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 3974건
이운규
남학계
이운규는 세종의 제18왕자인 담양군(潭陽君)의 13세손으로 그가 노년기에 접어들면서 일찍이 서울에서 낙향했거나 혹은 그의 고향인 파주에서 이주하여 김항의 고향인 담곡 서쪽에 있는 띠울(茅村)에 와서 은거하였다. 하상역(河相易)이 창립한 대종교(大宗敎)에서 발간된 「김일부 선생행장(金一夫 先生行狀)」에 의하면 이운규의 휘(諱)를 ‘운규(雲圭)’라 하였고, 김치인(金致寅, 號는 光華)이 창립한 남학교단(南學敎團)의 『금강불교연원록(金剛佛敎淵源錄)』에 의하면 “이운섭 호연담 전주인 세종대왕14세손 수도우청림도사(李雲燮 號蓮潭 全州人 世宗大王十四世孫 受道于靑林道士)”라고 기록하여 호는 ‘연담’이요 휘는 ‘운섭’이라 하였다. 이 ...
2025-10-08 21: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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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교국가
기층신앙
‘예(禮)’는 신(神)에게 제물을 바치는 모습을 형상화한 글자로 본디 제사 의례를 뜻하는 말이다. 이후 점차 장유(長幼)나 계층 간의 차서(次序)와 같은 사회적 질서의식이나 인간의 올바른 행동방식을 일컫는 것으로 그 어의(語義)가 확장되었다. 그 결과 예(禮)라는 말은 의례·사회질서·행동규범으로서의 의미를 동시에 가지면서, 특히 사회질서 유지를 위해 만들어진 윤리규범으로 받아들여지게 되었다. 이 과정에서 가장 적극적인 역할을 한 학파가 유가(儒家)였다. 공자(孔子)가 인간다움을 실현하는 조건이자 이상적(理想的) 통치의 수단으로서 예를 강조한 이래 예(禮)는 유가전통에서 매우 중요한 가치로 인정되어 왔으며, 한대(漢代)에 ...
2025-10-07 18: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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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보화원
원불교
원불교에서는 해방을 맞아 귀환한 전재동포(戰災同胞)들을 구호하기 위해 서울을 비롯하여 전국적으로 전재동포구호소를 설치하고 구호사업을 실시하던 중 부모 없는 고아들의 보호문제가 제기되었다. 당시 구호소 부소장인 송도성(宋道性)이 1945년(원기30) 12월에 우선 18명의 고아들을 데려다가 황정신행(黃淨信行)의 소유 건물인 동대문병원에 수용했다. 1946년(원기31) 2월에 다시 고아들을 서울 한남동의 정각사(正覺寺)에 옮기고 ‘서울보화원’이라 이름했다. 보화원이라는 명칭은 보화당한약방(普和堂韓藥房)에서 유래한다. 송도성은 초기 18명 이외에 거리를 떠돌던 고아들을 모집하여 수용함으로써 교단 3대사업의 하나인 자선사업을 ...
2025-07-13 23: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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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바세계
기타
불교에서 우리가 사는 현실세계를 가리키는 용어로 부처나 보살이 중생을 구제하는 곳이기도 하다. 사바(娑婆 sahā)는 인(忍) 감인(堪忍) 능인(能忍) 인토(忍土) 등으로 한역된다. 이것은 인간이 이 세상을 살면서 필연적으로 생노병사나 다양한 욕망 번뇌 등을 참고 견디며 살 수밖에 없다는 의미이다. <참고문헌> 『한국불교대사전』(한국불교대사전편찬위원회, 1982) 『가산불교대사림』(가산불교문화연구원, 2013)
2025-07-09 19: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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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순진리회 종지
대순진리회
대순진리회의 종지는 교리의 핵심 항목으로서 1925년(을축년) 무극도(無極道) 창설 당시 조정산(趙鼎山 1895~1958) 도주(道主)에 의해 선포되었다. 강증산 구천상제의 천지공사에서 파악된 진리를 핵심적으로 요약하여 말한 것으로 종지는 총 열 여섯 자로 구성되어있다. 『대순지침』에 의하면 “도인들은 성·경·신을 요체로 삼아서 위로 상제님을 받들고 아래로는 사회의 모든 인사(人事)가 상제께서 대순하신 진리대로 이룩되어 가는 진리임을 깊이 심도록 노력하여야 한다.(p.32)”라고 하였다. 따라서 대순진리로서 음양합덕(陰陽合德) 신인조화(神人調化) 해원상생(解冤相生) 도통진경(道通眞境)으로 명시된 종지는 오늘날 신앙적 관 ...
2025-07-03 16: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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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발한
단단학회
나철과 함께 조선의 자주권을 확보하기 위해 노력하던 이기(李沂)는 한국통감부가 설치된 후 을사오적을 살해하기 위해 계획을 세웠으나 실패하였다. 이후 나철이 백봉의 단군교 전통을 이어받아 대종교를 설립한 것에 대해 이기는 단군을 숭배함과 동시에 이를 학문적으로 연구하기 위해 단학회(檀學會)를 창립하려고 준비하였으나 완성을 보지 못하고 사망한다. 이후 이기의 정신을 이를 계승한 계연수(桂延壽)가 남만주 관순현 홍석립자에 본부를 두고, 『단학회보』를 발행하기 시작하여 8집까지 간행된다. 해방 이후에는 이용담(李龍潭)이 평양에서 단학회를 재기시켜 기관지 『태극(太極)』을 발행하였으나, 공산당에 의해 당시 주간 이유립(李裕笠)이 ...
2025-10-11 15: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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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복궁
통일교회
천복궁은 통일교회에서 용산구민회관으로 사용되어 온 건물을 매입하여 9개월간 리모델링 공사 끝에 봉헌한 한국 통일교회 본부교구이다. 지상 4층, 지하 1층의 연면적 8,300여㎡ 규모로 2천여 명을 수용할 수 있으며, 3~4층에 위치한 대성전에서는 1천2백여 명이 함께 예배드릴 수 있다. 문선명은 봉헌식에서 ‘천복궁 천심통일교회(天福宮 天心統一敎會)’라는 휘호를 정했다. 천복궁을 세계종교가 함께 하나님께 예배드릴 수 있는 전당으로 운영하고자 하였다. 이런 특별한 설립취지에 따라 천복궁은 초교파·초종교적 요소들이 배치되어 있다. 천복궁의 1층 정성실에는 예수 그리스도, 석가모니, 공자, 무함마드 등 4대 종단 성인의 초상이 ...
2025-10-10 21: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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준제파동
1963년 대한불교진각종의 창종자 손규상이 열반하고, 그 뒤를 이어 손정우가 총인직을 맡아 진각종을 이끈다. 손정우는 종단의 행정조직 및 교리체계의 정립에 힘쓰며, 특히 『응화성전』, 『총지법장』 등을 편찬하여 진각종의 교리체계를 정비한다. 그런데 진각종의 수행체계에서 준제진언(准提眞言)의 중요성에 대한 입장차이로 종단 내에서 논란이 일어난다. 이것이 준제파동이다. 준제파동에 관해서는 불교총지종과 대한불교진각종의 입장이 다르다. 즉, 대한불교 진각종에서는 육자진언을 중심으로 모든 교학이 확립되기를 바랐던 회당의 입장과는 달리, 손정우는 육자진언의 보조진언인 준제진언을 중시한 까닭에 발생한 것이라고 본다. 한편, 불교총지 ...
2025-10-09 2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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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립
증산교본부
이정립(李正立, 1895~1968)의 호는 남주(南舟)이다. 1895년 2월 19일 전라남도 해남군 삼산면 송정리에서 출생했다. 목포 영흥소·중학교를 졸업하고, 18세에 해남보통학교에서 교편생활을 하였다. 1914년 선도교(仙道敎)에 입교한 후, 일본에 건너가 1915년 동경고등사범학교에서 지리역사학을 전공했다. 1919년 보천교(普天敎)에 들어가 잡지 『보광(普光)』의 주필 및 사장직을 맡았으며, 1924년 보천교에서 인수하려 했던 《시대일보》주필을 맡기로 하였던 지식인이었다. 그러나 차경석과 뜻이 맞지 않아 형 이상호와 함께 보천교 개혁운동에 가담하였으나 여의치 않아 보천교를 탈퇴했다. 그 뒤 10여 년 동안 중국 ...
2025-10-08 21: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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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문산기도원
나운몽과 용문산기도원은 1950년대에는 변태성 신앙 운동가 혹은 사교로, 1960년대부터는 기성교회로부터 이단으로 몰렸다. 그의 종교운동을 변태성 신앙 운동과 사교로 규정한 곳은 대한예수교장로회 경북노회와 총회였으며, 그와 용문산기도원을 이단으로 규정한 것은 대한예수교장로회(고신파) 경남노회와 총회였다. 나운몽에 대한 이단론은 주로 여성 편력에 대한 의심, 한국사 또는 한국종교와 연관시킨 무리한 성서 해석으로부터 나왔다. 그는 한민족의 아브라함 친족설, 한민족의 원시 유일신 신앙, 몽학선생으로서의 유교와 불교를 주장했다. 그것을 잘 드러낸 설교가 1960년 2월 6일의 설교 “진리는 결박될 수 없다”였다. 이 설교에서 ...
2025-10-08 0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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