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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법숭조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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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군마니숭조회의 별칭. 참고문헌 : 『한국신흥종교총람』(이강오 한국신흥종교연구소 1992)

2025-07-02 00: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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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림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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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불교진각종

대구광역시 달서구 이곡동에 위치하며 대한불교진각종의 종조 회당 손규상이 대각을 이룬 장소이다. 일찍이 불교경전의 연구와 전국의 명산대찰을 찾아 불법을 궁구하던 손규상은 1946년 가을 이곳 농림촌에 이르러 수행도량을 마련하고 49일 100일 정진 등의 수행을 계속하다가 1947년 5월 16일 육자진언(六字眞言)의 대지(大智)를 얻어 대각을 이룬다. 그리고 같은 해 6월 14일 이곳에서 진각종단의 개종을 선포한다. 현재 이곳에는 대한불교진각종의 최정심인당이 자리하고 있고 2003년 건립된 약 4m 높이의 ‘진각성존회당대종사대각지’ 표석이 있다. → 금강원 → 이송정 → 불승심인당 참고문헌 : 대한불교진각종 홈페이지(htt ...

2025-07-01 0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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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종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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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법교

동학계 신종교인 천법교(天法敎)의 창립자. →천법교 참조.

2025-07-01 00: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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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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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불교

김대거는 11세에 원불교에 입문하고 16세에 출가하여 박중빈과 송규의 경륜과 포부를 받들어 실현하는 데 정성을 다했다. 1962년에 정산종사가 열반하자 법통을 계승하여 2월 23일 49세에 종법사로 추대되었다. 김대거는 교도들의 법위향상을 위한 훈련강화 삼동윤리 실현을 위한 해외교화와 종교연합운동 전개를 강조했다. 또한 교화3대 목표운동(연원달기·교화단 불리기·연원교당 만들기)을 추진하여 원불교 교세를 2배 이상 신장시켰다. 그는 재위기간 동안 한국사와 세계사의 흐름을 통찰하면서 변화에 대한 비전을 제시하려고 노력했다. 1962년 10월 발표한 ‘신생활운동요강’은 새마을운동의 이념적인 토대가 되었다고 볼 수 있다. 또한 ...

2025-06-30 15: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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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갑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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갱정유도

김갑조는 일찍 부친을 여의고 편모슬하의 불우한 환경에서 광의국민학교와 구례중학교를 졸업했다. 1950년 갱정유도에 입도하고 1951년 전라남도 순천으로 이사를 했다. 1954년 이른바 ‘대화중흥국(大和中興國)’ 사건으로 강대성이 사망한 뒤 교단 내부가 안정을 찾지 못하던 시기에 김갑조는 순천시 장천동 오봉산 아래 자신의 집에서 첫 번째 15일 수련을 하였고 좀 더 조용한 순천시 용수동으로 수련장소를 옮겨 몇 차례 더 수련을 하였다. 그리고 1957년에는 광양군 백운산으로 입산하여 영대암(靈大庵)이라는 암자 터에 움집을 짓고 100일 수련을 하였다. 그러던 중 1958년 2월 24일(음) 새벽에 갑자기 마당에 나와 동쪽을 ...

2025-06-30 15: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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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대한복음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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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태용이 1919년 일본으로 건너가 우치무라 간조의 영향으로 무교회주의를 역설하며 귀국한 후 1925년에 잡지 『천래지성』(天來之聲)을 창간하고 의식이나 전례 그리고 교회건물 등의 교회제도에 구속받지 않고 성서만을 강조하고 구원은 신앙에 의해서만 이룰 수 있다는 점을 설파하였다. 『천래지성』은 4년 정도 지속되다가 폐간되고 1929년에는 『영과 진리』라는 잡지를 발행하였다. 그는 줄곧 신앙은 복음적이며 생명적이어야 하고 신학은 학문적이어야 하며 교회는 조선사람 자신의 교회이어야 함을 역설하며 새로운 교회의 창설이 시급하다고 선언하며 1935년 2월 ‘기독교조선복음교회’(基督敎朝鮮福音敎會)라고 이름 짓고 최태용 자신이 초 ...

2025-06-30 00: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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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극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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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관은 안동(安東) 자는 정지(正之) 호는 청하(靑霞)이다. 전라도 고부(古阜 오늘날의 정읍)에서 태어났다. 13세 때부터 김장생(金長生)의 문인인 최명룡(崔命龍)에게서 성리학을 배웠고 28세 때인 1612년에 사마시(司馬試)에 합격하였다. 1613년 인목대비(仁穆大妃)가 폐출되자 은둔할 뜻을 품고 도교(道敎)의 내단사상(內丹思想)을 연구하기 시작하였으며 55세 때인 1639년 『참동계주해(參同契註解)』를 저술하였다. 이 책은 내단사상의 기본 경전인 『주역참동계(周易參同契)』를 주해한 것으로 조선시대 도교사상을 대표하는 저서이다. 여기서 그는 역(易)에 의거하여 내단사상을 정초(定礎)한다는 단역참동론(丹易參同論) 선불교 ...

2025-06-03 15: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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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성교지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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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암 이승여가 처음부터 ‘금강도(金剛道)’라는 이름을 내세웠던 것은 아니다. 최초의 이름은 포덕을 시작하고 12년이나 지난 1922년에 일본불교의 이름을 빌려서 진종동붕교(眞宗同朋敎)라고 한 것이 처음이다. 1926년에 이르러 ‘관성교지부’ 간판을 걸고 관성제군의 소상을 봉안하였는데 제자들이 주장하기를 “우리 대성사부님(토암)께서 천명을 받으신 이래로 관성이 음조하는 일이 많으니 마땅히 진종동붕교 간판을 폐하고 관성교지부 간판을 거는 것이 옳다.”하여 서울 관성교 본부에 연락하고 그 간판을 걸었다는 것이다. 1910년 남천포덕 이후 토암은 주로 관성신앙의 가르침을 중심으로 포덕을 하였다. 1912년에는 제자를 시켜 전주 ...

2025-05-29 00: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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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남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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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화교

태화교(太和敎)를 창립한 고남규(高南圭 생몰년 미상)는 제주도에서 태어났다. 26세에 일본에 건너가 약학을 전공 한의원을 경영하다가 1940년에 귀국하여 전라북도 정읍에서 한의원을 경영했다. 1945년 김봉남을 처음 만났을 때는 그의 물법을 조소하였다. 1948년 12월 시험 삼아 봉남의 청화산 수련에 참여하였다. 이 수련에서 뜻하지 않은 신비를 체험한 그는 봉남을 수종 봉남이 가장 신망하는 제자가 되어 봉남의 태화진리(太和眞理)와 특수수련의 방법까지 받았다고 한다. 봉남이 사망하고 난후 봉남교단본부 설치가 이루어졌으나 얼마 가지 못하고 와해되고 제자들이 각기 한 교파를 세우자 고남규도 문필송(文弼松)과 함께 고향에서 ...

2025-05-24 18: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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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세도남관(전태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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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세도

각세도 도조 이선평은 교단을 동서남북의 사관(四觀)으로 나누어 운영하였고 제자 4명을 각 관의 도주로 임명하여 관리하도록 하였으며 본부에서 자신이 이를 통솔하려 하였다. 그러나 이선평의 생존 당시부터 각세도는 각 관을 중심으로 분란이 있었으며 당시 남도주였던 김해제는 ‘천인교’를 만들어 독립한 것으로 보인다. 이후 이선평에 의해 천암(天庵)이라는 도호를 받은 장명성(張名聲)이 남도주로 바뀌게 된다. 1956년 이선평이 사망하자 남도주 장명성은 ‘대각교’라는 명칭으로 독자적인 길을 걷게 된다. 장명성이 사망하자 그의 제자였던 임선호(任善鎬)․정수성(鄭秀星)․전태성(全泰成)․한병헌(韓炳憲) 등이 다시 분파하여 독자적인 교단 ...

2025-05-14 1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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