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 1870건
선덕학회
황우연과 김정희에 의해 창립된 단군계 신종교.
2025-07-14 00:09

1
선교
천도교 신자였던 조일제는 당시 성도교(性道敎)를 창립한 이민제(李民濟)의 『삼역대경(三易大經)』의 원리에 감명을 받고 성도교에 입교했지만 성도교의 신행을 따르지 않고 별도의 분파로 활동하다가 제세교(濟世敎)를 창립하였다. 계룡산아래 하대리에 본부를 두고 교명을 다시 선교로 바꾸었다. 1957년 조일제가 사망하자 일부 간부들이 신도를 이끌고 도학교(道學敎)에 입교하였다. 참고문헌 : 『한국신흥종교총람』(이강오 한국신흥종교연구소 1992)
2025-07-14 00:04

1
석전제
유교
정식 명칭은 석전(釋奠)이며 석전제(釋奠祭)는 속칭이다. 석채(釋菜)라고도 한다. 매년 음력 2월과 8월에 국학(國學)인 성균관(成均館)과 지방학교인 향교(鄕校)의 문묘(文廟)에서 공자(孔子)와 그의 제자를 비롯한 유현(儒賢)들을 제사하는 의례를 말한다. 석전이라는 명칭은 『주례(周禮)』·『예기(禮記)』 등 유교 경전에서 비롯된 것으로 처음에는 산천(山川)의 제사와 학교의 제사를 함께 일컫는 말이었으나 시대를 내려오면서 학교의 제사만을 뜻하게 되었다. 중국 한(漢)나라 때부터 유교가 국교(國敎)가 되면서 공자를 문묘의 주향(主享)으로 모시고 석전을 통해 제사지내는 관례가 정착되었다. 우리나라는 통일신라 성덕왕 때부터 석 ...
2025-07-14 00:00

1
석문의범
불교/기타
1935년 안진호(安震湖 1880~1965)가 전래하는 전통적인 불교의례집 중에서 널리 행하는 의례의 의식문을 모아 편찬하였다. 조선시대까지 우리나라의 의례 관계 서적은 70여 종이 넘는다. 이처럼 다양한 형태의 불교의식집이 간행되었던 것은 염불이나 의식의 종류가 워낙 많기 때문이었다. 또한 의례집은 편찬 시기나 편찬자에 따라서도 차이가 있었다. 근대시기 영산재와 수륙재·생전예수재 등이 널리 성행하였는데 의식의 절차나 염불 등은 지역・사찰・의례승마다 각양각색으로 달랐다. 안진호는 이를 체계적으로 정리·통합하여 『석문의범』을 간행하였다. 그는 『석문의범』에 앞서 1931년 12월 『불자필람(佛子必覽)』을 편찬하였다. 발간 ...
2025-07-13 23:59

1
석경산대제
단황전
단황전에서는 신앙의 대상인 단황님에게 많은 제수를 올리면서 천하통일 평화를 기도드린다. 1982년 대전 석경산에서 천인합발(天人合發)을 위한 법시(法施: 천제)를 행하였는데 이때 쌀 5백 가마니 소금 1천 가마니 등 제물만 2천여만 원 어치를 바쳐 천제를 올려 천인합발을 이루었다고 한다. 기도와 법시 후에 교조 김정숙은 매번 천설(天說)을 받는다고 한다. 참고문헌 : 『한국민족종교총람』(한국민족종교협의회 1992) 『한국신종교실태조사보고서』(김홍철·양은용·류병덕 원광대학교 종교문제연구소 1997)
2025-07-13 23:57

1
서학
신종교일반/기타
중국에 천주교가 처음으로 전래된 것은 16세기 말 이태리 출신의 예수회 소속 선교사인 리치(Matteo Ricci)가 입국하여 포교활동을 시작하면서부터였다. 이후 예수회 소속의 여러 선교사들이 건너와 선교활동을 전개하였는데 이들은 천주교와 유교간의 갈등을 최소화하면서 선교의 효과를 높이기 위해 유교의 부족한 점을 천주교 교리로 보완한다는 소위 보유론(補儒論)에 바탕을 둔 현지문화 적응주의적 선교방법을 채택하였다. 이 방법에 따라 선교사들은 1775년 교황령에 의해 선교회가 해산될 때까지 약 5백여 종에 이르는 한문으로 번역된 서적들을 출판하였다. 이를 한역서학서(漢譯西學書)라고 하는데 서학이란 여기에 포함된 내용과 그에 ...
2025-07-13 23:56

1
서중안
원불교
서중안은 1881년 11월 21일 전북 김제군 진봉면 가실리에서 부친 치욱(致旭)과 모친 반월경화(潘月鏡華)의 11남매 중 넷째 아들로 출생했다. 어릴 적부터 타고난 천성이 인후하고 침착했으며 강직하고 세밀했다. 17세에는 향교 출입을 하며 선비들과 문장을 주고받았다. 유학을 공부하였지만 반상차별의 폐풍을 비판하고 가문에 내려오던 노비문서를 불살라버리기도 하였다. 서중안은 한가한 시간을 이용하여 의서(醫書)를 탐독하며 연구했고 근동에서는 명필 명강의로 소문이 자자했다. 김제면 교동리에 ‘인화당한약방’을 개설했는데 명의로 이름을 떨치기 시작했고 각처에 신용을 얻어 번창했다. 1923년(원기8)에 친형인 서동풍(春山徐東風) ...
2025-07-13 23:54

1
서의복
금강대도
본관은 달성이며 약봉(藥封) 서성(徐渻)의 12세손이다. 1884년 상산(祥山) 서상의(徐相儀)와 오상전(吳祥田)의 맏딸로 태어났으며 1898년 금강대도 창시자인 토암 이승여와 결혼하였다. 1910년 충청도 계룡산으로 토암과 함께 남천포덕을 단행한 후 연화대도를 창개 제1대 도주가 되어 오중대운(午中大運)의 남녀평등 사상으로 제자를 양성하다가 1927년 44세로 타계하였다. 금강대도에서는 토암이 천상에서 태청도덕천존(太淸道德天尊)이었으며 자암은 태을구고천존(太乙救苦天尊)이었는데 오중시대를 맞이하여 건곤부모로 하강하였다고 한다. 그는 일생동안 후원에 단을 설치하고 청수를 올리며 하루도 빠짐없이 하늘에 창생 제도를 발원하는 ...
2025-07-13 23:50

1
서울시위사건
갱정유도
갱정유도의 2세 교주인 계도선사 김갑조는 1965년 초에 분단된 조국을 평화적으로 통일하고 국제질서의 냉전체제를 극복할 수 있는 방안 5대 항목을 저술하였다. 5대 항목은 「원미소용(遠美蘇慂)하고 화남북민(和南北民)하자」 「민족도의(民族道義)라야 통일독립(統一獨立)된다」 「양이적풍(攘夷狄風)해야 화민양속(化民良俗)한다」 「통만국회(通萬國會)하야 보호험약(保護險弱)하자」 「충효간성(忠孝干城)이라야 세계평화(世界平和)된다」였다. 김갑조는 이 중에 「통만국회하야 보호험약하자」와 「충효간성이라야 세계평화된다」는 항목은 아직 발표할 시기가 아니라는 이유로 공개하지 않고 나머지 3대항목 중에 「민족도의라야 통일독립된다」의 뒷부분을 ...
2025-07-13 23:41

1
서울법교신문
대한불교유마종
1992년 무해(김길수)의 주도로 창종된 대한불교유마종(도솔천유마종)에서 발행한 신문. → 대한불교유마종 참조. 참고문헌 : 『한국신종교실태조사보고서』(김홍철·양은용·류병덕 원광대학교종교문제연구소 1997)
2025-07-13 23:38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