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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경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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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천교(普天敎)

차경석은 1880년 6월에 전라북도 고창군 부안면 연기동(당시 고부군)에서 동학농민전쟁 당시 정읍의 동학접주인 차치구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일찍이 진보회와 일진회에 가담했던 차경석은 한때 일진회 전라남북도 순회관(巡廻官)을 지내기도 하였다. 1907년 6월에 강일순(姜一淳)을 만난 그는 1908년에 일진회를 정식으로 탈퇴하였다. 강일순을 자신의 집에 머물도록 한 차경석은 자신의 이종자(姨從姉)인 고판례(高判禮)로 하여금 강일순의 천지공사(天地公事)에 참여하도록 하였다. 강일순과 고판례의 기행 이적으로 모여든 사람들을 차경석이 교단형태로 조직하였는데, 이들을 세간에서는 선도교(仙道敎) 또는 태을교(太乙敎)라 하였다. 선도 ...

2025-10-09 23: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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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산진법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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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산진법회(甑山眞法會)를 창립한 배용덕(裵容德, 1916~1998, 본명 基淳, 호 天光)은 1916년 8월 12일 함경남도 고원군 상산면 회목리에서 태어났다. 1938년에 일본 메이지대학(明治大學)을 졸업했다. 학교를 졸업한 후 학도징용병으로 끌려가 노동을 하던 중 해방을 맞았다. 해방 후 여러 가지 사회활동을 하다가 1962년부터 증산교단연합운동에 참여하는 한편 1973년에는 서울 동대문구 전농 4동 자택에 ‘증산진법회’라는 교단을 창립했다. 1974년에는 ‘증산사상연구회(甑山思想硏究會)’를 발족시켜 사상강연회와 학술지를 매년 발행함으로써 증산사상의 현대적 해설을 시도했다. 여기에 발표자로 동원된 학자들은 한국종교 ...

2025-10-09 22: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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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산교본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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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전은 『대순전경』, 『현무경』 등 여러 가지가 있다. <참고문헌> 『증산교사』(이정립, 증산교본부, 1977) 『범증산교사』(홍범초, 범증산교연구원, 1988) 『大巡哲學』(이정립, 대법사, 1947)

2025-10-09 22: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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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교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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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주교

1901년(신축년) 제주도민들이 천주교와 중앙에서 파송된 봉세관의 횡포에 저항하면서 생긴 충돌은 천주교 신자 300여명이 학살되고 많은 제주도민이 죽거나 사형을 당한 유혈 사태로 발전했다. 제주교안은 토착신앙이 강한 제주도민들 사이에서 선교사의 치외법권에 힘입어 급성장한 천주교에 대한 반감, 선교사의 비호 아래 권력을 휘두르고 사당이나 제사 등 토착 신앙을 파괴한 조선인 신자들에 대한 미움, 세제(稅制)와 관련하여 토호세력과 중앙에서 파송한 봉세관(捧稅官)의 갈등, 봉세관이 세금을 걷는 마름으로 고용한 천주교 신자의 전횡 등이 뒤얽혀 일어났으며, 경과와 수습과정에서도 프랑스 함대의 출동과 희생자들에 대한 배상요구, 일본 ...

2025-10-09 19: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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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음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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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6년 서무부서기로 임명되어 교무사무를 아울러 5년간 근무했다. 1932년부터 3년간은 연구부장과 교무부장을 지냈고 다시 2년간 교무부장을 맡으면서 총부구내에 야학원을 만들어 100여명의 아동을 교육시키기도 했다. 박중빈과 최초로 은부자(恩父子)의 결의를 맺고 가까이서 시봉을 하며 지도를 받았으며, 박중빈의 꾸중과 칭찬을 누구보다도 많이 받으며 인격을 도야했다. 그는 언론사업과 공익사업에 관심을 많이 두었다. 현재 월간지 『원광』과 각종 공익자선사업의 밑받침이 되었다. 일정(日政)말기 원불교가 어려운 문제에 직면할 때마다 전음광은 일본 경찰과 접촉하여 침착하고도 능란한 말과 글로 그들을 감화시켰다. 이렇게 전음광은 ...

2025-10-09 16: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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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산단군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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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사당의 창립자인 이진탁은 41세 되던 1900년에 백두산에 입산하여 단군의 영적인 계시를 받았다고 한다. 그 후 구월산과 지리산, 계룡산 등을 돌아다니며 기도수련을 하였으며, 계룡산 신도안으로 이사하여 독자적인 단군신앙을 하다가 1909년 서울에서 나철과 정훈모 등에 의해 단군교(대종교)가 창립하는 것을 보게 되었고, 1913년에는 동지 박내인(朴乃人)의 협력으로 자택에 단군전을 세우게 된다. 작산단군전은 1913년에 설립되어 1930년에 정훈모에 의해 설립되는 시흥단군전보다 17년 앞선다는 점에서 근대 이후 한국 단군전의 효시가 된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이진탁은 단군을 모시면서도 동시에 황제와 공자까지 모셨으며 ...

2025-10-09 15: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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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주인간창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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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주일주평화국(宇宙一主平和國)

일주인간창조(一主人間創造)란 우주평화일주국의 4대 사명 중 하나로 ‘한님 같은 사람으로 인간을 개조함’을 의미한다. 평안북도 출신의 양도천은 1964년 계룡산에 입산 특별기도를 하다가 “우주가 ‘한님’의 집이며, 새 역사 창조의 사명이 한국에 있고, 그 사명자가 바로 자신이며, 계룡산이 그 근거지”라는 사실을 깨달은 뒤, 그 해 충청남도 논산시 두마면 석계리 계룡산 성도봉(成道峯) 아래에 ‘하나님의 집 공회’라는 간판을 걸고 종교활동을 시작하였다. 1969년 ‘세계일가공회’로 이름을 바꾸었으며, 1979년에는 ‘세계일주국’으로, 그리고 1980년에는 ‘세계일주평화국’으로 다시 개칭하였다. 1981년에 스스로 성황(聖皇) ...

2025-10-09 0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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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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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교(人天敎)를 창립한 한병수(韓丙洙)는 일찍이 보천교(普天敎)에 들어가 12임으로 활동했다. 그러다가 신도(神道)에 통하였다고 하면서 스스로 태을진인(太乙眞人)이라 하며 서울 필운동에 인천교라는 간판을 걸고 포교하였다. 그가 사망하자 그의 제자 이덕제(李德帝)가 계승하여 한국전쟁 이후로는 대전에 본부를 두고 활동했다. <참고문헌> 『한국신흥종교총감』(이강오, 한국신흥종교연구소, 1992)

2025-10-08 2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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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교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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삭발교

이교부(李敎夫)는 1940년 7월 전북 김제에서 출생하였다. 그는 어려서부터 열심히 교회생활을 했는데 30리나 떨어져 있는 곳까지 가서 전도를 하여 ‘예수에 미친 아이’라는 소리를 들었을 정도로 열정적인 교인이었다. 1968년 8월 부흥회에서 철저한 성경중심의 생활을 강조하는 부흥목사 김현봉 목사에게 감명 받고, 그 목사 계열의 교회로 옮겨서 김현봉 목사처럼 머리를 빡빡깍고 검정바지, 저고리를 입고 검정고무신을 신고 다니면서 금욕생활과 율법적 생활을 했다고 한다. 그와 관련해서 유명한 사건은 ‘나체 댄스 사건’인데, 1978년 12월 3일부터 1979년 1월 11일까지 이교부 목사가 자신의 신도들과 함께 나체 춤을 추면 ...

2025-10-08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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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공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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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불교

어려서부터 자질이 총명하였으며 1909년에서 1913년까지 대한제국 황실의 윤(尹)황후의 시독으로 창덕궁에 입궐하여 『논어』·『심상소학독본』 등을 공부했다. 1913년부터 1916년까지 경성여자보통학교(현 경기여고) 본과를 수료했다. 1916년 박장성(朴將星)과 결혼하여 두 아들을 낳았으나, 1922년에 부군이 별세했다. 1924년 10월 소태산을 만나 입교했다. 1927년 5월에 교단최초의 수양교과서 『수양연구요론』(소태산 술)을 편집·출판했으며, 영산 방언공사에 따른 부채를 탕감했다. 1930년 4월 출가하여 서울교당 교무, 여자수위단 조직과 함께 중앙단원에 선출, 1932년 5월 서울교 당 부지를 마련하여 신축, ...

2025-10-08 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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