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 3974건
천성산 적멸궁
천도교
수운은 1855년 32세 되던 해 명상 중에 금강산 유점사에서 왔다는 한 승려로부터 을묘천서를 받고, 깨우친 바가 있어 더욱 수련에 정진하고자 양산군(梁山郡) 천성산(千聖山) 내원암(內院庵)과 적멸굴(寂滅窟)에서 수도하고 용담으로 돌아와 득도하였다. 특히 적멸굴은 수운이 34세 되던 해 정성을 다하여 기도했던 곳으로 양산군 하북(下北)면 용연(龍 淵)리 내원사 계곡에 있다. 수운은 당시 적멸굴에 들어가 기도를 할 때, 사람들의 이목을 피하기 위하여 천성산 동구에다가 철점(鐵店)을 설하여 기도를 무사히 마칠 수 있었다고 전해진다. 훗날 의암 손병희 또한 이곳을 찾아와 수운이 수련하였던 적멸굴 앞에 섰는데, 이 때 “문득 ...
2025-10-10 22:03
22
천경수양원
천리교
일본 신도계 신종교인 천리교의 해방 후 명칭. 천리교는 나카야마 미키(中山みき)에 의해 1838년 나라현(奈良縣) 천리시(天理市)에서 창립되었다. 천리교의 첫 한국포교는 1893년 사토미치 타로(里見治太郎)에 의해서였다. 1903년에는 서울에 천리교포교관리소가 설립되어 교선을 확장했다. 해방 후에는 왜색종교로 알려져 수세에 몰렸다. 1948년 천리교 신자들이 천경수양원을 설립, 교단 재정비에 나서는 한편, 미군정청에 교단등록을 하고 활동에 나섰다. 1952년에는 대한천리교연합회, 1956년 대한천리교총본부로 개칭하였으며, 1963년에는 재단법인 대한천리교를 설립하였으며, 김진조(金振祚)가 초대 교통(敎統)이 되었다. 신 ...
2025-10-10 21:01
22
채지가
수운교
『채지가』는 지초를 캐며 부른 노래라는 뜻이다. 지초는 불로초로 불렸던 영약(靈藥)이다. 현재 채지가는 증산도, 순천도, 대순진리회 등 여러 교단에서 출판, 보급하여 교화에 이용하고 있다. 수운교의 『채지가』는 일제시기부터 필사본으로 알려졌고, 경전 못지않게 많이 읽혀왔다. 「남조선 뱃노래」, 「초당의 봄꿈」, 「달노래」, 「칠월식과」, 「남강철교」, 「춘산노인이야기」, 「궁을가」등 7편이 함께 실려 있다. 이 중에 「궁을가」라는 제목의 가사는 현재까지 여러 편이 전해오고 있다. 첫 구절이 무슨 말로 시작하느냐에 따라 그 이름이 붙여지는데, “대명천지 일월하에....”로 시작하는 「대명천지 궁을가」(이를 ‘전남대본’이라 ...
2025-10-10 00:31
22
참례식
천도교
참례(參禮)라 함은 스승님의 묘소나 동상, 또는 선열들의 위령탑 등을 참례하는 것이다. 교인들이 집단으로 참례단을 조직하여 행하는 참례와 개인적으로 하는 경우가 있다. 집단적으로 참례할 때에는 인솔자의 지도로 묘소 앞이나 동상 또는 명소 앞에 정렬하여 아래의 절차로 진행한다. 참례식 식순은 개식, 청수봉전, 심고, 주문, 배례, 심고, 폐식의 순서로 이루어진다.
2025-10-10 00:07
22
진표율사
불교
완산주 벽골군(지금의 전라북도 김제)사람으로 속성(俗性)은 정씨(井氏)이다. 12세에 금산사(金山寺)로 출가하여 순제(順濟)에게서 사미계법(沙彌戒法)을 받았다. 760년(경덕왕 19년)에 변산의 부사의방(不思議房)에 들어가서 미륵상 앞에서 부지런히 수행하여 미륵보살로부터 점찰경(占察經)을 전해 받았으며, 산에서 내려와 용왕의 도움을 얻어 금산사를 중창하였다고 한다. 그 뒤에 금강산에 들어가 발연사를 창건하고 7년간 머무르면서 점찰법회(占察法會)를 열었다. 경덕왕 때 왕의 부름을 받고 궁중으로 가서 왕에게 보살계를 주었다. 왕이 곡식 7만 7천 석을 내리니 이를 절에 가지고 돌아와 크게 불사를 일으켰다. 발연사 동쪽 큰 ...
2025-10-09 23:52
22
중앙종의회
대순진리회
대순진리회 중앙종의회는 방면 상급 임원인 선감, 교감, 보정으로 구성된 최고 의결기관으로 도헌 및 제규정의 제정 및 수정 개폐, 예산 심의 결정, 종무원에 대한 감독, 종무원 및 감사원 임원선출 등의 권한을 가진 회의체이다. 하지만 중앙종의회의 중요한 기능은 종단 전체의 방면의 대표들이 모여 도전의 공식적인 훈시를 청취하고 도통연원의 가르침을 전수하고, 교단의 기본 사업과 중요사업에 관한 인식을 공유하는 것이다.
2025-10-09 21:40
22
정도교
각세도 도조 이선평은 생전 교단을 동서남북 사관(四觀)으로 나누어 운영하는 사관제를 도입하였으며, 각 관에 자신의 수제자 4명을 도주로 임명하였다. 동도주는 이상제, 서도주는 신태제, 남도주는 김해제, 북도주는 한명하를 임명했다. 그러나 1956년 이선평이 사망하자 각세도의 동관은 ‘귀임도(歸任道)’, 서관은 ‘정도교(正道敎)’, 남관은 ‘천인교(天人敎)’로 개명하여 각자 독자적인 노선을 걷게 되었다고 한다. 신태제는 이선평의 수제자 중 한 사람으로서 각세도 서관의 관리를 담당하게 된다. 1956년 이선평이 사망하자, 그는 교단명칭을 ‘정도교’로 바꾸고 독자적으로 교단을 형성하게 된다. 그러나 신태제는 조화정부(造化政府 ...
2025-10-09 17:04
22
인심도심설
사람의 마음을 인심과 도심으로 구분해 이야기한 것은 『서경』의 기록에 근거를 둔 것이다. 『서경』에 “인심은 위태하고, 도심은 은미하니, 오직 정일(精一)하여야 진실로 그 중(中)을 잡을 것이다”라고 한 것이다. 송대 주자는 인심과 도심의 개념으로 『중용』의 성명(性命)론을 해석하였는데, 마음은 동일하지만 마음이 형기(形氣)의 사사로움에서 나오면 인심이고 성명(性命)의 올바름에서 근원하면 도심이라고 하였다. 선악(善惡)과 관련해 볼 때 도심(道心)은 선하다고 할 수 있고, 인심(人心)은 선한 경우도 있고 악한 경우도 있다. 이 인심도심의 문제는 한국 철학에서도 중요한 주제가 되었는데 주로 사단칠정(四端七情)론이나 이발기 ...
2025-10-08 23:07
22
인도교
인도교(人道敎)를 창립한 채경대(蔡慶大, 1890~1940, 호 龜岳)는 1890년 12월 9일 전라남도 무안군 비금면 지당리에서 태어나 1914년 보천교에 입교, 최고 간부가 되었다. 그러나 1922년 증산 강일순의 탄생지인 객망리에 성전을 짓고 천인교(天人敎)라 이름하여 독립했다. 1936년 조선총독부는 증산계 각 교단에 대해 대 폭압령을 내렸다. 국내에서 증산교운동을 전개할 수 없게 되자 이해 여름에 만주에 들어가 농장개설과 교인촌(敎人村) 건설을 준비하고 교인 600여 세대로 신농사(神農社)라는 조직을 하여 만주로 이주하였다. 그러나 계속 일제에 쫓겨 봉천성 강평현 박인촌(博仁村), 통화성 유하현 대전자촌(大甸子 ...
2025-10-08 22:49
22
이심치심
천도교
최제우는 영부(靈符)로 사람을 구하고 주문을 가르쳐 한울님을 위하게 하면 인간과 사회의 괴질은 치유된다고 보았다. 영부는 수운이 “인간이 한울은 알아도 한울이 곧 자신의 마음”인 것을 알지 못함을 근심해 궁을(弓乙) 부도로 그려내 것으로 ‘세상을 치유하는 영약(靈藥)’으로 상징된다. 치유는 영부를 환하게 깨치는 “투득(透得)”에서 가능하다. 투득이란 인간의 마음이 한울의 마음, 즉 천지의 지극한 기운과 하나로 통하는 것을 말한다. 인간이 천지만물의 본래 한 마음인 천심(天心)과 하나 되는 것이 심화(心和)이고, 천지에 가득 차고 우주에 뻗쳐 있는 천지 일기(一氣)와 하나 되는 것이 기화(氣和)인데, 심화와 기화를 이루면 ...
2025-10-08 21:25
2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