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 3974건
진오귀굿
죽은 직후 또는 얼마 지나지 않아 하는 것을 진오구, 죽은 지 1년 이상 지난 후에 하는 것을 마른오구라고 한다. 대개 죽은 사람 개인을 대상으로 굿을 하는데 미혼으로 죽은 경우에는 영혼결혼식을 먼저 치르기도 하고, 물에 빠져 죽은 경우에는 넋건지기굿을 먼저 한 다음 오구굿을 한다.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는 대가집에서는 새남굿을 하고, 일반 가정에서는 평진오귀굿을 행한다. 새남굿은 재수굿을 먼저 하고 진오귀굿을 한다. 진오귀굿은 부정→가망청배(앉아서 행함)→진적→상산→별성→신장→영실→구조상→대감→창부→시왕사자→말미→도령돌기→배째기→상식→후영실→뒷전의 순으로 진행된다. 진오귀굿에서도 가장 중요한 거리는 망자를 저승으로 데려 ...
2025-10-09 23: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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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산교고사모파
선도교(태을교)를 세운 고판례(高判禮)가 이상호의 동화교와 합작하여 약 2년간 용화동에 머물다가 1933년 겨울 전라북도 옥구군 성산면 오성산에 집을 짓고 이주하여 동화교회수양소라는 간판을 걸었다. 그러나 고판례가 1935년에 사망하자 그를 추종하던 고민환·이용기·백윤화가 제각기 교통을 받았다며 각자 다른 교당을 짓고 교법도 달리 포교하였는데 이들 교파를 증산교고사모파라고 한다. 고민환(高旻煥, 1887~1966)은 500석 지기의 부호로 군산 은적사에서 승려생활을 했었다. 사욕이 없고 남과 시비하는 것을 싫어했다. 고판례를 만나 성포(聖圃)라는 호를 받고, 고부인은 그에게 도장의 모든 일을 맡겼다. 훗날 강일순과 고판 ...
2025-10-09 21: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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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대종교
김항의 사망 후, 제2대 교주가 된 하상역은 김영곤 등과 함께 ‘대종교(大宗敎)’를 창립하여 종교활동을 본격화하였으며, 한때 수만에 이르는 신도가 모이기도 하였다. 교단이 커진 후 김항의 제자들은 각자가 후계의 정통성을 주장하면서 분열하였고, 김영곤은 하상역에 맞서 연산과 공주지방에서 새로운 교단을 형성하였다. 그러나 따로 교단명칭을 정하지 않고 김항이 생존시 부르던 ‘무극대도’를 그대로 사용했다. 1921년 김영곤이 사망하자 그의 제자 임도봉(林道峰)이 도통을 계승하였고, 전북지방까지 포교 영역을 넓혀갔다. 특히 임도봉은 계룡산 신도안에 ‘중앙대종교’라는 간판을 걸고 포교하였고, 무극기와 함께 태극기를 게양하였다. 그 ...
2025-10-09 21: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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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송광
입교 후 원평교당 창설에 앞장섰으며, 1928년 제1대 제1회 기념총회에서 불법연구회 제2대 회장에 피선되어 교단 초창의 대소사에 깊이 관여하게 된다. 1931년 3월, 총회에서 불법연구회 회장에 재선된 조송광은 그 해 8월, 소태산과 더불어 부산·경주 등 경상도 일대를 순회했다. 원불교 교단 최초의 해외 교화가 그에 의해 시작되었다. 1931년 11월 장남 수환이 직장생활을 하고 있는 일본 오사카로 가족들을 데리고 이주했다가 그곳에서 한의원을 열어 오사카교당의 터전을 만들어 놓고 귀국하였다. 1936년까지 9년간 불법연구회 회장을 역임한 조송광은 그 이후 16년간 원평교당 교도회장으로서 지역 교화 발전에 적극 노력했다 ...
2025-10-09 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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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성옥황상제
대순진리회
대순진리회 『대순지침』의 내용에 따르면 “구천상제(九天上帝)님의 계시를 받으신 도주(道主)님께서 종통을 세우셨다.”라고 하고, “도주님께서 진주(眞主: 15세)로 봉천명(奉天命)하시고 23세시에 득도하심은 태을주(太乙呪)로 본령합리(本領合理)를 이룬 것이며, 전경에 12월 26일 재생신(再生身)은 12월 4일로써 1년 운회의 만도(滿度)를 채우실 도주님의 탄생을 뜻하심이다.”라고 하여 도주 조철제가 강일순 구천상제로부터 종통을 계승하였음을 밝히고 있다. 도주 조철제는 1925년에 종단 무극도를 창도하여 대순진리에 의한 종교활동을 시작하였으며, 해방이후 1948년에 다시 종교활동을 부활하여 도인(道人)의 각종(各種) 수도 ...
2025-10-09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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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수련도장
대순진리회
전국에 분포한 다섯 군데의 대순진리회 도장 가운데 제주도에 위치한 수도장이다. 연건평 1,708평으로 지하 1층 지상 7층의 건물로 이루어져 있다. 1989년 3월 2일 제주도수련도장 기공식을 시작으로 동년 6월 30일 영대 상량식을 거행하였다. 그해 7월 26일에 강증산 구천상제 화천치성 겸 영대봉안치성을 올렸다. 노형동은 신제주 오거리 교통의 요지로 그 지명에서 알 수 있듯이 노인(신선)이 저울질 하는 곳이라는 의미의 선기옥형혈(璇璣玉衡穴)이다. 도장이 완공된 후 1989년 10월부터 1개 반 120명으로 짜여진 연수가 5박 6일의 일정으로 진행된 바 있다. <참고문헌> 『대순진리회요람』(대순진리회 교무부, 1969 ...
2025-10-09 19: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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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역사상
『정역』은 복희씨가 팔괘를 그은 이래로 선진성통(先秦聖統)을 따라 공자의 십익(十翼)으로 완성된 선진유학의 철학적 근거를 제공한 『주역』 중심의 역학원리를 철저히 계승하였다. 그리고 한대 이후 역학의 연구 성과를 선택적으로 수용하며, 특히 송대역학의 양대 특징인 소강절의 선후천역학(先後天易學) 이론과 주자·채원정의 도서역학(圖書易學) 이론을 일단 긍정하면서도 한·송대의 역학을 넘어서는 역학의 새로운 경지를 밝히고 있다. 『정역』이 밝힌 명제는 한대 이후 유학이 개척한 경학(經學)과 성리학(性理學)의 세계를 싸고 넘어서서 선진성학의 문제인 천명원리로 환원하여, 그 진면목인 종교적 진리를 역학적 입장에서 재천명하는 데까지 ...
2025-10-09 18: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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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득은
정득은의 출신지는 명확하지 않으나 평양에서 활동한 것은 분명하다. 1897년 출생하고 신앙생활의 방황을 겪으며 살다가 43세가 되던 1939년 신앙체험 후 ‘성신의 불을 받아 난치병을 기도로써 쾌유케 하는 영통력의 소유자’로 이름을 날렸다. 황국주의 광해교회에 출석하였다고 한다. 그녀는 황국주로부터 피가름 원리를 배우고, 삼각산기도원을 설립하여 기도원 운동을 통한 토착적 신앙운동의 전통을 형성했다고 평가된다. 「생의 원리」라는 저서를 통해 ‘피가름 원리’를 설명하면서, 인간이 타락할 때 뱀의 더러운 피를 받았기 때문에 인간의 몸에는 더러운 피가 섞여 흐르는데, 그것을 깨끗하고 성스러운 성신의 피로 정화해야 한다는 피가름 ...
2025-10-09 17: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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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용해
백백교
백도교(白道敎)의 창시자 전연운이 사망하자 1923년 우광현(禹光鉉)을 교주로 삼고 경기도 가평에서 백백교를 창시하였다. 이후 교주가 되어 신도들을 현혹하여 금품을 갈취하고 여신도를 속여 간음을 했다고 한다. 범죄행각이 발각되어 수사가 착수되자 그는 피신하다가 경기도 양평의 도일봉(道一峰)에서 자살하였다. 그의 두개골은 일제 경찰에 의해 범죄형 두뇌의 표본으로 보관되었다. 해방 이후 국립과학수사연구소가 인수받아 보관 해오다가 2011년 10월 25일 폐기되어 화장됐다.
2025-10-09 16: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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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오교변
1923년 11월 김교헌(金敎獻, 1868~1923)이 사망(조천:朝天)한 직후, 윤세복(尹世復, 1881~1960)이 1924년 1월에 영안현 남관(寧安縣 南關)에서 제3대 도사교로 취임하지만 1925년 6월에 한인(韓人) 취체(取締·단속)에 관한 조약인 삼시조약(三矢條約, 일명 미쓰야협약)이 체결되어 대종교는 존립에 어려움을 겪었다. 당시 길림성장 겸 독군(督軍)인 장작림(張作霖)과 조선총독부 경무국장 미쓰야 미야마쓰(三失宮松) 사이에 체결된 삼시조약에는 한인독립운동가의 인계와 보상금에 관한 사항 외에 부대조항에 대종교의 포교 금지 또는 해산에 관한 조건이 포함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대종교는 1928년 1월에 총본사 ...
2025-10-09 00: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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