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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부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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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6년 박태선이 기독교 신앙에 근거해 한국예수교전도관부흥협회(전도관)를 하였으나 1980년 초, 그 동안 유지해온 기독교 기반의 종교 정체성을 완전히 버리고 스스로를 창조주 하나님으로 규정하며 교명을 “한국천부교전도관부흥협회(천부교)”로 변경하였다. 천부교는 예수를 부정하고 박태선을 창조주 하나님으로 신앙하며, 부부동침을 금지하는 등 모든 성적 접촉을 금지하는 ‘피의 원리’를 핵심 신앙으로 믿고 있다. 1990년 2월 7일 73세의 일기로 박태선이 사망한 후 얼마간의 혼란기를 거쳐 2015년 현재 안정적인 포교활동을 전개하고 있다.

2025-10-10 21: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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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도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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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도교

이 책은 3편으로 구성되어 있다. 그 내용은 최제우(崔濟愚)와 최시형(崔時亨), 그리고 손병희(孫秉熙)를 중심으로 서술되어 있다. 제1편은 최제우의 출생에서 사망까지 연대기의 순서로 최제우의 활동과 행적, 그리고 주요 사건과 설법 내용들을 자세하게 소개하고 있다. 제2편에서는 최시형의 출생에서 동학 입교, 도통 전수, 활동, 처형에 이르는 이야기들을 최시형의 가르침과 더불어 서술하였다. 따라서 당시 교조신원운동의 전모와 갑오농민혁명의 시말에 관한 상세한 정보들이 실려 있다. 제3편에서는 손병희가 출생과 입교, 도통 전수에 대해서만 기록한 다음, 손병희가 설법한 주요 내용들을 천도태원설(天道太元說), 대종정의설(大宗正義說 ...

2025-10-10 2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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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기독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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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장호는 자유주의적 성서 해석을 선호했다. 가령 고대 이스라엘인들이 홍해를 건너 이집트를 탈출한 이야기를 바닷물의 간조현상으로 해석한다든지, 예수가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오천 명을 먹였다는 이야기를 그들이 도시락을 준비해온 결과로 해석하기도 했다. 이에 대해 1916년 장로교 황해노회에서는 “김장호 목사의 성경해석이 불합(不合)함을 권면하고 금년 총회(總會) 총대(總代)는 정지하게 한다”는 결정을 내렸고, 1918년 12월 6일에는 목사직을 면직시켰다. 그러자 김장호는 자신이 시무하던 신원교회 교인들과 함께 1918년 7월 16일 조선기독교회를 창립했다. 1919년 9월에 작성된 조선기독교회 강령 제1조에서는 ...

2025-10-09 2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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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법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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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불교영산법화종

대한불교영산법화종의 창종자 이법화(李法華)는 1912년 12월 27일 경기도 시흥에서 태어났다. 유교집안의 둘째아들이었던 그는 일찍 결혼하여 가정생활을 꾸렸으나 불법에 뜻을 두고 1939년 27세 되던 해 『법화경』에 귀의한다. 박한영, 안진호, 권상로 등에게 법화경의 강의를 들었으나 깊은 뜻을 쉽사리 이해 할 수 없어서 태백산에서 홀로 수행한다. 그리고 일련계(日蓮系)의 일본승려 후지이 닛타츠(藤井日達: 1885-1985)의 문하에 입문 출가한다. 그러나 세계대전에서 일본의 패망을 예언하였다가 세 번이나 투옥되기도 하였다. 화엄경의 ‘초발심시 변성정각(初發心時 便成正覺)’의 문구가 항상 뇌리를 떠나지 않았던 그는 19 ...

2025-10-08 2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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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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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산도

『한단고기』의 「고구려국 본기」에 따르면, 을밀은 고구려 안장왕 때의 조의선인으로 뭇 사람들의 존경을 받아 따르는 무리가 3천 명에 이르렀으며, 평양에 을밀대를 세워 그곳에 살면서 하늘에 제사 드리고 무리들과 함께 수련하였다고 한다. 또 그가 지은 다물흥방가(多勿興邦歌)라는 노래를 무리가 함께 불렀다고 한다. 조의(皂衣)에 대해서는 두 가지의 정의가 있다. 하나는 고구려의 하위 관등으로, 『삼국지』 위지 동이전 고구려조에서 “여러 대가들은 역시 스스로 사자, 조의, 선인을 두었다[諸大加亦自置使者皂衣先人].”고 한 데에서 연유한다. 이로 보건대 본래 제가(諸加)들의 가신적 성격이 강하였으나, 이후 왕권에 편입되면서 신료적 ...

2025-10-08 1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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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동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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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산교단통정원(甑山敎團統整院)설립의 주도적 역할을 했던 유동열(柳東說, 1877-?, 호 春郊)은 1877년 평안도 박천에서 출생했다. 1894년 일본에 건너가 성성학교(成城學校)를 거쳐, 1903년 육군사관학교를 졸업했다. 졸업 후 일본 근위사단에서 실무를 쌓았고, 러·일 전쟁이 일어나자 일본군에 종군하였으며, 조선주둔 일본군 사령부에 근무하다가 대한제국군에 복귀했다. 대한제국군 참령(參領)으로 승진하여 시위대 기병대장과 참모국 과장을 역임했다. 1907년 대한제국군대가 해산되면서 지하운동에 가담, 신민회 조직에 참여했고, 서북학회를 통한 계몽활동을 전개했다. 1911년 105인 사건에 연루되어 10년형을 선고받았다. ...

2025-10-08 18: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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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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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도교

오지영은 1868년 몰락 양반 출신으로 태어나 1891년 3월 23세에 동학에 입교하였다. 그는 1892년 손화중의 지시를 받아 선운사 석불 비결사건에 적극적으로 가담한 것으로 전해지고, 1893년 11월에는 익산 민란에서 장두(狀頭)로서 활약하였다. 1894년 동학 농민군이 집강소를 설치 할 때에 대접주인 김방서의 휘하에서 집강소 사무를 담당했다. 10월에는 공주 우금치와 논산 황화대에서 경병(京兵)과 전투하였다. 전투에서 패배한 뒤 한양으로 피해 양주 묘적암에 은거하였다. 1908년에는 익산교구장, 1909년 이후에는 중앙총부에서 교역자로 활동하였고, 호남학회에도 가담하였다. 1920년에는 천도교 1차 분규 때 혁신 ...

2025-10-07 23: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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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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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군성주교

오원(五遠)은 강승태(姜昇泰)가 창립한 단군성주교(檀君聖主敎)의 계명이다. 다섯 가지 멀리해야 할 것이라는 의미로 보인다. 오원은 색·성·향·미·촉(色聲香味觸)이다. 단군성주교의 수련의 표준은 선을 정성스럽게 행하고 노애락(怒哀樂)을 멀리해야 한다고 가르쳤다. <참고문헌> 『한국신종교실태조사보고서』(김홍철·양은용·류병덕, 원광대학교종교문제연구소, 1997)

2025-10-07 23: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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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상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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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하이교

1894년 서울에서 출생했다. 어의동학교와 경신학교를 졸업한 후, 일본으로 건너가 도시샤대학[同志社大学]에서 종교학을 공부했다. 본래 기독교 신자였지만 불교로 개종하여 조선중앙불교학교와 보성고등보통학교에서 교편을 잡았다. 오상순은 1921년 바하이 선교사인 미국인 아그네스 알렉산더가 내한했을 때 모임을 주선해서 바하이교가 전래되는 데 도움을 주었다. YMCA회관에서 가진 모임에서 참석자들은 공동명의로 바하이교의 지도자인 압둘바하에게 인사를 보내는 서신을 작성했다. 이 서신을 받은 압둘바하는 사망하기 직전에 한국인들에게 답신을 보내기도 했다. 문인으로서 오상순의 대표작으로는 「시대고와 그 희생」, 「힘의 비애」, 「아시아 ...

2025-10-07 22: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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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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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학/천도교

1905년 손병희는 동학을 천도교로 개신한 후 종교적 근대화를 시도하게 된다. 그 중 수행과 관련하여 모든 천도교인이 지켜야할 다섯 가지 의무조항을 신설하게 되었는데 그 다섯 가지는 주문, 청수, 시일, 성미, 기도이다. 주문은 21자 주문으로서 이것을 ‘지극히 하느님을 위하는 글’이라고 하여 모든 교인들에게 외우게 하였다. 청수는 모든 행사와 의식을 거행할 때 맑은 물을 모셔다 놓고 뚜껑을 여는 절차이다. 청수는 마음 안에 맑고 맑은 한울님이 기운이 가득 차 있음을 깨달으라는 의미이다. 시일은 일요일 날 모두 다 함께 종교적 의례를 수행하는 의식이다. 성미는 매번 밥할 때 가족 숫자대로 한 술씩 쌀을 따로 떠 놓았다가 ...

2025-10-07 2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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