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 3974건
대한도교
대한도교(大韓道敎)를 창립한 신백일(申白一 1922-?)은 1922년 경상남도 창령에서 태어나 경찰직에 있다가 병에 걸려 고생하던 중 물법치료를 하던 도교의 김덕태(金德泰 여)를 찾아가 물법치료를 받고 병이 나았다고 한다. 물법의 신비를 체험한 그는 입산수도를 계속하다가 1957년경에 부산시 우암동에 집을 마련하고 치료를 실시하였다. 태상노군(太上老君)을 외우게 하면서 찬물을 먹이고 단식을 시키며 타골(打骨)과 안찰법(按擦法)을 병행했다. 또한 환자에게 자성(自性)을 반조하고 전죄(前罪)를 참회하게 하며 삼강오륜과 도덕을 실천하게 하는 것 등이다. 1959년에는 부산 감천동으로 이전하여 도교수양원이란 간판을 걸고 병자들 ...
2025-07-05 19: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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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순종교사상
대순진리회
본 문헌은 장병길 교수가 자신의 저서 『증산종교사상』(甑山宗敎思想 초판 1976)을 기초로 하여 십여 년 동안 몇 판을 거쳐 오면서 독자들이 보다 쉬운 한글판을 원하므로 증보개정(增補改訂)하는 동시에 한글위주로 엮은 책이라고 밝히고 있다. 본서의 구성을 살펴보면 제1장에는 증산상제의 탄강에 대한 역사적 배경을 기술하고 있다. 제2장에서는 종교사상을 세계관 상제관 신명관 인간관 광구관으로 기술했다. 제3장에서는 종교행위에 대하여 의례 수도 주문 포덕 계율과 윤리도덕을 제4장에서는 종교집단에 대해서 기술하고 있다. 대체로 본서는 대순진리회의 종교현상을 지적 행위적 공동체적 표현으로 정리하여 대순신앙이 종교적인 보편성으로 드 ...
2025-07-03 16: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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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순
대순진리회
내용 : 『대순진리회요람』에 의하면 ‘대순(大巡)’이라는 용어는 구천상제의 활동으로서 오늘날 대순진리회 종단의 주요한 명칭으로 사용하고 있다. 이 때 ‘대순’의 의미는 『전경』의 다음 구절에서 살펴볼 수 있다. 즉 “…원시(原始)의 모든 신성(神聖)․불(佛)․보살(菩薩)들이 회집(會集)하여 인류(人類)와 신명계(神明界)의 겁액(劫厄)을 구천(九天)에 하소연 하므로 내가 서양(西洋) 대법국(大法國) 천계탑(天啓塔)에 내려와 천하(天下)를 대순(大巡)하다가 이 동토(東土)에 이르러…”(교운1장9절)』든가 “…나는 서양(西洋) 대법국(大法國) 천계탑(天啓塔)에 내려와 천하(天下)를 대순(大巡)하다가 삼계대권(三界大權)을 갖고 ...
2025-07-03 16: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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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각교
각세도 도주 이선평은 포교를 시작한 후 사관제도와 삼십암제를 두어 교단의 체제를 정비하고 각 지부들을 관리하였다. 사관은 동서남북의 각 방면에 두었으며 자신의 제자 중 뛰어난 인물 4명을 선발하여 각 관의 도주로 임명하였다. 초기에 각세도남관에는 김해제가 임명된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각 관에 대한 본부의 통제가 원활하지 못하였고 이선평이 살아있을 때부터 내부에는 여러 가지 분란이 있었다. 이 과정에서 남관 도주였던 김해제는 이선평 생전에 ‘천인교’를 설립하여 분파하게 되고 이선평은 다시 장명성을 남관의 도주로 임명하게 된 것으로 보인다. 장명성은 이선평이 사망한 후 ‘대각교’를 창립하여 독립한다. 장명성이 사망한 후에 ...
2025-07-02 00: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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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군성전건립운동
단군성전 건립운동은 1985년 서울시가 자라나는 세대들에게 민족혼을 일깨워주기 위해 그 해의 역점사업으로 사직공원의 성역화와 공원안의 단군성전을 확장하기로 한 데서 출발한다. 동년 2월에 단군성전건립운영위원회(위원장: 염보현(廉普鉉) 당시 서울시장)와 동추진위원회(위원장: 김진원(金鎭遠) 당시 서울시 부시장)를 구성하였다. 이와 같은 발표가 있자 민족종단을 비롯한 종교·문화·사회계 각계각층의 환영이 있었으나 기독교계의 극렬한 반대(일부 기독교인들은 찬성)에 부딪혀 결국 서울시는 이 문제를 백지화하고 말았다. 그 뒤 불교계를 비롯한 여러 단군관련 단체에서 단군성전건립을 추진하여 1990년 3월 현정회 단독으로 단군성전건립 ...
2025-07-01 22: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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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군교포명서
백두산을 중심으로 백봉에게 지도를 받던 33인의 비밀결사 조직 중 13인이 백두산 대숭전(大崇殿)에서 백봉신사를 배알하고 일심계(一心戒)를 받음과 함께 단군교(신교)의 포교를 맹세하고 단군교를 포명하는 ‘단군교포명서’를 작성하였다. 나철은 1908년 백봉의 문하인 두일백(杜一白)으로부터 단군교포명서를 받았다고 한다. 단군교포명서의 원문은 1971년에 간행된 『대종교중광육십년사』에 수록되어 있으며 『홍암신형조천기』 1971년판의 부록에도 수록되어 있다. 대종교 총본사 소장본은 인쇄본 형태로 독립기념관(자료번호 2-000513-000 가로 15.0 세로 21.5 면수 21) 전시자료에 공개되어 있다. 표지상 ‘종팔(倧八)’ ...
2025-07-01 2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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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계주
대한불교미륵종
대한불교미륵종(大韓佛敎彌勒宗)을 창립한 김계주(金桂朱 1896-1950 호 洪原)는 1896년 9월 2일 전라남도 나주군 반남면 신촌에서 태어났다. 어려서부터 한학공부를 시작했고 17세시부터 경신사상(敬神思想)에 몰두 국왕산에 올라가 산제와 불공생활을 계속했다. 일찍이 보천교에 입도하여 증산 강일순을 신앙하다가 전라남도 광산군 서창면 풍암리 운리동에 장소를 옮겨 더욱 수도에 정진하던 중 무성제군戊聖帝君: 甑山)의 계시를 받게 되었다고 한다. 1942년 9월 9일이었다. 이후 교명을 무교(戊敎)라 하고 본격적인 종교 활동을 시작했다. 그는 많은 환자들을 치료해 주었고 곧 잘 예언도 했다. 1946년 교명을 무을교(戊乙敎) ...
2025-06-30 15: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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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강원
대한불교진각종
경북 울릉군 울릉읍 사동리에 위치한 금강원은 대한불교진각종의 종조 회당 손규상의 탄생지이다. 손규상은 아버지 윤섭(允燮)과 어머니 김양삼(金良三)의 2남 3녀 중 장남으로 1902년 이곳에서 태어났다. 유년 시절 손규상은 이곳에서 한학을 배우며 성장하는데 어린 나이에 ‘심일당천만(心一當千萬) 질백화단청(質白畵丹靑)’의 글을 지을 정도로 남다른 자질과 기상이 있었다고 한다. 현재 금강원은 손규상의 위덕을 기리기 위해 대한불교진각종에서 조성한 곳으로서 1948년 건립된 총지심인당(摠持心印堂) 금강정사(金剛精舍) 종조전(宗祖殿 1977년 건립) 종조비(宗祖碑 1985년 조성) 등이 있고 매년 8월 초에 회당문화제가 개최되어 ...
2025-06-03 17: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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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강대도종리학회
금강대도
1999년 종리학회가 창립되었는데 그것은 금강대도 남천포덕 100주년(2010년)을 앞두고 교리학을 통한 신앙의 체계화가 필요한 시점이 되었다는 인식을 기반으로 하였다. 즉 신앙과 수도에만 열중해 왔던 금강대도가 사상적인 보편성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학문적인 체계화를 통한 합리화 보편화 작업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2015년까지 8차의 학술대회를 개최하였고 논문집 『종리학연구』를 8집까지 발간하였다. ‘종리학총서’ 라는 타이틀로 종리학 관련 개인 저서를 세 권 냈으며 1년에 수차례 워크샵 및 답사 모임을 개최하고 있다. 또한 금강삼종대학 및 대학원을 통해 종리학의 내용을 강의하고 있으며 대외적으로는 수차례 ‘종리학 강론회’ ...
2025-06-03 17: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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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강경
기타
본경의 범어명은 바즈라체디까 쁘라즈냐빠라미따 수뜨라(Vajracchedikā prajñāpāramitā sūtra)인데 ‘금강저(金剛杵)와 같이 번뇌․집착을 재단하는 지혜의 완성[般若波羅蜜]의 경전’이라는 뜻이다. 이 경전은 법회인연분(法會因緣分)에서 응화비진분(應化非眞分)까지 총 32분(分)으로 구성되며 내용의 핵심은 ‘응무소주이생기심(應無所住而生其心)’이라 할 수 있는데 ‘어떠한 것에도 집착함이 없이 그 마음을 운용한다’는 의미이다. 우리나라를 비롯한 인도 중앙아시아 티베트 중국 일본 등지에 보급되어 크게 유행하여 팔백여가(八百餘家)의 주석서가 있다고 할 정도로 다양한 논서들이 만들어 졌다. 특히 선종(禪宗)의 제6 ...
2025-06-03 1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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