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 3974건
중국계 신종교
일관도계는 중국에서 발생하여 1947년 국내에 유입되었다. 일관도는 고대 복희시대부터 노자·공자 등 도교와 유교사상, 석가와 달마로 이어지는 불교사상이 하나로 일관된 사상을 배경으로 형성되었다. 우리나라에는 이덕복·장서전·김은선에 의해 처음 소개되었고, 각자 포교활동을 전개하다가 1952년에 부산에서 중국인 김복당을 중심으로 도덕기초회라는 이름으로 통합하였다. 얼마 뒤 김복당이 손우헌에게 회장직을 위임하고 서울에 국제도덕협회를 만들어 독립하자, 장서전이 대한도덕회를 만들어 독립하였고, 김은선은 홍콩으로 돌아가버렸으며, 이덕복만 도덕기초회에 남았다. 이렇게 국내의 일관도계 교파는 손우헌의 도덕기초회, 김복당의 국제도덕협회 ...
2025-10-09 21: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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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심적병역거부
여호와의 증인, 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회
양심적 병역거부 안에서도 거부의 범위나 대상에 따라 다양한 하위유형들이 존재하지만, 그 공통의 뿌리는 ‘양심적 전쟁거부’에 있다. 다시 말해 조직화된 인명살상 행위인 전쟁을 반대하는 입장이 전쟁을 수행하는 전문집단인 군대나 병역, 집총훈련을 거부하는 태도로 구체화된 것이다. 한반도에서 양심적 병역거부를 둘러싼 국가-종교 갈등은 한국전쟁 발발 직전 및 도중에 남한과 북한에서 징병제가 본격적으로 실시되면서 시작되었다. 양심적 병역거부자들은 처음부터 욕설과 구타 등 온갖 형태의 폭력에 노출되었고, 얼마 지나지 않아 구금과 징역형에 처해졌다. 1961년 군사정권의 등장을 계기로 양심적 병역거부자들에 대한 국가의 처벌은 한층 강 ...
2025-10-07 15: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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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계초
어려서부터 중국 전통교육을 받았으나, 상하이에서 세계 지리서인 『영환지략(瀛環志略)』과 같은 서양 서적을 보고 생각이 크게 바뀌었다. 1890년 캉유웨이[康有爲]에게 사사하여 육왕심학(陸王心學)과 서학을 공부하고 공양학(公羊學)의 정수(精髓)를 익혔다. 1895년 이후에는 스승을 따라 탄스둥[譚嗣同] 등과 함께 변법자강(變法自强)의 개혁 운동에 진력하였다. 1896년에는 『시무보(時務報)』라는 잡지의 주필을 담당하면서 「변법통의(變法通議)」를 연재했다. 그러나 1898년 무슬정변(戊戌政變)이 실패한 후 일본으로 망명하였다. 그는 중국 청말 중화민국 초 서양서적을 번역, 신문·잡지를 발간해 신사상을 소개하고 애국주의를 고 ...
2025-10-07 15: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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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문의범
불교/기타
1935년 안진호(安震湖 1880~1965)가 전래하는 전통적인 불교의례집 중에서 널리 행하는 의례의 의식문을 모아 편찬하였다. 조선시대까지 우리나라의 의례 관계 서적은 70여 종이 넘는다. 이처럼 다양한 형태의 불교의식집이 간행되었던 것은 염불이나 의식의 종류가 워낙 많기 때문이었다. 또한 의례집은 편찬 시기나 편찬자에 따라서도 차이가 있었다. 근대시기 영산재와 수륙재·생전예수재 등이 널리 성행하였는데 의식의 절차나 염불 등은 지역・사찰・의례승마다 각양각색으로 달랐다. 안진호는 이를 체계적으로 정리·통합하여 『석문의범』을 간행하였다. 그는 『석문의범』에 앞서 1931년 12월 『불자필람(佛子必覽)』을 편찬하였다. 발간 ...
2025-07-13 23: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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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산선원
동산선원은 1955년(원기40) 1월에 교무연합회의 결의로 중앙 직할 3대선원의 설립이 공고됨에 따라 1953년(원기38) 6월에 설립된 이리고등선원을 동산선원으로 발전시켜 설립했다. 처음 고등선원 시절에는 교역자 양성과 일반 교도훈련을 겸했다. 동산선원이 자리하고 있는 전북 익산시 동산동은 일제 강점기 옛 신사터 자리에 있다. 이 곳은 소태산대종사가 ‘앞으로 이곳에서 대성(大聖)이 상주설법하고 천여래 만보살이 배출될 것’이라고 한 언급에 근거하여 교육기관이 설립되었다. 1947년(원기32) 7월 송혜환(宋慧煥)과 최수인화(崔修仁華)의 주선으로 일본 신사 터를 인수받아 1950년(원기35)에 건물을 신축하기 시작하여 1 ...
2025-07-07 16: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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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수
대순진리회
강증산 구천상제의 천지공사에서 자주 등장하는 용어이다. 고전에는 이 도수에 대해서 주로 제도나 절차 횟수 등의 의미로 사용되었다. 이정립의 저서 『대순철학』에서 도수는 순서 절차 즉 프로그램이라고 하였다. 대순진리회 『전경(典經)』에서 도수는 먼저 “신도(神道)로써 크고 작은 일을 다스리면 현묘 불측한 공이 이룩되나니 이것이 곧 무위화니라。 신도를 바로잡아 모든 일을 도의에 맞추어서 한량없는 선경의 운수를 정하리니 제 도수가 돌아 닿는 대로 새 기틀이 열리리라.”(예시 73절)라고 하고 “나는 삼계의 대권을 주재하여 선천의 도수를 뜯어고치고 후천의 무궁한 선운을 열어 낙원을 세우리라”(공사1장2절)고 하여 도수를 뜯어고 ...
2025-07-07 15: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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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순
대순진리회
내용 : 『대순진리회요람』에 의하면 ‘대순(大巡)’이라는 용어는 구천상제의 활동으로서 오늘날 대순진리회 종단의 주요한 명칭으로 사용하고 있다. 이 때 ‘대순’의 의미는 『전경』의 다음 구절에서 살펴볼 수 있다. 즉 “…원시(原始)의 모든 신성(神聖)․불(佛)․보살(菩薩)들이 회집(會集)하여 인류(人類)와 신명계(神明界)의 겁액(劫厄)을 구천(九天)에 하소연 하므로 내가 서양(西洋) 대법국(大法國) 천계탑(天啓塔)에 내려와 천하(天下)를 대순(大巡)하다가 이 동토(東土)에 이르러…”(교운1장9절)』든가 “…나는 서양(西洋) 대법국(大法國) 천계탑(天啓塔)에 내려와 천하(天下)를 대순(大巡)하다가 삼계대권(三界大權)을 갖고 ...
2025-07-03 16: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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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군전
단군계
문헌상으로는 조선 세종 때 평양에 단군 사당을 지어 동명왕(東明王)과 함께 제사를 지냈고 그 뒤 이 사당을 수리하여 향사를 계속했다는 기록과 구월산 삼성사에 위토(位土)를 두어 환인·환웅·단군의 삼신에게 제사를 지냈다는 기록이 있다. 1913년에 계룡산에 이진택(李鎭澤)이 세운 작산단군전(作山檀君殿) 이민걸(李敏杰)이 충남 서산에 세운 아촌단군전(芽村檀君殿)이 가장 오래된 단군전에 속한다. 이진택은 구월산·지리산·계룡산 등지에서 기도수련을 하고 계룡산 신도안으로 이사하여 독자적인 단군신앙을 하다가 1909년 서울의 단군교 창립을 보자 1913년에 동지 박내인(朴乃人)의 협력을 얻어 자택에 단군전을 세운 것이다. 이것이 ...
2025-07-01 23: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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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오교변
1923년 11월 김교헌(金敎獻, 1868~1923)이 사망(조천:朝天)한 직후, 윤세복(尹世復, 1881~1960)이 1924년 1월에 영안현 남관(寧安縣 南關)에서 제3대 도사교로 취임하지만 1925년 6월에 한인(韓人) 취체(取締·단속)에 관한 조약인 삼시조약(三矢條約, 일명 미쓰야협약)이 체결되어 대종교는 존립에 어려움을 겪었다. 당시 길림성장 겸 독군(督軍)인 장작림(張作霖)과 조선총독부 경무국장 미쓰야 미야마쓰(三失宮松) 사이에 체결된 삼시조약에는 한인독립운동가의 인계와 보상금에 관한 사항 외에 부대조항에 대종교의 포교 금지 또는 해산에 관한 조건이 포함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대종교는 1928년 1월에 총본사 ...
2025-10-09 00: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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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주인간창조
우주일주평화국(宇宙一主平和國)
일주인간창조(一主人間創造)란 우주평화일주국의 4대 사명 중 하나로 ‘한님 같은 사람으로 인간을 개조함’을 의미한다. 평안북도 출신의 양도천은 1964년 계룡산에 입산 특별기도를 하다가 “우주가 ‘한님’의 집이며, 새 역사 창조의 사명이 한국에 있고, 그 사명자가 바로 자신이며, 계룡산이 그 근거지”라는 사실을 깨달은 뒤, 그 해 충청남도 논산시 두마면 석계리 계룡산 성도봉(成道峯) 아래에 ‘하나님의 집 공회’라는 간판을 걸고 종교활동을 시작하였다. 1969년 ‘세계일가공회’로 이름을 바꾸었으며, 1979년에는 ‘세계일주국’으로, 그리고 1980년에는 ‘세계일주평화국’으로 다시 개칭하였다. 1981년에 스스로 성황(聖皇) ...
2025-10-09 0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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