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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산진법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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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산진법회(甑山眞法會)를 창립한 배용덕(裵容德, 1916~1998, 본명 基淳, 호 天光)은 1916년 8월 12일 함경남도 고원군 상산면 회목리에서 태어났다. 1938년에 일본 메이지대학(明治大學)을 졸업했다. 학교를 졸업한 후 학도징용병으로 끌려가 노동을 하던 중 해방을 맞았다. 해방 후 여러 가지 사회활동을 하다가 1962년부터 증산교단연합운동에 참여하는 한편 1973년에는 서울 동대문구 전농 4동 자택에 ‘증산진법회’라는 교단을 창립했다. 1974년에는 ‘증산사상연구회(甑山思想硏究會)’를 발족시켜 사상강연회와 학술지를 매년 발행함으로써 증산사상의 현대적 해설을 시도했다. 여기에 발표자로 동원된 학자들은 한국종교 ...

2025-10-09 22: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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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산유해쟁탈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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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극도의 조철제(趙哲濟)는 1921년 8월 선돌부인과 강순임 등을 데리고 금산면 청도리에 있는 강일순의 초빈에서 유골을 수습하여 전라북도 정읍군 감곡면 통사동으로 옮겨가 공부방 상좌에 안치한 다음 조석으로 치성을 올렸다. 이 무렵 문공신은 조철제가 강일순의 유골을 가지고 만주로 가려한다는 소문을 듣고 강일순이 재세 시에 자기에게 ‘내 뼈가 조선을 떠나면 안 되리라’라고 한 말을 상기하고는 큰일 났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1922년 1월 23일 자기 심복 김정우로 하여금 장정 20여명을 거느리고 유골이 있는 통사동 제각을 습격하여 거기 있던 사람들을 구타하고 유골과 현금 등을 빼앗아 갔다. 조철제는 강일순의 유골 중에 왼쪽 ...

2025-10-09 22: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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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화동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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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교의 정식명칭은 유일무극대도진도학제화교제화동대도(唯一无極大道眞東學濟和敎帝和東大道)이다. 김형규는 보천교에서 탈퇴하고 수도생활을 하다가 보화교 교주인 김환옥(金煥玉)을 만나 보화교에 입도하게 된다. 그는 1959년 원평 보화교 본부에서 수련하던 중 최제우의 접령으로 명도사자(明道使者)의 신명(神命)과 강일순과 김환옥의 신교(神敎)를 동시에 받게 되었다고 한다. 1962년 그는 이한우(李澣雨, 호 月明)와 협의하여 보화교 내에 ‘유일무극대도진동학대도문(唯一无極大道眞東學大道門)’이라는 간판을 걸고 보화교와 별개 종단을 형성하게 되었다. 그래에 전라북도 정읍 남산동으로 이전하여 포교하다가 1962년에 교명을 유일무극대도진동학 ...

2025-10-09 19: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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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춘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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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주교

임춘생은 1915년 1월 5일 전북 김제군 금구면 산동리에서 아버지 임필상(林弼相)과 어머니 밀양박씨의 3대 독자로 태어났다. 그는 어려서부터 영특하여 강습소에서 가르치는 내용에는 관심이 없고 심오한 영리(靈理 ) 문제에만 몰두하였다고 한다. 수년간 수도를 계속하던 그는 영이지지(靈 而知之)하는 능력을 이루게 되고 하늘로부터 “인간을 주재하여 천도하라”는 계시를 받게 된다. 이러한 종교체험을 통해 그는 1937년 3월 15일 전북 완주군 소양면 쌍계사에서 창립총회를 개최하고 영주교를 창립하게 되었다. 이후 본부의 이전을 거듭하다가 1970년 10월 경기도 파주군 광탄면 용미 3리 373번지로 이전하여 종교활동을 지속하다 ...

2025-10-09 00: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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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련정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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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종은 일본의 일련종 8개파 중 후지산의 다이세키지파[大石寺派]가 1912년 스스로를 일련정종(日蓮正宗)으로 칭하면서부터 시작된 불교 종단이다. 당시 교세는 미미하였지만, 1930년대 마키구치 츠네사부로(牧口常三朗, 1871~1944)가 본종에 입문하여 창가교육학회(創價敎育學會)를 조직하면서부터 급속도로 성장하였다. 창가학회는 사교퇴치운동(邪敎退治運動), 절복운동(折伏運動) 등을 조직적으로 행하는 한편, 정교일치운동(政敎一致運動)을 개시하여 1956년 창가학회정치연맹을 결성하기도 하는 등, 종교·사회·정치의 다방면에서 전국적인 조직으로 활동하며 비약적인 성장을 이룸에 따라 일련정종의 교세 역시 일본 전역으로 확산된다. ...

2025-10-08 2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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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일학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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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불교

유일학림은 해방 후 교단의 인재양성을 위한 교육기관 설립의 필요성에 의해 1946년 5월 1일에 중앙총부의 공회당에 개설되었다.(학림장 박장식, 학감 박광전) 중등부와 전문부의 2부 편제로 수업연한은 각 3년이었으며, 교과목은 『정전』을 비롯한 교학과목과 불교학을 비롯한 교양과목들을 아울러 학습하게 했다. 제1기생으로는 중등부 남녀 46명, 전문부 남녀 34명이었다. 이 유일학림이 모체가 되어 후일 중등부는 원광중·고등학교 및 원광여중·고등학교로, 전문부는 원광대학교로 각각 발전했다. 유일학림은 정규교육기관을 통한 교단의 인재양성의 요람이 되었고, 박중빈이 만년에 부촉한 교화·교육·자선의 3대 사업목표의 한 분야를 담당 ...

2025-10-08 18: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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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불교대학원대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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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불교

원광대학교 또는 영산선학대학교에서 원불교학을 전공하고 학사학위를 취득한 자를 입학자격으로 하며, 원불교학 석사과정을 교육하기 위한 학교로 설립한 대학원대학교이다. 설립주체는 재단법인 원불교로서 원불교가 교육용 기본재산을 출연하여 1997년 9월 ‘원불교대학원대학교’ 설립인가를 받음으로써 공인된 학교가 되었다. 원불교대학원대학교의 전신은 동산훈련원이며, 동산훈련원은 동산선원으로부터 명칭 변경한 것이다. 동산선원은 원광대학교 원불교학과와 함께 교역자 양성기관의 양대 산맥으로 자리매김해 오다가 사회 환경이 고학력자 중심으로 변화되고 전무출신의 자격을 고졸이상으로 제한함에 따라서 기존의 선원을 대학과정으로 변경, 영산대학을 설 ...

2025-10-08 0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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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화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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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전은 교조 당대에는 『미륵상생경』·『용화보전(龍華寶典)』·『만법전』·『현무실기(玄武實記)』 등이 있었다. <참고문헌> 『용화보전』(박남천, 용화불교전법원원각사, 1957) 『한국신흥종교총감』(이강오, 한국신흥종교연구소, 1992)

2025-10-08 0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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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행기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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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영성운동

오행(五行)이란 목(木), 화(火), 토(土), 금(金), 수(水)의 5가지 근본물질로서, 동양에서는 고래로 이들의 상호작용에 의해 만물이 생성된다는 관념을 형성시켰다. 오행은 주역(周易)의 홍범(洪範)에 잘 설명되어 있다. 오행의 질서는 사람의 신체기관에도 적용되어, 간과 쓸개는 목, 심장과 소장은 화, 비장과 위는 토, 폐와 대장은 금, 콩팥과 방광은 수의 기운을 나타내며, 서로 상생·상극관계를 이룬다고 한다. 즉 오행상생(五行相生)이란 오행의 운행에 따라 서로 다른 것을 돕는 관계이며, 오행상극(五行相剋)은 방해한다는 뜻이다. 목기(木氣)는 머리의 윗부분을 에워싸고 위로 뻗는 감각으로, 화기(火氣)는 머리카락이나 ...

2025-10-07 23: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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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전개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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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일전쟁을 앞두고 1935년부터 조선총독부는 조선인을 중일전쟁에 효과적으로 동원할 수 있는 완벽한 황국신민으로 만들려는 정책의 일환으로 조선 민중의 의식에 일본의 국체인 천황과 국가신도에 대한 관념을 각인하기 위해 여러 종교와 교육을 이용해 의식개조운동을 대대적으로 벌였는데, 이를 ‘심전개발’이라고 하였다. 1936년 총독부 발표는 심전개발의 목표를 국체관념(國體觀念)의 명징(明徵), 경신숭조(敬神崇祖)의 사상 및 신앙심의 고취, 보은·감사·자립정신의 함양 등 세 가지로 집약하였다. 여기에 일본 불교와의 교류로 친일 불교 승려들이 주도적으로 참여시켰고 무속(특히, 洞祭)을 신도와 동화시키는 정책을 펴기도 했다. 점차 조 ...

2025-10-07 00: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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