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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시록의 실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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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천지

신천지는 새 땅과 새 하늘을 대망하고 있는데 그 실현의 비밀은 성경 계시록에 숨겨져 있다고 한다. 또 그 계시록의 약속과 예언을 이루게 하는 이만희와 그를 중심으로 하는 14만4천의 무리를 형성한다고 주장한다. 바로 그 무리를 형성할 신천지의 12지파가 『계시록의 실상』에서 말하는 계시록의 비밀이다. 이 교리는 신천지 선교의 핵심으로 보인다. 이러한 계시록의 비밀을 신천지 교리와 신앙 논리 안에서 해석해 냄으로써 신천지 신앙의 강력한 동기를 제공하고 있다.

2025-05-24 17: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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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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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교

계례(筓禮)는 유교의례 가운데 하나로 여자가 성년(成年)이 되었을 때 쪽을 쪄서 비녀를 꽂아줌으로써 어른이 되었음을 공인하는 의식을 말한다. 주자(朱子)의 『가례(家禮)』에서는 관례(冠禮) 아래에 계례 항목을 두고 그 절차를 설명하고 있다. 여기에 따르면 여자가 혼인을 하기로 결정되었거나 미혼이라 하더라도 15세가 되면 계례를 시행하는데 어머니가 주인이 되어 친척 중에 어질고 예법에 밝은 부인을 주례(主禮)로 모시고 의식을 진행하며 주례가 비녀를 꽂아주고 자(字)를 지어주면 주인이 계례자(筓禮者)를 데리고 사당에 가서 조상에 고한 다음 손님을 대접하는 잔치를 베풀어 절차를 마치는 것으로 규정되어 있다. 계례는 조선시대에 ...

2025-05-24 17: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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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천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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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05-24 17: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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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룡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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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05-24 1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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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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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도교

해월 최시형은 경주에서 빈농의 아들로 태어나 5세 때 모친을 잃고 12세에 부친마저 잃어 고아가 되었다. 지금의 포항시 신광면 마북리에 있는 검곡 마을에서 조금 더 안쪽으로 들어가면 올금당이란 마을이 있는데 해월은 이 곳 한지공장에서 17세 때부터 직공으로 일했다. 19세 때 밀양 손씨(孫氏)와 결혼했고 28세 때에 검곡의 오른쪽 마을 마북동으로 이사하였는데 사람들이 해월의 공렴유위(公廉有威)함을 보고 ‘중망(衆望)’으로 천거하여 집강(執綱 오늘날의 면장이나 이장)의 소임을 맡겼다. 이 때 해월은 그 소임을 잘 맡아 마을 사람들의 칭송을 받았고 마을사람들은 송덕비(頌德碑)를 세워 그 덕을 기념하였다. 33세 때에 검곡( ...

2025-05-22 23: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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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태도광사창운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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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군계

삼천일지개태도광사의 별칭.

2025-05-18 18: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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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태도광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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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군계

삼천일지개태도광사의 별칭.

2025-05-18 18: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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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벽기념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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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종교

대종교는 김항의 제자 중 한 사람인 하상역(河相易)이 창립한 교단으로 본교의 신앙의례로는 현무선생 탄강기념일(1월 13일) 용화세존출세일(5월 5일) 용화세종탄강일(7월 4일) 일부선생탄강일(10월 28일) 개벽기념일(3월 13일) 등이 있다. 대종교의 기념일은 대부분 이운규로부터 김항 하상역으로 이어지는 교단의 법맥을 이어 온 인물들의 탄생일을 기준으로 한 것인데 대해 개벽기념일은 하상역이 대종교를 창립한 창교기념일이며 교단에서는 이 날을 기념일로 정하여 경축하는 의식을 거행하였다. 다만 대종교에서 기념일에 어떠한 의식을 진행했는지에 대한 구체적인 기록은 전해오지 않으므로 확인할 수 없다. 참고문헌 : 『한국신종교실태 ...

2025-05-16 16: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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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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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종교

강우는 1862년 충청남도 부여군 장암면에서 신발(信發)의 장남으로 출생하였다. 처음 이름은 석기(錫箕)였으나 대종교 입교 후 우(虞)로 개명하였다. 자는 순서(舜瑞) 호는 호석(湖石) 도호(道號)는 천일거사(天一居士)이다. 어려서 아버지로부터 한학을 배웠고 1900년 8월 29일부터 조선조 외교관서인 감리서(監理署)에서 근무를 시작하였다. 경흥감리서 주사를 시작으로 성진·길주 등지에서 4년간 관직에 있었다. 1909년 일본에서 구국운동을 하던 나철이 귀국하여 오기호·유근·정훈모·이기·김인식·김춘식 등과 더불어 서울 재동에서 ‘단군대황조신위’를 모시고 단군교를 포명할 때 강우도 동참하였다. 1911년에는 지교(知敎) 1 ...

2025-05-16 15: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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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용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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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종교

강용구는 1896년 충남 부여에서 강우(석기)의 삼남으로 출생하였다. 호는 단야(檀野)이다. 사립 천흥(天興)학교를 거쳐 1915년에 군산공립농업학교를 졸업하였으며 곧 동양척식주식회사 강경지점에 취직하였으나 1916년 사직하고 홍산공립보통학교 촉탁 교원이 되었다. 1918년 부형이 있는 북간도로 건너가 잡화상을 운영하다가 1920년에 귀국하여 서울에서 숙박업을 하기도 했다. 그의 형 강철구가 군자금 모금을 위해 강용구의 집을 거점으로 삼았으며 또한 그를 연락책으로 활용하기도 하였다. 강용구는 아버지의 영향으로 대종교에 입교하여 1921년 참교가 된 이래 1922년 남일도본사 계리감정(計理監正) 1923년 계선시교당(桂善 ...

2025-05-16 15: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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