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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유신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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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도교

내유신령(內有神靈)이란 모든 사람들의 내면 깊이에 신령함이 있음을 뜻하는 말이다. 수운은 21자 주문인 “지기금지 원위대강 시천주 조화정 영세불망 만사지(至氣今至 願爲大降 侍天主 造化定 永世不忘 萬事知)”를 풀이할 때 시천주의 시(侍)를 “안으로 신령함이 있고[內有神靈] 밖으로 기화함이 있음[外有氣化]을 세상 사람들이 각각 알아서 옮기지 않는 것[一世之人 各知不移者也]”이라 설명했다. 즉 모심[侍]이란 인간 각자가 안으로 신령하고 밖으로 기화하는 한울님임을 알아 이를 잃지 않는 것을 말한다. 해월은 그의 법설에서 “시천주란 심천상합(心天相合)”으로서 만약 “마음과 한울이 서로 어긋나면[心天相違]” 시천주라 하지 않는다 ...

2025-07-01 01: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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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조선신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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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층신앙

최남선의 저서인 『조선의 상식문답』에 처음으로 거론이 되면서 일반화가 된 구성개념이다. 그 연원이 대체로 조선후기에 사회적 변혁을 기대하는 민중의 대망이 우러나온 낙원 동경의 이상이 결부 된 소박한 관념 형태라고 볼 수 있다. 문헌상으로 남조선신앙의 증후로 간주가 되는 어휘로서 南 혹은 南海라는 문구가 인조 연간 이후 자주 등장한다. 이는 삼남 각처에서 농민반란이 발흥하는 가운데 흉흉한 인심에 편승해서 기한(飢寒)에 시달리는 현실을 탈피하려고 하는 민초들의 심의(心意)에 자리 잡았던 이상향에 대한 희구의 염원이기도 하다. 예컨대 정북창(鄭北窓)의 「金山寺歌』에도 “만국활계 남조선은 청풍명월 금산사라. 여보시오 세상사람 ...

2025-07-01 0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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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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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교

본관은 영양(英陽) 호는 격암(格菴)으로 경상북도 울진에서 출생했다. 생몰연대에 대해서는 1509년~1571년 설과 1501년~1571년 설의 두 가지 설이 있다. 어려서부터 유학(儒學)을 공부하였으며 평생 『소학(小學)』을 가까이 하며 몸소 실천하였다. 1564년(명종 19년)에 효렴(孝廉)으로 천거되어 사직서(社稷署) 참봉(參奉)에 제수되었고 말년에는 종6품인 천문학(天文學) 교수(敎授)를 지냈다. 역학(易學)·천문(天文)·풍수(風水)·복서(卜筮)·관상(觀相) 등에 조예가 깊었다고 하며 도술을 부리고 앞일을 정확하게 예언했다는 그의 신이(神異)한 행적에 대한 설화가 일찍부터 널리 유포되었다. 『동야휘집(東野彙輯)』· ...

2025-07-01 0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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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경중의약대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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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조계종삼화불교

본교는 중국 남경에 위치한 중의약(中醫藥) 대학으로서 1995년 8월 불교조계종의 삼화불교대학과 분교를 채결한 이후 불교조계종 총무원장 혜인(손영모)이 한국총장을 맡고 있다. 참고문헌 : 불교조계종 홈페이지 http://www.shbuddhism.or.kr/

2025-07-01 00: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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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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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아신궁

김재경은 호는 심전(心田) 혹은 마추(馬秋)라고 하며 불아신궁 창립 후 단제성조불아신궁총관법사 불아교화회지도위원장 미륵종단총본산 법상가본부대법사 등의 명칭으로 불리기도 했다. 그는 원래 각세도 서관을 담당하던 신태제의 수제자로였다. 신태제가 이선평 사후 각세도남관에서 정도교로 개명하고 독립할 때에도 그는 함께 하였다. 특히 그는 영통자로서 영을 통해 내리는 말을 받아 교주 신태제에게 전해주는 역할을 했다고 한다. 그러다가 1954년 정도교 일대옥사를 계기로 교주가 사망하게 된 후 김재경은 황덕시와 분열하게 되고 그는 각세도 교리에서 벗어나 스스로 단군의 계시를 받는다고 하면서 단군천진을 봉안하고 단군신앙으로 전향하여 ‘ ...

2025-06-30 23: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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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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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희선도태백원

선도수련원인 인희선도태택원(仁僖仙道太白院)의 창립자.

2025-06-30 16: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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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삼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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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도대향원

청도대향원(靑道大享園)을 창립한 김삼일(金三一 1924-1992 호 伯峰)은 1924년 8월 9일 경상북도 청송군 안덕면 신성동 진곡에서 출생하였다. 부친은 증산법종교의 2대 교주를 지낸 김병철(金炳澈)이다. 보통공립학교를 졸업 후 생업에 종사하다가 1943년 강순임(姜舜任)을 만나 그를 도왔다. 일찍이 강순임이 ‘성부(聖父)의 명에 의하여 삼일이는 내 아들이 되었다’고 하면서 끔찍하게 사랑하였으며 그도 강순임을 극진이 모셨다. 부친과 강순임이 교단을 금성골에서 장대골로 옮기고 다시 구릿골과 오리알터(김제군 금산면)로 옮기는 동안 삼일은 함께 받드는 한편 수도에도 전념하였다. 1959년 강순임이 사망했을 때 9일장의 상 ...

2025-06-30 16: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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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선도본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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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산선사로 알려진 고경민은 1970년 한민족 고유의 수련법을 보급하기 위해 국선도 최초의 도장을 개원했다. 1984년에 고경민이 홀연히 사라진 후에 여러 분파로 갈라졌는데 국선도본원은 2015년 현재 고경민의 아들인 고남준이 설립한 국선도연맹과 통합된 것으로 알려졌다. 국선도에서는 수련을 통해 우주의 의식과 하나가 되어 생명의 질서를 깨닫고 구활창생의 도를 강조한다.

2025-06-01 01: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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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인사창건기념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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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불교천태종

대한불교천태종의 총본산 구인사는 상월 박준동(朴準東 1911-1974)에 의해 건립되었다. 1935년 음력 2월 현재의 구인사 범당 지점을 잡아 정지하고 음력 3월에 상량하여 소법당 외에 방 8칸 주방 2칸의 요사채를 완공하였다. 이어서 음력 5월 5일 단오에 구인사(救仁寺)로 명명하고 이날을 구인사 창건기념일로 정하였다. 2015년은 구인사 창건 70주년이 되는 해이다. 참고문헌 : 대한불교천태종 홈페이지(http://www.cheontae.org/)

2025-06-01 0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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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정일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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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도교

동학의 2대 교주인 최시형(崔時亨)이 1898년 처형당한 뒤 3대 교주가 된 손병희(孫秉熙)는 교정일치론(敎政一致論)을 강조하고 종교의 역할이 보국안민 후천개벽 광제창생에 있음을 분명히 했다. 그러나 진보회가 이용구에 의하여 친일단체화 할 때는 정교(政敎) 분리의 원칙을 내걸고 이용구 세력을 축출하여 1905년 교명을 ‘천도교’로 개칭하였다. 이 역시 교정일치에서 나온 분리 정책이었다. 천도교에서 교정일치란 종교와 정치의 일체로서 종교 자체가 정치뿐만 아니라 도덕 교육 사회 문화 사상 등 인간 제반 문제를 관통하는 것을 말한다. 1910년 의암은 사범교리강습소를 설치하여 각 교구에서 한 사람씩 구비생을 선발한 다음 교리 ...

2025-05-31 23: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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