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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두요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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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불교

의두요목은 대소유무의 이치와 시비이해의 일중에서 의심되는 조목을 간추려 정리한 20개의 항목을 말한다. 『정전』에서는 정기훈련의 사리연구 과목으로 의두를 설정했는데, “의두는 대소유무의 이치와 시비이해의 일이며 과거 불조(佛祖)의 화두 중에서 의심나는 제목을 연구하여 감정을 얻게 하는 것이니, 이는 연구의 깊은 경지를 밟는 공부인에게 사리간 명확한 분석을 얻도록 함이요.”라고 정의하고 있다.

2025-10-08 19: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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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불회통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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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리학에 입각한 예교(禮敎)국가로 출범한 조선 초 유교와 불교가 다르지 않으며 서로 회통한다는 주장이 제기되었다. 조선 초기의 고승 기화(己和)가 유교와 불교를 비교하여 논술한 『유석질의론(儒釋質疑論)』이 대표적인 저술인데, 이는 정도전 등 유학자들의 배불론(排佛論)에 대하여 불교의 입장에서 유교와 불교를 대질하여 자문자답식으로 논술한 책이다. 유교와 불교는 세상을 구제하고 백성을 이롭게 하는 교법이므로 공존함이 마땅하니 서로 배척하지 말아야 한다는 취지를 펼치고 있다. 이후 배불론과 불교옹호론 및 절충론 등의 논쟁이 이어졌으나, 조선 성리학이 정착되면서 유불회통론은 자취를 감추게 되었다.

2025-10-08 18: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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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불교 초기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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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불교

박중빈은 대각 이후 창립인연들을 규합하고 방언공사와 법인기도를 통해서 교단 창립의 경제적·정신적 기틀을 다졌다. 아울러 1918년 10월에 창립한도를 발표하면서 ‘제2회 12년에 해당하는 1928년부터 1939년까지는 교법을 제정하고 교재를 편성하는 기간’으로 정했다. 그리고 전북 부안군의 봉래정사로 거처를 옮겨 1919년 4월부터 1924년 2월초까지 머물면서 교리에 관한 구상과 초안에 전념했다. 그 기간 동안 전통불교를 시대에 맞도록 하여 대중 교화를 하자는 내용을 담은 『조선불교혁신론』(1935)과 전문 수양의 방법과 각 항 연구조목을 지정함으로써 수양과 연구를 중심으로 한 교리를 담고 있는 『수양연구요론』(192 ...

2025-10-08 0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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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화미륵불교연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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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화미륵불교연구회(龍華彌勒佛敎硏究會)를 창립한 서승영(徐承永, 1920-1996)은 1920년 부산에서 태어났다. 일찍이 증산교를 알아 신앙하였다. 그러던 중 1964년에 강일순의 계시를 받고, 1965년에 부산 동래구 장전 3동에서 본회를 창립했다. 1979년에 경제정책·세제개혁·교육개혁 등을 건의하는 건의서를 청와대에 발송하는 등 현실사회에 대한 관심도 갖고 있었다. 초창기에는 상당수 신자들이 모여들었으나 활동을 하지 못하다가 1985년에 또 다시 증산의 계시를 받았다면서 앞으로 9년 안에 세상의 새 운도가 도래될 것이라고 예언하기도 했다. 그 뒤 별다른 활동을 하지 못하고 침체되어 있다가 1996년에 사망했다. 신 ...

2025-10-08 0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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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학당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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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학 농민 혁명 후 1898년 12월 흥덕에서 일어나 이듬해 6월까지 흥덕, 고창, 고부, 무장 지방에 번졌던 농민 항쟁을 말한다. 흥덕항쟁은 1898년 11월 15일부터 18일까지 전개되었다. 그 원인은 군수 임용현의 부정행위 때문이었다. 이러한 불만을 가지고 있던 이화삼, 송민수 등은 11월 15일 꽹과리와 나팔을 울리며 3백여 명의 동민을 소집하였다. 16일 새벽 이들은 흰 수건을 머리에 두르고 죽창과 나무 몽둥이로 무장한 후 흥덕관아를 습격하였다. 동헌으로 들어간 군수를 끌어내고 관물을 탈취하며 관청의 인감을 탈취하였다. 군수의 부정행위를 개혁하기 위해 관아를 점령한 영학당은 이화삼의 주도로 민회를 개최하였고 민 ...

2025-10-07 17: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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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기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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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천교

양기탁은 1871년 평안남도 평양에서 부친 시영(時英)과 모친 인동 장씨의 아들로 출생하였다. 호는 우강(雩岡). 어린 시절 한학을 공부하다가 상경하여 동학당 및 유림의 명가이며 우국지사인 나현태(羅鉉泰)를 만나 시야를 넓혔다. 1900년부터 일본과 미국을 3년간 여행하며 견문을 넓히고 돌아와 개혁당·보안회·대한협동회에 참여하였고, 《대한매일신보》를 발행하는 등 애국계몽운동에 앞장섰다. 1910년 일제에 의해 강제로 한일합방이 이루어진 후에는 만주로 건너가 독립운동에 투신하였다. 그러다가 1920년 동아일보가 창간되면서 고문으로 추대되어 활발한 활동을 전개하였으나, 장덕수파와 의견이 맞지 않아 신문사를 그만두고 종교운동 ...

2025-10-07 15: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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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도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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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천교 신자였던 이민제는 교리연구와 도각(道覺)을 위하여 입산수도 끝에 1923년 득도하여 『삼역대경(三易大經)』을 저술하고 자신의 사상을 기반으로 성도교를 창립하였다. 당시 신자는 한때 1만 명에 이르기도 했다고 한다. 그 뒤 수제자였던 이응종(李應鍾)이 교맥을 이어 포교를 계속하였다. 성도교의 신앙대상은 삼천상제(三天上帝)로서의 한울님인 천주를 믿으며 이를 삼황천주(三皇天主)라 하였다. 수운 최제우를 도주로 이민제를 태극도주로 받들었다. 교리는 동학사상에 이민제의 삼역교리를 혼합한 것으로 심학(心學)을 근본으로 하여 도명덕화(道明德化)하고 포덕천하 · 보국안민 · 광제창생 하여 죄악이 없는 이상세계를 만드는 것이 본 ...

2025-07-14 0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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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북청년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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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

북한에서 사회주의 정부수립 이후 월남한 지주 집안 출신의 청년들이 주축이 되어 1946년 11월 30일 서울 YMCA 회관에서 이북 각 지역 청년단을 통합하여 결성한 ‘서북청년회’가 정식 명칭이다. 중앙집행위원장으로 선우기성(鮮于基聖)을 선출하고 ①조국의 완전 자주 독립 쟁취 ② 균등사회의 건설 ③ 세계평화에 공헌 등의 강령을 내세웠다. 그러나 서북청년단은 북한에서의 기득권을 뺏긴 회원들의 공산주의에 대한 분노와 적대감을 활용하여 우익정치인이나 기업가의 자금을 받아 반공투쟁 선봉세력으로서 좌익색출과 공격 등에 주력했다. 1947년 3·1절 좌우익 남대문충돌사건 부산극장사건 조선민주애국청년동맹사무실점령사건 정수복검사암살사 ...

2025-07-13 23: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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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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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역』에는 상(象)과 수(數)와 이(理)의 세 가지가 내재되어 있다. 『주역』의 괘상(卦象)과 수리(數理)를 중시하여 연구하는 방법이 상수학에 속한다. 상수학은 『주역』에서 “성인이 상(象)을 세워 뜻을 다한다.”라고 말한 것이나 “수(數)를 지극히 하여 천하의 상을 정한다.”하는 등 상수적 입장을 강조한 것에서 연원한다. 상수학은 이후 시대를 거치며 체계화되었다. 한 대에는 상수학이 자연철학을 중시하면서 괘기설과 재이설이 강조되었고 송대에는 새로운 관점에서 철학성을 부여하면서 체계화하고 심화시켰다. 상수학은 상과 수를 사용해서 연구하기 때문에 필연적으로 하도·낙서나 64괘등을 비롯한 각종 도상(圖象)과 연결되었다.

2025-07-13 2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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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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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만덕진인(萬德眞人:1743-1840)이 제자 공공진인(空空眞人:1807-1910)에게 도를 전하였고 공공진인은 구한말의 암울한 시기를 당하여 국운이 쇠함을 보고 제자 한빛선사(大光仙師:1860-1945)에게 삼성(三聖)의 위패와 능운검을 포함한 세 자루의 보검을 전하였다. 한빛선사는 다시 제자 낙천선사(樂天仙師:1902-1984)에게 위패와 보검을 전하였고 낙천선사는 박달평전에 삼성의 위패를 모시는 삼성사(三聖祠)를 짓고 평생 삼법수행과 만행으로 일관하며 정진하였다. 한빛선사의 문하에 출가한 한풀선사(大氣仙師)는 스승으로부터 『천부경』·『삼일신고』·『참전계경』을 비롯하여 삼륜(三倫)·오계(五戒)·팔조(八條)·구 ...

2025-07-09 21: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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