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 3974건
심고와 기도
원불교
원불교에서는 일정한 장소를 정하거나 일정한 의례를 갖추지 않고 주로 마음속으로 고백하고 심축하는 것을 심고라 한다. 하루의 시작과 마침의 시간에 그 날의 계획, 한 일을 부모님께 고하듯이 법신불사은 전에 고하는 조석 심고, 특별한 원을 세우고 수시로 올리는 심고, 의식에서 절차에 따라 올리는 심고 등이 있다. 혼자서 하는 경우에는 대개 묵상으로 심고를 올린다. 이에 비해 일정한 의례를 갖추고 일정한 대상을 향하여 기원의 사유와 내용을 설명하며 기원하는 것을 주로 기도라 하며 여기에도 설명기도와 실지기도가 있다.
2025-10-07 0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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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일중앙교회
새일중앙교회의 기원은 새일수도원으로부터 비롯된다. 새일교단의 창교자인 이유성은 1964년 9월 24일 계룡산의 숫용추에서 천막을 짓고 부흥회를 열면서 새일수도원을 하였다. 이때 이유성은 신비체험을 하게 되는데 기도할 때마다 생수와 같은 것이 시원하게 몸에 들어오는 체험을 했다고 한다. 1967년 8월 15일의 기도에서는 그의 입에 하나님의 강한 힘이 전해서서 말을 하게 되는데 이 말을 수도원생이 그대로 받아 기록하여 『조직신학강의』를 비롯한 여러 권의 책으로 펴냈다. 이유성의 사후 1972년 이유성의 부인을 중심으로 교단을 운영하지만 일부 목사들이 탈퇴하고 송진모 목사 등 일부가 그대로 남아 후암동에 새일중앙교회를 세워 ...
2025-07-13 22: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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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신교
산신교(山神敎)를 창립한 오응순(吳應順 1927-?) 여인은 1927년 남제주군 성산면 고성리에서 태어났다. 문태호(文泰浩)와 결혼하여 농업에 종사하다가 31세 되던 해 한라산 신령의 계시를 받게 되었다고 한다. 한라산 신령은 그녀에게 약수(藥水)로서 병고에 빠진 중생을 살려내라고 몽중계시(夢中啓示)를 하였다는 것이다. 그 뒤로도 여러 차례 몽중 계시를 받았다. 그러다가 1957년 12월 15일 밤 한라산 신령이 자신의 몸에 내려와 자리 잡고 자기에게 명령을 했다. 신령이 내린 명령은 병중에 빠진 중생들을 냉수로서 살려내고 두 손 모아 기도하고 악한마음 다 버리고 선한마음 찾아주는 교를 설립하여 병든 자를 살려주어라. ...
2025-07-09 20: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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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택
유교
유교의 국가의례에서 가장 중요한 제사는 하늘과 땅에 대한 제사이다. 이에 따라 중국의 역대 왕조에서는 원구(圓丘)를 만들어 하늘[天神]에 제사지내고 방택(方澤)을 만들어 땅[地祇]에 제사지냈다. 방택은 연못 가운데에 네모난 언덕을 만든 것으로 땅의 신인 지기(地祇)는 땅 아래에 있고 또 땅은 네모나다[地方]는 것을 상징한 것이다. 우리나라에서는 고려시대에 원구와 방택을 만들어 천·지(天地)에 제사를 지냈으며 현종 22년(1031) 정월에 처음으로 방택의 제사를 지냈다는 기록이 있다. 그러나 조선시대에 들어와 천·지(天地)에 대한 제사는 천자(天子)만이 지낼 수 있다는 유교의 명분론(名分論)에 따라 원구와 방택의 제사가 ...
2025-07-08 23: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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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군민족주의
신종교학
단군민족주의는 오랜 기간 동안 한국사 속에 존재해오면서 한국사를 민족 ․ 자주 ․ 통일 ․ 민주 ․ 정의 ․ 복지의 방향으로 진전시켜온 동력의 하나로 기능해 왔었다. 특히 한민족을 하나의 공동체로 결합시키고자 한 통일운동과 관련하여 단군민족주의는 그 기여도가 크다 하겠다. 단군민족주의는 전근대시대를 통해서는 분열됐던 삼국-삼한의식을 단일의 역사의식 밑에 통합하는 기제로 작동했었다. 또한 나라가 어려움에 처했을 때마다 그 기능을 다하였다. 예컨대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의 시기 단군은 다시 민족의 구심점으로 등장하였고 구한말에는 민족성원 전체를 하나의 대가족으로 통합하려했던 민족적 대가족론의 근거가 되었으며 삼일운동 때는 종교 ...
2025-07-01 22: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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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홍규
보천교
김홍규(金烘奎)는 국권 상실(1910) 직전에 보천교에 입교하였으며 1919년 대황산록 고천제에서 조직된 60방주 가운데 목(木)에 해당하는 방주였다. 주로 교금 관리를 맡았으며 한때 교금 문제로 1921년 2월에 황해도에서 42일 간 경찰에 구금되기도 하였다. 1921년에 독립운동 자금을 모금해 상하이의 대한민국 임시정부로 보내려 했다는 혐의로 경찰에 체포되어 1922년 4월에 징역 1년 6월을 선고받고 옥고를 치렀다. 대한민국 정부는 2005년에 그에게 건국포장을 추서하였다. 김홍규의 아들은 유년기에 보천교 증앙본소에서 전통 학문을 공부했다. 이는 뒤에 오대산 월정사로 출가한 승려 탄허(呑虛)다. 참고문헌 : 『보천 ...
2025-07-01 0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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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강불교
김용배(金庸培 ?-1935)가 1895년경 전북 진안군 주천면에서 세운 남학계 신종교. 오방불교(五方佛敎)의 김광화(金光華)가 사망한 후 김경배(金敬培 혹은 坦培)가 대를 잇자 이에 대항하여 김용배(본명은 明奉)가 분파를 일으켜 설립한 종교이다. 이 파는 뒤에 정도교 ․ 청림교 등을 규합하여 광화교로 개칭하였다. 1934년 당시 신자가 3천명에 달하는 교세를 갖고 있었다고 한다. 신앙의 대상과 모든 사상은 오방불교와 같다. 다만 여러 곳에서 산제를 지냈는데 산제기도의 대상은 북두칠성(大聖北斗七元聖君)과 산왕(山王佛)을 주로 하여 광화교주자씨미륵존불(光華敎主慈氏彌勒尊佛) · 아미타불(阿彌陀佛) · 삼존천위(三尊天位) · ...
2025-06-03 17: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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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세도남관
각세도
각세도 도주 이선평은 포교를 시작한 후 사관제도와 삼십암제를 두어 교단의 체제를 정비하고 각 지부들을 관리하였다. 사관은 동서남북의 각 방면에 두었으며 자신의 제자 중 뛰어난 인물 4명을 선발하여 각 관의 도주로 임명하였다. 초기에 각세도남관에는 김해제가 임명된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각 관에 대한 본부의 통제가 원활하지 못하였고 이선평이 살아있을 때부터 내부에는 여러 가지 분란이 있었다. 김해제는 이선평 생전에 ‘천인교’를 설립하여 분파하게 되었고 이선평은 다시 장명성을 남관의 도주로 임명하게 된다. 장명성 사후 임선호(任善鎬)․정수성(鄭秀星)․전태성(全泰成)․한병헌(韓炳憲) 등이 다시 분파하게 되는데 전태성이 충청북 ...
2025-05-14 1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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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동전도록
도교
1,500여 자로 이루어진 소책자로서, 인조 때의 어느 승려가 가지고 있던 것이 이식(李植)에게 전하여져 세상에 알려지게 되었다고 한다. 신라 말 최승우(崔承祐) 등이 중국에서 종리권(鍾離權)에게 단학을 전수받은 후, 최치원(崔致遠), 고려의 이명(李茗), 조선의 김시습(金時習) 등을 거쳐 한무외까지 이어지는 계보를 밝히며, 사자상승(師資相承)으로 비밀히 전해진 연단비법의 책이름이 열거되어 있다. 우리나라 단학의 근원을 중국 전진교(全眞敎)에서 찾는 조선시대의 사상적 경향이 보인다. 내용은 이식의 발문과 한무외의 행적이 붙어 있고, 부록으로 「단서구결16조(丹書口訣十六條)」과 「단서별지구결16조(丹書別旨口訣十六條)」 그 ...
2025-10-11 21: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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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과의례
사람의 일생에는 출생, 명명(命名), 성년(成年), 결혼, 죽음 등의 과정이 있다. 이런 과정을 거치면서 개인은 사회 속에서 새로운 신분과 역할을 획득한다. 그리고 인생의 각 과정을 통과할 때마다, 새로운 단계로의 순조로운 이행을 보장하고 새로운 신분으로 진입하였음을 보여주기 위한 의례가 시행된다. 이러한 의례를 망라하여 통과의례(通過儀禮)라 하며, 이는 인류 사회 어디에서나 발견되는 보편적 현상이다. 또 대부분의 사회에서 통과의례는 종교와 밀접한 관계가 있다. 서남아시아의 통과의례는 이슬람의례로 이루어지며 유럽문화권의 통과의례는 기본적으로 기독교에 바탕을 두고 있다. 우리나라의 경우 통과의례는 과거에는 주로 ‘관혼상제 ...
2025-10-11 17: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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