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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인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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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세도 도조 이선평은 본격적으로 포교를 시작 한 후, 교세가 확대되자 교단을 동서남북의 사관(四觀)으로 나누어 운영하였으며, 자신의 제자 중 뛰어난 네 사람을 각 관의 도주로 임명하고, 본부에서 자신이 이를 통솔하였다. 초기의 남도주였던 김해제는 이선평이 사망하기 이전에 이미 교단명칭을 ‘천인교’로 바꾸어 독립하게 된 것으로 보인다. 이후 남도주는 이선평에 의해 장명성이 임명된 것으로 보인다. 김해제는 천인교를 포교하다가 사망하게 되고, 한계택(韓啓澤)이 그 뒤를 잇게 되며, 다시 한백우가 교단을 이끌었으나 교세가 미미하여 마침내 소멸되었다. <참고문헌> 『한국민족종교총람』(한국민족종교협의회, 1992) 『한국신흥종교총 ...

2025-10-10 2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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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신교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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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종교

천신교기는 원방각(○□△)의 문양이며, 이는 철학적으로 하늘과 땅, 그리고 사람(천·지·인)을 의미하고, 신학적으로는 신과 인간, 그리고 물질(신인물)을 상징한다. 나철이 대종교를 중광한 후 초기에는 청색 원에 흰 글씨로 ‘신(神)’자를 쓴 신자기를 사용했는데, 김교헌이 흰 바탕에 원방각 삼극장 문양을 고안하였다. 이후 1926년 1월 16일 만주 영안현 제4차 교의회에서 원방각의 문양을 대종교의 교기로 하기로 결의하였으나, 일제의 포교금지령으로 인해 1935년 12월 26일 윤세복에 의해 발포되어 현재에 이르고 있다.

2025-10-10 22: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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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도교대교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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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도교

천도교 중앙총부에서는 대교당 신축과 독립운동자금 마련을 위해 3·1운동의 전 해인 1918(포덕59)년 4월 4일 부구총회(部區總會)에서 중앙대교당과 중앙총부 건물을 신축하기로 결의하였다. 이에 따라 각 연원을 통해 매 교호당 10원 이상씩의 건축특성금을 10월 28일 대신사 탄신기념일까지 내도록 하였다. 모금이 시작되자 총독부는 기부행위금지법 위반이라는 이유로 한성은행(漢城銀行)에 3만 원, 상업은행(商業銀行)에 3만 원, 한일은행(韓一銀行)에 6천 6백 원 등 모두 6만 6천 6백 원의 예금을 동결시켰다. 이러한 일제의 방해를 무릅쓰고 많은 교인들은 논밭과 황소 등을 팔아 성금을 냈다. 각종 어려움 끝에 교당건축성금 ...

2025-10-10 2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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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산도의 우주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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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산도

증산도(甑山道)를 창립한 안세찬(安世燦, 1922~2012)은 강일순을 상제로 보고 그를 신앙의 대상으로 했다. 증산도에서 보는 우주는 강일순의 교설 속에 나타난다. 강일순은 우주를 천·지·인(天地人) 삼계(三界)로 보고 자신은 우주의 주제자요 상제로서 생장염장(生長斂藏)의 사의(四義)를 써서 우주를 무위이화(無爲而化)로 변화시킨다고 했다. 강일순은 ‘나는 천지일월(天地日月)이니라’말하고 해와 달이 나의 명을 받아 운행한다고도 했다. 그는 또 건곤감리(乾坤坎離) 사체(四體)를 바탕으로 도체(道體)를 바로 잡았다고 했다. 건곤(天地)은 도의 체(體)로 무극이요, 감리(日月)는 도의 용(用)이 되매 태극(水)을 체로하고 황 ...

2025-10-09 2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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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산교문공신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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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산교문공신파(甑山敎文公信派)를 이끌던 문공신(文公信, 1879~1954)은 1879년 전라북도 정읍군 계동에서 태어났다. 1906년 강일순의 종도가 된 후로 강일순으로부터 영상(瀛祥)이란 호를 받았다. 강일순의 종도가 된 후로 400여석 하던 재산을 모두 강일순의 수종을 드는데 썼다고 한다. 특히 강일순이 선기옥형도수공사(璿璣玉衡度數公事)를 볼 때 그의 집에 천지대팔문도수(天地大八門度數)를 정하였고, 후천 음양도수를 볼 때 정음정양(正陰正陽)을 온전히 이어받으라고 그에게 말하기도 했다. 강일순이 1909년에 사망하자 그는 수도에만 전념하였다. 집이 가난하여 자리를 짜 번 돈으로 치성 때는 누구보다 많은 치성금을 냈다. ...

2025-10-09 2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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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산교객망리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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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산교객망리파(甑山敎客望里派)를 창립한 신언목(申彦穆)은 경상북도 대구에서 태어났다. 그는 8·15해방 후 전라북도 정읍군 덕천면 객망리에 있는 증산 강일순의 사당에 와서 향사(享詞)를 올리면서 포교하여 수십 명의 신자를 얻어 춘추로 내왕하면서 수련공부를 하였는데 이들을 증산교객망리파라 했다. <참고문헌> 『범증산교사』(홍범초, 도서출판 한누리, 1988)

2025-10-09 21: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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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선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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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불교

1924년 전북 익산군 북일면 신룡리에 불법연구회 익산 본관에 설립된 학원이 발전한 것으로 오늘날 중앙상주선원과 중앙중도훈련원의 전신이다. 중앙선원은 동산선원장을 초대원장으로 겸임 발령하여 오다가 1957년에 이완철을 전임 원장으로 발령하여 그 해 11월 6일 첫 결제식을 가졌다. 총부학원이 해방 후 종법사인 송규의 3대 선원 설치계획에 의하여 1958년 5월 7일 중앙선원으로 설치되었는데, 이리고등선원에서 발전한 동산선원, 영산학원에서 발전한 영산선원과 함께 3대선원이 되어 교역자 양성의 본거가 되었다. 이듬해 4월 김대거가 초대 중앙선원장으로 부임하여 1960년부터 정식 선원생을 모집, 교역자 양성교육에 착수했다. ...

2025-10-09 21: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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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의 부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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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는 식민지 조선을 통치하기 위해 1930년대 조선의 민속과 구관습을 전반적으로 조사하였다. 그 중 하나가 무라야마 지준의 『부락제』다. 이 책은 무라야마 지준이 각 지방에서 신을 어떻게 믿고 있는지를 조사한 결과를 1937년 조선총독부에서 『조선의 향토신사(朝鮮の鄕土神祀)』 중 제1부로 처음 발간하였다. 서술 내용은 부락제의 개관, 부락제의 제신, 부락제의 제사, 제기와 제비, 동제와 동회 등의 순으로 되어 있다. 여기서 ‘부락’이란 일본의 천민 마을을 지칭하는 것으로 조선의 마을에 대한 의도적인 멸칭(蔑稱)이었다. 무라야마는 책 서문에서 심전개발, 특히 경신(敬神)관념을 함양하고 애향정신을 진작하는 데 참고자료로 ...

2025-10-09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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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혜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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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산대도일화장

증산대도일화장(甑山大道一俰場)을 창립한 정혜천(鄭惠天, 1911~ ?, 본명 文順, 호 同立)은 1911년 경상북도 문경에서 태어나 독립운동을 하는 아버지와 오빠를 두었기 때문에 일찍이 국가와 민족의 장래를 걱정하는 사상이 싹터 해방 후와 자유당 시절에는 팔에 완장을 두르고 가두강연도 하고 대한노총 총본부 부녀부장을 지낸 활동가였다. 1967년에 증산교 통합운동을 시작한 이래 계속하여 이 운동을 하며 하나의 종파로 활동을 했다. 1967년 전주 관성묘에서 보천교·대법사 등 17개 증산교파 들을 모아 증산교인 통합운동 신생친목회를 결성하였고, 1973년에는 증산교 뿐 아니라 천도교·수운교까지 포함시켜 20개 교단이 참가한 ...

2025-10-09 1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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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도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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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도교(正道敎)를 창립한 이정원(李正院, 1935~?)은 1935년 1월 29일 전라남도 보성군 벌교읍에서 출생했다. 객지로 나와 생업에 종사하다가 1968년도에 신을 받게 되었다고 한다. 1970년도에 부산진구 전포동에 법당을 차리고 점도 치고 굿도 하였다. 1973년 천사명으로 태상노군을 받고 스스로 천존대왕이라고 했고, 1978년부터는 스스로 하느님이라 했다. 1979년 대한승공경신연합회 부산진구 지부장직을 지내다가 그해 12월에는 대한불교유불선종(대한정도교)의 간판을 걸고 천신제를 지내기도 했다. 1988년에 부산시 부산진구 초읍동으로 이전하여 정도교라 하였다. 본교의 신앙의 대상은 하느님 즉 증산천사이다. 천상 ...

2025-10-09 17: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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