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 3974건
성도문
단군마니숭조회
문헌의 구성이나 내용 등은 알려져 있지 않음. 참고문헌 : 『한국신종교실태조사보고서』(김홍철·양은용·류병덕 원광대학교 종교문제연구소 1997)
2025-07-14 0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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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덕의 빛
성덕도
1992년 1월부터 발간된 성덕도의 월간지. 성덕도 소식 강론 등을 게재하고 있음.
2025-07-14 0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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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수도
천진교
천진교에서 교리강론이 주가되는 수도법
2025-07-14 0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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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도우회
금강대도
금강대도에 입도(入道)한 도인(道人)이나 또는 그 자녀들로 46세에서 60세에 해당되는 회원들로 구성된 장년층의 조직이며 성경도우회는 남자로 구성된 금강성경도우회와 여자로 구성된 연화성경도우회가 있다. 금강성경도우회는 1990년에 창단되었으며 연화성경도우회는 1989년에 창단되어 활동하고 있는 조직이다. 참고문헌 : 『금강대도 개관』(금강대도)
2025-07-14 0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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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대
금강대도
제자들의 정성된 신앙과 의리를 널리 기리고 춘추향사를 지내고자 1990년 건립하였다. 의성탑 앞에 제사를 올릴 수 있는 제단과 건립시에 헌성한 금강·연화도인 총3294명의 방명석이 좌우로 세워져 있다. 정문에는 ‘충효성경인지본(忠孝誠敬人之本)’ ‘대도증명오륜가(大道證明五倫家)’라는 글자가 새겨져 있다. 금강대도를 위하여 순도를 하였다든지 또는 특별한 공로가 있는 제자들을 위하여 1년에 2회 이곳에서 제사를 지낸다. 참고문헌 : 『덕성편년』 (도사편찬위원회 미발간) 『금강대도 종리학 연구론』(이재헌 미래문화사 2005)
2025-07-14 0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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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도교이용기파
선도교 창시자 고판례가 사망하자 이용기가 한 파를 이루어 활동하였다. 이교승이 계승하여 태을교라 불렀다.
2025-07-14 0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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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계에 가고싶다
『선계에 가고싶다』는 거대 명상단체인 수선재(1998~)의 설립자인 문화영(1951~2012)이 저술한 책으로 1997년 출간되었다. 이 책은 문화영의 깨달음의 과정을 기록하고 있으며 특히 1992년 10월부터 1994년 5월까지 약 600일 간의 문화영과 선계(仙界)와의 통신을 주요 내용으로 하고 있다. 이 책에서 문화영은 천계(天界)의 선인(仙人)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고 이어서 이들로부터 직접 가르침을 받았다고 적고 있다. 그녀의 선계수련은 신공(神功: 보이지 않는 세계에 대한 공부) 신공(身功: 의술 포함 초능력을 개발하는 공부) 심공(心功: 마음공부)으로 진행되었다고 하며 신공(神功)의 단계를 거치면 신과 우주 ...
2025-07-14 0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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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천문
천도교
천도교인의 포덕 교화에 의하거나 또는 자기 스스로 천도교의 진리를 이해하고 한평생 천도교를 신앙하고자 교문에 들어오는 사람을 위하여 행하는 의식으로 입교식이 있는데 이때 낭독하는 예문이다. 도가의 자녀들도 8세가 되면 입교식을 해야 한다. 서천문의 내용은 “제가 일찍이 한울님의 은덕으로 만물의 영장으로 태어났으나 오랫동안 혼탁한 세상 물결에 잠겨서 참된 길을 찾지 못하였던 바 다행하게도 ○○○ ◇◇의 지도에 의하여 오늘 천도교에 입교함으로써 참된 길을 걷게 하여 주신 은덕을 영원히 받들어 잊지 않겠습니다. 오늘부터 교회의 지도에 따라 주문·청수·시일·성미·기도 등의 오관(五款)을 성실히 실행함으로써 한평생 한울님과 스승 ...
2025-07-13 23: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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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의복
금강대도
본관은 달성이며 약봉(藥封) 서성(徐渻)의 12세손이다. 1884년 상산(祥山) 서상의(徐相儀)와 오상전(吳祥田)의 맏딸로 태어났으며 1898년 금강대도 창시자인 토암 이승여와 결혼하였다. 1910년 충청도 계룡산으로 토암과 함께 남천포덕을 단행한 후 연화대도를 창개 제1대 도주가 되어 오중대운(午中大運)의 남녀평등 사상으로 제자를 양성하다가 1927년 44세로 타계하였다. 금강대도에서는 토암이 천상에서 태청도덕천존(太淸道德天尊)이었으며 자암은 태을구고천존(太乙救苦天尊)이었는데 오중시대를 맞이하여 건곤부모로 하강하였다고 한다. 그는 일생동안 후원에 단을 설치하고 청수를 올리며 하루도 빠짐없이 하늘에 창생 제도를 발원하는 ...
2025-07-13 23: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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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법사
서울대법사를 설립한 최위석(崔偉錫 ?-1963)은 일찍이 보천교(普天敎)에 입도하여 보천교 6임 중의 한사람이었는데 보천교를 탈퇴하고 서울에서 독자적인 신앙생활을 하고 있었다. 그러다가 8.15해방 후 이상호(李詳昊)ㆍ이정립(李正立) 형제가 서울 마포구 합정동(최위석의 집)에서 대법사를 만들 때 이에 적극 가담하여 기획부장이 되었다. 그 후 한국전쟁이 일어나자 이상호 형제가 전라북도 김제군 금산면 금산리로 피난 갔다가 거기에서 대법사(증산교본부) 간판을 걸자 자기도 서울에서 서울대법사로 간판을 걸고 분립하였다. 그러나 그가 1963년 사망하게 되자 와해되어 버렸다. 서울대법사의 신앙의 대상과 사상은 대법사(증산교본부)와 ...
2025-07-13 23: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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