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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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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단명

2025-07-02 01: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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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공화무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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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종교

김중건의 대공화무국(大共和無國)은 인간은 자연적 소박한 생활로 돌아가야 한다는 내용이다. 따라서 제세주의(濟世主義)로 노장사상의 영향을 받아 만들어진 것이다. 그는 대공화를 거쳐 무국(無國)을 실현하는 것이 최고의 이상으로 설정하였다. 따라서 무국의 시대로 가기 위해서는 한국의 자주독립이 선결되어야 한다고 여겼다. 참고문헌 : 「金中建의 元宗 창시와 독립운동」(이계형 『한국학논총』39집 2013)

2025-07-02 0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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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백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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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준룡과 그의 아내 김판례가 1946년 대전 보문산에서 창립한 단군계 신종교.

2025-07-02 00: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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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군정수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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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춘상은 단군사상을 선양하고자 1964년 서울시 서대문구에서 단군사상에 조예가 깊은 김일권(金一權)과 결속하여 ‘정수회(正守會)’라는 이름의 단체를 발족하였다. 이들은 단군사상을 고무하는 강담회를 수시로 개최하였는데 얼마 후 김일권이 이탈하고 대신 대종교에 있던 신철호(申哲鎬)가 주간이 되어 1965년 10월부터 『정수회보(正守會報)』를 간행하여 일반인들에게 무료로 배포하였다. 그러나 1967년 이춘상이 정수회에서 손을 떼게 됨으로써 단체는 활동이 정지되었다. 그 뒤 단군숭령회에 소속되어 있던 강대길(姜大佶)이 다시 ‘단군정수회’라는 이름으로 개칭하고 종로구 공평로에 회관을 두고 활동을 시작하였다. 참고문헌 : 『한국신 ...

2025-07-01 23: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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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군실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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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서의 유래에 대해서는 『단기고사(檀奇古史)』에 “기자조선 제26대 아갑(阿甲)임금 13년에 후단군조 사절 고유선(高維先)이 단군의 화상과 단군실기를 임금께 드렸다”라는 기록에서 처음 발견된다. 고려시대인 1363년(공민왕 12)에 이암(李嵒)이 저술했다고 하는 『단군세기』에서는 『단군실기』에 기록되어 있는 단군의 강세 건국년 재위기간 47대 단군조선의 왕검을 이용하여 기록하였다. 또한 근대기 백봉(白峯)이 백두산에 들어가 10년 동안 하늘에 기도하고 단군신명으로부터 묵시를 받은 후 백두산 석실에서 『신단실기』와 『단군실기』를 얻었으며 이후 제자들을 모아 단군교를 포명하였다고 한다. 참고문헌 : 『한국신종교실태조사보고서 ...

2025-07-01 23: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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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군숭녕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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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단체는 이담이 단군을 숭봉함으로써 민족주체의식을 양양할 목적으로 1945년 단군전봉공회를 설립한 데서 비롯되었다. 1958년 단군전봉공회를 단군숭령회로 명칭 변경하여 문교부의 인가를 얻었으며 서울에 본부를 두고 활동했다. 1961년에는 본 단체 산하에 전국의 단군숭봉단체를 통합할 것을 결의하고 사단법인 단군숭령회중앙본부의 간판을 달고 ‘민족주체의식의 신소생운동(新蘇生運動)’을 벌였다. 1966년에 조경한(趙擎漢)이 회장에 취임하여 전국의 무격단체(巫覡團體)까지 포섭하여 한때는 150여 개 지부에 수십만 명의 회원을 두기도 하였다. 참고문헌 : 『한국신흥종교총람』(이강오 한국신흥종교연구소 1992)

2025-07-01 22: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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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군성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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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단명

2025-07-01 22: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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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군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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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군릉에 대한 기록은 조선 성종대의 기록 등에서 이미 그 기록이 나타나고 있다. 다만 이 당시는 ‘청컨대 백성의 원하는 바에 따라 평양의 단군묘(檀君廟)의 예(例)에 의하여 해마다 봄·가을로 향(香)과 축문(祝文)을 내려 제사를 행하소서’라고 하는 등 단군묘로 표현되었다. 단군묘가 단군릉으로 표현된 것은 고종 37년(1900) 이후로 보인다. 당시 의관(議官) 백호섭(白虎燮)이 올린 상소에 ‘무릇 세 성인이 서로 이은 순서로 단군묘를 〖단궁릉(檀君陵)으로〗숭봉(崇奉)하는 것이 앞섰어야 하는데 아직까지 미처 겨를이 없었으니 어찌 숭보하는 거조(擧措)에 결함이 되지 않겠습니까?’라고 되어 있는 것을 통해 알 수 있다. 단군 ...

2025-07-01 2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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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유신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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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도교

내유신령(內有神靈)이란 모든 사람들의 내면 깊이에 신령함이 있음을 뜻하는 말이다. 수운은 21자 주문인 “지기금지 원위대강 시천주 조화정 영세불망 만사지(至氣今至 願爲大降 侍天主 造化定 永世不忘 萬事知)”를 풀이할 때 시천주의 시(侍)를 “안으로 신령함이 있고[內有神靈] 밖으로 기화함이 있음[外有氣化]을 세상 사람들이 각각 알아서 옮기지 않는 것[一世之人 各知不移者也]”이라 설명했다. 즉 모심[侍]이란 인간 각자가 안으로 신령하고 밖으로 기화하는 한울님임을 알아 이를 잃지 않는 것을 말한다. 해월은 그의 법설에서 “시천주란 심천상합(心天相合)”으로서 만약 “마음과 한울이 서로 어긋나면[心天相違]” 시천주라 하지 않는다 ...

2025-07-01 01: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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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수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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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도교

해월 최시형은 조선 가부장적 유가 전통 속에서 여성에게 가해졌던 차별대우의 문제점을 느끼고 여성의 일상생활에서의 수도를 통해 여성의 동학적 영성을 회복시키고자하였다. 주된 항목은 ①부모로부터 남편 자식 며느리 하인 그리고 육축에 이르기까지 모두 공경하고 사랑하며 아끼고 나무라도 생순을 꺾지 말며 어린아이를 치는 것은 한울님을 치는 것임을 알아 만물의 한울님을 극진히 공경하라는 것. ②땅에 물이나 가래침 코 등을 멀리 버리거나 뱉는 것은 천지부모님 얼굴에 뱉는 것이니 조심하라는 것. ③잘 때에 “잡니다” 일어날 때에 “일어납니다” 물 길러 갈 때에 “물 길러 갑니다” 쌀 그릇에 쌀을 넣을 때에 “쌀 몇 말 몇 되 넣습니다 ...

2025-07-01 01: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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