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 3974건

금광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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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에는 교파신도 13파에 현재는 교파신도 연합회에 소속되어 있다. 1859년 아카자와 분지(赤沢文治 1814-1883)가 인간을 포함한 만물의 근원인 텐치카네노카미(天地金乃神)에 대한 신앙을 내걸고 창립했다. 묵주교(黒住教) 및 천리교(天理教)와 더불어 에도(江戸)시대 말기에 성립된 3대 신종교로 불리고 있다. 현재의 본부는 오카야마현 아사쿠치시(岡山県浅口市)에 있으며 교회는 서일본을 중심으로 분포되어 있다. 한국에서는 1903년 마에다 타스케(前田吾助)가 부산 부평동에 부산교회소를 처음 열어 부산에 거류하는 일본인들을 대상으로 포교활동을 하였다. 차츰 식민지 정책에도 동조하며 한국인에게도 교선을 확장하였지만 신자 수 ...

2025-06-03 17: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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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세도남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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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세도

각세도 도주 이선평은 포교를 시작한 후 사관제도와 삼십암제를 두어 교단의 체제를 정비하고 각 지부들을 관리하였다. 사관은 동서남북의 각 방면에 두었으며 자신의 제자 중 뛰어난 인물 4명을 선발하여 각 관의 도주로 임명하였다. 초기에 각세도남관에는 김해제가 임명된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각 관에 대한 본부의 통제가 원활하지 못하였고 이선평이 살아있을 때부터 내부에는 여러 가지 분란이 있었다. 김해제는 이선평 생전에 ‘천인교’를 설립하여 분파하게 되었고 이선평은 다시 장명성을 남관의 도주로 임명하게 된다. 장명성 사후 임선호(任善鎬)․정수성(鄭秀星)․전태성(全泰成)․한병헌(韓炳憲) 등이 다시 분파하게 되는데 전태성이 충청북 ...

2025-05-14 1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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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사영백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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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01년 중국인 주문모(周文謨) 신부와 많은 조선 천주교회 지도자들이 체포되고 처형된 신유박해가 일어나자, 충청도 제천의 배론(舟論)의 토굴에 피신해 있던 조선 초창기 천주교 신자인 황사영이 조선 천주교의 역사와 신유박해의 사정을 상세히 알리고, 조선교회의 재건과 신앙의 자유를 위한 방안으로 서양 선박과 청나라 군대를 요청하는 내용을 적은 밀서를 당시 북경 주교에게 전달하려 했다. 황사영이 길이 62㎝, 너비 38㎝의 흰 비단에다 총 1만 3,311자의 한문으로 쓴 이 밀서를 ‘황사영백서’라고 한다. 이 백서를 전달하던 옥천희가 체포됨에 따라 조정은 중국인 주문모 신부의 순교에 대한 상세한 기록과 조선을 청나라의 한 ...

2025-10-11 23: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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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일종교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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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종교일반/기타

일제 강점기에 활동한 종교인들은 조선의 독립운동에 가담하여 항일 활동을 벌이거나 조선의 근대화를 준비하는 활동에 동참하는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일제 강점기 말엽에 가게 되면 조선총독부의 강요에 의한 것이건, 아니면 본인의 신념에 바탕을 둔 것이건, 일제의 조선 지배와 아시아 침략 전쟁을 지지하는 종교인들이 등장하였다. 불교와 유교 등 전통종교들이나 천도교와 같은 이른바 민족종교들에 속한 종교인 가운데에는 조선과 일본의 문화적, 인종적 동질성을 바탕으로 하여 백인종 중심의 세계사를 반대하고 대아시아주의를 부르짖음으로써 일제의 논리에 동화되는 인물들이 나타났다. 또한 개신교 진영에서도 1930년대 교단 개혁 문제와 함께 ...

2025-10-11 15: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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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화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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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산법종교(甑山法宗敎)의 기본경전인 이 책은 1955년 증산법종교에서 초판을 간행했으며 한문 문장에 토를 달아 썼다. 1989년에 발행한 재판은 국판 262쪽 세로쓰기로 되어있으며, 앞에 강일순의 필적과 초판서문, 재간사(再刊辭), 목차, 본문 그리고 부록으로 『중화경』원문(한문)을 싣고 있다. 본문은 국한문 혼용으로 한자에는 한글로 토를 달았다. 본문 내용 구성은 전체 88장으로 나누어져 있다. 내용은 중화(中和)의 원리를 중심으로 도(道)의 체용(體用), 유·불·도·기(儒佛道基) 등 모든 종교의 사상은 물론 미륵불(彌勒佛)·역학(易學: 洪範)·음양오행(陰陽五行)·복서(卜筮: 巫俗, 民俗)·귀신(鬼神)·예학(禮學)·시 ...

2025-10-09 21: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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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하 신종교(식민시대 신종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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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종교학

한국의 신종교는 1860년 최제우의 동학 창도에 이어 1902년 강일순의 증산교, 1905년 나철의 대종교, 1916년 박중빈의 원불교 등으로 차례로 나타났다. 그리고 이들은 1910년 일제 식민지 시대와 합류한다. 동학은 1905년 천도교로 개칭하여 문명종교로 이행되었으며, 증산교는 분파하여 민중종교로 나타난다. 여기에 대종교는 민족종교로서 그 입지를 다졌으며, 원불교는 생활종교로 발전하였다. 이들 신종교들은 식민정책 속에서 ‘유사종교’로 규정당하며 부당한 대우를 받았지만, 민족의 독립과 근대화의 기치를 아래 식민지 한국사회를 이끌어 간 주도세력이었다. 그러나 이들의 독립운동과 근대화의 길은 일제의 탄압으로 인하여, ...

2025-10-09 0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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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왕산선바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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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교계

형상이 마치 스님이 장삼을 입고 서 있는 것 같아서 ‘선(禪)’자를 따서 선바위[禪巖]라 불렀다고도 한다. 또 조선 태조와 무학대사의 상이라는 전설, 또는 이성계 부부의 상이라는 전설도 있다. 이것은 인간이 죽어서 석불(石佛)이 되었다는 인간의 화신으로 설해지고 있으며, 여기에 빌면 소원성취할 수 있다고 하여 일찍부터 신앙의 대상이 되었다. 특히, 자식 없는 사람이 이 바위에 빌면 효험이 크다고 하여 정성을 드리는데, 작은 돌을 붙이면 효험이 더욱 크다고 하여 작은 돌을 문질러서 붙인 자국이 많이 남아 있다. 일제가 남산 꼭대기에 있던 국사당(國師堂)을 선바위 곁으로 옮기게 한 뒤로 더욱 선바위에 대한 신앙은 무속신앙과 ...

2025-10-08 23: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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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화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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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전은 교조 당대에는 『미륵상생경』·『용화보전(龍華寶典)』·『만법전』·『현무실기(玄武實記)』 등이 있었다. <참고문헌> 『용화보전』(박남천, 용화불교전법원원각사, 1957) 『한국신흥종교총감』(이강오, 한국신흥종교연구소, 1992)

2025-10-08 0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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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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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순진리회

『대순진리회요람』의 취지문에 의하면 “…음양합덕(陰陽合德) 신인조화(神人造化) 해원상생(解寃相生) 도통진경(道通眞境)의 대순진리(大巡眞理)를 면이수지(勉而修之)하고 성지우성(誠之又誠)하여 도즉아(道卽我) 아즉도(我卽道)의 경지(境地)를 정각(正覺)하고 일단(一旦) 활연(豁然) 관통(貫通)하면 삼계(三界)를 투명(透明)하고 삼라만상(森羅萬象)의 곡진이해(曲盡理解)에 무소불능(無所不能)하나니 이것이 영통(靈通)이며 도통(道通)인 것이다.”라고 하여 영통이 곧 도통이고 도통이 곧 영통임을 알 수 있다. <참고문헌> 『대순진리회요람』(대순진리회 교무부, 1969)

2025-10-07 17: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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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산선학대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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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불교

영산선학대학교는 1927년에 원불교 초창기 인재양성을 위해 전남 영광군 백수면 길룡리에 ‘영산학원’(학원장 정산종사)을 개설하면서 비롯되었다. 일찍이 교육의 중요성을 강조한 소태산대종사의 뜻을 받들어, 일원의 원만한 교법을 바탕으로 진리적 종교의 신앙과 사실적 도덕의 훈련을 실현하는 교육을 실행하고자 했다. 특히 박중빈의 평등사상을 바탕으로 남녀와 빈부의 차별이 없는 평등교육, 그리고 타자녀교육의 이념을 실현하고자 했다. 1927년에 개설된 영산학원(靈山學院)에서 비롯되며, 1964년 영산선원(靈山禪院), 1985년 원불교영산대학(圓佛敎靈山大學), 1991년 대학학력 각종학교인 ‘영산원불교학교(靈山圓佛敎學校)’, 199 ...

2025-10-07 17: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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