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 3974건
재신
삼국지의 영웅 관우는 중국에서 무신(武神)이면서도 재신으로 숭앙되었다. 우리나라에는 임진전쟁 이후 유입되어 동대문 밖에 관왕묘(東廟)를 세워 나라의 소사(小祀)로 치제(致祭)하였다. 관우신앙은 조선 후기에 번성하였고, 점차 민간신앙의 대상으로 정착하였다. 1908년 나라의 관왕묘 제사가 철폐된 이후 민간, 특히 무속의 신격으로 자리 잡았다. 일제시기에는 관성교(關聖敎) 등의 신종교 단체가 조직되어 동묘 등에서 제사를 지냈다. 이들은 동대문 인근의 상인들로 관우를 재복신으로 믿고 모셨다. 한편, 무속에서는 특히 재복 등 소원성취에 영험한 신으로 여겨져, 관우신장을 몸주신으로 모셨다는 무당들이 속출하기도 했다. 명성황후와 ...
2025-10-09 15: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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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교
인천교(人天敎)를 창립한 한병수(韓丙洙)는 일찍이 보천교(普天敎)에 들어가 12임으로 활동했다. 그러다가 신도(神道)에 통하였다고 하면서 스스로 태을진인(太乙眞人)이라 하며 서울 필운동에 인천교라는 간판을 걸고 포교하였다. 그가 사망하자 그의 제자 이덕제(李德帝)가 계승하여 한국전쟁 이후로는 대전에 본부를 두고 활동했다. <참고문헌> 『한국신흥종교총감』(이강오, 한국신흥종교연구소, 1992)
2025-10-08 2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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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호필
영각교
이호필은 일제강점기 고양군 숭인면 회기리(高陽郡崇仁面回基里)소재 연화사(蓮花寺)의 승려였다. 그는 연화사에서 8년간 수도하여 깨달음을 얻었다고 한다. 1919년 2월 친구인 이원승(李源承)과 협력하여 영각교(靈覺敎) 창립하는데, 교주로는 스승이었던 윤갑병(尹甲炳)을 추대한다. → 영각교 참조. <참고문헌> 『朝鮮의 類似宗敎』(村山智順 저, 최길성·장상언 공역, 계명대학교출판부, 1991)
2025-10-08 22: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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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창규
단군교중앙본부
이창규는 1917년 평안북도 창성군 창성면 장천동에서 출생했다. 15세에 결혼하여 남편의 직장을 따라 만주 등으로 돌아다니다, 1945년에 월남했다. 그녀는 1958년 4월 5일 아침식사를 마치고 동네 아낙들과 담소를 나누던 중 갑자기 청천벽력과 같은 소리와 큰 불덩이가 온 몸을 스치는 듯한 경험을 한 후 혼수상태에 빠졌다가 깨어나게 된다. 이후 그녀는 영안이 열리고 병든 사람들을 만지거나 보기만 해도 낫게 하는 영적 능력을 갖게 된다. 이후 100일간의 공부를 시작하는데, 7일간은 기적, 19일간은 공자라는 노인이 나타나서 주역과 도덕경을 알려주어 천지인 창조의 이치를 알게 되었고, 34일간은 유불선 삼교와 기독교의 ...
2025-10-08 2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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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도솔행
윤선녀교
윤도솔행(尹兜率行)은 윤선녀교를 창교한 윤선녀(1906-1994)의 법명이다. 그녀는 1906년 9월 24일 익산에서 태어났다. 일찍이 결혼하여 슬하에 5남매를 두고 가사에 전념하였으나 그녀의 나이 26세 때부터 도에 뜻을 두고 20여 년간 걸식을 하며 기도생활을 계속하였다. 그러던 중 영문(靈門)이 열기 시작하여 사람들의 전생사(前生事)를 이야기 하는가 하면 까치와 대화를 하기도 하였다. 치병과 예언이 적중하여 많은 사람들이 모이기 시작하였는데, 8.15해방과 6.25전쟁이 일어날 것을 미리 예언했다고 한다. 그녀의 본격적인 종교활동은 1961년 5월 15일로 잡고 있으나 점복활동은 그녀의 나이 26세 때부터였다. 그 ...
2025-10-08 18: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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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융도
본교는 탁발승 홍우창(洪祐彰)이 1921년 무렵 ‘불교선양보경회(佛敎宣揚寶慶會)’라는 조직을 만들고 경기도 고양군 한지면(漢芝面) 왕십리(往十里)에 사무소를 개설하면서부터 시작되었다. 그러나 이 조직은 곧 유명무실해지고, 1927년 다시 관세음보살을 본존으로 모시고 ‘원융도연구원(圓融道硏究院)’으로 개칭한 후 부흥에 힘쓴다. 부문(部門)으로써 성명명도관(性命明道觀)을 두고, 전주 및 논산에 분원을 두기도 하였지만 교세는 크게 성장하지 못하였다. 본교의 종지는 관세음보살을 본존으로 하고, 염불·참선·간경·다라니 염송 등의 수행을 통해 경신숭조(敬神崇祖), 신인감합(神人感合), 다혼정화(多魂淨化), 화합수신(和合修身), 보 ...
2025-10-08 01: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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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불교예전
원불교
박중빈이 1926년에 허례를 폐지하고 예(禮)의 근본정신을 드러내고자 ‘신정의례’를 제정한 후, 1935년에 『예전』을 편찬 발행했다. 그 후로 더욱 수정 보완하여 1968년에 다시 발행했다. 그 내용은 사회생활 속에서 인간과 인간과의 관계를 원만히 유지하고 발전시키기 위해 필요한 문제를 예의 규범으로 정한 통례편, 가정생활에 있어서 출생으로부터 성년·결혼·회갑·상장(喪葬)·제사에 이르기까지 인간 일생의 예법을 규정한 가례편, 교단에서 각종 종교의식을 행하는 규범을 정한 교례편으로 구성되어 있다. 원불교의 모든 예법이나 예식 행사는 이 『예전』에 근거하여 행하게 된다.
2025-10-08 01: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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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리해설
통일교회
첫 교리서라고 할 수 있는 『원리원본』이 편집되어 통일교회의 새 진리의 윤곽은 잡혔으나 여전히 수정보완 및 확대해야 할 내용들이 많았다. 이에 『원리원본』에 추가로 스승(문선명)의 가르침을 수정 보완한 제자들에 의하여 『원리해설』이 1957년 8월 15일에 빛을 보게 되었다. 『원리해설』은 전편 8장, 후편 4장으로 편집되었다. 전편은 창조원리, 메시아의 강림과 그 재림의 목적, 인류역사의 종말론, 부활론, 타락론, 복귀섭리에서 본 예정론, 엘리야로 재림한 세례요한과 예수의 재림 등이다. 후편은 복귀기대섭리시대, 복귀섭리시대 2000년, 복귀섭리연장시대 2000년, 복귀섭리 완성시대 1920년 이후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
2025-10-08 0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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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유기화
천도교
수운은 21자 주문 가운데 시(侍)자(字)를 풀이할 때 “모신다는 것은 안으로 신령이 있고 밖으로 기화가 있어 온 세상 사람이 각기 알아서 옮기지 않는 것(侍者 內有神靈 外有氣化 一世之人 各知不移者也)”이라 하였다. 최시형은 외유기화를 “포태할 때에 이치와 기운이 바탕에 응하여 체(體)를 이룬 것”이라 하여 외유기화란 밖으로 접령하는 기운이 있음을 뜻한다고 하였다. 다시 말해서 인간이 처음 세상에 태어날 때 갓난아이의 마음과 같은 신령함이 몸의 형체를 이루어 영기와 접하는 한울의 작용이 외유기화라는 것이다. 따라서 우리 인간이 태어난 것은 “한울님을 모신 영기(靈氣)로 태어난 것이요, 우리 인간이 사는 것도 한울님을 모 ...
2025-10-07 23: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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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심당운동
천도교
1923년 천도교청년당은 경성에 불불당(不不堂), 평양에 오심당(吾心堂)을 각각 조직하였다가 1929년 이를 하나로 통합하여 오심당으로 명명하고, 활동을 강화하였다. 1931년 일본이 대륙침략을 획책하자 중앙대표 김기전, 평양대표 김길수(金 吉洙), 지방대표 이도순(李道淳) 등이 모여 향후 일제가 국제적·정치적으로 위기에 봉착할 것으로 전망하고 조선독립운동을 추진하기 위해 당원과 자금을 늘리기로 결정하였다. 당원은 서울·황해도·평안남북도·함경남북도에 걸쳐 10년 이상 천도교를 독실히 믿어온 교도들 중에서 신중히 선발하고 1년에 5원씩 운동자금을 내어 대중운동을 준비하도록 의무화하였다. 조직이 발각되기까지 230명의 당원 ...
2025-10-07 2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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