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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치무라 간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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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기독교

그는 삿뽀로 농업대학시절 기독교로 개종하여, 1884년에 미국으로 건너가 애머스트(Amherst) 대학에서 수학하였다. 이때 서구 기독교에 대한 회의와 반성을 크게 하게 되었다. 공부를 마친 그는 성직자가 되지 않고 다시 일본으로 귀국한다. 1888년 귀국한 그는 미국에서 보고 배웠던 신앙의 훈련을 심어주기 위해 니가타[新潟縣]에 있는 기타고시시학관에서 후진을 양성하다가 곧 사임하고 도쿄에 있는 제일고등학교 교원으로 부임하였다. 1891년 천황의 절대 권력을 상징하는 ‘교육칙어’ 봉독식때 정성들여 예를 다하지 않았다는 이른바 ‘불경사건’으로 말미암아 교직을 사임하게 된다. 이후 문필가로서의 삶을 평생 살게 되었다. 그는 ...

2025-10-08 00: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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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주전리요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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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군교중앙본부를 창립한 이창규(李昌奎)는 ‘우주전리요법(宇宙電理療法)’이라는 독특한 이론을 주장했는데, 이는 사람들의 몸에 성신(聖神)이 내린다고 해서 전기가 통하는 것과 같이 찌릿찌릿하다는 것인데, 이것은 조물주로 인간 세상에 태어난 이창규가 우주의 원기(元氣)를 가지고 인간을 개조시키는 것이라는 이론이다. <참고문헌> 『한국신흥종교총감』(이강오, 한국신흥종교연구소, 1992)

2025-10-08 00: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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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주가화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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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강대도

토암 이승여는 『도덕가』에서 “천지는 부모라 하고 일월은 형제라 하며 성신은 친구라 하였으니 천하지인이 누가 형제 아니 되며 누가 붕우 아니 되리.”라 하였는데, 이는 건곤부모가 낳은 천지를 하나의 가정으로 보고, 일월성신과 천하의 모든 사람들을 형제와 붕우로 보는 것이다. 더 나아가 이토암은 “천지는 부모시니 우주 만물을 나와 형제라 해도 과언이 아니요, 사람이 만물의 영장이니 비록 금수, 곤충, 초목이라도 마땅히 사랑하여서 함부로 죽이거나 꺾지 말아야 하느니라.”고 하여 우주 만물을 형제로 대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또한 이청학은 “세상 사람이 다만 나를 낳은 부모의 동포만 알고 건곤부모의 동포를 알지 못하 ...

2025-10-08 00: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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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화일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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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우일신회의 초기 이름.

2025-10-08 00: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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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화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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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선유(尹善有)가 창립한 타불교(陀佛敎)의 다른 이름.

2025-10-08 0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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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화불교향도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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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산계

용화불교향도회(龍華佛敎香徒道會)는 서준용(徐俊容)이 국내의 미륵불을 신봉하고 당시 미신 또는 사교와 같이 비난을 받은 사람들을 통합하고 공인된 종교 활동을 이끌기 위해 결성된 단체이다. 서준용은 부여 만수산에 있는 무량사주지 황태호와 손성한, 이갑술 등과 협의하여 1964년 4월 서울에서 제1차 회합을 하고 같은 해 8월 김낙원(金洛元, 1890-1973)이 창립한 ‘증산교오동정이파’와 기타 종교단체의 신도를 포함한 300여명을 규합하여 1965년에 ‘용화불교향도회’를 결성하였다. 총장 황태호, 고문 김낙원을 추대하고 총무는 서준용이 맡았다. <참고문헌> 『朝鮮의 類似宗敎』(村山智順 저, 최길성·장상언 공역, 계명대학교 ...

2025-10-08 0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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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화동승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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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수영(申壽英 1878-1961)이 1946년 계룡산 신도안에 설립한 법룡사의 다른 이름.

2025-10-08 0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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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화교경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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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백일이 창립한 용화교

『미륵상생경』, 『미륵성불경』, 『금강경』, 『팔양경(八陽經)』, 『용화보전(龍華寶典)』, 『만법전』, 『성화진경(聖化眞經)』, 『득관불화론(得觀佛化論)』, 『진공묘유경(眞空妙有經)』, 『심판서(審判書)』, 『공덕문』, 『현무실기(玄武實記)』 등의 경전. 이 가운데 『만법전』, 『용화보전』, 『진공묘유경』, 『현무실기』 등은 비밀경전.

2025-10-08 0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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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화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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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형렬의 미륵불교를 계승했던 유제봉이 교명을 일시 용화계로 고쳤다가 다시 미륵불교 활동을 했던, 미륵불교의 일시 이름.

2025-10-08 0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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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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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운교

『용운가』는 모두 25권으로 수운교 교주가 1929년 가을부터 본부에서 집필하여 4년만에 완성하였다. 당시는 일제의 감시 감독하에 교단이 운영되었던 관계로 만약의 사태에 대비해 두 질을 집필 하여 놓았다. 아울러 이 『용운가』에 교주의 모든 포부와 경륜이 제대로 반영될 수 없었던 시대적 아쉬움이 남는다. 예상했던 대로 한 질(23권)은 왜경이 압수해갔는데, 광복 후에 되찾아왔다. 원본은 특유의 필체로 일반인이 알아보기가 어렵고, 더욱이 경상도 사투리 등이 섞여 있어 읽기가 난해한 데, 초판 발행 시에 약간씩 표준말로 다듬었다. 제25권 말미에서 교주는 이르기를, “하날님과 부처님과 양위선생님과 후토 제신령님을 믿기만 믿 ...

2025-10-08 0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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