종교연구소 명의로 출간한 책이다. 30여 년 조사의 결과물인 『한국신흥종교탐사기』와 한국문화인류학회의 이름으로 그가 수행한 『전국민속종합조사』(1969~1981)에서의 각 도별 신흥종교 조사 자료를 묶어 펴낸 책이다. 이 책에서는 13계통 340여 신흥종교단체로 분류하였다. 13계통은 동학계(水雲系), 남학계(淵潭系), 흠치계(甑山系), 단군계, 찬물교계(奉南系), 각세도계(晨鷄系), 불교계, 기독교계, 일관도계, 계통불명, 무속숭신계, 연합계, 외래계이다. 이강오는 계화도에서 조선후기 유학의 도통을 후학에게 가르치던 간재 전우(艮齋 田愚)의 제자로 신종교조사에도 ...
2025-10-11 20: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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