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 3974건
이긴자
전도관
박태선이 전국에 수십 개의 전도관을 개관하던 1956년 11월 11일, 서울 중앙 전도관에서 박태선은 자신을 ‘감람나무,’ ‘이긴자,’ ‘동방의 의인’으로 공식 선언하는 행사를 거행하자 교인들도 이 선언을 신앙적으로 받아들이게 되었다. 기독교 이긴자는 『성경』계시록 2장 26절에 언급된 “만국을 다스릴 권세를 맡은 자”에서 비롯되었다. 그 후 그들의 신앙은 박태선을 예수를 대신한, 혹은 예수와 같은 구세주로 믿는 수준으로 발전하였다. 전도관의 영향을 받은 조희성, 김풍일, 일부 신종교 창교자도 스스로를 ‘이긴자’라고 주장하였다.
2025-10-08 20:28
18
의도법회
미륵대도금강연화종
각 선원(宣院)의 금강도인들을 중심으로 구성되어 의성사상을 함양, 체득궁행하여 금강행(金剛行)으로써 성취하는 매월 1회 봉행하는 법회.
2025-10-08 19:28
18
영생불사
전도관
전도관과 전도관의 영향을 받은 일부 신종교가 가진 독특한 신앙이다. 박태선은 독자적인 조직을 만들어 가면서 자신을 ‘감람나무,’ ‘예수를 대신한 특별한 사명자’로 주장했으며, 이를 토대로 “박태선을 믿으면 영생한다,” “우리는 감람나무를 심판주로 믿는다”는 등의 믿음이 퍼지게 되었다. 영생불사신앙은 박태선 사망 전까지 전도관(천부교)의 절대적인 신앙이었다. 영생불사신앙은 이만희의 신천지와 조희성의 승리제단, 이현석의 삼천년성, 그리고 이영수의 에덴성회 등에서 믿어지고 있다. 전도관의 영향을 받았으나 기독교의 한 분파의 특색을 보이는 일부 신종교 중에는 영생불사신앙을 포기한 곳도 있다.
2025-10-07 17:30
18
연정원
1925년부터 권태훈은 계룡산 기슭에서 제자들과 함께 수련했는데, 그 장소를 연정원이라 불렀다. 그가 1984년 소설 『단』의 실제 주인공으로 알려지면서 사회의 이목을 끌었다. 권태훈은 우리 민족의 기원을 백두산족으로 보고 고대 민족의 정신문화를 회복하고 계승하는 것을 강조했다. 연정원에서는 고대로부터 전해지는 지감, 조식, 금촉의 수련법 가운데에서 조식에 중점을 두고, 수련을 통해 우주와 합일된 존재가 되어 세상을 이롭게 하는 홍익인간의 구현을 목표로 한다.
2025-10-07 16:39
18
아미타불십계훈
태인미륵불교
정인표(鄭寅杓, 1897-1955, 호 秀山)가 창립한 태인미륵불교(泰仁彌勒佛敎)의 신앙의 대상은 미륵불이다. 증산 강일순을 구천미륵(九天彌勒)으로 받든다. 기본 가르침은 교리강령·도전상수십이법칙·아미타불십계훈 등이 있다. 아미타불십계훈(阿彌陀佛十戒訓)은 다음과 같다. ①정진무사(正眞無私): 진실하여 사사로운 일이 없어야 한다. ②일심무이(一心無二 ): 한결같은 마음으로 두 마음이 없어야 한다. ③성경불리(誠敬不離): 정성과 공경에서 떠나지 말아야 한다. ④신심무의(信之無疑): 믿고 가는데 의심이 없어야 한다. ⑤경인애물(敬人愛物): 남을 공경하고 물건을 아껴 써라. ⑥물념타과(勿念 他過): 남의 허물을 생각하지 말라. ...
2025-10-07 01:09
18
십무천
천도교
십무천을 구체적으로 나열하면 ①무기천(毋欺天: 한울님을 속이지 말라) ②무만천(毋慢天: 한울님을 거만하게 대하지 말라) ③무상천(毋傷天: 한울님을 상하게 하지 말라) ④무난천(毋亂天: 한울님을 어지럽게 하지 말라) ⑤무요천(毋夭天: 한울님을 일찍 죽게 하지 말라) ⑥무오천(毋汚天: 한울님을 더럽히지 말라) ⑦무뇌천(毋餒天: 한울님을 주리게 하지 말라) ⑧무괴천(毋壞天: 한울님을 허물어지게 하지 말라 ⑨무염천(毋厭天: 한울님을 싫어하게 하지 말라) ⑩무굴천(毋屈天: 한울님을 굴하게 하지 말라)의 열 가지 이다. 이는 오늘날 생명윤리의 전범(典範)이 되고 있다. <참고문헌> 『동경대전』 『해월신사법설』
2025-10-07 00:44
18
신용구
천도교
본관은 평산이며 경상남도 단성군 출신이다. 일찍 아버지를 잃고 편모 슬하에서 자라면서 한학과 사상의학을 수학했다. 1900년에 서울에 올라와 정치 단체에 가입하였다가 발각되어 1905년에는 블라디보스토크로 이주해 3년 동안 거주하기도 했다. 귀국 직후인 1914년에 경상남도 진주에서 천도교에 입교하여 1915년부터 생을 마칠 때까지 천도교 활동을 하였다. 1915년부터 천도교 창녕군 전교사가 되어 경남 일대에서 포교 활동을 벌였고, 1923년에는 진주교구 종리사로 임명되고 포교에 성과를 거두었다. 주관포덕사를 거쳐 종법사, 상무종법사, 주관도정 법정 등으로 계속 지도적 위치로 진출했다. 1929년에는 천도교중앙총부 의결 ...
2025-10-03 23:27
18
신사사변
금강대도
2대 도주 청학(靑鶴) 이성직(李成稙)은 창도주 이승여의 정신을 계승하여 단군을 숭상하며 배일사상을 고취하였다. 1930년대에 들어서면서 일제는 금강대도를 배일단체(排日團體)로 규정하고 사찰을 시작했다. 금강대도에 대한 일제의 1차적인 억압책은 간도 강제 이민정책이었는데, 도인들의 강력한 저항에 부딪혀 실패하고 말았다. 이어 금강대도를 일본 불교 정토진종에 병합시키고자 이성직을 일본에 초청하는 등 갖은 회유를 동원하였지만 이성직은 이를 단호하게 거절했다. 오히려 환국 후에 대도의 교리와 의례를 체계화하는 일에 매진하였고, ‘흥기도덕가’를 짓고 ‘가무’를 추게 하여 도인의 사기를 북돋았다. 일제는 이를 예의 주시하였고, ...
2025-10-03 23:10
18
시대일보 사건
보천교
《시대일보(時代日報)》는 1924년 3월에 최남선이 서울에서 창간한 일간 신문으로, 1926년 8월에 폐간되었다. 창간 이후에 자금난에 빠진 《시대일보》를 1924년 6월 2일에 사측의 최남선·이득년·서상호 등과 보천교 측의 이상호·이달호·임경호 등이 《시대일보》의 편집 및 발행권을 보천교가 양도받는다는 계약을 체결하였다. 그런데 이와 비슷한 시기에 최남선과 진학문이 신석우와 (보천교와 했던 것과 비슷한) 계약을 체결하면서, 그리고 《시대일보》 직원들이 ‘사우회(社友會)’를 결성해 보천교와의 계약 해지를 주장하면서 문제가 불거졌다. 그러던 중 같은 해 7월 9일에 보천교는 《시대일보》 발행인 명의를 이성영(李成英)으로 ...
2025-10-03 20:17
18
솔성요론
원불교
원불교의 삼학 수행에 있어서 ‘계문’과 함께 작업취사 공부의 중요한 방법이 된다. 종교가에서는 ‘하지 말라’는 금기의 가르침이 많은데, 솔성요론은 적극적으로 성품을 발현하여 생활 속에서 활용해 갈 것을 가르치고 있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 ①사람만 믿지 말고 그 법을 믿을 것이요, ②열 사람의 법을 응하여 제일 좋은 법으로 믿을 것이요, ③사생 중 사람이 된 이상에는 배우기를 좋아할 것이요, ④지식 있는 사람이 지식이 있다 함으로써 그 배움을 놓지 말 것이요, ⑤주색낭유(酒色浪遊)하지 말고 그 시간에 진리를 연구할 것이요, ⑥한편에 착(着)하지 아니할 것이요, ⑦모든 사물을 접응할 때에 공경심을 놓지 말고 탐한 욕심이 ...
2025-10-01 16:03
1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