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 3974건
분봉왕
통일교회
분봉왕은 4인체제로 운영되는 국가메시아 보다 상위개념의 직제였으나 실질적인 인사·재정의 권한은 가지지 않는다. 문선명 총재는 해당국가의 선교목적 완수를 위해 천주평화의 왕을 대신한 분봉왕을 통하여 해당 국가를 섭리적으로 통치하는 체제를 추구하였다. 2013년 2월 22일(천력 1월 13일) 통일교회의 기원절이 선포된 이후 분봉왕 섭리는 종료되었다. 당시 통일교회는 세계회장 대륙회장 국가협회장 등을 중심으로 한 공식적인 선교행정직제와 분봉왕 국가메시아를 중심으로 한 섭리적 총괄지도자직제를 병행하여 운영하였다. 문선명·한학자는 2004년 12월 미국 이스트가든 훈독회 참석자 가운데 한국전쟁에 참전한 유엔평화군 16개 국가의 ...
2025-07-09 17: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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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록
엄밀하게 말하면 부(符)와 록(籙)으로 구분된다. 부는 신부(神符) 도부(道符) 천부(天符) 부문(符文) 등으로 불리는데 옥제나 신선의 권위와 신통력을 갖춘 신물이다. 하늘과 신령의 문자로 인식되며 문자이지만 인간의 인지로 이해할 수 없는 문자이다. 동한시기의 초기 도교 교단을 세운 장각이나 장릉은 모두 부를 사용해 치병을 하였고 귀신을 몰아냈다. 록은 법록(法籙) 보록(寶籙)으로 불리는데 도교의 부서를 말한다. 도교에서 록(籙)은 자연의 기가 응결되어 만들어진 문자로 신인을 통해 전수된다고 본다. 초기 도교 경전인 <태평경>에서부터 부록에 관한 내용과 부서들이 수록되어 있고 이러한 도교의 부록 전통은 현대의 정일파(正 ...
2025-07-09 16: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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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건곤
천도교
천도교 언론잡지인 『개벽(開闢)』이 발행 금지를 당하자 편집주간이었던 김기전 등 개벽사는 “자식은 죽었으나 산모는 여전히 건재하다”고 하여 후속 잡지를 발행할 결의를 나타냈다. 이에 개벽사는 1926년 11월 1일 『별건곤(別乾坤)』을 창간하였다. 명목상으로는 “취미잡지”를 표방했지만 야사 문학 민속 조선자랑 여성 생활개선안 서구 사회이론 정치동향 합법운동 산업합리화 모던(근대) 비판 등 다양한 내용을 편집하여 세상에 내놓았다. 창간 때는 국판 150쪽 내외였으나 1931년 3월호부터 4·6배판 30쪽 안팎으로 지면이 줄었다. 별건곤 역시 불온 이유로 압수당하는 등 탄압에 따라 1934년 8월 1일 종간(통권 75호)되 ...
2025-07-09 01: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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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중선
원불교
12세 때부터 한문을 배웠고, 1919년 입산수도를 하기도 하였다. 그 뒤 큰 뜻을 품고 서울 중동고등보통학교에 입학하였다가 휘문고등보통학교로 옮겨 졸업한 뒤, 중국 상해로 건너가 상해 동제대학(同濟大學)에서 산부인과를 전공하였다. 대학 재학시절 독립운동에 투신하여 중국으로 건너가 독립운동에 투신하여 상해임시정부에서 의정원(議政院)위원으로서 10년간 활동했다. 1928년 봄, 일본경찰에 붙잡혀 신의주감옥에서 5년간 옥고를 치르기도 하였다. 1932년 형을 마치고 고향에 돌아와 광산업을 하였고, 1945년 광복 이후 정치단체인 민의사(民意社)를 만들어 정계에 투신하려고 하였으나, 좌우익의 극한대립 속에서 실패하고 말았다. ...
2025-07-09 0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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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룡사
교단내에서 무심대사(無心大師)로 불리는 신수영(申壽英 1878∼1961)이 경상북도 안동 삼정산의 유하사(遊夏寺) 주지로 있다가 1945년 11월 10여 명의 신도를 데리고 계룡산에서 백일기도를 드린 뒤 다음해 신도안에 입주하여 석계리 백암동 입구에 팔모정(八母亭)과 법정사(法正寺)를 짓고 다시 그 아래에 법룡사(法龍寺)를 창건하였다. 앞으로 이 땅에 단군국조의 운수가 열릴 것이므로 단군국조를 숭배해야 한다고 믿고 1948년 천진전(天眞殿)을 세워 단군영정을 모셨다. 이곳을 계룡천진전이라 부른다. 1961년 신수영의 사망 후 지정영(池正永)이 팔모정을 지으라는 신수영의 영계(靈啓)를 받았다고 주장하자 이수학은 신기수(申 ...
2025-07-09 00: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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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취산
1926년 생. 평안북도 강계 출신으로 본명은 박영철이다. 취산(翠山)은 호이다. 30대부터 명상과 정신세계에 관심을 가지고 『폐허의 붓다』, 『나는 티벳의 라마승이었다』, 『생명의 실상』 등과 같은 서적을 번역해서 출판했다. 출판사 ‘밝은생활사’를 설립해서 구도에 관한 무크지 『보름마다의 편지』를 발간했다. 1996년 미내사(미래를 내다보는 사람들)를 설립하고 활동하다 1999년 타계했다.
2025-07-08 23: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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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하이교
바하울라로 알려진 테헤란 출신의 미르자 후세인 알리 누리와 나중에서 수브 이 아잘로 불린 그의 이복형제 미즈라 야야 누리는 1844년에 바압(Bāb)이 계시를 받고 가르침을 펴자 그의 무리에 합류했다. 바압은 자신의 후계자로 수브 이 아잘을 후계자로 정했다. 그러나 그의 지도자로서의 자격이 의문시되었고 1852년 왕의 암살 사건과 연루되면서 집단 내의 영향력이 약해졌다. 이 시기에 바하울라는 자신이 신이 보낸 진정한 전령사임을 자각했고 1863년 오스만 당국에 의해 바그다드에서 이스탄불로 추방되기 직전에 자신이 바압이 예언한 ‘신이 나타난 자’임을 선언했다. 바하이교에서는 모든 종교의 근원은 하나임을 주장하며 인종과 국 ...
2025-07-08 22: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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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륵대불성탄절
미륵대도금강연화종
미륵대도금강연화종 창조주인 옥제천지님(나진홍)의 출생(음력 4월 28일)을 기념하는 봉축법회.
2025-07-08 21: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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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을교이동옥파
무을교이동옥파(戊乙敎李東玉派)는 이동옥((李東玉) 1894-?)이 1959년 전라북도 김제군 금산면 금산사 근방에서 창교 했다. 무을교를 창립한 김계주(金桂朱)가 1950년 세상을 떠나고 그 후계자로 김홍현이 대표가 되자 김계주의 수제자 중에 한 사람이었던 이동옥은 운리동을 떠났다. 이동옥은 전라남도 영광군 법성에서 1894년에 태어나 1946년에 무을교에 입교하여 열심히 신앙하였으나 김계주가 세상을 떠나자 1951년 금산사 뒤 비장골에 집을 짓고 수도에 전념하면서 운리동을 왕래하였는데 김홍현이 운리동을 대표하게 되자 그는 이곳을 떠나 자기를 따르는 수십 명의 신도들을 이끌고 무을교의 정통이라고 주장하면서 독립해 나갔다 ...
2025-07-08 20: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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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량주
무량대도회
무량주는 무량대도회의 창립자인 손치성이 천등산 사신에게 받았다고 하는 주문이다. 무량대도회에서 백일기도 또는 천일기도를 통해 아미타불 주문과 “무량(無量) 무량(無量) 상제(上帝)님 만세무량(萬歲無量) 하옵소서 일월성신후토신령(日月星辰后土神靈) 천등불사(天燈佛師) 산왕대신(山王大神) 하위동심(下位同心)하옵소서(혹은 感應하옵소서)”라는 무량주를 외우면 전신진동이 일어나고 토설(吐說: 자동적으로 입이 열려 말이 나오는 상태)도 나오게 되며 병자는 자신의 아픈 곳을 두드리면 병이 낫는다고 한다.
2025-07-08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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