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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재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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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리교

천리교는 해방 후에 국내 사정 상 천경수양원, 대한천리교연합회, 대한천리교본원으로 이름을 바꾸었다. 1955년에는 최초의 분열이 일어나 독자적 자주교단을 표방하는 대한천리교본원, 일본과의 연계를 지향한 대한천리교교리실천회, 교회간의 연합회 형식을 주장한 대한천리교연합회로 분열되어 각각 활동하게 된다. 최재한이 이끌던 원남성 교회는 진해를 중심으로 활동한 대한천리교교리실천회에 일시적으로 합세하였지만 이탈하여 부산교구를 만들었다. 이후 대한천리교교리실천회는 재정비하여 천리교연합회를 결성한다. 1961년 대한천리교연합회 임원들에게 일본 천리교교회본부는 한국전도청 개설에 참여를 지시하고, 진해에 공개적으로 개설한다. 전도청장은 ...

2025-10-11 0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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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수봉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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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층신앙, 동학 천도교

오래 전부터 민간에서 행하던 신앙의 한 형태이다. 맑고 깨끗한 물을 그릇에 담아 장독대 등에 모셔두고 기원을 비는 민간신앙의 의례 중 하나이다. 이러한 물을 정화수(井華水)라고도 부른다. 동학 천도교를 비롯한 증산계통의 여러 교단, 그리고 수운교 등에서 초기부터 ‘청수(淸水)’라는 이름으로 모든 신앙의 의식에 봉헌되었다 초기 동학에서부터 행해지던 청수봉전은 해월(海月)대에 이르러, 모든 제례에서 제물을 차리는 대신에 오직 청수일기(淸水一器) 만을 모시는 제례로 바뀌게 되면서 더욱 중요한 종교적 의미를 띠게 되었다. 특히, 1875년 설법제(說法祭)를 행하는 자리에서 해월 신사가 강화(降話)로써 “앞으로는 청수일기만으로 ...

2025-10-11 0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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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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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강대도

청결은 신명을 모시는 기본자세이다. 정성된 신앙의 표현으로서 모든 종교의 공통적인 의식이라고 볼 수 있지만, 금강대도에서는 치성(致誠)이나 제향을 올릴 때 망자의 시신이나, 음식, 피에 대한 금기를 철저히 함으로써 건곤부모에 대한 정성과 공경을 표현한다. 또한 수도의 과정에 있어서도 청결은 심청신안(心淸神安), 즉 안정의 기틀이 된다 하여 불노불후(不 老朽)의 묘약이라고 하며, 병겁을 면하게 하는 보결로 생명을 보존하는 길이 되기도 한다는 것이다. 토암은 청결에 대해 심성 청결, 신체 청결, 의류 청결, 음식 청결, 가택 청결 등으로 나누어 자세하게 설명하고 있는데, 그 중에서도 심성의 청결을 가장 중시한다. <참고문헌 ...

2025-10-10 23: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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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우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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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우교의 신앙 대상은 옥황상제〔桓因〕이다. 옥황상제 외에도 환웅과 단군, 산신, 용신, 칠성, 오방신장 등이 숭배되고 있다. 1988년 전국 무속인들의 연합체였던 ‘대한승공경신연합회(大韓勝共敬信聯合會)’를 종교단체화한 것이 바로 천우교이다. 천우교는 각 지역 무속 대표자들이 1988년 5월 남이섬에 모여 창교를 선포하고, 같은 해 11월에 『천우교 교리서』까지 발간하였다. 대한승공경신연합회는 1971년 무당과 점복자들이 모여 조직한 단체로 2000년도 남북화해의 흐름을 타면서 ‘승공’을 뺀 ‘대한경신연합회’로 행정자치부에 사단법인으로 등록됐다. 대한경신연합회의 설립목적은 전통적 무속문화의 연구개발과 그 보존을 통해 승공 ...

2025-10-10 2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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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성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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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세도의 창립자인 정석문은 1949년 각세도 남관에 입교하여 활동하게 된다. 그러나 그는 남관이 이병태와 한병헌, 임선호, 정수성, 전태성 등에 의해 분파되는 과정에서, 각세도에서 이탈하여 자택에서 수도하게 된다. 그러던 중 태양신(太陽神) 일정선생(日精先生)의 영감으로 ‘일월도(日月道)’라는 도명(道名)과 주문(呪文)을 받고, 일월도를 설립한다. 하지만 각세도 교인들이 많이 있는 지역에서 교세확장에 어려움을 겪던 그는 ‘진실한 도란 사람마다 가지는 자기의 천성에 있다는 것을 천명에 의한 것’이라고 주장하고 교명을 ‘천성도’로 바꾸었으며, 1955년 충남 금릉군 대덕면 화전리로 이전하여 본격적인 포교활동을 시작하였다. ...

2025-10-10 2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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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대종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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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항의 사망 후, 제2대 교주가 된 하상역은 김영곤 등과 함께 ‘대종교(大宗敎)’를 창립하여 종교활동을 본격화하였으며, 한때 수만에 이르는 신도가 모이기도 하였다. 교단이 커진 후 김항의 제자들은 각자가 후계의 정통성을 주장하면서 분열하였고, 김영곤은 하상역에 맞서 연산과 공주지방에서 새로운 교단을 형성하였다. 그러나 따로 교단명칭을 정하지 않고 김항이 생존시 부르던 ‘무극대도’를 그대로 사용했다. 1921년 김영곤이 사망하자 그의 제자 임도봉(林道峰)이 도통을 계승하였고, 전북지방까지 포교 영역을 넓혀갔다. 특히 임도봉은 계룡산 신도안에 ‘중앙대종교’라는 간판을 걸고 포교하였고, 무극기와 함께 태극기를 게양하였다. 그 ...

2025-10-09 21: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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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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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종교

역사적으로 중광은 나철(羅喆, 1863~1916)이 1909년 1월 15일 자시(子時)를 기하여 한성 북부 재동(漢城 北部 齋洞)의 취운정(聚雲亭) 아래 8통 10호의 초가집 북벽(北壁)에 단군대황조신위(檀君大皇祖神位)를 모시고 제천의 대례(大禮)를 행한 뒤 단군교포명서(檀君敎佈明書)를 공포한 사건을 의미한다. 재동의 위치는 현재 경복궁과 창덕궁 사이에 있으며, 가회동(嘉會洞, 북), 계동(桂洞, 동), 경운동(慶雲洞, 남), 안국동(安國洞, 서)과 접해 있다. 이 때 참여한 인물들은 전남 강진 출신의 오기호(吳基鎬, 1863~1916), 충남 부여 출신의 강우(姜虞, 1862~1932), 최전(崔顓, 미상~1918), ...

2025-10-09 2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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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음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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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6년 서무부서기로 임명되어 교무사무를 아울러 5년간 근무했다. 1932년부터 3년간은 연구부장과 교무부장을 지냈고 다시 2년간 교무부장을 맡으면서 총부구내에 야학원을 만들어 100여명의 아동을 교육시키기도 했다. 박중빈과 최초로 은부자(恩父子)의 결의를 맺고 가까이서 시봉을 하며 지도를 받았으며, 박중빈의 꾸중과 칭찬을 누구보다도 많이 받으며 인격을 도야했다. 그는 언론사업과 공익사업에 관심을 많이 두었다. 현재 월간지 『원광』과 각종 공익자선사업의 밑받침이 되었다. 일정(日政)말기 원불교가 어려운 문제에 직면할 때마다 전음광은 일본 경찰과 접촉하여 침착하고도 능란한 말과 글로 그들을 감화시켰다. 이렇게 전음광은 ...

2025-10-09 16: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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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주정치창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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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주일주평화국(宇宙一主平和國)

일주정치창립(一主政治創立)이란 우주일주평화국의 4대 사명 중 하나로 ‘한님 다스리는 정치로 정치를 개선함’을 의미한다. 우주일주평화국을 창설한 양도천은 1950년 서울신학대학을 졸업하고 목회활동을 하던 중, 1964년 계룡산에 입산 특별기도를 하다가 “우주가 ‘한님’의 집이며, 새 역사 창조의 사명이 한국에 있고, 그 사명자가 바로 자신이며, 계룡산이 그 근거지”라는 사실을 깨달은 뒤, 그 해 충청남도 논산시 두마면 석계리 계룡산 성도봉(成道峯) 아래에 ‘하나님의 집 공회’라는 간판을 걸고 종교활동을 시작하였다. 1969년 ‘세계일가공회’로 이름을 바꾸었으며, 1979년에는 ‘세계일주국’으로, 그리고 1980년에는 ‘세 ...

2025-10-09 0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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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천식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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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도교

동학의 제2대 교주 최시형은 도인들에게 설법할 때 “천지만물이 한울의 신령한 기운[靈氣]을 모시지 않은 것이 없고, 우리 도의 뜻은 한울로써 한울을 먹고[以天食天], 한울로써 한울을 화할[以天化天] 뿐”이라 하였다. “천지는 한 기운[一氣]”이요 “만물은 천도의 표현”이다. 이돈화는 『신인철학』에서 ‘이천식천’을 ‘이질적 기화(異質的 氣化)와 동질적 기화(同質的 氣化)’로 풀이했다. 지구상에서 생명의 사멸은 시시각각으로 일어나고, 생물은 다른 종의 생물을 먹는 수요자가 되는 동시에 자신이 먹히는 공급자가 된다. 이는 참담한 생존경쟁이 되나 우주의 전적 행위, 한울의 전적 기화작용으로 보면 우주 그 자체를 키우기 위한 교 ...

2025-10-08 2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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