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 3974건
동도교
천도교 청년회 간부로 있던 이찬영(李贊榮)이 해방 후에 민족신앙 통일운동에 뜻을 두고 창건사(創建社)·동학연합회(東學聯合會)·동학영우회(東學靈友會)·동학회(東學會) 등을 조직하여 동학교인의 결속을 도모한바 있었다. 4.19혁명 이후에는 대전문화관에서 동학계·증산계 등 14개 교단을 모아 민족신앙연맹(民族信仰聯盟)을 조직하였다. 그런데 5.16 후 발표된 정부의 국산종교통합계획에 따라 증산교본부(대법사) · 보화교 · 수운교 등 12개 교단이 1961년 9월 대전문화원에서 종교연합체 동도교를 결성하여 서울 종로구 견지동 시천교에 본부를 두고 문교부에 등록하였다. 이 단체는 공식적으로는 단일종교의 명칭을 가지고 있었으나 실 ...
2025-07-07 16: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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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예수교오순절성결회
이 교단의 시초는 1947년 애향숙(愛鄕塾)에서부터 찾을 수 있다. 나운몽은 1940년 경북 김천의 용문산에 들어가 수도생활을 하던 중 1942년 성령을 체험하고 1947년 ‘애향숙’이라는 야학을 개설하여 그곳을 중심으로 오순절운동을 독자적으로 전개하였다. 애향숙 운동은 5가지 정신은 하나님 공경은 절대조건이며 이웃을 내 몸과 같이 사랑하며 흙에서 났으니 흙과 일생동안 벗하며 맡겨진 일에 충성하며 종신토록 배우는 자세를 가져야 한다는 5가지 정신이다. 이러한 애향숙 정신을 표방되는 나운몽은 한국전쟁으로 피폐해진 사회분위기 속에서 신비체험과 기도를 강조하는 신앙운동으로 기독교신자들에게 큰 반향을 일으키면서 용문산기도원과 ...
2025-07-07 13: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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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순진리회 훈회
대순진리회
대순진리회의 윤리적 실천 항목을 나타낸 것으로 총 다섯 가지 조항으로 이루어져있다. 첫째 마음을 속이지 말라. 둘째 언덕(言德)을 잘 가지라. 셋째 척(慼)을 짓지 말라. 넷째 은혜(恩惠)를 저버리지 말라. 다섯째 남을 잘 되게 하라. 이 다섯 가지 항목은 모두 대순진리로서의 해원상생 이념을 근본으로 하여 가정과 사회생활 전반에 걸쳐 두루 적용할 수 있는 실천 조목이라고 할 수 있다. 참고문헌 : 『전경』(대순진리회 교무부 1974) 『대순진리회요람』(대순진리회 교무부 1969) 『대순지침』(대순진리회 교무부 1984)
2025-07-03 16: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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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장 신앙촌
전도관
기장의 신앙촌은 전도관 박태선이 소사신앙촌 덕소 신앙촌에 이어 세 번째로 건설한 신앙촌이다. 신앙촌은 정기적으로 전도관 교인들이 모여 절기예배 집회를 하는 성지이며 신앙촌 주민들의 삶의 터전이다. 또한 죄와는 무관히 영원히 살아가는 곳이며 박태선이 약속한 천년왕국이자 박태선과 함께 영원히 살고자 했던 14만4천 의인들의 지상천국 공동체이다. 2010년 현재 흔히 신앙촌이라 하면 제3신앙촌인 기장 신앙촌을 가리키는 것이다.
2025-06-30 0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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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대한복음교회
최태용이 1919년 일본으로 건너가 우치무라 간조의 영향으로 무교회주의를 역설하며 귀국한 후 1925년에 잡지 『천래지성』(天來之聲)을 창간하고 의식이나 전례 그리고 교회건물 등의 교회제도에 구속받지 않고 성서만을 강조하고 구원은 신앙에 의해서만 이룰 수 있다는 점을 설파하였다. 『천래지성』은 4년 정도 지속되다가 폐간되고 1929년에는 『영과 진리』라는 잡지를 발행하였다. 그는 줄곧 신앙은 복음적이며 생명적이어야 하고 신학은 학문적이어야 하며 교회는 조선사람 자신의 교회이어야 함을 역설하며 새로운 교회의 창설이 시급하다고 선언하며 1935년 2월 ‘기독교조선복음교회’(基督敎朝鮮福音敎會)라고 이름 짓고 최태용 자신이 초 ...
2025-06-30 00: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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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인호
천도교
빈농의 집안에서 태어난 박인호는 아버지로부터 항상 정직하게 살라는 가르침을 받고 평생 이를 지켰다. 29세 때인 1883년 동학에 입도하여 스승 해월 최시형으로부터 가르침을 받고 예산을 비롯하여 서산 태안 홍성 등 내포지역에 동학 교세를 확장하였다. 1893년 1월 광화문에서 전개한 교조신원운동에 참여하였고 1893년 3월 10일 충북 보은 장내에서 전개한 척왜양창의운동에 참여하여 덕의대접주에 임명되었다. 1894년 1월 10일 동학농민혁명이 일어나자 이해 9월 예산에서 기포하여 내포지역을 중심으로 활동하였다. 동학농민혁명 이후 예산 금오산으로 피신하여 한동안 지냈으며 1898년 6월 스승 최시형이 순도(사망)하자 경기 ...
2025-03-28 14: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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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사영
천주교
본관은 창원(昌原), 자는 덕소(德紹), 세례명은 알렉시오이다. 강화도 출신이며, 신유박해 때 처형된 정약종(丁若鍾)의 처조카이다. 1790년 16세의 나이로 진사시에 합격하였으나 천주교에 입교한 후 신앙을 지키기 위해 관직 진출을 포기하였다. 1795년 주문모(周文謨) 신부를 만나 세례를 받고, 그의 측근이 되었다. 1801년 주문모 신부와 주변의 많은 사람들이 희생된 신유박해의 와중에 충청북도 제천의 배론(舟論)으로 피신하여 화를 모면하였다. 그는 이곳에서 신유박해의 참상을 전하고 천주교회의 재건을 호소하는 장문의 편지를 비단에 써서, 황심(黃沁)과 옥천희(玉千禧)로 하여금 비밀리에 북경주교에게 보내려고 시도하다가 ...
2025-10-11 23: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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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일교
본교는 이필례가 1944년 김제 만경에서 창립하였다. 1898년 김항이 사망한 후, 그의 10대 제자 중 하상역이 제2대 교주가 되었으나, 김항을 상제로 모시면서 신앙의 대상으로 하고 ‘윷판원리’로 정역을 해석하는 등 다른 제자들과 대립을 일으키게 되어, 따로 분립하여 ‘대종교’를 창립하여 포교활동을 시작한다. 이때 김영곤은 하상역의 대종교 창립에 동참하여 함께 포교활동을 전개하였으나, 곧 대종교에서 독립하여 하상역의 대종교와 대결적 입장을 취하게 된다. 1921년 김영곤이 사망하자 그의 제자인 임도봉(林道峰)이 도통을 계승하였으며, 포교망을 확장하는 등 교세를 키워 교단의 명칭을 ‘중앙대종교’로 정하였다. 1950년 ...
2025-10-10 22: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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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민란
제주도에는 1858년부터 가톨릭이 전래되기 시작하였고, 1900년 전후 프랑스 외방선교회 신부들이 부임하면서 교세가 크게 확장되었다. 이때 강봉헌이 제주도 봉세관으로 부임하면서 온갖 잡세를 부당하게 징수하였고, 이 일에 가톨릭 교도들을 채용하였다. 또한 교회가 부지를 매입하면서 신목(神木), 신당(神堂)을 없애는 등 제주도민의 문화를 무시하는 행위로 말미암아 도민들로부터 반감을 사고 있었다. 이에 대정군수(大靜郡守) 채구석과 유림(儒林) 오대현은 ‘상무사’라는 비밀결사를 조직하여, 봉세관과 교회에 대항하였다. 관노 이재수 등과 도민들은 일본인들로부터 입수한 무기로 무장하여 민란을 일으켰다. 제주성이 함락되었고 가톨릭 교 ...
2025-10-09 19: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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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각주
각세도
각세도계 종파에서는 신도들이 수련할 때 도조 이선평이 수행을 시작할 때 하늘로부터 받은 대보송, 깨달음을 얻은 후 하늘로부터 받은 원각주와 더불어 정각주, 정도령신주, 후천주, 탈각주, 보신주 등을 외우게 한다. 정각주는 ‘아아천지(我我天地) 무궁조화(無窮造化) 정각삼세(正覺三世) 동귀영계(同歸靈界)’로 되어 있다. 내용을 풀이하면, 내가 천지와 더불어 하나가 되면 무궁한 조화가 바로 자신에게 갖추어져 있음을 알게 되며, 이렇게 삼세의 이치를 바르게 깨닫게 되면 함께 신령스러운 세계로 돌아갈 수 있다는 것이다. 각세도천지원리교에서는 정각주의 교리를 해석하여 상생정도(相生正道)로 요약하기도 한다. 곧 양이 음에게 빛을 주 ...
2025-10-09 16: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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