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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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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황전

단황전의 창립자 김정숙은 1935년 충남 서산에서 출생했다. 일찍이 구도에 뜻을 두어 10여 년에 이르는 기간 동안 토굴에 들어가 기도생활을 하였는데 어느 날 하늘에서 불서기가 몸으로 내리면서 중생을 제도하라는 천명을 받게 된다. 그 뒤 그녀는 중생들의 고통을 덜어주기 위해 점을 쳐주고 병을 치료해 주면서 생활했다. 그러면서도 때때로 단황님께 제수를 올리고 천하통일을 위한 평화기도를 드리기도 하였다. 1982년에 대전 석경산에서 천인합발(天人合發)을 위한 법시(法施: 천제)를 하였는데 이때 쌀 5백 가마니 소금 1천 가마니 등 2천여만 원에 상당하는 제물을 올려 천인합발을 이루었다고 한다. 천인합발이 이루어졌으므로 앞으 ...

2025-06-30 23: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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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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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성교(關聖敎)

김용식의 구체적인 생애는 알려진 바가 없으나 1920년 박기홍(朴基洪)과 함께 종래의 관제(關帝)를 숭배한 숭신단체 전내무(殿內巫) 및 일반 민중을 교도로 하는 관제숭배자를 규합하여 관성교를 조직하였다. 김용식은 전내무 등에 의해 잘못 전해진 관제의 교를 교정하는 한편으로 관제의 충렬용의(忠烈勇義)로써 민중을 선도하려고 하는 취지요령을 발표하기도 하였다. 참고문헌 : 『朝鮮의 類似宗敎』(村山智順 저 최길성․장상언 공역 계명대학교출판부 1991)

2025-06-30 23: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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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석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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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신도

김석열은 1912년 1월 18일 서울에서 출생했다. 한국전쟁 때 난리를 피해 대전으로 내려가 자리를 잡았으며 한의학을 공부하여 대전시 중구 오류동에서 한의원을 개원하였다. 그는 불교와 기독교 등 여러 종교를 전전하였으나 만족을 얻지 못하고 말살되어가는 민족얼과 민족주체성을 어떻게 회복할 것인지에 대해 고민하다가 1984년에 삼신도를 창립하였다. 특히 그는 당시 ‘한세계인류성도종’의 창립자였던 정근철과 손을 잡고 『일신경(一神經)』을 간행하는 등 많은 저술활동을 통해 한민족의 위대성과 민족주체성을 고양시키고자 하였으며 또한 정근철과 함께 ‘하느님 명호도용 및 단군성조의 경칭 침해 배제 청구의 소’(92가합 71999호 사 ...

2025-06-30 16: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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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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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법대

김삼부는 단군신사를 연구한 사람으로 『천부경』에 대해 특이한 해석을 하였다. 곧 그는 『천부경』이 단군의 저술이 아니라 황제가 단군에게 전해준 것으로서 황제의 저술로 보았다. 또한 『천부경』의 81자에는 우주 진행의 역대교리(歷代敎理)가 들어있다는 수리론적(數理論的) 해석을 행하여 『십거도(十巨圖)』와 『만세불역지전(萬世不易之傳)』 등을 저술하였다. 무법대의 창립자인 김구연은 김삼부의 『천부경』 해석이 곧 자신이 새 시대의 개천주(開天主)가 될 것임을 해석한 것으로 여기고 그를 초청하여 무법대에 머물게 하였다. 참고문헌 : 『한국신종교실태조사보고서』(한국종교학회 1985) 『한국신흥종교총람』(이강오 한국신흥종교연구소 1 ...

2025-06-30 16: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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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백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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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심등대

김백문의 1917년 양력 10월 19일 경상북도 칠곡군 인동면 인의동 448번지에서 김광조와 문아지 사이의 차남으로 태어났다. 그는 신령파였던 김남조 여인를 만나 신앙의 길에 들어서게 되었고 그로 인하여 백남주와 인연이 되었다. 백남주를 보필하며 그로부터 많은 영향을 받았다. 백남주가 어려움에 처했을 때도 그가 가는 곳마다 같이 있을 정도로 존경하는 마음을 갖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김백문은 1937년과 1946년에 걸쳐 두 번의 신비체험을 하게 되는데 1937년에 있었던 첫 번째 신비체험은 그로 하여금 책을 쓰게 만들었고 1946년의 체험을 통해서는 자신의 사명을 분명하게 인식하는 계기가 된 것으로 보인다. 그는 이 ...

2025-06-30 15: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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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방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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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도교

김방서는 1893년 동학교도가 보은 장내에 모여 척왜양창의(斥倭洋倡義)를 요구하며 집회를 가졌을 때 봉성(鳳城 : 지금의 전라남도 구례) 대접주로 참가하였다. 그 뒤 금구의 접주로 활약하였는데 전라도의 북접(北接)이라고 불린다. 동학농민군이 각 군에 집강소를 설치 할 때 익산의 대접주로서 대도회소를 설치하였다. 장흥의 관군들이 전봉준의 남접군이 북상한 틈을 타 동학도를 토벌하기 시작하자 동학군 3000명을 이끌고 12월 3일 장흥성을 함락시키고 장흥부사를 죽였다. 그러나 곧 일본군의 지원을 받은 관군의 공격으로 동학군은 대패하였다. 전봉준·손화중(孫華仲) 등과 재기를 도모하다가 전라북도 순창 복흥산(福興山)에서 체포되었 ...

2025-06-30 15: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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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교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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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기타

김교신은 나이 12살에 한매(韓梅)와 결혼하고 19살이 되는 1919년에 함흥 공립농업학교를 졸업했다. 이 해 3·1운동이 발발하자 태극기를 만들어 예배당과 보통학교에 보내며 3월 3일의 함흥 장날의 만세 시위를 주도했다. 3.1운동 학생 주모자로 몰려 체포되어 고초를 겪다가 기소유예로 풀려났다. 이후 일본에 가서 토쿄의 세이소쿠(正則)영어학교에 입학했고 1922년에는 동경고등사범학교에 진학했다. 1920년 6월에 기독교에 입신했으나 교회의 내분에 실망하여 1921년 1월부터 우치무라 간조(內村鑑三: 1861-1930)의 성서연구회에 출석했다. 우치무라는 기독교 신앙의 본질은 교회에 소속 여부나 특정한 예식의 수행 여부 ...

2025-06-30 15: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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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광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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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천일지개태도광사

김광영은 1883년 충남 논산군 가야곡면에서 출생하였으며 16세에 연산군 천호리의 유씨 집안에 출가하였다. 천호리에는 고려 태조 왕건이 건립했다고 하는 개태사의 절터가 있었는데 김광영은 43세 되던 1926년에 꿈에서 관세음보살의 계시에 의해 개태사 터에 묻혀있는 석불 세 구를 발굴하였다. 이듬해에는 남편의 도움으로 매몰되었던 석불을 원래 위치에 복구하고 불당을 지어 자신이 주지가 되었다. 그 이후로 그녀가 주문을 외우고 안수(按手)를 하면 사람들의 질병이 낫는 기적이 일어났고 사람들은 그녀를 도인으로 생각하고 모여들었다. 1945년 해방 후 김광영은 신도들을 모아 용화회를 조직하고 본전에 ‘삼천일지개태도광사’라는 간판 ...

2025-06-30 15: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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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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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아선호 사상에 따라 아들 낳기를 바라며 행하는 여러 가지의 풍속이 있었다. 기자속(祈子俗)은 오랜 풍속이나 특히 조선시대 장자 중심의 제사가 정착되면서 특히 발달하였다. 기자 습속은 치성(致誠) 음식 주술 공덕 행위 등이 있다. 치성 행위에는 불공드리기 동짓날 얼음 깨고 목욕하기 장독대에 물 떠 놓고 기도하기 무당의 굿하기 삼신 전대에 쌀을 넣어 천장에 매달아 놓기 터주신께 100일 기도하기가 있다. 음식 행위에는 신랑 신부가 맞절할 때 놓는 쌀을 가져와 밥해 먹기 요강에 미역과 쌀을 넣었다 건져낸 뒤 그걸로 밥해 먹기 아들 난 태를 몰래 가져다 약으로 먹기 공동우물 물 퍼내고 새로 솟는 물로 밥해 먹기 금줄의 고추를 ...

2025-06-30 0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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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신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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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신앙(祈子信仰)은 자식이 없는 집안에서 자식 낳기를 기원하며 행하는 여러 형태의 신앙을 통틀어 일컫는 말이다. 좁은 의미로는 자식 중에서도 특히 아들을 얻기를 기원하는 신앙을 가리킨다. 우리나라에서는 아들을 중요하게 여기는 관념이 강하여 기자신앙이 특히 발달했는데 주로 부녀자들이 행하였다. 절에 다니면서 부처의 영험을 의지하거나 굿과 같은 무속의례를 행하는 경우가 많았으며 인간을 잉태시켜준다고 믿는 삼신할미나 수명장수를 관장하는 칠성(七星) 그리고 용신(龍神)과 산신(山神) 등에게 비는 행위도 흔히 이루어졌다. 그러나 기자신앙의 가장 광범위한 신앙대상은 기자석(祈子石)이다. 2개의 바위가 서로 포옹하듯이 엉켜있거나 ...

2025-06-30 0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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