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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형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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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형공(平衡功)은 중국 금나라 때 왕중양(1112~1169)이 창시한 도교 교단 전진도(全眞道)에서 활용한 핵심적인 공법(功法)이라고 한다. 평형공은 고대에 하(夏)왕조를 세운 우(禹)임금이 창안한 것으로서 여러 동물의 동작을 연구하여 만들었으며, 후에 당(唐)대에 이르러 여동빈(呂洞賓)에 의해 다시 체계화되었다고 한다. 평형공은 지체(肢體)를 정해진 방법대로 움직이면서 여기에 정확한 호흡을 결합시켜 나무나 동물, 인간, 그 밖의 자연물(산, 강, 바다)과 천체(해, 달, 별)를 상대로 기(氣)를 교류하는 수련이라고 한다. 그러나 나무를 대련 대상으로 삼는 것이 가장 일반적이다. 몸과 마음, 음과 양, 그리고 내기(內氣 ...

2025-10-11 19: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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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산리대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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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주에서 김좌진이 이끄는 북로군정서가 사관연성소(士官練成所)를 설치해 독립군을 양성하는 등 세력이 커지고, 일본군이 홍범도가 이끄는 대한독립군을 토벌하려 하였던 봉오동전투(鳳梧洞戰鬪)의 실패 등으로 불안을 느낀 일본군은 간도지방의 독립군을 소탕할 목적으로 간도에 3개 여단의 대규모 병력을 파견하였다. 이 소식을 중국 측으로부터 받은 독립군들은 정면대결을 피하기 위해 백두산으로 옮겨가던 도중 청산리에서 일본군과 마주치게 된 것이다. 10월 21일부터 26일 새벽까지 10여 회의 전투를 벌인 끝에 유리한 지형을 선점, 매복하고 있던 독립군은 일본군 연대장을 포함한 1,200여 명을 사살하였고, 독립군 측은 전사자 100여 ...

2025-10-1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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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성산 적멸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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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도교

수운은 1855년 32세 되던 해 명상 중에 금강산 유점사에서 왔다는 한 승려로부터 을묘천서를 받고, 깨우친 바가 있어 더욱 수련에 정진하고자 양산군(梁山郡) 천성산(千聖山) 내원암(內院庵)과 적멸굴(寂滅窟)에서 수도하고 용담으로 돌아와 득도하였다. 특히 적멸굴은 수운이 34세 되던 해 정성을 다하여 기도했던 곳으로 양산군 하북(下北)면 용연(龍 淵)리 내원사 계곡에 있다. 수운은 당시 적멸굴에 들어가 기도를 할 때, 사람들의 이목을 피하기 위하여 천성산 동구에다가 철점(鐵店)을 설하여 기도를 무사히 마칠 수 있었다고 전해진다. 훗날 의암 손병희 또한 이곳을 찾아와 수운이 수련하였던 적멸굴 앞에 섰는데, 이 때 “문득 ...

2025-10-10 2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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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민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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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도에는 1858년부터 가톨릭이 전래되기 시작하였고, 1900년 전후 프랑스 외방선교회 신부들이 부임하면서 교세가 크게 확장되었다. 이때 강봉헌이 제주도 봉세관으로 부임하면서 온갖 잡세를 부당하게 징수하였고, 이 일에 가톨릭 교도들을 채용하였다. 또한 교회가 부지를 매입하면서 신목(神木), 신당(神堂)을 없애는 등 제주도민의 문화를 무시하는 행위로 말미암아 도민들로부터 반감을 사고 있었다. 이에 대정군수(大靜郡守) 채구석과 유림(儒林) 오대현은 ‘상무사’라는 비밀결사를 조직하여, 봉세관과 교회에 대항하였다. 관노 이재수 등과 도민들은 일본인들로부터 입수한 무기로 무장하여 민란을 일으켰다. 제주성이 함락되었고 가톨릭 교 ...

2025-10-09 19: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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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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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층신앙

제사는 중국 고대에 형성되어 유교 문화 속에서 전승된 종교 양식의 하나이다. 고대 제사는 ‘祭’의 글자가 형상하는 것처럼 가축을 살육하고 그 고기를 신에게 바치는 희생제의를 가리켰다. 그 절차를 세분하면 “관례(祼禮)-조천(朝踐)-궤식(饋食)-윤시(酳尸)”의 순서로 되어 있었다. 관례는 울창주를 땅에 부어 신을 부르는 절차이고, 조천은 희생의 피와 털, 그리고 고깃기름을 취하여 신에게 올리고, 희생의 날고기를 바치는 절차인 반면 궤식은 희생을 삶아 익혀서 바치는 의식이다. 윤시는 음식의 대접 후 술을 올리는 의식이다. 이러한 초기 제사의 모습에서 날고기를 올리는 전통은 점차 사라지고 익힌 고기와 술을 올리는 의식을 중심 ...

2025-10-09 19: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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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심도심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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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의 마음을 인심과 도심으로 구분해 이야기한 것은 『서경』의 기록에 근거를 둔 것이다. 『서경』에 “인심은 위태하고, 도심은 은미하니, 오직 정일(精一)하여야 진실로 그 중(中)을 잡을 것이다”라고 한 것이다. 송대 주자는 인심과 도심의 개념으로 『중용』의 성명(性命)론을 해석하였는데, 마음은 동일하지만 마음이 형기(形氣)의 사사로움에서 나오면 인심이고 성명(性命)의 올바름에서 근원하면 도심이라고 하였다. 선악(善惡)과 관련해 볼 때 도심(道心)은 선하다고 할 수 있고, 인심(人心)은 선한 경우도 있고 악한 경우도 있다. 이 인심도심의 문제는 한국 철학에서도 중요한 주제가 되었는데 주로 사단칠정(四端七情)론이나 이발기 ...

2025-10-08 23: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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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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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화교

용화교(龍華敎)를 창립한 이근하(李根夏, ?-1930)는 1900년 초 전라북도 남원의 유생 김광찬(金光贊)이 한문에 조예가 깊음을 흠모하여 그의 문인이 되었다. 그런데 김광찬은 이미 증산 강일순으로부터 ‘도리원서문(桃李園序文)’을 전수받아 가지고 있었으므로 그 뜻을 해득하려고 이근하는 1925년 겨울 강원도 고성군 건봉사에 들어가 이 책의 내용을 연구하고 또 불전중의 『용화경(龍華經)』을 보기에 이른다. 도리원서문은 『용화경』에서 유래하는 것으로 불교와 선도의 요지를 따서 만든 책이다. 이들 책을 보고 크게 깨친바 있어 1926년 동지들을 규합하여 경상남도 함양군 대화면 상원리에서 치성을 거행하고 용화교를 창립했다. ...

2025-10-08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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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화대도 지상천국건설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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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청림은 1973년 계룡산 머리봉 밑 삼일전(三一殿)에 들어가 수련을 시작했다. 이 삼일전은 누군가가 예언비서의 비결에 따라 기둥이 24개, 서까래가 72개, 문은 4개를 만들어 옥황상제가 거처할 집으로 지어놓고 문을 잠가두었다고 한다. 이 집을 자기를 위하여 지어놓은 집이라 생각하고 1981년 5월 ‘지상천국건설원(地上天國建設園)’이란 간판을 걸고 종교활동을 시작하였다. “하나님을 보여줄테니 모두 모아라”라는 신문광고를 내고 1981년 8월 19일 삼일전 앞에 십자가를 세우고 ‘인류평화대법회’를 열었다. 이날 신도 50명과 구경꾼 50명 등 1백여 명이 모여든 사람들에게 그가 보여준 하나님은 대자연이였다. 그는 신이란 ...

2025-10-08 0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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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담검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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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학 / 천도교

용담검무(龍潭劍舞)는 최제우가 남원 은적암에 은거할 때 지기(至氣)의 기운이 왕성함을 금치 못하여 목검을 들고 검가(劍歌)를 부르면서 칼춤을 추었다는 데서 처음 등장한다. 정기(正氣) 공부의 한 방편이었으며, 천제(天祭)의 의식에도 사용되었으나, 최제우가 칼로써 역모하려 했다는 누명을 쓰고 죽은 이후로는 단절되어 지금은 전해지지 않는다. 『천도교 창건사』 제1편 제7장 「은적암」에 “대신사 은적암에 유(留)하신지 8개월 간에 도력이 더욱 서시고 도리가 더욱 밝아감에 스스로 희열을 금치 못하며 또한 지기의 강화(降化) 성왕(聖旺)함에 스스로 검가를 지으시고 목검을 집고 월명풍청(月明風淸)한 밤을 타서 묘고봉(妙高峰)상에 ...

2025-10-0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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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동천심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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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부계

이운규는 김항에게 『서전(書傳)』을 많이 읽으면 깨닫는 바가 있을 것이라 하고, 그 뒤에 반드시 책을 지어야 할 것이라고 하면서 그때 자신의 글 한수를 넣으라 하였다고 한다. 그 내용은 「관담(觀淡)은 막여수(莫如水)요 호덕(好德)은 의행인(宜行仁)을 영동천심월(影動天心月)하니 권군심차진(勸君尋此眞)하소」라는 것이었다. 이후 김항은 이운규가 전해준 이 글 중 ‘영동천심월’의 뜻을 19년 동안 궁구한 끝에 1897년 스스로 깨달음을 얻었다고 한다. 당시 그의 수양방법은 스승의 가르침대로 『서전』의 정독과 다독, 그리고 영가와 무도(舞蹈)에 의한 정신계발이었다고 한다. 깨달음을 얻은 후 그에게 이상한 괘획(卦劃)이 종종 나 ...

2025-10-07 17: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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