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 3974건

무극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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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극은 우주의 본체이며 진리, 도(道)라는 의미로서, 태극(太極)보다 근원적인 진리의 본체로 인식되기도 하였다. 동학의 최제우가 무극대도를 깨달았다고 한 이후, 한국자생신종교를 중심으로 무극대도라는 표현이 자주 쓰였으며, 특히 교단의 명칭으로 쓰이는 경우가 많았다. 최제우는 대각을 얻은 후 ‘만고없는 무극대도 여몽여각 득도로다’라고 하여 자신이 깨달은 진리는 상제로부터 받은 무극대도라고 표현하였다. 이후 ‘정역’의 원리에 의해 천지의 운도를 새롭게 해석한 김항도 자신의 깨달음을 무극대도라고 표현하면서 제자들을 가르치기 시작하였다. 이와 같이 무극대도는 구한말 한국사회에서 새로운 깨달음을 상징하는 의미, 혹은 새로운 종교 ...

2025-07-08 00: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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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군교포명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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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두산을 중심으로 백봉에게 지도를 받던 33인의 비밀결사 조직 중 13인이 백두산 대숭전(大崇殿)에서 백봉신사를 배알하고 일심계(一心戒)를 받음과 함께 단군교(신교)의 포교를 맹세하고 단군교를 포명하는 ‘단군교포명서’를 작성하였다. 나철은 1908년 백봉의 문하인 두일백(杜一白)으로부터 단군교포명서를 받았다고 한다. 단군교포명서의 원문은 1971년에 간행된 『대종교중광육십년사』에 수록되어 있으며 『홍암신형조천기』 1971년판의 부록에도 수록되어 있다. 대종교 총본사 소장본은 인쇄본 형태로 독립기념관(자료번호 2-000513-000 가로 15.0 세로 21.5 면수 21) 전시자료에 공개되어 있다. 표지상 ‘종팔(倧八)’ ...

2025-07-01 2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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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봐타 코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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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봐타’(avatar)는 산스크리트어로 신이 땅으로 내려옴 즉 화현(化現)을 뜻하며 아봐타 코스에서는 기존의 편견과 ‘나’라는 에고(ego)를 벗어나 우주의식의 일부가 되어 희로애락을 벗어나 원하는 삶을 창조해 뜻대로 살 수 있다고 말한다. 아봐타 코스는 하루 12시간씩 9일 동안 진행되며 3부로 구성되어 있다: 1부. ‘다시 떠오르기 워크’(2일) - 신념(편견)과 현실의 상호관계를 배움. 2부 ‘연습들’(5일) - 원하는 현실을 창조하는 능력을 개발; 3부 ‘런다운들’(2일). - 삶에 방해와 장벽이 되었던 현실들을 지울 수 있는 능력을 개발. 여기에 더하여 상급과정으로는 코스 지도자를 양성하는 ‘마스터 코스’(9 ...

2025-04-02 1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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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산진법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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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산진법회(甑山眞法會)를 창립한 배용덕(裵容德, 1916~1998, 본명 基淳, 호 天光)은 1916년 8월 12일 함경남도 고원군 상산면 회목리에서 태어났다. 1938년에 일본 메이지대학(明治大學)을 졸업했다. 학교를 졸업한 후 학도징용병으로 끌려가 노동을 하던 중 해방을 맞았다. 해방 후 여러 가지 사회활동을 하다가 1962년부터 증산교단연합운동에 참여하는 한편 1973년에는 서울 동대문구 전농 4동 자택에 ‘증산진법회’라는 교단을 창립했다. 1974년에는 ‘증산사상연구회(甑山思想硏究會)’를 발족시켜 사상강연회와 학술지를 매년 발행함으로써 증산사상의 현대적 해설을 시도했다. 여기에 발표자로 동원된 학자들은 한국종교 ...

2025-10-09 22: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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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화경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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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산법종교

『중화경집』은 1990년 선학연구회(仙學硏究會)에서 발행, 크라운판 460쪽이다. 원명은 『증산천도진서주해중화경집(甑山天道眞書 註解中和經集)』이며, 증산법종교(甑山法宗敎)의 경전인 『중화경』을 주해한 책이다. 내용 구성은 앞에 이항녕과 김영두의 축간사와 저자의 서문이 있고, 원문과 부록으로 되어 있다. 원문은 『중화경』 81장을 그 장의 대의를 밝히고, 원문에 현토를 달고, 문의(文義)에서 원문의 뜻을 풀이하고, 자의(字意)에서 글자의 뜻을 밝히고, 주요 개념의 주해 순으로 엮어져 있다. 부록에는 문헌자료·도참자료·현무경도해원리·현무경원본·어필집(御筆集)이 실려 있다. 원래 『중화경』은 88장으로 이루어져 있으나 이 주 ...

2025-10-09 21: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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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오교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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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3년 11월 김교헌(金敎獻, 1868~1923)이 사망(조천:朝天)한 직후, 윤세복(尹世復, 1881~1960)이 1924년 1월에 영안현 남관(寧安縣 南關)에서 제3대 도사교로 취임하지만 1925년 6월에 한인(韓人) 취체(取締·단속)에 관한 조약인 삼시조약(三矢條約, 일명 미쓰야협약)이 체결되어 대종교는 존립에 어려움을 겪었다. 당시 길림성장 겸 독군(督軍)인 장작림(張作霖)과 조선총독부 경무국장 미쓰야 미야마쓰(三失宮松) 사이에 체결된 삼시조약에는 한인독립운동가의 인계와 보상금에 관한 사항 외에 부대조항에 대종교의 포교 금지 또는 해산에 관한 조건이 포함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대종교는 1928년 1월에 총본사 ...

2025-10-09 00: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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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가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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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부계

역사적으로 영가무도(詠歌舞蹈)라는 표현은 『소학(小學)』의 ‘소학제사(小學題辭)’에 “실천하고 여유가 있으면 시를 외우고 글을 읽으며 영가무도를 하라”고 한 구절에서 처음 나오는 것으로 보인다. 또한 『논어』 ‘선진편’에도 가영(歌詠)과 무도(舞蹈)가 나온다는 점에서, 유교에서는 노래와 춤을 중시한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영가무도가 직접적으로 수련의 방법으로 사용된 것은 정역의 창시자 김항에 이르러서라고 말할 수 있다. 김항의 영가무도는 그가 36세 이후 스승 이운규로부터 받은 ‘영동천심월(影動天心月)’의 다섯 글자를 바탕으로 19년간 역리(易理) 연구에 정진할 때, ‘음·아·어·이·우’의 다섯 글자 주문을 외우면서 ...

2025-10-07 16: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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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심적병역거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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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호와의 증인, 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회

양심적 병역거부 안에서도 거부의 범위나 대상에 따라 다양한 하위유형들이 존재하지만, 그 공통의 뿌리는 ‘양심적 전쟁거부’에 있다. 다시 말해 조직화된 인명살상 행위인 전쟁을 반대하는 입장이 전쟁을 수행하는 전문집단인 군대나 병역, 집총훈련을 거부하는 태도로 구체화된 것이다. 한반도에서 양심적 병역거부를 둘러싼 국가-종교 갈등은 한국전쟁 발발 직전 및 도중에 남한과 북한에서 징병제가 본격적으로 실시되면서 시작되었다. 양심적 병역거부자들은 처음부터 욕설과 구타 등 온갖 형태의 폭력에 노출되었고, 얼마 지나지 않아 구금과 징역형에 처해졌다. 1961년 군사정권의 등장을 계기로 양심적 병역거부자들에 대한 국가의 처벌은 한층 강 ...

2025-10-07 15: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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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단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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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단수에 대한 기록은 『삼국유사』와 『제왕운기』에 있다. 『삼국유사』에서는 환웅이 3,000의 무리를 이끌고 태백산 정상 신단수 아래에 내렸다는 것과 웅녀가 단수 아래서 빌어 아기 가지기를 원했다는 내용이 있다. 이에 대해 『제왕운기』에서는 환웅이 3,000의 ‘귀신’을 이끌고 ‘신단수(神壇樹)’에 내렸다고 되어 있어 약간의 차이를 보이고 있다. 이와 같이 신단수는 환웅이 내려온 곳이며 아기의 출생을 기원하는 대상이 되므로, 한국 전래의 천신신앙과 수목신앙의 기원을 발견할 수 있다. 신단수는 이후 서낭나무나 당산나무 등과 같은 신성한 나무의 관념으로 변화해 간다. <참고문헌>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한국학중앙연구원, ...

2025-10-03 22: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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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온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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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 청송군 출신의 박동기는 전도사로서 포항·의성 등지에서 사역하였다. 1940년 11월 29일 사택에서 기도하던 중 신비체험을 겪고 종교적으로 각성한다. 일제말기인 1944년 4월 25일 신사참배를 거부하며 항일저항운동을 목적으로 소위 성일본제국(聖逸本帝國)을 건국하고 내각을 조직하였다. 이후 성삼위의 지시라고 하며 국호를 시온산제국으로 변경하였다. 민수기 2장 1~13절에 의거하여 경상도를 유다라고 하는 등 전국 12도를 12지파로 칭했다. 또한 1944년 7월 7일 예수가 재림하여 죽은 자의 부활과 성도의 휴거가 있으리라 예언하였으나, 예언이 빗나가자 타협파와 고집파로 교단이 분열되었다. 1987년 박동기는 경주시 ...

2025-10-03 2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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